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그림 속에 너를 숨겨 놓았다. 』, 김미경, 한겨레출판사, 2018

그루 터기 2022. 1. 4. 01:05

그림 속에 너를 숨겨 놓았다. , 김미경, 한겨레출판사, 2018

 

수필집이라고 빌린 책이었다. 그림이 많아서 술술 넘어가는 그런 수필집. 읽다보니 그림에 대한 설명이 많아 잠깐 헷갈리기도 했다. 작가가 좋은 상태에서 그린 그림이나 글을 사람들이 많이 좋아한다는 것은 그림이나 글이 똑 같은 것 같다. 내가 행복해서 쓴 글과 내가 행복한 것처럼 꾸미고 쓴 글을 독자는 귀신 같이 알아본다. 그런 나의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확실해 졌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늦은 나이에 시작한 그림그리기가 나의 제2인생과 많이 겹쳐 보여서 용기를 가진다.

 

 

 

저자 소개

 

김미경

27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 쉰네 살이 되던 2014년 전업 화가를 선언했다. 서촌의 옥상과 길거리에서 동네 풍광을 펜으로 그려 서촌 옥상화가로 불린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스스로 성장해가는 화가다. 두 권의 책 브루클린 오후 2(2010), 서촌 오후 4(2015)를 펴냈으며, 세 번의 전시회 서촌 오후 4’(2015), ‘서촌 꽃밭’(2015), ‘좋아서’(2017)를 열었다. 가난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생각하는 것을 몸으로 하나하나 실천하며 재미있게 살아간다. 그 덕분에 각박한 현실에서 꿈을 접고 사는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꿈을 향해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되었다. 1960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강대 국문학과와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겨레에서 2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했고, 한때 뉴욕한국문화원과 아름다운재단에서도 일했다.

 

 

 

 

독서 메모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내게 인생이 5년 남았다면?

지난 5년처럼 살고 싶다. 매일 매일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을 팔고, 그림 그리며 만나는 새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 속으로 쑥쑥 들어가며 살고 싶다. 세계 여행을 더 다니고 싶고, 딸 옆에서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

 

미술대학을 나오지도 않고, 미술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화가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하는 대답이 있다. ‘뉴욕 생활이 나를 화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대답이 떨어지면 대부분의 사람은 금방 뉴욕에서 미술을 배웠군요!” “역시! 뉴욕 뮤지엄, 갤러리에서 좋은 그림들을 많이 본 덕이군요!”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뉴욕 화가들을 많이 보다 보니 화가가 되셨군요!”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뉴욕에는 화가들이 넘쳐났고, 직장 옆에는 뮤지엄과 갤러리가 즐비했다. 구멍가게 드나들 듯 뉴욕 뮤지엄과 갤러리들을 드나들며, 수도 없이 많은 그림을 보고 즐겼던 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내가 화가가 되는 데 뉴욕이 기여한 건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옥상에서 그리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옥상 풍경이 신기하고, 재미나고, 매혹적이어서였다. 옥상에서는 땅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구도의 풍광이 펼쳐진다. 처음 옥상 풍광에 매혹된 건 뉴욕에서였다. 옥상에 야외 갤러리를 뒀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설치 작품들은 하늘과 센트럴파크와 맨해튼 건물과 어울려 닫힌 갤러리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황홀한 구도를 만들어냈다. (중략) 7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처음 동네 옥상에 올라간 날. 인왕산과 그 아래 펼쳐진 기와집과 적산가옥과 현대식 빌라가 어울려 연출해낸 옥상 풍광은 맨해튼보다 훨씬 강렬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매일 옥상에 오른다. 옥상 풍경과 깊은 사랑에 빠지면서 옥상화가가 되어갔다.

 

다시 들여다 보니 정말 돌그랗지 않았다. 위 눈꺼플과 눈 아래 살점 부분에 덮여 눈동자는 찌그러진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꺼내 살펴봤더니 내 그림 속 눈동자는 모두 놀란 토끼처럼 동그랗게만 그려져 있었다. 열심히 보면서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눈동자는 까맣고 동그랗다는 고정관념을 그리고 있었다는 걸 그날 처음 발견했다. 그 후 주변 사물을 뚫어지게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살짝 망설여졌다. 글 쓰는 일로 30년 가까이 밥 벌어먹으며 살아왔던 나의그림에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묻어났을 수 있다. ‘보는 사람이 알아보든 말든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린다.’는 태도보다는 소통하고 싶은기자로서의 본능이 엿보였을 법도하다. 실제로 나는 옥상뿐 아니라 뒷골목, 인왕산, 가게 앞 등 현장에 서서 그리기를 좋아하고, 기사 마감하듯 매일매일 나가 그리기를 좋아하고, 역사 기록식의 그림그리기를 좋아한다. 기획 기사거리 찾듯 그림 주제를 부지런히 취재하며 찾아다니다. 기자로 살아왔던 시간들이 내 그림의 형식과 내용에 녹아 있는 현대판 문인화가인 셈이다.

 

동네 한 모자 집 간판에 나는 아직도 너를 내 시 속에 숨겨놓았다(I still hide you in my poetry)’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지나갈 때마다 나는 아직도 너를 내 그림 속에 숨겨놓았다, 바꿔 큰소리 내어 읽어본다. (중략) 좋아하는 마음을, 열정을, 그림 어딘가에 꽁꽁 숨겨놓는 재미가 솔찬하다.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의 기억을 더듬다가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과의 기억이, 추억이, 나를 그리게 하는구나! 좋아하는 사물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그리게 하고, 그리다 보면 점점 더 좋아지기도 하는구나!

 

나도 잘 그리고 싶어요!” 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좋아하는 거. 좋아하는 아주 사소한 것들부터 그려보세요!”라고.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풍경, 좋아하는 세상을 곳곳에 꽁꽁 숨겨 그렸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휩싸일 때 훨씬 그림이 잘 그려진다는 걸 발견해 억지로라도 그 감정을 계속 붙들어 매어두고 싶어졌다.

그리움을 표현해야지!’ 한 건 아닌데, 그리운 맘으로 그리다 보니 그림 속에 그리움이 가득 찼다. 이 그림을 볼 때 마다 그때의 그리움이 다시 차오르곤 한다.

 

동네 꽃 일 년 따라 그리기! 누구에게든 권한다. 작은 스케치북 하나를 산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꽃을 골라 앞에 앉는다. 한참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연필로 그리고 싶은 부분을 살짝 그린 후 펜으로 그린다. 물감도 살살 칠해본다. 어느 동네이든 꽃은 필 테고, 꽃을 따라다니다 보면, 분명 감성의 주름살이 조글조글조글 늘어나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될 게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동네로 이사 가 살더라도, 꼭 일 년 동안 그 동네에 피는 꽃 따라다니며 그리기부터 시작해볼 참이다.

 

아이고 아까워라. 이 그림 꼭 사고 싶은데. 똑 같은 그림 한 장 더 그려주시면 안 될까요?”() 돈 벌고 싶은 마음에 똑 같은 그림을 그리려고 몇 번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 그리지 못했다. 갈수록 그림은 그때 그 순간의 내 마음이 그린다는 믿음이 더해져 간다. 그때의 내 마음은, 내 그리움은, 내 사랑은, 다시 소환해낼 방법이 없다. 그 친구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나무가 있는 동네 풍경 그림을 내가 다시 그렸다면, 그 그림은 그 친구의 맘에 똑 같은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지 그것도 참 궁금하다. (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같은 이야기를 써도 똑같이 써지질 않는다. 그 때 그 순간의 마음과 똑같은 애절함이 소환되지 않음이리라.)

 

참 이상하지? 이 나무가 이렇게 큰 나무였는지 4년 전엔 정말 몰랐네! 왜 예전엔 나무 전체가 안 보였을까. 나무 저 끝과 만나는 하늘이 왜 안 보였을까?” 고개를 뒤로 계속 젖히며 묻는 내게. 친구가 한마디 했다. “마음이 그만큼 커졌나 봅니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커질 수 있을까?)

 

내가 미칠 지경으로 좋은 상태엣 그린 그림을 사람들이 기막히게 알아차린다. 묘사가 뛰어나거나. 구도가 멋있거나, 색상이 세련되건, 더 열심히 그린 그림보다 내가 섹스하는 기분으로 흠뻑 빠져 즐겼던 구도나 풍광을 그린 그림을 사람들이 훨씬 더 좋아하는 걸 감지한다. 꼭 그림을 그릴 때 내 옆에서 지켜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서촌 길거리에서, 옥상에서 서촌 풍경을 그리며 살다보니 청와대가 이래저래 자꾸 보이고 걸린다. 이 옥상, 저 옥상, 옥상 동냥하듯 다니다 보니 옥상마다 색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기막힌 풍광의 아파트 옥상에서 그리다 주민 신고를 맏은 경찰에게 쫓겨난 일도 있었다. 청와대가 너무 잘 보이는 옥사에서 그리려면 아파트 주민회뿐 아니라 동네 파출소, 종로경찰서 보안계까지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올라가서 그리고 싶어도 보안상허락을 받을 수 없어 못 올라가는 옥상도 많다.

 

아직 사회 이슈를 캔버스에 담아내는 일은 힘들다.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있을 때 펑펑 눈물 흘리며 그리워할 수 없는 걸 그려 내는 일이 너무 어렵다. 고백하건대, 민주주의를 갈망하지만 혼자 방에 앉아, 눈물 뚝뚝 흘리며, 민주주의를 위해 잘 울지 못한다. 젊은 시절 그런 자신이 창피해 일부러 통일을 위해, 노동자 차별 철폐를 위해 우는 연습을 오래오래 숨어 했지만, 쉽지 않았다. ‘거짓뿌렁의 느낌으로는 그릴 수가 없다. 지금 내 가슴을 터지게 하는 것들부터 하나씩 그려나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어떻게 춤을 이렇게 멋대로, 함부로, 잘 추느냐고요? 제 의식을 무의식을 묶고 있던 억압의 끈들을 하나씩 풀어줬더니 몸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춤은 제가 자유로워지는 만큼 추어지는 것 같아요. 딱 그만큼이요. 제 그림도 그만큼씩 그렇게 자꾸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매일매일 옥상에 올라 혼자 그림 그리다가, 팔 아프면 춤추다가, 또 그림을 그리다가, 또 춤춘다. 내 그림 속에 춤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까? 춤추며 횡단보도를 건널 때의 그 도시 속에서 문득 원시를 만나는 그 황홀한 느낌을 어떤 구도로 그려낼 수 있을까? 춤처럼 좀 더 자유로운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까? 춤처럼 내 그림이 좀 더 솔직해질 수는 없을까? 이것이 요즘 내 그림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됐다. 아직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 그림 속에서 춤이 더 무르익어 녹아나는 날을 꿈꾼다. 내 그림이 춤처럼 좀 더 솔직하고, 좀 더 자유로워지는 날을 꿈꾼다.

 

“30년도 더 된 이야기예요. 우리는 경북 영주시에 살았는데 영주역전에 중앙선을 타고 오는 해물과 인근의 농산물이 펼쳐지는 번개장이 섰답니다. 네댓 살이 된 딸과 장에 가는 길에 접시꽃이 붉게 피었어요. 저는 쫄랑쫄랑 걷는 아이에게 저게 접시꽃이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산책삼아 번개장을 도는데 한 시간 남짓 걸렸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접시꽃 옆을 지나며 물었더니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 그릇꽃!” 그 뒤로 우리에게 그 꽆은 그릇꽃이 되었습니다. 딸이 집을 떠나 산지 16. 저는 해마다 그해 처음 만나는 그릇꽃을 사진을 찍어 보내고 딸은 그릇꽃이라 답신을 보냅니다. ~”

 

그림 그리고 싶은 마음이 소질이다.

그럴 때마다 말한다. “그림 좋아하는 마음, 그림 그리는 사람이 부러운 마음, 그림 그리고 싶은 마음이 바로 소질인 것 같아요. 30여 년 전 어른이 되어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저 정말 너무 못 그렸어요. 못 그린 게 아니라 제가 그려낸 그림들이 창피했어요. 그래도 그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서 자꾸자꾸 그렸어요. 소질은 혼자 자라진 않는 것 같아요. 그리는 게 소질이라는 나무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꾸 물주고 다듬어주다 보면 어느새 무럭무럭 자란 나무를 만날 거예요.”

김희숙 할머니의 팔순 잔치는 그림 전시회가 되길 꿈꿔본다.( 나의 팔순 잔치는 어떤 것이 좋을지 갑자기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