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미리, 『뭉클하면 안 되나요.』, 이봄, 2015
마스다미리, 『뭉클하면 안 되나요.』, 이봄, 2015
일상생활에서 뭉클하는 모습들을 적은 글들이 읽는 내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사소한 일에서도 뭉클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게 좋다.
어느 더운 여름날. 남자와 커피숍에서 일 얘기를 하던 중, 그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깔끔하게 다림질한 청결해 보이는 손수건이었다. 이 사람은 다른여자(아내)의 것이구나. 생각하고 보면 평소보다 더 남자다워 보이니 참 희한하다. 손수건을 역시 섹시하다 생각한다.
학창시절에는 운동으로 흘리는 남자의 상큼한 땀에 무너졌다. 조금 더 어른이 돼서는, ‘회사에서 외근하고 돌아온 영업부 사람들의 땀, 나쁘지 않더라.’ 손톱이 깨끗한 남성의 땀은 그리 느낌이 싫지 않다.
전망대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한 남성이 성큼 성큼 내려가더니 맨눈으로 지상의 풍경을 보기도 전에 먼저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그것도 연사로. 아이고, 천천히 한 번 둘러본 다음에 찍읍시다. 뭐든 사진부터 찍는 사람은 알기 쉬운 사람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병원 대기실에서 ‘양자역학’ 공부를 할아버지에게 뭉클했습니다.
늙어서도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는 깊이 있는 옆얼굴, 이런 사람에게 사랑의 말을 들은 과거를 가진 여자는, 학교에서 인기 있는 남자에게 고백 받은 여자보다 우월감을 맛보지 않았을까?
왼손잡이다.
그에게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제일 편할 텐데, 계산대 너머에 마주 서 있는 내가 보기에는 아주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문득 분순한 생각을 해 본다. 이 사람이랑 사귀는 여자는 오른쪽 가슴부터 애무를 받을까? 왼손잡이면 마주 볼 때 오른쪽 유방에 손이 뻗칠까. 왼손잡이 남자와 한 번도 사귄 적이 없는 나는 그런 망상에 뭉클해진다.
빌린 책은 건전한 화학책인데 불건전한 독서, 짝사랑하는 사람을 역에서 몰래 기다리는 듯한 그런 애잔함. 다 읽고 나서도 내용이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떡하지, 이게 사랑으로 발전하면. 걱정하면서 책을 돌려주고 나니, 아~무런 감정도 없다. 책을 들고 있을 때만 훈훈하고 가슴 뭉클한 시간이었다.
술집 출입구에서 구두끈을 묶는 남성이 묘하게 귀엽다. 술자리 후, 동료들이 거침없이 나가는 중에 웅크리고 앉아서 조금 초조해하며 구두끈을 묶는 모습. 나도 모르게 빤히 보게 된다. 덩치 큰 사람일수록‘얼마나 무방비한 모습인지~’ 귀엽기 그지없다. 좌식에서의 술자리여서 신고 벗기 쉬운 구두를 신고 온다. 그것은 어른다운 선택이지만 그 모습에 여심이 뭉클해지는 일은 없다.
숱이 적어져 가는 머리칼에 뭉클
언젠가 머리가 허전해지겠구나, 하는 예감이 드는 남자를 만나면 가볍게 설렌다. 놀리는 기분이 아니라, 정말로 콩콩거린다. 이를테면 그들이 아무리 자신감에 찬 듯이 행동한다고 해도, “그렇지만 나, 좀 위험해” 초조함은 아무래도 배어나는 것. 문득 그들의 일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외출하기 전에는 숱이 많아 보이도록 스타일링을 신경쓰고, 샴푸할 때는 되도록 부드럽게, 사용하는 샴푸도 두피에 좋을 것 같은 타입을 고르고…, 전체적으로 머리부분을 소중히 하며 생활하는 그림을 망상하다 보면 위로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남자끼리
만난 적도 없는 여사원에게 칭찬 듣고 싶다. 남편을 통해 내가 칭찬받고 싶은 묘한 기분, 화이트데이뿐만 아니라, 이를테면 다림질이 잘된 와이셔츠, 감각 있는 넥타이, 잘 닦인 구두, 사내에서 그런 것을 목격할 때마다 등 뒤에 있는 ‘아내’를 상상하고, ‘언젠가 나도 내 남편에게는’ 하고 묘한 경쟁심을 불 태웠다.
성인 남자의 비치 슬리퍼가 나는 참 섹시하게 느껴집니다.
셀프 서비스 가게에서 이것저것 챙겨주면 존중받는 느낌이 커집니다.
작가는 참 살갑고 귀여운 여인 같다. 보통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칠 사소한 몸짓과 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뭉클함을 느낀다. ‘그건 좀 꼴불견 아닌가’ 싶은 행동까지도 누나 같은 시선, 이모 같은 포용력으로 뭉클함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난한 선배가 “딸 갖다줘”하고 넌지시 과자꾸러미를 손에 들려주는 모습이 뭉클했다. 무거운 캐리어 들고 지하철 계단을 낑낑 올라갈 때 다짜고짜 캐리어를 낚아채 계단 위까지 갖다 올려놓고 사라지던 청년의 모습이 뭉클했고, 1초가 아까운 택배기사가 현관까지 따라 나온 우리 강아지와 잠시 놀아주는 모습이 뭉클했다. 폐지 리어카 끌고 가는 할머니를 도와주는 남학생들 모습이 뭉클했고, 팔십대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칠십대 할아버지 모습이 뭉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