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가난의 시대 』, 김지선, 언유주얼, 2020
『우아한 가난의 시대 』, 김지선, 언유주얼, 2020
작가는 나의 큰아들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리다. 큰며느리보다는 한 살 많다. 아이는 손주와 비슷한 달에 태어났다. 나이와 환경이 비슷하다. 우아한 삶을 꿈꾸는 것도 비슷하고, 가난한 것도 비슷하다. 자식들의 걱정을 큰 틀에서는 알고 있지만 좀 더 접근해서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 목마른 나에게 한 모금의 물과 같았다. 우아한 가난이라는 단어가 좀 생소했다.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이 말뜻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었다. 풀어쓰자면 가난하지만 우아하게 살자 쯤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 나이 정도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성실하게 살면 성공한다.’라고 믿는 세대였다.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라고 믿는 세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성실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 않는다. 고진감래의 인생 설계가 통하는 시대는 저물었다. 그 때는 고성장 시대였고, 이젠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애들이 직장을 구하고 자동차를 먼저 사려고 했을 때 극구 반대했던 생각이 난다. 결국 부모인 내가졌다. 그 땐 애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부터 아끼고 모아도 언제 집을 살지도 모르고 애들 생기고 나면 돈 들어 갈 때도 많은데. 차량을 유지하는 것 보다 택시를 타고 다니는 게 더 절약이 된다는 걸 이야기 했었다.(대기업 10년차가 넘었는데 아직 집이 없는 아들이 있지만) 지나고 보니 아니다. 이 책에도 주로 그런 이야기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이 추구하는 것.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우아한 가난을 선택’하는데 대해 걱정을 덮어둬야겠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도 그러지 못했었다.
저자 소개
김지선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영화지 《프리미어》와 패션지 《마리끌레르》, 《하퍼스 바자》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퇴사 후 가난해도 풍요롭게 살고 싶어하는 세대에 대한 책을 썼다. 현재 남편과 태어난 지 7개월 된 아이,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독서 메모
분명한 것은 우리들이 삶의 전반에서 부조화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제적인 형편 이상의 것을 원하는 사람 앞에 준비된 명쾌한 조언이 있다. 분수에 맞게 살라. 그러나 여전히 무언가에 취해 있는 우리들은 삶의 곳곳에 놓인 풍요의 파편들을 맛보며 살아간다.
내가 생각하는 우아함은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의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기준으로는 지극히 사치스럽고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한없이 궁상맞아 보이는 종류의 일일지라도 말이다.
(故황현산 선생님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치에 대한 욕구는 보들레르식으로 말한다면 인간 정신의 불멸성에 관한 증거다. 이런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생존 밖으로 넘치는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삶이 삶이다. 하다못해 연필이라도 좋은 것을 써야 한다. (…) 돈이 손에 있는 꼴을 못 보는 우리는 최선을 다해 현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자 한다.
(문정희 시인이 들려준 이야기 이다) 인간은 언어로써 존재하는 거잖아요. 물 한 잔도 고급 브랜드의 생수를 찾아 마시는 사람들이, 흙탕물 언어를 쓴다는 것은 아이러니 한 일이에요.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발가락에 반지를 껴 보거나 향수에 리본을 매달아 화장실에 걸어 놓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우리에게는 이런 장치들이 필요하다.
1968년의 파리에 몽상가들이 있었다면 2020년의 서울에는 미식가들이 있다. 우리는 물고 뜯고 맛본다. 먹고 마시고 틈틈이 사진을 찍으며 토론을 이어 나간다. 모험의 경계는 없다. 지출의 한계도 없다. 역사는 인스타그램에 적힌다. (…) 맛집을 많이 알수록 멋진 어른이라고 믿으며, 잘 먹고 다니는 것이 삶에 대한 성의라고 여긴다.
“왜 n분의 1을 해야 돼?” 치즈를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와인도 마시지 않는 M이 어느 날 말했다. 그녀는 그동안 이곳에서 샐러리만 집어 먹으면서도 우리와 같은 돈을 냈다. 균등분배를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n분의 1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은 그동안 이 개념을 악용해 덜 내고 더 먹어 왔는지도 모른다.
한때 나는 이것이 과도기적인 혼란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삶은 완성될 것이며, 하나의 생활 양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만들어지리라 믿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자체가 완성된 삶임을 깨달았다.
돈이 없다. 우연히 이 사실을 깨달았다. (…) 그러나 애초에 눈치채고 있었다. 돈을 모으는 인간과 돈을 쓰는 인간은 따로 있다는 것을.? 그리고 불행히도 우린 후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경제적 인간인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호모 웨이스트쿠스, 즉 낭비하는 인류다. 사실 낭비하는 인류는 ‘우리’로 묶을 수 있을 만큼 소비 패턴이 비슷하지 않다. (…) 먹고, 마시고, 옷을 보러 다니고, 애플의 신제품을 사고, 요가원에 다니고, 이동할 때는 택시를 타는 일들을 함께한 후에 25일 경이 되면 한 자리에 모여 수군댔다. “이번 달 카드값 얼마 나왔어?”
며칠 전 드디어 건조기가 도착했다. 건조기가 뱉어 놓는 먼지에 감복해 버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빨래를 돌리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삶이 크게 바뀌었다고 묻는다면, 아쉽게도, 아직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드물게 환상적인 날씨가 연일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출을 전혀 하지 못한 채 빨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 그러나 건조기에 대한 복음만큼은 진짜였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더 이상 건조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애플의 주식 가격은 세계 최대 명품 기업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와 연동성이 높다고 한다. (중략) 애플의 제품들은 명품 시계나 보석, 자동차를 구입할 생각이 없는 세대가 선택하는 사치품이다.
그동안 사과 문양이 나에게 주었던 만능감을 떠올려 보면, 이처럼 신속한 태세 전환은 부당한 일일 것이다. 다만 나는 조금 슬펐던 것 같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한 시절이 끝나감을 발견할 때,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요즈음 어떤 물건을 찾아보든지 간에 ‘가성비 갑’이라거나 ‘가성비 끝판왕’ 같은 단어를 가정 먼저 만나게 된다 나 역시 이 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말 뒤에는 값도 싸고 맛이나 성능도 최고라는 말은 아니다라는 뜻이 숨어 있다. 값은 약간 비싸지만 이라든가 맛은 약간 떨어지지만 혹은 품질은 최고가 아니지만 하는 단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조금 다른 것들을 멋지다고 여기게 된 것 같았다. 요즘은 명품 가방보다 가벼운 에코백이, 고급 자동차보다 신기술이 탑재된 손바닥만 한 기어가, 럭셔리한 요트 여행보다 요가나 명상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쿨하게 여겨진다. 이는 값비싼 명품을 소비할 여력이 없는 세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소비와 소유에 대한 생각이 좀 더 유연해진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다. 세대의 성향과 시대의 변화가 맞물려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의 미래는 블러 처리한 사진과 같다. 지금 내 주위에 자기 삶의 미래 형태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할 기회는 점점 더 사라지고, 일해야 하는 의무만 여전히 남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능한 일은 미래에 대한 망각뿐인 듯하다. 어쩌면 우리의 사치는 앞이 조망되지 않는 내리막 세상에서 터득한 날카로운 생존 감각인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나의 많은 친구들은 부동산 업자에게 말하기도 민망한 시시한 조건들, 이를 테면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작은 공간, 완전히 열리는 창, 한 그루의 나루라도 보이는 전망, 그러니까 낭만 혹은 아름다움의 영역에 속하는 무언가를 찾아 끝없이 유랑하는 중이다. 이 아름다움은 역세권에는 없다.
도시에서 조망권은 권리가 아니라 권력으로 작동한다. 같은 동네에서도 한강이 보이는 집과 보이지 않는 집의 시세가 억 단위로 차이 나는 서울에서 전망은 곧 돈을 의미한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위풍당당한 전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들이다.
저녁시간을 병적으로 아끼는 나는 사실 종종 거짓말을 한다. 반복되는 제안을 계속 거절할 수는 없다. 저녁이라는 황홀하고 유한한 시간에 아직 당신을 초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그 대신 이번 주에는 화, 수, 목, 금 점심시간이 비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저녁 약속을 잡는 기준은 철저히 만나면 즐거운 자리로 한정한다. 본지 오래됐다거나 왠지 만나야 할 것 같다거나 거절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저녁 시간을 나누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단 만나길 마음먹었다면, 나의 시간만큼 상대방의 시간 또한 최선을 다해서 소중히 여겨야 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내가 가진 모든 집중력을 기울인 대화를 시도할 때, 예기치 못한 좋은 시간이 찾아온다.
기다림의 시간은 나를 멀리 데려간다. 기다리기로 마음먹을 때, 비로소 기다리지 않을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더 이상 안달하지 않으려 한다. 아직 오지 않은 나의 택배는 언젠가 문을 열면 그림처럼 도착해 있을 거라고 믿는다.
망각은 비겁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삶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일 수도 있다. 나는 언제나 될 대로 되라는 생각하는 편이고 기분에 따라 많은 것을 결정한다. 잊고 싶은 것은 빨리 잊는다. 나는 망각이 제공하는 일시적인 풍요와 자유를 사랑한다. 이것이 없었다면 끝없이 유예되는 시간 속에 갇혀 옴짝 달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망각에 저항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어떤 의미일 까? 사진이 좋다는 의미일까? 사진을 찍은 방법이 좋다는 의미일까? 사진을 올린 사람이 좋다는 것일까? 혹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때문에 나의 선호도가 바뀌지는 않는가? ‘좋아요’를 누르지만 실은 싫어하고 있진 않은가?
“나는 술을 안 마신다. 누군가 술김에 전화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런데 나한테 사과할 일이 있는 사람들은 항상 술의 힘을 빌리더라. 나에게는 너무 모순된 상황으로 느껴진다. 대한민국은 음주 문화에 관대하고 너그러운데, 사회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무례한 언사나 성추행부터 뉴스에 나올 만한 범죄까지, 안 좋은 일들은 대체로 술을 마시면서 벌어지니까. 그래서 ‘도대체 술이 뭐 길래?’라는 생각을 좀 했던 것 같다.
오늘날의 문화는 사람들이 셔츠를 갈아입거나 양말을 갈아 신는 것만큼이나 자주, 빨리, 능숙하게 자신의 정체성(또한 최소한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을 바꾸는 능력을 습득하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소비시장은 적당한 가격, 또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이렇게 문화의 요구에 복종하는 기술을 습득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가 전한 해결책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케줄러를 새것으로 장만한다거나 수면 시간을 줄여 일하는 시간을 좀 더 확보하는 것이 아니다. 턱 끝까지 밀고 들어오는 모든 잡무를 제쳐 두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을 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어떤 종류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인지, 과연 지금 무엇을 목적으로 일하고 있는지 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시간 빈곤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남녀 모두 기혼자가 미혼자에 비해 시간 빈곤율이 두 배 이상 높다고 한다.
특히 여섯 살 이하의 자녀들을 둔 일 하는 여성이 가장 취약한 시간 빈곤층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일을 그만둘 경우에 소득 빈곤자가 되므로, 계속해서 시간 빈곤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왜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졌는지 실감하게 되는 나날들이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를 빨리 만났어야 했다. 더 이상 과거처럼 ‘가난한 사람답게’ 살지 않겠다는 젊은 친구의 모습이 너무 부럽다.
제가 1979년생인데, 저희 부모님만 해도 엄청 열심히 살아온 분들이에요. 이 사람들에게 열심히 산다는 것의 기준은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것과는 달라요. 저희 아빠는 항상 아침 여섯시에 출근하고 밤 열두시에 들어오면서도 그걸 당연하게 여겼죠, 저는 이 세대에 대한 이상한 연민과 동경이 있어요. (배우 배두나)
“저는 항상 이야기해요. 모든 일을 잘하려고 하지 말라고. 너무 잘 하려고 하는 것도 열등감이에요. 그보다 덜해도 충분한 거예요. 열심히 시간을 쪼개서 사는 사람들이 그 만큼 효율을 발휘하느냐, 그렇지 않아요. 열 시간 앉아 있는다고 열 시간을 공부하는 게 아닌 것처럼요. ‘열 시간이나 공부했으니 나는 열심히 했어’라는 자기 암시일 뿐이에요. 착각인 거죠”
“가장 큰 인지 오류는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에게 스물 네 시간은 똑 같아요. 그 자체가 거짓말인 거죠.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시간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시간 단위로, 분 단위로 쪼개서 많은 일을 하려고 애쓰지만, 결국엔 그 쪼개 놓은 시간에 다시 얽매이게 돼요. 자기가 시간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거예요.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거예요. 제가 한번 반대로 물어볼게요. 무엇 때문에 시간을 쪼개야 하죠?”
가난하다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과 육아를 포기할 수 없는 시간 빈곤자가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다 운동을 포기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는 시간을 포기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동시에 최악의 선택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을 포기한 후에 남은 시간의 질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어떤 작가는 아무리 바빠도 일상의 루틴을 잘 지키는 것이 소중하다면서 특히 식사 시간을 길게 확보하란다. 재료값을 아끼지 말고, 요리 시간이 아깝다고 여기지 말고, 밥은 아무리 급해도 천천히 씹으며 음미하란다. 지방에 가면 꼭 근처 맛집을 일부러라도 찾아가 비싼 메뉴를 고르란다. 그래야만 스스로를 존중하는 느낌이 들며, 덩달아 글도 잘 써진다나 뭐라나. 내게는 공허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