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도 힘을 빼야 한다.그래야 손에 힘이 빠진다.
멍 때리기
멍 때리기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상태를 뜻하는 속어로 뇌의 휴식을 주는 것은 물론 몸의 긴장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이다. 옛날 어른들이 멍하니 먼 산을 바로보고 있으면 정신줄을 놓았다고 야단을 치던 생각이 난다. 어릴 때 야단을 맞던 멍 때리기가 요즈음은 가끔씩 필요하고 장려해야 하는 행동으로 바뀌었다니 아이러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반에 유독 자주 멍 때리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친구는 항상 초점 없는 눈으로 시선이 어느 곳에도 닿지 못하고 허공으로 헤맨다. 그렇게 멍 때리지 않으면 졸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친구는 선생님께도 지적을 자주 받았다. 특히 겨울철 창문으로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수업시간에 그 친구는 영락없이 졸고 있거나 멍 때리고 있었다. 말수도 적어 친구도 많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보통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니면 고등학교는 서울로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친구는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시골에 있는 고등학교에 유학을 온 경우였다. 서울 말씨를 쓰고 있는 친구가 부러워, 가끔 서울말을 배워보곤 했었는데 비슷하지도 않다고 친구가 웃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친구가 서울깍쟁이가 아닌 멍 때리기 선수라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었다. (그러던 친구가 10여 년 전쯤 지방의회의장이 되어 우리 친구들 앞에 나타났고, 고교 행사가 있을 때 마다. 많은 선후배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할 때는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일까 순간 의심할 뻔 했다)
나는 멍 때리기가 잘 안 되는 사람이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다른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긴 해도 잠시라도 멍하게 있는 것이 잘 안 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잠깐의 먼 산 바라보기를 할 시간조차도 차츰 잃어가고 있다. 그 전형적인 사람 중에 내가 포함되지 않을까? 특히 요즈음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 시간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부족한 시간에 대한 마음도 항상 쫓기듯 불안하다
요즈음 저의 생활에는 쉼표가 없다. 회사를 퇴직하고 인생2막을 시작하면 대부분의 시간이 쉼표일 것 같았는데. 어쩌다 보니 더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대부분의 퇴직자가 그렇듯이 저도 퇴직 후의 인생에 대해서 전혀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만 급하고, 우왕좌왕하게 되고 지나가는 시간이 불안하기 까지 하다. 이럴 때 일수록 쉼이 필요하다.
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여행을 가거나 글쓰기, 산책, 명상, 멍 때리기 까지. 그중에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멍 때리기가 아닐까 쉽다.
멍 때리기처럼 아무런 인지활동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를 찾았다는 논문이 발표 되었다. 그 특정 부위는 생각에 골똘할 때 오히려 활동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정신없이 생각을 집중할 때보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때가 오히려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경우가 많은 것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고교시절 그 친구는 오래전부터 멍 때리기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일까?
멍 때리기의 장점은 집중만 했을 때 모든 대상에 대해 집중할 수 없어 놓치는 부분과 사고의 경직성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집중하려고 애쓰는 순간 더 집중에서 멀어지는 경우를 경험하기는 어렵지 않다. 점점 더 산만해 지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데 멍한 그 상태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그냥 준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머리를 치고 간다.
‘그건 그러네.’ 머리를 좀 비우고 나서 집중하라는 이야기겠지?
가끔은 바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멍 때리기를 하고 싶다. 멍 때리기를 하려면 우선 멍 때리기 잘 하는 책을 한 권 읽어봐야 하는 건 아닐까하는 그루터기의 습관이 머리를 스친다. 그루터기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책부터 사보고 하나하나 연습하는 스타일이니까.
아니다. 그런 것을 없애기 위해 멍 때리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 책을 읽지 말고 그냥 한 번 해 봐야겠다.
유격훈련을 할 때 몸에 힘을 빼야 균형이 잡히듯이
수영할 때 몸에 힘을 빼야 물에 뜨듯이
골프 칠 때 손목에 힘을 빼야 멀리 똑바로 날라 가듯이
노래 부를 때 목에 힘을 빼야 고음이 자연스럽게 나오듯이
머리도 힘을 빼야 한다.
그래야 손에 힘이 빠진다.
그게 바로 멍 때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