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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의 날에 아들에게 쓴 편지

그루 터기 2021. 6. 11. 08:00

 

2003년 성년의 날에 아들에게 쓴 편지

 

2003년 5월 19일 (5월 4째 월요일) 성년의 날에 아들에게 준 선물과 편지 내용을 

열심히 활동하던 카페에 올렸었는데 

그 때 올렸던 내용을 오늘 찾아서 블로그에 올립니다. 

 

 

카페에 올렸던 글의 전문입니다.

 

매년 5월 네째주 월요일(금년은 5월19일)은 성년의 날인데
이번 성년의 날에 제 큰 아들넘이 만 스무살이 되는
진짜 성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사실 대학들어가면서 성인으로 인정을 하여 같이 술도 먹고
여러가지 성인으로서 대우를 해 줬는데
그래도 성년의 날이 정해져 있으니 그냥 지날수 없어서 고민고민하다가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큰놈이 신고 싶어하던 운동화(옛날 우리 중학교 다닐때 농구화 비슷한거) 한컬레와
고민끝에 준비한 콤돔 한케이스(3개들이)를 첨부한 편지 한통과 함께
열두시를 막 넘기면서 들어온 아들과 소주 한 잔 하면서 건네줬습니다
편지를 한 참 읽어가던 아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면서
가슴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결혼후 딸아이에게 첫 생리를 알게될 때 생리대를 선물하겠다고
맘 먹었던 총각시절이 생각나지만 불행히도 저에게 아들만 둘이거든요.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날라온 아들의 핸드폰 메시지
"아빠! 스무해동안 바르게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엔 제 콧등이 시큰해 집니다.

그날 학교 축제에서 풍물공연을 책임진 아들에게
나도 메세지 날렸지요.
"공연도 멋있게 하고 인생도 멋있게 살아라!"


 



그날 아들에게 보낸 저의 편지를 첨부합니다.


이젠 어른이 된 사랑하는 아들 *섭이에게

아침에 차를 태워 보내면서 한 마디 하고 보내도 되는데 그냥 보내버렸구나.
오늘 아침도 다른 날처럼 달라진 건 없는 아침이지만 그래도 *섭이가 세상에 태어나 스무 해가 지났다고, 이젠 어른이 되었다고 축하해 주는 날이 아닌가

축하한다. *섭아!
지난 20년 전 *섭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 아빤 서울의 직장에서 출산 소식을 듣고 시골 고향으로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지. 만삭이 된 엄마는 먼저 시골에 내려가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새로 태어날 아기를 기다렸고, 직장에 다니던 아빠는 새로 태어난 나의 2세가 어떤 모습일까? 나를 닮았을까? 건강은 한 건가? 이것저것 궁금해 하며 초조해 했었지.
엄마가 너를 가진 이후로 너무 힘들게 입덧을 많이해서 행여 너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도 하면서 너와의 첫 만남을 시작했었단다.
너와의 첫 만남은 누굴 닮은 것 따위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고 엄마와 아빠의 소중한 결실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단다.


셋째 아들인 아빠가 충주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같이 살길 기대하셨던 할아버님께서는 너가 태어나기 두어 달 전에 서울로 이사를 간 아들이 못내 섭섭하셔서 너의 이름은 *섭이라고 지으시고 고향을 잊지 말라고 당부 하시 던 생각이 떠오르는구나.
할아버님도 언제부터 나를 성인으로 인정 하셨을까? 요즈음처럼 성년의 날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말씀이 많지 않으셨던 할아버님께서는 특별히 성년에 대한 이야길 하신 기억이 없지만 그냥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 이나 해서는 않 될 일 들을 가끔씩 말씀해 주셨지.


얼마 전 늦은 저녁시간에 너랑 쪼끼쪼끼에서 맥주 한 잔 마시던 날 아빠는 무지하게 기분이 좋았단다. 너의 친구들이 아빠랑 술 한 잔 하는 걸 부러워한다고 해서 말이다.
나는 다른 아빠도 다들 그렇게 하려니 생각했었는데 의외구나. 물론 아빠도 할아버지 앞에서는 단 한 번도 술을 먹어본 적이 없거든. 그땐 세상이 지금이랑 많이 달라서 그랬겠지. 할아버님께서 지금도 계시다면 틀림없이 아들에게 술 한 잔 같이 하시면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겠지.


엄마는 가끔 *섭이가 술을 먹는걸 보고 술이 세다느니 하면서 술 많이 먹는 걸 탐탁치 않게 생각하시잔아.
외할아버님께서 술 때문에 일찍 돌아가신 경험이 있는 엄마의 입장으로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리다고 생각하는 자식을 둔 엄마의 마음은 조금만 먹어도 걱정이 될 수 밖에 없는 거니까.
나도 걱정이 되지만 맘속으로 *섭이를 믿고 묵묵히 바라보는 거란다. 지금까지 잘해 왔지만 앞으로도 잘 할 거라 믿으니까 말이다.


대학에 들어갈 때 이미 성년으로 인정을 한 아빠는 오늘의 이 성년의 날이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그래도 평생에 한 번 뿐인 성년의 날이니 뭔가 보람된 하루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편지를 쓴단다.
몇 일전부터 아빠와 엄마가 너의 성년 선물로 무엇이 좋을까 의논하다가 아빠의 제안으로 이 선물을 선택했단다.
의외의 선물이라 실망을 할지 모르고, 혹시 아빠의 뜻을 잘못 이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빠의 마음을 간단하게 전하고 싶구나.


성인이 되면 매사에 신중하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는, 권리보다는 책임이 많아지는 거라서 성인이 되었다고 축하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구나.
술 담배를 제외한 다른 선물로 성인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선물이 무었일까? 그리고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상징하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하던 아빠의 생각이 머무른 곳이 바로 이 콘돔이란다.


아빠가 이것을 첨으로 사용한 것은 너가 태어나고 *섭이가 태어나기 전에 양호교사의 권유로 한때 사용했었지. 그때만 해도 가족계획이란 이름 하에 정부에서 무료로 나누어 주던 그런 시절이었단다. 목적이 단 하나였다는 이야기지.
처음 콘돔이 개발될 때도 같은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걸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겠지?


*섭아! 가끔 아빠가 밥은 아무 곳에서나 먹어도 잠은 꼭 집에 와서 자라고 하던말 생각나니? 그 뜻이 바로 이 뜻이란다. 남자란 자기가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고 책임지지 못 할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겠지.
부디 내가 오늘 선물한 이 콘돔이 아무 때나 사용되어지질 않고 고이 간직 했다가 너의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하게 사용되길 간절하게 소망한다.


갖고 싶은 예쁜 선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아빠의 소중한 마음을 담은 이 작은 선물이 앞으로의 너의 인생살이의 판단기준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조심스럽게 전한다.


이십년 전 첫 만남에서의 소중한 우리 아들 *섭이가 앞으로도 더욱 소중하고 귀한 아들이 되어주길 가슴속 깊이 간직 하면서 엄마와 함께 성년을 축하한다.


2003년 5월 마지막 주 월요일 성년의 날에


바라만 봐도 자랑스러운 우리아들 *섭이 *섭이 아빠가

 

 

이 편지를 받은 큰 아들 결혼식 사진입니다.

아름다운 청평 북한강변에서 정말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린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