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양희은, 『그러라 그래』, 김영사 2021

그루 터기 2021. 10. 15. 07:55

 

 

이 책은 양천 도서관에서 빌려 보려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5개월이 지나도 빌리지 못하고 

심지어 대기자 5명 명단에도 올리지 못했다. (글을 올리는 지금은 3명, 4명 대기자가 있다.)

양천 도서관에도 3권 정도 되는 것 같은데 항상 5명의 대기자가 있었고, 서울에 있는 교육청 산하 도서관 모두 검색해 봐도 바로 비릴 수 있는 곳이 없다. 최소한 2명 이상의 대기자가 있었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 계산상으로 빌려간 사람을 합쳐서 6명이면 3개월인데 대기자 명단에도 올리지 못하니 대단한 책인가보다. 

기다리다 못해 책을 구매했다. 양천 도서관을 다니고 난 이후로 처음 책을 구매했다. 

금년 봄에 나온 책이 벌써 10쇄를 인쇄했다고 하니 그 인기가 대단하다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내가 감히 서평을 쓸 실력이 되지 않아 쓰지 않지만 

제목과 저자만 보고 빌려보려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건 양희은이라는 알려진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한 몫했으리라 생각해 본다. 

 

가수 양희은의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은 에세이. 뚝딱 읽어보고 기다리는 순서로 넘겨줬다. 가족들이 순서대로 기다리기 때문이다. 

 

 

 

 

양희은, 그러라 그래, 김영사 2021

 

인생이 내게 베푼 모든 실패와 어려움, 내가 한 실수와 결례, 철없던 시행착오도 다 고맙습니다. 그 덕에 마음자리가 조금 넓어졌으니까요.

 

돈이란 넉넉하든지 부족하든지, 죽을 때 갖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던가.

 

문병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알았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내 입장이 아닌 게 다행스러워 안심하듯 날 위로했다. 나를 보며 눈물까지 흘렸지만 그 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어떤 사람은 나의 석 달 시한부 소식에 자기 건강 챙기러 서둘러 산부인가에 예약하고 암 검사를 받기도 했다.

물에 빠져 목까지 물이 차올라 깔딱하고 죽게 되었을 때 내게 손 내밀어줄 사람이 있을까?

 

신이 인간을 하찮게 비웃는 빌미가 바로 사람 계획이라잖아. 계획 세우지 말고 그냥 살아.”

시간에 쫓겨 늘 종종걸음을 치던 날들을 돌아보니 얼마나 이리 뛰고 저리 뛰었는지 훤히 보인다. 일상의 느긋한 사람을 보면 약간 짜증을 내며 왜 저리도 늘어져 사는 거야! 팔자도 좋다뭐 이런 속엣말을 했었다.

 

머리가 크고 나서야 엄마는 비교 대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들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엄마마저 없었다면 우리 세 자매가 어떻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엄마가 치매 초기란다. 의사는 보호자에게 운동과 대화를 하루 두 시간 이상씩 하도록 하고, 칭찬도 많이 해드리란다. 앞으로 고집도 많이 부리실 거고, 하도 엄청 내실 테고, 본인이 실수하고도 하지 않았다고 우기고, 가끔은 거짓말도 할 거란다. 그러니 맞받아 싸우지 말고, 그저 병적 반응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란다.

 

엄마에게 일기 쓰기를 권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살아온 얘기와 딸들에게 남기고 싶은 예기를 기록해 보셨으면 했다.

 

후회가 남지 않은 헤어짐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일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속에 담고 있었던 이야기를 다 말 했다고 한다. 자신이 속 썩였던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용서를 구하고, 그동안 정망 고마웠다고 , 그리고 엄마가 내 엄마라서 좋았다는 말을 전했단다.

 

왜 우리는 죽고 난 후의 이야기를 이토록 꺼리는 걸까?

강을 건너기 전에 내 것을 나누고 정리하는 것도 용기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가보다.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는 있어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는 없다.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말과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

 

나이로 인해 머릿속 호두알이 줄어드는 걸까?

 

잠깐, 미스 양! 우리도 이자를 받아야 겠어요.”

첫째, 미스 양의 웃음입니다. 이젠 웃을 수 있겠지요? 또 한 가지, 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 지금의 미스 양 같은 처지의 젊은이를 만나면 스스럼없이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두 가지가 우리가 받으려는 이자예요” () 신부님의 이자놀이의 원금을 갚은 후에도 계속되는 엄청난 의무였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이자일 것이다.

 

어떤 나이든 간에 죽음 앞에서는 모두 절정이라 치면, 그래, 지금이 내 삶의 절정이고 꽃이다. 인생의 꽃이 다 피고 또 지고 난 후라 더 이상 꽃구경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니 지금이 가장 찬란한 때구나.

 

내 삶에도 틀림없이 저렇게 중요한 부분을 옥죄고 있는 편견, 열등감, 자격지심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품고 살지 않는가?

 

사실 우리나이는 다 늙은 고아가 된다.

 

늙고 쭈그러진 영정 사진은 싫으시다고 젊었을 때 사진으로 마련하라고 하셔서요. - 나도 그런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하고 싶다. 옷을 벗어놓고 가는 길 돌아볼 때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웃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받는 것도 기준 좋은 일일 것이다.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예기해주고 싶다.

너 하고 싶은 것도 좀 하면서 살아

 

특히 내리막 계단은 우리처럼 무릎 나간 뚱녀들에겐 사약과 같다.

 

환상이 사라져도 실제 사람은 매 순간을 살아낸다. 그게 중요하다.

 

난 그저 나이고 싶다. 노래와 삶이 다르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노랫말과 그 사람의 실지 생활이 동떨어지지 않는 가수, 꾸밈없이 솔직하게 노래 불렀고 삶도 그러했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