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박경숙, 『미용실에 가는 여자』, 수필과 비평사, 2021

그루 터기 2021. 11. 25. 07:14

박경숙, 미용실에 가는 여자, 수필과 비평사, 2021

 

레시피란 요컨대 삶의 방식이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가치 기준과도 같은 것이다.

 

남편은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타이르듯 내게 잔소리를 한다. 바람 없는 지구는 대지가 아니라는 듯 잔소리 없는 남편은 이미 없다.

 

꽃이 왜 좋은지 아는가? 늘 변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 비해 식물은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어떻게 해야 살아남는가를 알고 있다. 식물은 그게 쉽다. 기억이 없으니까, 애증이나 집착, 아쉬움이 없으니 다시 적응해서 살아가면 된다.

 

내 나이 서른한 살, 신혼의 단꿈에 빠질 새도 없이 실낱같이 이어온 남편이 사업이 끝내 부도를 맞았다. 남편의 실패는 고공 줄타기를 하던 내 결혼생활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에 흠집을 내며 정신과 살을 파고들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허탈감으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 기운조차 없었다. 누구의 위안에도 내 정신의 가뭄은 해갈되지 않았고, 나침반 없는 사막을 홀로 걷는 것처러 희망르 가질 수 없었다.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절친이 아니고 자주 못 만난다고 소원한 것도 아니니라. 말이 많다고 다정한 것도 아니고, 말이 없다고 무심한 것도 아니듯 늘 겉보다 속이 아니겠는가.

태어나서 처음 맛본 청포도 맛

 

앞서거니 뒤서거니 앞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 허둥지둥 뛰어 가다보면 생각의 폭은 좁아지게 마련이다. 그럴 때 가끔 산에 올라 멀리 지평선도 바라보고 눈을 들어 흐르는 구름의 텅 빈 유희 속에서 일어버린 자아를 더듬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이제는 인생의 황금기인 봄과 여름을 보냈다. 이제는 몸과 더불어 생의 가을을 걷고 있다. 봄여름과 다르게 가을의 정조는 사유와 명상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한 나이다.

 

 

겪어 익힌 서정과 배워 익힌 사유로 빚어내는 화음

 

문학이 예술의 한 분야인 이상 서정은 절대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예술품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역사가 빚어낸 사상적인 요소를 빠트릴 수 없다. 거기에 형식적인 요소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일은 작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구약성서 창세기와 비견할 수는 없지만 창조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비슷한 작업을 하는 철학자가 쓴 글은 창작이라 하지 않는다. 문학은 사유를 형상화하여 새로운 세계를 제시한 것인 데 반해 철학은 사유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여 제시하는데 그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문학이 철학위에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문학에는 5대 장르 중 서정적인 성격과 서사적인 성격을 공유하고 있는 장류가 수필이다. 서사가 생활 속의 체험의 외형이라면 서정은 그 체험이 전하는 내면의 울림이다. 이 둘을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내면에 스며들게 하는 사유로 이 사유가 작품의 깊이를 결정한다.

수필은 체엄담에 가깝지만 수기가 아니며 철학에 가깝지만 철학서가 아니다.

김형진(수필과 평론 쓰는 사람) : 박경숙의 미용실에 가는 사람 추천 글

 

이기거나 지느냐 하는 문제는 일이나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할 자세이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마음을 갖는 다는 것은 소인배나 졸장부가 하는 짓이다.

 

글을 모르면 문맹이고, 컴퓨터를 모르면 컴맹이다. 상대에게서 애정을 표현할 줄 모르면 애맹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는 열여덟 앳된 나이에 시골 떠꺼머리총각인 아버지를 만나 쉼 없이 살았다.

 

한 밤중에 문득 잠에서 깨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가 있다. 검은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은 소곤소곤 정답기만 하다. 다툼이 없다. 제자리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반짝거릴 뿐이다. 그 소곤대는 별들의 모습을 보고 시인은 별들도 가끔 서로 어긋나겠지만 서운하다고 그 즉시 화를 내거나 등 돌리는 일은 없다.”로 했다.

부부는 늘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사는 동안 경혼생활에서만큼 사소한 마찰이 작은 곳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 사소한 마찰의 연속이 아닌가?

화해는 만병의 통치약이다. 화해를 하려면 고집을 버려야 한다. 먼저 인정하고 배려해야 화해가 찾아든다. 화해는 환원이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하면 자신을 묶고 있는 그 껍데기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깨달아야 화해할 수가 있다. 부부는 끊임없이 내려놓아야 한다.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농담이라도 들으면 기분 좋은 말이 있다. 예쁘다거나 멋지다는 말이 그 것이다. 그 중 매력적이라는 말은 심리학에서도 매우 복잡한 개념이다. 호감이나 비호감도 여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미 진짜와 가짜, 본래의 인간과 아바타, 원형적인 얼굴과 성형미인 사이의 굽이 어려운 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순수 원본과 그렇지 않은 것을 칼로 자르듯이 나눌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그 방식만 달리했을 뿐 이미 아바타에 탑승하여 살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명인의 비석 앞에 세워진 비문 대신 정사각형의 큐알 코드만 스캔하면 그 사람의 살아생전의 행적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소비를 나누는 방법

생활비, 교통비, 문화비, 적금 및 보험, 아이들에게 쓰는 소비, 여가비 등으로 나누는 경우

소유와 경험으로 나누는 경우

소유는 집과 자동차 등 물건의 소유, 경험은 먹고, 보고, 듣고, 여행을 떠나는 소비

경험적 소유를 즐기는 사람은 소유하는 물건을 그냥 렌트하고 싶다고 한다.

경험적 소비가 소유적 소비하는 사람에 비해 만족도가 높았다.

 

선생님! 선생님의 자녀는 행복합니까?” “그러면 더 바랄 게 없겠지

- 나는 애들이 행복할까? 그러면 나도 더 바랄 게 없을까?

문제 아이들에게는 문제 부모만 있을 뿐이다.

 

못난이 도자기를 주워 집으로 데려왔다. 어리 위에 쌓인 먼지를 닦아주고 예쁜 꽃을 심었다. 금이 간 주전자가 멋진 화분으로 변신했다. 막사발이었던 게 야생화를 품은 채 반들반들 윤이 났다 부러 비틀어 놓은 듯이 개성 있고 독특했다. 더 이상 욕심이 필요치 않았다. 이거라도 고맙지, 이만해도 감사한 일이다. ( 비행청소년 도자기 강의를 다녀오는 길)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새벽마다 메일을 찧으시던 아버지의 구부정한 허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밖으로 내신적이 없으시지만 나는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했는데 .. 비가 내린다. 아버지와 나를 세우고

 

마치 태엽감긴 곰 인형의 돌돌말린 스프링이 풀린 것처럼

신혼초 남편의 사업이 부도를 맞아 단칸방에서 살 때였다. 맨주먹에 빚만 덩그마니 남아 남편은 밖에서 뛰었고, 나는 공장 일꾼으로 살았다. 그래도 하루는 짧았다.

 

나는 내 나이가 갖는 의미 따위는 알고 싶지 않다. 더는 퇴색한 규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갈팡질팡하고 싶지도 않다. 난 새롭게 나이를 먹을 것이다. 예전에는 못 꿀 방식으로 살아갈 자신도 있으니... 쉰쯤이면 이정도는 누릴 만하지 않은가. 저 밖 어디서도 쉰 살을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

 

버리지 못하면 가벼워 질 수 없다. 깨끗해 질 수도, 맑아질 수도 없다.

 

한 때는 조건없이 다 주어도 좋았던 소중한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