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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 그 말이 내게로 왔다.(김미라 감성사전), 책 읽는 수요일, 2018

그루 터기 2021. 11. 27. 10:26

김미라, 그 말이 내게로 왔다.(김미라 감성사전), 책 읽는 수요일, 2018

 

KBS 클래식 FM<세상의 모든 음악> 감성사전을 통해 방송된 내용들을 다듬고 새로운 내용을 덧붙어 만든 책이다. 작가의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를 읽고 욕심이 나서 찾은 책이다. 지금까지 방송작가들의 책을 일고 실패한 경우가 거의 없다. 이 책도 역시 나에게 행복을 안겨주었다. 꼭지 하나하나 버릴 게 없다. 오늘도 배우고 또 배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책을 보면서 정말 이렇게 감성적인 말들을 어디서 찾아내고, 어떻게 생각해 내는지 감탄하면서도 또 한편 방송작가들은 매일 이런 좋은 글을 찾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작가 소개

김미라

매일 글 쓰는 사람. 시간을 들여야 이루어지는 일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는 믿음으로 오랜 시간을 라디오 방송작가로 살았다. [별이 빛나는 밤에]로 시작해서 KBS 클래식 FM[노래의 날개 위에], [당신의 밤과 음악]의 원고를 썼다. 지은 책으로는 오늘의 오프닝,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저녁에 당신에게등이 있다.

 

 

여기 적힌 말들은 모두 그렇습니다. 무심하게 읽을 수도 있고, 뭉클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기쁘게 읽을 수도 있으며, 누군가와 나눠 갖고 싶어 마음 설레게 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들려준 음악 한 곡을 평생 잊지 못하는 것처럼, 당신이 들려준 그 말을 평생 잊지 못합니다. 그 말이 내게로 오던 날처럼, 어떤 사람이 특별한 순간에 들려준 말이 사랑과 동의어가 될 때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내일의 소유를 위해 오늘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얼마나 유보하고 있는 것일까?

 

창고의 기능은 보관에 있지만 창고의 가치는 보관된 물건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흉년이 들었는데도 문이 굳게 닫혀 있다면 그건 창고라고 할 수 없다. 창고도 열려야 창고다.

 

말을 할 때는 세 개의 황금문을 거쳐야 한다. 첫 번째 문은 그 말이 맞는가하는 것이고, 두 번째문은 그 말이 필요한 말인가하는 것이고 세 번째 문은 그 말이 친절한 말인가하는 것이다. (중략) 세 번째 문 앞에서는 유독 마음이 따끔 거린다. 옳은 말이라면 친절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때가 종종 있었다.

(나도 그런 때가 자주 있었다. 반성해야겠다.)

 

피아노 독주회 무대에는 피아니스트만 오르지 않는다. 피아니스트가 건반 위에서 연주를 할 때, 바로 옆에 앉아 그림자처럼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이 있다.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악보를 넘겨주는 그 사람을 페이지 터너라고 부른다. - 세상을 위해 애써주는 그림자 같은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속하게도 잊고 지내는 존재. 이 세상의 페이지 테너들에게 정중하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

 

등에 가방을 메고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를 다니도, 좀더 무거운 가방을 들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고. 그 이후로도 몇 번, 가방의 형태가 바뀌면서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이따금 여행 가방을 꾸리면서 교실에서 배우지 못한 세상 공부를 했다. 가방은 원래 전쟁의 산물이라는데 나는 오늘도 가방을 들고 세상을 나갔다가. 가방을 들고 귀가한다. 가방 안에 담긴 하루를 헤아린다. 가방 안에 내가, 나의 일생이 담겨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의 재능을 가두어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승객처럼 꼼꼼하게 검색해봐야겠다.

 

텐덤 자전거를 탈 때, 앞에서 핸들을 조정하고 브레이크를 밟으며 이끄는 사람을 파일럿’, 뒤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는 사람을스토커라 부른다고 한다. 사람은 자전거를 탈 때조차 누군가와 함게 하고 싶어 한다는 따뜻한 증거를 보는 것 같다.

템덤해 드릴까요?”라는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 위로의 말, 격려의 말, 혹은 프로포즈의 말도 되겠다.

 

동료와 연결된 자일을 끊는 다는 것은 한 사람은 육체적인 죽음에 이르고, 남은 사람은 정신적인 죽음에 이른다는 의미다.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자일을 함께 묶고 암벽에 오르는 것. 그래서 생명 공동체가 되는 것을 자일 파티라고 한다. 이 자일 파티의 동반자가 바로 자일 파트너이다. (중략) 기쁨과 두려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는 것, 신뢰와 믿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는 것, 이런 사랑은 일정부분 자일 파티를 닮았다.

 

유엔에 근무하는 친구가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근무하는 그는 제네바 집값이 너무 비싸서 국경 너머 프랑스에 집을 얻었다. 날마다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출근하고, 프랑스로 퇴근하는 일상이 신기하다. 난민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국경, 누군가에겐 평생을 기다려도 넘을 수 없는 국경, 그런데 국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 출근하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낯설기만 하다.

 

내가 선택한 길은 느림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느림! 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우아하다. 배려 깊은 삶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나는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나이들, 모든 계절들을 아주 천천히 경험하고 주의 깊게 느껴가면서 살기로 결심했다.

 

정말 아름다운 단어는 하다라는 동사. 그 보다 더 아름다운 말은 다시하다라는 말. 긴 멈춤 후 마음에 새겨보는 감격의 말

 

진정한 보안이란 지킬 것을 줄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물쇠로 채우지 않아도 걱정할 것 없는 창고, 가지고 있어도 부끄러움 없는 간결한 소유, 지킬 것을 줄여가는 선택, 이런 쪽으로 우리의 삶이 가 닿았으면 좋겠다.

 

감수성이란 그 존재가 감추고 있는 본질을 알아채고, 외부 여건에 방응하는 능력 혹은 성향을 말하는 것!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감수성 검사가 필요한 건 아닐까

 

행복한 사람 곁에 있으면 행복할 확률이 높다는 사회심리학적 연구결과를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만약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면 그 행복을 나누어 줄 수 있으니 더욱 행복해질 테고, 만약 내 켵에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그 행복에 물들면서 함께 행복해 질수 있을 테니까.

 

스프링 캠프란 봄날의 캠프가 아니라 봄날을 위한 캠프. 봄날을 위해 혹독한 시간을 지나왔으니 이제 착한 봄이 열리겠지

 

스마트 기기에 즐비한 콘텐츠들은 짧은 순간에 소비자를 자로 잡아야 하기 때문에 톡톡 튀는 문장과 표현을 선호한다. 그러다보니 강렬한 콘텐츠에 익숙해져서 어지간한 것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팜콘 브레인 ; 첨단 기기에 익숙해진 뇌가 일상에는 무감각해지는 현상

 

사막에서 해도 된다는 말 보다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사막에서 살아가는 민족에게 엄한 규율이 많은 건, 그것이 목숨과 직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클리프 헹어(dliffhanger)기법 : 벼량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것 같은 긴장감 넘치는 대목에서 글을 끊어 버리는 것. 독자들은 얼마나 궁금해 하며 내일을 혹은 다음 달을 기다렸을까.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론 울고 있는 감정의 불균형을 방치하지 말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정말 나를 이해해줄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치료사를 만나 상담을 하는 등 상대를 믿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라고 권고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운동처럼 몸을 움직이는 취미활동을 통해서 적절히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중요한 건 생각!

그 다음에 중요한 건 선택!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행동!

 

목숨을 걸고 서식지를 향해 날아가는 철새처럼

절박해서 더 싱싱할 수밖에 없는 생명력을 수혈 받아야지

 

말 속에 담긴 본심을 알아주면 좋을 텐데. 맞춤법 검사를 하듯 말꼬리만 잡지 말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인정할 수 있고 아무리 옳은 확신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인간이 발명한 도구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도구가 거울이 아닐까. 유리창이 밖을 보게 한다면, 거울은 나를 비추어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한다. 치료자도 되고, 상담자도 되고, 매혹적인 수렴의 도구, 어쩌면 거울과 마술은 같은 어원에서 출발하는 건 아닐까 싶다.

 

유능한 사람들만 모여서 일을 하면 눈에 띄게 좋은 성과를 낼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유능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뛰어난 능력만으로 유능함을 따진다면, 조만간 유능함의 자리는 인공지능에게 내어줘야 할지도 모른다. 흩어져 있는 것을 모아서 의미 있게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밀가루 상태로 존재하는 것들에 물을 부어 맛있게 반죽해낼 수 있는 능력을 유능하다는 뜻으로 여겨야 하는 건 아닐까.

 

마라톤 중에 경험하게 된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마치 자신의 몸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과 같은 황홀을 경험하는 시간. 그런데 마라톤을 뛰는 모든 사람에게 러너스 하이가 찾아오는 건 아니다.

 

오후의 진통제가 되고, 주저앉은 사람을 일으키게 했던 한 잔, 꽉 막혀 있던 머릿속에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선사하나 한 잔, 헤어질 뻔했던 사람들을 다시 마주 앉게 해준 한 잔, 그런 차 한 잔을 “Got shot (갓샷)” 이라고 한다. 갓삿 한 잔 합시다.”

 

사람의 눈물은 포도의 눈물처럼 상처에서 돋아나는 것, 그러니 누구의 눈물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될 수 있는 가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경계선 넘지 말기, 독립과 이별을 인정하기, 느슨하게 간섭하기

 

서스펜디드커피 (Suspended coffee) : 돈이 없어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노숙자나 가난한 이웃을 위해 누군가가 미리 비용을 지불하고 맡겨두는 커피를 이른다. 100년 전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카페에서 시작된 서스펜디드 커피는 커피를 주문하면서 가난 한 사람을 위한 커피 한잔을 더 주무하고 미리 계산해두면 된다. 그러면 가난한 누군가가 찾아와서 서스펜디드 커피 있나요?’하고 물을 때 미리 기부된 커피를 내어준다고 한다.

 

한 잔의 커피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차 한 잔 마실 여유가 필요하다. ‘생존보다 인간의 품위를 인정하고 선물하는 것이어서 서스펜디드 커피는 더욱 의미가 있다

 

가끔은 데드라인이라는 말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뿐이라고, 오늘은 오늘의 시간을 즐겨야겠다고, 한 번 뿐인 인생인데 좀 더 너그럽게 살아봐야겠다고.

 

행복한 사람 곁에 있으면 덩달아 행복해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니 좋은 사람들 곁을 어슬렁 거리자. 나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정말 열심히 해야 할 일과 쉬엄쉬엄 해야 할 일을 구분하고, 때론 포기해야 할 일을 포기하며 삶의 숨 고르기를 해 볼 것. 체념의 진정한 의미도 헤아리면서 성숙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 볼 것.

 

승리한 정현 선수는 기쁨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의 우상이었던 조코비치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패배한 조코비치도 당신은 승리할 자격이 있다고 축하했다. 여기에 정현 선수는 이렇게 답했다. “나의 우상 조코비치를 닮으려 노력하며 여기까지 왔다.” 관중들은 승리한 정현 선수의 인터뷰를 끝까지 들었고, 그가 코트를 떠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박수를 보냈다. 승리보다 멋진 건 매너! 승자의 겸손도 패자의 선선함도 아름다웠다. 염치가 희미해져가는 세상, 아름다운 매너가 남긴 여운이 컸다. 6개월 뒤 조코비치가 윔블던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 반가웠다.

 

너무 늦은 일이란 없다.

 

길이 막혔다 똑같이 길이 막혔는데 어떤 길에서는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며 항의를 했고, 다른 길에서는 운전자들이 침착하게 기다렸다. 무슨 차이가 있었던 걸까? 똑 같이 제설 작업을 하던 중이었지만 한쪽 길에서는 안내문 없이 제설 작업을 하고 있었고, 다른 길에서는 우리는 당신을 위해서 눈을 치우고 있습니다.’라는 안내 푯말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빙판위를 미끄러져가는 스톤이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열심히 길 닦아주는 저 스위퍼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위해서 열심히 길 닦아주는 스위퍼가 되고 싶다.

 

로모 그래피를 선언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강령을 지킨다.

언제든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어떤 앵글이든 가리지 않고 찍고/ 가까이에서 직감적으로 찍고/ 사진의 예측 불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카메라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리고/ 언제나 규칙을 무시하라! 사춘기도 아닌데 규칙을 무시하라는 말을 들으면 왜 마음이 솔깃해지는지.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기한이 영영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꼭 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하고 싶다.

유통기한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통기한이 지났기 때문에 다행인 감정도 분명 있으며, 유통기한이 지났으니 폐기해야 할 인연도 있으며, 그렇게 결별한 뒤의 내가 훨씬 더 성숙할 수도 있을 테니까.

 

톱밥

나무로 켠 자리에서 떨어진 부스러기에 톱으로 만든 밥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주다니!

다시 나무로 돌아갈 수 없는 톱밥이 수북이 쌓였다. 과거가 피운 꽃이 수북하게 피었다.

 

모든 책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세상에서 한 권 뿐이며, 세계 모든 나라의 국경을 열어주는 8절판의 작은 책, 바로 내 여권이다. -프랑스 비평가 알렝보레

Passport는 항구를 지나가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쓰는 여권旅券 이란 한자는 나그네의 책이라는 뜻이다. 항구를 지나간다는 의미도 여운이 깊지만 나그네의 책이라는 이름이 훨씬 마음에 닿는다.

 

비행기는 후진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공항 게이트에서 승객을 실은 비행기는 제 몸집보다 훨씬 작은 차에 의지해 후진을 해 활주로로 향하게 된다. 이탈이라의 독재자 무솔리니는 전황이 불리하자 전차의 후진 기어를 없애라는 지시를 내렸다. 뒤로 갈 수 없는 그 전차를 무솔리니의 전차라고 부른다. 후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었겠지만, 그것은 무모한 광기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