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천천히 천천히 (야! 그루터기! 뭐가 그리 급해!)

그루 터기 2021. 8. 20. 09:40

 

     오늘 아침 인간극장에서 인도에서 온 스님 이야기를 봤다. 요즈음 아침 뉴스 시간을 빼고 나면 TV는 거의 보지 않는 편인데 KBS 인간극장 방영시간이 아침 식사 후에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고 남는 시간이라 가끔 같이 보게 된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도에서 오신 젊은 스님인데 한국말을 참 잘 하신다. 월정사에서 기거하시다가 혼자 작은 암자의 주지스님으로 옮기셔서 생활하시는 모습을 그렸다. 차도 잘 못 들어가는 깊은 산골에 불사를 하시면서 정진하는 모습의 5부작이다. 처음부터 다 보지 못하고 한두 번 잠깐 보다가 오늘은 마지막 날이라 전부 보게 되었다. 작은 불당을 새로 지으면서 처음에는 하루 종일 매달려서 했었는데 요즈음은 아무리 바빠도 하루 두 시간 정도만 한다고 한다. 그 땐 마음이 급해서 빨리 하려고만 했었는데 이젠 빠른 게 꼭 좋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몸소 느끼고 천천히를 실천하고 계신다고 했다.

 

     문득 요즈음 내가 하는 행동이 빠르게 빠르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는 일이라야 아침부터 일어나 블로그와 이메일을 확인하고, 빌려온 책을 보기 시작하면 하루 내내 책을 보는 일이 거의 전부이다. 가끔 손자가 와서 같이 놀아주는 날을 제외하고 하루 세끼 밥 먹고, 잠깐씩 일어나 방안을 왔다 갔다 하는 일과 저녁을 먹고 아파트 앞 숲길을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은 빼면 나머지 시간은 전부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다. 요즈음 나의 하루를 돌아보면 정말 바쁘다. 뭔지 모르게 쫒기는 기분이 들고, 잠시 쉬는 10분이 아깝다는 시간이 든다. 심지어 운동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떤 날은 파주 친구의 집에 놀러가서 하루를 보내고 오면 왠지 모르게 그냥 하루를 보낸 것 같아 불안하기 까지 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책보고 글쓰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눈도 꽤 침침해 진 것 같다. 최근에 맞춘 도수 높은 안경을 빼고 나면 나머지는 이제 잘 맞지도 않는다. 어제는 운전을 하면서 처음으로 멀리 떨어진 신호등이나 도로안내판의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고, 퍼져 보이는 현상을 겪었다. 노안이라서 가까이 있는 건 잘 안보였지만 멀리 있는 건 깨끗하게 잘 보였었는데 어제는 뭔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몇 달 동안 책을 너무 많이 읽다가 보니, 안경의 도수도 올라가고 그 안경을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끼고 생활하다보니 내 눈이 안경에 맞춰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모든 게 금년 말까지 300권의 독서를 목표로 하고나서 일어난 일이다. 지금까지 반 정도 책을 읽어서 이제 남은 4개월 동안 매일 하루 1.2권은 봐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그것도 손자가 오는 날이나. 일이 있어 외출을 하는 날을 빼고 나면 하루 두 권씩은 읽어야 되니 마음이 급하다. 그 사이 하루에 한 번 블로그에 게시글을 올리는 목표도 달성해야하니 이래저래 꽁지에 불 붙여놓고 살아야 한다. 그 사이 사이 3D 프린터 교육도 받고, 기회가 되면 다른 교육도 받을 생각을 하고 있어 더더욱 마음이 급하다.

 

     오늘 인간극장 도엄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년말 까지 300권의 독서가 달성하지 못할 목표는 아니지만 꼭 300권의 독서가 목표이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는데 그것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내가 해 본다.

천천히 조금만 천천히 가는 게 멀리 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지금 딱 나에게 맞는 말이다.

 

 

출처 : (김사연 작가님의 백수가 과로사한다. 수필집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