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랑, 『행복한 과일가게』, 샘터, 2001
이명랑, 『행복한 과일가게』, 샘터, 2001
폭력이 난무하는 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쉽게 폭력을 휘두르게 되고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이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란다는 이 당연한 진리를 나는 이제야 깨닫다니!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 그 미래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는 다름 아닌 내 아이들에게 달려있고 내 아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자랄 것인가는 바로 지금의 내 모습에 의해서 결정된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 그 것은 내가 너의 고향이 되어 주는 일이다.
이웃이 되어 한 냄비에 국을 떠 놓고 함께 밥을 먹기까지는 여러 번 손끝에 피가 맺혀야 한다. 타인과 타인이 서로의 온기를 느껴볼 수 도 없게 우리의 마음을 칭칭, 두껍게도 휘감고 있는 편견과 질시와 고지의 아스팔트 바닥을 뚫고 들어가려면 어쩌면 손톱이 다 닳아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두꺼운 바닥 속에 감ㅊ어진 마음의 흙 한 줌을 내 손에 쥐어보려면 그래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런 다음에야 그 흙이 얼마나 부드러운지를 알 수 있다.
내가 맞서 싸울 진짜 대상은 시장이라는 괴물이 아니라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헛된 욕망과 허영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요즘 나는 과일 장사를 하고 있다. 기껏 가르쳐 놨더니 겨우 과일 장사나 하냐고 혀를 차시는 분도 있지만 무언가를 선택해서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내가 선택한 대상을 향해 다가가 끊임없이 그 대상을 알아 가는 과정일 것이다. 과일 장사를 시작한 뒤로 과일만 아는 남편에게, 과일 중도매인인 형부에게, 평생 밥장사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나는 더 많이 다가간 느낌이다 ……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끼리 친형제보다도 더 가깝게 살을 부비며 사는 곳, 이곳이 바로 나의 고향이다.
만약에, 만약에 정말 결혼을 꼭 해야만 한다면 나는 내 자식들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줄 수 있는 남자랑 결혼할 것이다. 자식이 배우고 싶다는 건 무조건 다 가르쳐 줄 수 있는 남자가 아니면 아무리 사랑해도 절대 결혼 같은 건 하지 않을 거다.
다정한 음성으로 서로 인사를 나눌 줄도 모르고 일 년 내내 마주 앉아 커피 한 잔 마실 줄도 모르는 사람들, 이렇게 멋대가리 없고 무뚝뚝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 동네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막상 내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 아픔을 모른 척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서는 곰삭은 메주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방구석에 아무렇게나 두었을 때는 그 냄세에 눈살을 찌푸리지만 막상 청국장찌개나 된장찌개를 끓이면 입안 가득 군침이 돌게 만드는 메주처럼 말이다. 이보다 더 구수한 냄새가 어디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