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어야 산다』, 김병효, 사람과 나무사이, 2020
『품어야 산다』, 김병효, 사람과 나무사이, 2020
저자 소개
김병효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마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경동고등학교를 거쳐 한국 외국어대학교를 졸업했다. 우리은행 부행장을 거쳐 우리 아비바생명 대표이사, 우리프라이빗에퀴티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우리자산신탁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저자는 평생을 금융인으로 살아오면서 시와 문학을 멀리한 적이 없었다. 시와 늘 함께해온 그의 일상의 페이지에는 문학의 향취가 스며 있다.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금융 분야에서 그가 맡은 바 임무를 잘 감당해내며 삶의 여유와 품격을 지켜낼 수 있었던 데는 문학의 역할이 컸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글로 쓰인 저자의 인생 자취가 명시들과 한데 어우러져 책의 풍격(風格)을 더해준다.
저서에 『봄날이었다』가 있는데, 이 책을 계기로 2018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2년간 《영남일보》에 칼럼을 연재했다. 그 글을 모아 펴낸 책이 『품어야 산다』다.
독서메모
알레포의 방은 원래 지역상인 이사 이븐 부트루스의 응접실이었으며 1600년에 제작된 벽과 문이 모두 삼나무와 호두나무로 만들어졌다. 벽면과 출입문은 다양한 동물과 풍경이 조각되고 아름답게 채색된 뛰어난 예술작품이었다. 거실 천장의 높이는 2.9미터, 그런데 의외로 출입문 높이는 낮았다. 1.5미터 정도였다.
그 당시 사람들의 키가 그토록 작았을까. 화려하게 장식된 응접실 문을 왜 그렇게 낮게 만들었을까. 알레포의 방은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낮은 자세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문틀에 머리를 부딪칠 수밖에 없다. 늘 자신을 되돌아보며 경솔함과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견지하려는 상인의 지혜가 담겨 있는 듯하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을 까. 어제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정말 특별한 계기로 굳은 결심을 해도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리를 듣기 까지는 부단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 남에게는 너그럽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사람, 타인의 아픔이나 부족한 부분까지 감싸 안으며 뽐내지 않고 겸손한 삶,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는 세상을 희망한다.
판사는 이어서 그동안 잘 먹으며 편히 지내온 자신도 반성하는 의미에서 벌금을 내겠다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냈다. 또 배고픈 이웃을 돌보지 않은 방청석의 주민들도 일부 책임이 있다며 각각 50센트씩 벌금을 물리고 돈을 걷었다. 방청객 누구도 항변하지 않고 판결에 따랐다. 그 자리에서 걷힌 돈은 벌금으로 쓰였고 남은 돈은 흐느끼는 노인의 손에 전해졌다.
그 판사는 몇 년 뒤 뉴욕시장으로 선출됐다. 뉴욕시장을 세 번 연임한 피오렐로 라과디아다. 그는 정파를 초월하여 국가의 위기를 타개하는 뉴딜정책을 지지했고, 취임 첫날 라디오 연설에서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그는 그 막강한 조직의 집요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마피아 조직을 와해시켰다. 시민의 안전한 삶과 존엄성을 지켜낸 결과 뉴욕 시민들은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뉴욕의 신공항을 ‘라과디아 공항’으로 이름 지었다. 참된 공복(公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사람이 생을 마치고 나면 남는 것은 공적이 아니라 함께 나눈 것 - 미우라 아야코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과감히 도전해 볼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다.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이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여 마침내 꿈을 이루는 젊은이가 점점 더 늘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남이 한 번 하면 나는 백번 해본다(人一己百)’는 각오로 맞서길 바란다.
“주어진 일에 감사하면서 너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라. 그리고 여력이 있거든 인정을 베풀어라. 남을 위해서도 살아라. 내 이웃이여! 사랑합시다. 줍시다. 100년 인생도 순간 이라오!” -고 황필승 박사가 두 딸에게 남긴 유언
기부를 꼭 돈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기부할 수 있고 봉사하며 흘리는 땀방울도 소중한 기부다. 큰 돈이 아닌 소액을 기부하는 마음도 귀하고 아름답다.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가까운 중국집으로 가더니 자리를 잡고 앉아 먹고 싶은 것을 시키라고 하셨다. 나는 자장면을 주문했지만 아버지는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뭘 좀 드셔야죠” 하고 권했지만 아버지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난 괜찮으니 너나 많이 먹어라”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병환이 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는 권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장면을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만 계셨다. 이태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와 아들, 단둘이 생전 처음 바깥에서 음식을 앞에 놓고 소중한 시간을 함께했던 그 식당은 1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구에게나 추억 어린 음식점이 한두 군데쯤 있을 것이다. 입학이나 졸업식 날, 온 가족이 함께 찾아가 식사하던 음식점. 난생처음 밖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은 기억이 있는 그 식당.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었던 추억 속 그 집들은 아직 그 자리에 잘 있을까. 변치 않는 그 맛으로 여전히 우리를 반겨줄까.
(나의 어린 시절의 부모님과 함께 했던 외식이 생각나지 않는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 그리고 넷째 아들은 같이 외식할 시간 조차도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아버님께 음식을 대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버님의 환갑 여행때로 기억한다. 제대 후 취직을 하여 인천 주안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아버님은 자식들의 환갑잔치를 피해 결혼하지 않은 넷째 아들 집으로 왔었다. 환갑이라 소고기 집에서 사드린 고기를 아버님은 제대로 잡수시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랜 세월을 살아남아 ‘전설’이 된 노포에는 몇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다. 먼저 그 식당들은 한결 같은 맛을 유지했다. 우직하게 전래의 기법대로 만들어내는 일품의 맛이 손님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었다.
“리더는 일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그 결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이렇게 물으세요. ‘나는 항상 옳은가’, ‘나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김형청 교수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속담처럼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형제친척이나 이웃 등 모두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며 이제 국가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가는 임신 초기부터 임신부를 보호하여 안전한 추산을 지원하고 모든 아이가 안전하고 건강히 잘 자라도록 양육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이윽고 내가 그의 등을 밀어줄 차례였다. 그의 등판은 넓고 탄탄했으나 양 어깨죽지 여러 곳에 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어깨에 난 검푸른 멍을 보니 마음이 아렸다. 감추고 싶은 흔적도 아닌 듯 그는 말없이 등을 맡기고 있었다. 어깨의 멍은 분명 힘든 일을 하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한 가족의 생계를 감당해온 그의 노고를 위로하는 견장처럼 보였다.
“어떤 면에서 인간은 누구나 다 모종의 장애인입니다. 신체장애는 누에 띌 따름이죠. 권력을 지나치게 참하거나 노동 없이 남의 돈을 먹는 것도 분명히 장애입니다. 아니 신체적 장애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장애입니다. 장애인 때문에 살아가기 힘든 것은 그들이 가진 신체적 자애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주는 편견의 장애 때문인지 모릅니다.” - 고 장영희 교수
이달 초, 모 항공사는 국내선 공항 카운터에서 탑승권을 발권하면 수수료를 따로 물린다고 했다. 모바일과 키오스크를 활용하여 ‘스마트 공항’을 구현한다는 의도에서 나온 정책이지만 무인 발권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의 불편이 예상된다. 이렇게 무인화의 물결이 거세질수록 디지털 문화의 소외계층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는 기술 발달이 또 다른 장벽을 만든다. 이 장벽의 바깥에는 노년층이 자리 잡고 있다.
고령층은 여전히 창구거래를 선호하지만 은행은 비용 절감을 위해 비대면 거래를 정책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비대면 거래에 수수료 면제나 우대금리를 주는 추세에 비해 창구거래를 하는 노년층은 이런 혜택도 받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금융권은 미래 고객도 중요하지만 노년층의 금융서비스 권리를 찾아주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알기 쉬운 모바일 뱅킹 이용설명서나 동영상 제작, 직원의 시연과 설명도 필요하다. 지자체와 협력하여 노년층을 위한 금융교육을 활발히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창구를 찾는 노년층을 위한 전담창구나 도우미를 배치하여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수익만 추구하기보다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품어야 산다>
어머니가 배고픈 아기에게 젖을 물리듯
강물의 물살이 지친 물새의 발목을
제 속살로 가만히 주물러주듯
품어야 산다
폐지수거하다 뙤약볕에 지친
혼자사는 103호 할머니를
초등학교 울타리 넘어온 느티나무 그늘이
품어주고
아이가 퉁퉁 분 어머니 젖가슴을
이빨 없는 입으로 힘차게 빨아 대듯
물새의 부르튼 발이
휘도는 물살을 살며시 밀어주듯
품어야 산다.
막다른 골목길이 혼자 선 외등을 품듯
그 자리에서만 외등은 빛나듯
우유배달하는 여자의 입김으로
동이 트듯
품는 힘으로
안겨야 산다
황규관 시인의 「품어야 산다」라는 시다. 이제 우리 사회도 약자를 보듬고 품어야 산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뿐만 아니라 디지털 소외계층도 다 같은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