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익숙한 걸 좋아한다. (어린 시절 공포의 바리깡)
나는 익숙한 걸 좋아한다.
네이버에 보수란 ‘새로운 것을 적극 받아들이기보다는 재래의 풍습이나 전통을 중히 여기어 유지하려고 함’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제가 일정부분 보수이긴 한데요. 진보가 그 반대의 뜻이라면 더 많은 부분이 진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제가 원래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개발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내 몸 속에는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는데 그중 진보 쪽이 약간 더 비중이 크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확실하게 보수적인 게 몇 가지 있습니다. 보수적이라기보다 익숙할 걸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요. 그중의 하나가 이발소입니다.
오늘 문래동에 있는 오래된 이발소에 다녀왔습니다. 십여 년을 계속 다녔으니까 단골이라면 단골인 집입니다. 이발사 사장님께서 특별히 머리를 잘 깎거나 친절하시거나 하신 것도 아닌데 자주 가게 됩니다. 집에서 차를 몰고 15분 정도 가야하는 곳이고 주차가 나빠서 몇 바퀴는 돌아야 겨우 불법주차 같은 좁은 공간에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인데도 다른 이발소에 가지 못하고 거기를 가게 됩니다. 딱 한 가지 이유라고 하면 그냥 맘이 편한 곳입니다. 익숙함에 편한 그런 곳입니다.
집주위의 가까운 이발소를 찾아봤으나 깔끔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한두 군데 이발을 해 봤는데 왠지 어색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음에는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발소 낯가림이 처음은 아니네요. 20여 년 전 안양에 살 때도 한 번 갔던 이발소를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이지만 계속 다녔었고, 서울로 이사를 온 다음에도 이발할 때가 되면 안양에 볼일을 만들어 일부러 다녀왔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이런 성향이 이발소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식당의 경우도 대부분 그렇습니다. 단골 음식점, 단골 술집은 웬만해서 바꾸지 않습니다. 회사에 근무할 때 거래처도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단골 거래처를 바꿀 때는 딱 한 가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단골 술집이나 식당을 바꿀 때도 비슷합니다. 음식이 달라졌을 때나 사장님의 서비스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었을 때 식당을 바꾼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음식 맛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서비스 정신이거든요. 맛이 조금 부족한 음식은 먹을 수 있지만 불편한 곳에서는 식사를 하고 싶지 않거든요.
단골 음식점을 꾸준히 가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도 빠트리지 않습니다. 주위에 새로운 형태의 음식점이 생기면 한 번은 꼭 가보고 판단을 하는 성격입니다. 요즈음 같이 새로운 식당이 수없이 많이 생겼다가 없어질 때는 못 가보는 곳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이발소를 자주 바꾸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습니다. 요즈음 제 머리카락이 옛날 같지 않거든요. 저의 집안에는 대머리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저의 일가친척 중에 대머리이신 분이 단 한분도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대머리가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고 하니까. 집안에 대머리가 없는 것도 대단한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요즈음 저가 탈모 때문에 살짝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탈모의 전조증상이 머리카락이 가늘어 지는 것인데요. 요즈음 저의 머리카락 수준이 거의 어린애 수준으로 가늘어 졌습니다. 그동안은 머리카락이 조금씩 가늘어져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요즈음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도 많이 가늘어졌고, 더군다나 통풍 약으로 먹는 콜킨정이 탈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이다 보니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걱정이 이발소를 바꾸는 걸 더 어렵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세대는 어릴 때 이발소의 추억이 많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지금처럼 멋진 디자인의 헤어숍은 아니지만 하얀 가운을 걸치신 이발사 아저씨께서 능숙한 솜씨로 깨끗하게 깎아주셨습니다, 연탄난로 몸통 옆이나 뚜껑에 비누거품이 나는 붓을 슬슬 문질렀다가 허옇게 일어난 거품을 쓱쓱 발라 옆머리와 목뒤를 깔끔하게 면도까지 하고 머리도 감고 나오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부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어릴 적 이발소에 간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형제가 많은 우리집에는 아버지께서 바리깡이라고 하는 머리깎는 기계를 가지고 계셨는데 한 손으로 깎는 신형 바리깡이 아니라 양손으로 깎는 그 당시로도 구형이었습니다. 머리깎는 기계를 잘 갈아 사용하여야 하는데 기계가 잘 들지 않아 머리를 찝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찝는 정도가 아니라 반은 뽑히는 것 같은 기분 이었습니다. 그 때는 어떻게나 따갑고 아픈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머리를 깎았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철에 머리를 깎으면 차가운 기계가 목 뒤에 닫으면 목을 움츠려서 깍을 수가 없어서 목을 펴라고 야단 맞았던 기억도 나고, 특별한 천이 없어 비료포대로 대략 감고 머리를 깎으면 몸속으로 머리카락이 들어가서 며칠씩 따가웠던 기억도 새록새록합니다. 그 땐 머리를 깎아도 목욕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털고 끝났으니까요. 아니면 머리를 감는 정도였지요. 겨울철 목욕이야 명절에 한 번 할 정도라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깍은 머리가 깨끗하게 잘 깎아지지 않는 건 당연하고 조금만 잘못 깎으면 얼룩얼룩 쥐가 파먹은 것처럼 보기 싫게 되어 심통을 부릴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발소에서 깍은 친구들은 머리가 깨끗한데 내 머리는 너무 보기 싫었거든요.
옛날 이발소에 대한 동경이 많아서 인지 요즈음도 미용실 보다는 수염까지 면도를 해주는 이발소를 더 좋아합니다. 요즈음은 연탄난로를 피우는 곳도 없고, 비누 검품 대신 면도용 거품을 사용하고, 면도칼을 가죽 띠에 쓱쓱 가는 모습도 사라졌지만 이발소의 젖힌 의자에 기대 누워있으면 향수에 취한 듯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발소에 가서도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합니다. 코로나 19 때문이지요. 코로나 방역수칙에 따라 수염의 면도는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할 조치이지만 못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빨리 팬데믹이 가고 포스트 코로나의 평화로운 시대가 돌아오면 제일 먼저 수염 면도를 맡기고 싶습니다.
(출처 : 네이버 유끼요 잡화점 블로그)
(바리깡이라는 명칭은 머리깍는 기계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 프랑스의 ‘바리깡 에뜨마레’라는 회사 제품이 들어와서 바리깡이라고 불렀답니다.)
저가 어릴 때 머리를 깍은 바라깡은 이 사진과 거의 똑 같은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