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틈만 나면 살고 싶다』, 한겨레출판. 2017
김경주, 『틈만 나면 살고 싶다』, 한겨레출판. 2017
『틈만 나면 살고 싶다』는 틈이라도 있다면 그 틈을 찾아 열심히 살고 싶은, 틈 밖에 존재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틈’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를 포착해낸다. 책에 나오는 서른일곱 명의 삶은 웃음과 울음이 적절히 섞인 한 편의 희비극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모두 다르게 살아가지만 비정규직이거나 일용직이고, 삶이 순탄하지 못하거나 위태롭다는 점에서, 모두 다 열심히 살아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모두 실존 인물이라는 것도. (예스24 제공)
“여보, 난 인생이 쓸모없어지는 것보단 창피한 게 낫다고 생각해. 내가 쓴 인형은 가족에게 쓸모 있는 걸 가져다주잖아.” “난 인형이랑 살고 싶진 않았다고.” 칼은 늘 멋진 액션 배우가 되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엑스트라 배우로 생활하는 건 가난하고 어려웠다. 수많은 영화 오디션을 보기도 했지만 주로 자객이나 전쟁 군인이었다. 주인공에게 얻어맞는 속칭 ‘방망이’가 되는 역할이었다. 그러다가 이 일로 들어섰다. 괴수, 유령, 마스코트…. 분윳값을 벌기 위해 칼은 닥치는 대로 일했다. 주로 뭘 뒤집어쓰는 일이었다. 뒤집어쓰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나이만 먹고 기술 있다고 높은 월급을 요구하는 바텐더보다 같은
값에 젊은 여종업원 몇을 두는 것이 더 ‘바’의 구색을 갖추는 것이라고 믿으니까.
여기서는 ‘직업의식’ 따위는 ‘질색’이라고 하니까.
졸업 후 핀은 아버지의 가업을 계승해서 환경미화원 시험을 성실히 준비했다.
하지만 환경미화원 시험 응시자는 한집에서 도저히 함께 섭생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바퀴벌레 숫자만큼 늘어났다.
몇 달 후 방에 공벌레처럼 누워 있는 그 노인의 주검을 발견했을 때 헐은 그 집 마당에 있던 고추장 장독 단지 옆에 쭈그려 앉아 오열했다. 달동네 언덕길까지 올라오는 자신이 유일한 소식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목이 메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이래서 가능한 한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은 거야.’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그것이 세상이었는지, 자신이 품은 질문이었는지 헐은 아직도 잘 모른다. 복역 후 처음으로 헐은 남의 집 담을 넘어 그 노파를 발견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나의 젊은 시절의 고생이 머리를 스친다.
나는 참 잘 살아온 인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