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나의 어릴적 기억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뭘까?

그루 터기 2021. 7. 7. 18:00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뭘까?

 

내 기억력이 남들보다 많이 나쁘다는 것을 수차례 이야기해서 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은 다들 알고 계실 것 같다.

내가 기억력이 나쁘다는 걸 알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학교 다닐 때는 남들보다 특별히 기억력이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으니까 말이다. 기억력이란 다들 비슷하고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은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기억도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 보다 수리능력이 좀 뛰어난 편이였던 것 같다.(물론 나보다 많이 뛰어난 친구들도 많았지만) 그래서 나는 내 머리가 무지하게 좋은 것으로 생각했고, 머리가 좋다는 것은 기억력도 좋다는 것으로 이해했으니까 기억력이 나쁘다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어쩌면 성인이 다 될 때까지 남들보다 기억력이 많이 나쁘다는 걸 몰랐을지도 모른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중에 되돌아보니 내가 좋아하고 잘 했던 과목과 잘못했던 과목이 정확하게 나누어진다. 좋아했던 과목은 이해력이나 수리력이 필요한 수학, 물리 등 이과 과목이고, 성적이 나빴던 과목은 사회, 역사, 외국어 등 주로 암기위주의 과목으로 철저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내가 기억력이 나쁘다는 걸 고민해 보기 시작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모회사의 주주로서 사외이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 회사는 여러 명의 주주가 모여 만든 전형적인 주식회사로 지분도 비슷비슷하게 가지고 있었다. 대표이사와 전무이사 사이에 회사의 운영 문제로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주주들의 의견도 양분되어 다가오는 주주총회 때 대표이사와 전무이사가 서로 바뀔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태까지 가게 되었다.

 

대표이사의 요청으로 단 둘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이야기 내용은 아마 좀 도와 달라는 부탁이었던 것 같다. 무슨 말을 하던 중에 대표이사께서 지난번에 그렇게 하기로 우리 약속 했으니 이번 한 번이라도 그렇게 하도록 황이사님이 도와 달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약속을 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당연히 저는 그런 말씀 드린 적이 없습니다.” 라고 말씀 드렸다. 대표이사님께서는 몇 번 지난번에 이런 저런 말을 하고, 그렇게 약속했다라고 설명을 하셨다. 문제는 내가 전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급기야 황이사님은 자기 유리한 것만 생각하고, 불리한 것은 잊어버리는 나쁜 버릇이 있다고 하시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셨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다.

 

집에 돌아오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당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 하느냐라는 말을 가끔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렇다.

난 정말 기억력이 하위 10%인 것 같다.

그래도 어릴 적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던 기억이나 부모님께 야단맞던 기억, 선생님께 칭찬 받았던 일 등 많은 기억들이 아직도 나는 걸 보면 완전히 지우개 머리는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많은 사람이 사랑방 뒷마루에 모이셨던 기억이 한 장의 사진처럼 생각난다. 내 나이가 4~6살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때는 내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 할아버지의 장례식이었는지 아니면 3년 소상이었는지 확인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할아버지 장례식이나 소상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로부터 우리집안에는 20여 년간 사람이 죽거나 장례를 치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기억은

사라호 태풍 때 우리마을로 들어오는 현대식 다리가 떠내려가는 것을 동네 사람들과 함께 구경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건 아주 짧은 영상으로 기억이 난다. 그 때 누구랑 같이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동네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다리가 떠내려간다고 높은 언덕위에서 사람들이 모여 놀라던 기억이다. 그 땐 다리가 떠내려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이 큰소리로 안타까워하는 것만 기억이 난다.

사라호 태풍을 지나간 뉴스에 확인해 보니 내 나이 4살 때였다. 사실 확인을 해보지 않았으면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쯤의 기억이 아닐까 생각할 텐데, 정확한 19599월이라고 하니 4살이 맞다.

 

그 이후의 기억들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기억들로 제법 많은 기억들이 있다.

 

 

 

요즈음은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 감퇴가 갑자기 더 심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기억력에 대해서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기억력이 나쁜 가족력과 후천성 알코올치매라고 하는 음주에 따른 기억력 감퇴가 어쩌면 지금 나를 찾아온 통풍과 똑 같은 것 같다. 둘 다 가족력과 음주가 원인이니까 말이다.

 

 

부족한 기억력을 보조하기 위해 열심히 메모를 한다.

그런데 어쩌면 좋을까? 그 메모지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없어진 메모지를 찾느라 책상 서랍과 가방, 그리고 책꽂이를 열심히 뒤진다.

 

 

여보 이 종이 버려도 되는 거야?"

식탁위의 메모지를 보며 아내가 물어온다.

 

아차~~~!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김포 한강 중앙공원에 있는 조각상입니다. 
요즈음 저하고 비슷한 것 같습니다 
최고로 한가하게, 최고로 편안한 자세로 글을 읽는 모습 같습니다. 
이 나이에 기억력이 좀 나쁘면 어떻고,  좀 잊어버리면 어떻습니까? 
그냥 세상 편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