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할머니 우리할머니(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기억합니다.)』, 한성원, 소동, 2020

그루 터기 2022. 1. 1. 06:06

할머니 우리할머니(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기억합니다.), 한성원, 소동, 2020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그림과 만화로 그렸다. 메스컴을 통해서 들어오던 이야기들을 잠시라도 다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음이 급하다.

 

 

저자 소개

한성원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그림, 음악이 어우러지는 공감각적 작업과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가치와 관심사를 찾아가는 대화를 좋아하며, 학생들과의 만남 속에서 함께 성장해 가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서울시립대학교 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습니다.

책과 공연, 광고 영상에 쓰이는 그림을 주로 그려 왔습니다. 2019년 네이버 상반기 창작 지원 프로젝트에 당선되어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 정기 연재했으며, 2020년에는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를 기억하기 위한 함께 기억 프로젝트(서울시 주최)를 기획하여 진행했습니다. 그림책 자동차딸기 별이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픈 역사와 관련된 현재의 모습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행위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림 작가의 본능이자 책임이라고 여깁니다. 앞으로도 아름답고 편안하게 다가가는 작업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을 관찰하고 표현하고자 합니다.”

 

 

 

독서 메모

 

할머니를 그리고 기록하는 작업은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했습니다. 점차 할머니들의 인권 회복 운동이 왜 필요한 것인지 알아 가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왜 인류의 보편타당한 인권 운동이자 평화운동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1991814일 일본군 위안부피해를 최초로 공개 증언하고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924년생인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 이후 국내 피해자는 물론 필리핀, 네덜란드 등 세계 각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의 증언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20121211차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에서 814일을 세계 일본군 위안부기림일로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정부에서는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증언했던 814일을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기림의 날로 제정하였습니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이며, 전 세계 전쟁 피해 여성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활동한 김복동 할머니는 곱게 빗은 머리, 단정한 매무새, 온화한 미소를 가진 참 고우신 할머니입니다. 2019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병상에서도 마지막까지 일본의 사죄를 촉구했습니다. 늘 꼿꼿하고 의연했던 김복동 할머니는 누구보다 강인한 인권 운동가입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귀향>은 강일출 할머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텃바을 일구며 농사를 짓는 게 즐거운 강일출 할머니가 더욱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는 2014년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 정부청사에서 열린 위안부 기념 평화공원제막식에 초청됐습니다. 할머니가 힘겨운 기억들을 상기하면서도 끊임없이 활동하고 증언하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나와 같은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얀 루프 오헤른은 네덜란드계 호주인입니다. 서양인 중에 처음으로 위안부피해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할머니의 침묵을 깨게 만든 것은 한국의 위안부피해자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용기에 힘을 얻어 1992년 도쿄에서 위안부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밝히고 전 세계에 일본군의 만행을 알렸습니다. 2007년에 김군자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미국 하원의 청문회에서 위안부피해를 증언했습니다.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나는 이옥선입니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할머니들은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게 피해를 입은 할머니를 부를 때 명확한 역사적 사실르 바타으로 하면서도 피해자 입장을 고려한 적합한 용어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노래를 사랑하는 길원옥 할머니는 가수입니다. 90세에 가수로 데뷔하였습니다. 노래 좋아하기는 아마도 13세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할머니께서는 노래가 있는 곳에는 웃음이 있는데 쓸데없이 앉아서 남의 흉이나 보다간 웃음이 없거든. 그러니 노래가 좋지.”라고 하십니다. 할머니는 크나큰 아픔을 한 자락의 노래로 치유합니다. 할머니는 멋진 가수이자 평화 운동가입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할머니입니다.

 

어떤 할머니께서는 기억을, 이름을, 모국어를 잃어버리셧습니다.

 

영화 메리 포핀스를 보며 할머니를 떠올렸습니다. 하늘에서 우산을 쓰고 날아오는 메리 포핀스의 한 장면처럼 마법 같은 일들이 우리 세상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머지않은 시간 할머니들에게, 또 우리들에게 메리 포핀스이야기처럼 평화와 행복이 찾아와 주면 좋겠습니다.

 

2019년 어느 여름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느 할머니께서 언론에서 생존자 숫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스트레스를 받아 잠이 안 온다.’라고 이야기하셨다는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많은 분들과 함께 기억하기 위해 현재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선택한 단어표현이 때로는 행동이 할머니들에게 상처와 또 다른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꺼내고 이야기하고 기억할 때는 우리의 신중함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제 상상 속 이야기입니다. 뉴욕 타임스퀘어에 할머니가 여행을 갑니다. 이곳은 늘 화려하고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화려한 배경을 뒤에 두고 사진을 찍습니다. 타임스퀘어 광장에는 수없이 많은 커다란 전광판들이 있습니다. 정신없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합니다. 삼성도 있고 엘지도 있고뮤지컬 광고도. 전광판을 바라볼 때 할머니들의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봅니다. 한 분 한 분 할머니 이름이 불리면 좋겠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을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김군자 할머니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극 중 에피소드의 실제모델입니다. 김군자 할머니는 이용수 할머니, 안 루프 오헤른 할머니와 함께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일본군 위안부피해를 증언했습니다.

 

노부카와 미쓰코 시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위안부피해 생존자들의 활동을 돕고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주부인 그는 1994위안부할머니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위안부피해 생존자들의 활동을 돕고 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아픈 이유가 있어서, 여러 이유로 알려지지 않은 할머니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한 채 살아가신 할머니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할머니,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할머니를 그림으로 그리고 기억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림과 글로 정리하고 기록하면서 기억하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다는 전쟁으로 피해 입은 우리 할머니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기억합니다. 기억되는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