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가?』 (졸혼을 고민하며 제주에서 한 달), 문연주, 생각의 빛, 2021

그루 터기 2022. 1. 11. 11:59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가?(졸혼을 고민하며 제주에서 한 달), 문연주, 생각의 빛, 2021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검색하다 만난 책. 많은 제주도 한 달 살기 중에 졸혼이라 단어에 끌려 책을 집었다. 졸혼.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온 단어. TV에서 유명한 탤런트 한 분이 졸혼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프로에 도대체 어떤 경우를 말하는가에 궁금해 하며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나이쯤 되면 한두 번 쯤은 이혼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나도 아내와 갈등이 생길 때 이혼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졸혼이라는 단어가 만들어 졌을 때 그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니 제주도 한 달 살기도 비슷한 생각에 찾고 있던 방법이었다.

작가는 한 번의 결혼 실패와 두 번은 실패하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선택한 졸혼과 제주도 한달 살기가 이해가 된다. 사실은 그보다 작가의 남편분이 더 이해가 되고 마음이 쓰이는 건 남자로서의 이기심일까? ‘남자의 생리를 잘 모르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드는 것은 내가 여자의 생리를 잘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작가의 아픈 마음을 들여다 볼 때마다 내 마음도 아리다. 갑자기 뭔가를 도와 드리고 싶은 오지랖이 든다. 실제 아픔보다 절제하고 절제하며 선택했을 단어 뒤에 숨어있는 아픈 마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더 심란하다. 제주살이를 끝내고 돌아간 보금자리에서 10여 년 전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제주살이의 추억보다 아픈 상처를 도려내고, 작가님이 원하시는 것처럼 지금의 남편과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행복한 삶이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 두 손 모아 빌어본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문득 내 자신의 삶으로 생각이 옮겨온다. 나는 과연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 것일까? 나도 정신을 좀 차려야겠다.

 

 

저자 소개

문연주

인생은 육십부터 라는 말이 있다. 지난해 늦은 나이에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한 그녀였다. 자연을 벗삼고 취미생활만 하고 살 거라던 그녀는 20209월에 또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비젼 스터디카페 상남센터를 오픈하고 하루도 쉼없이 매장관리에 열정을 쏟고 있다.

졸혼을 고민하며 제주에서 한 달 살기의 삶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배우고 돌아왔단다.

저서로는 당신을 만났습니다.” “아픔까지 사랑할 수 있기를 이미 두 권의 책을 발간했다.

인생에서 겪어서는 안 될 산전수전 파란만장전을 겪었던 저자는 또다시 아픔을 경험할 수 없었기에 졸 혼 연습으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후의 삶은 내려놓는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 거라고 이 책에서 말한다.

 

 

독서 메모

 

글쓰기를 배웠다 사진을 배웠기에 카메라를 메고 어디를 다녀도 무섭지 않다. 무료하지 않은 시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오늘도 벌써 집 나온 지 몇 시간이 흘렀다. 자연을 자세히 보고 세밀히 보며, 좋은 구도를 생각하며 감성질을 해 본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삼 개월 동안의 무심함, 두 사람 다 경제적 활동이 적었던 시간 동안 멀어져간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마음에 문을 닫고 있었던 남편이다. 내 성격대로 행동하고 마는 강인한 의지력이 문제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첫 번째 남편은 의처증으로 보냈고 두 번째 당신마저 이렇게 보내야 할 내 운명이라면 이제 더는 말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닫아 버렸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못 먹는 술 두 잔에 가슴에서 차오르는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회한이었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주체 할 수 없는 몸으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대로 서로가 이별의 아픔을 맛볼지라도 순응하면 받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미운 감정도 없고 그렇다고 미워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함께한 세월 13년 차에 접어든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모든 일은 그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학교며 여행이며 40여 개국을 돌아다니면서도 한 번도 이별이 잔재되어 있음을 인식하지 못했음에 죄는 없다. 서로가 유치해지지 못했던 부부였다는 그 사실 말고는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그 사람 회사에서 퇴직을 하고 일없이 2년을 살면서 더욱더 힘들어했던 그 사람을 생각해보니 이해가 된다.

 

내 안의 모든 것 내가 포기하지 못했던 마음은 무엇일까? 한창 어린 나이에 짓밟혔던 순결 때문일까? 두려워서 떨었던 과거 때문일까? 내 온몸에 닿는 신체접촉이라면 치를 떨던 내 모습이 복사되어 일렁인다. 혼자 살라는 것이 예고된 일은 아닐까?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 이혼 후 몇 년 동안 혼자 지낸 시간에 너무 그리웠던 사람 냄새를 잊었던 것은 아닐까? 온갖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이층에서 내려다보는 남편이 모습이 짠했다. 연민의 정이 느껴졌던 것일까? 십 수 년 동안 정들었던 남편을 두고 말없이 한 달 살이 나섰던 그 용감함이 무엇을 의미했단 말인가? 제주에서 돌아오면 많이 달라져 있기를 기대했었고, 나 또한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있길 기대했었을 거다. 남편의 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룸미러로 바라보았다.

 

나오면 개고생이다. 혼자 사는 건, 사는 것이 아니다. 싸워도 둘일 때가 낫다. 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하면서 살자. 이 모든 것이 내 탓이라. 내려놓는 마음을 가지고 제주를 떠나련다.

 

경험은 많은 것은 얻는다. 누군가 이혼도 스펙이라고 말하지만, 힘든 과정을 겪었기에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다짐해본다. 오늘 보리밭 출사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갭스로 집 마당을 열어보았다. 이른 시간에 집에 들어와 여태 문도 열지 않고 집에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열어보는 내 마음도 병인 걸까 미련일까? 이제 하지 말아야지 다짐해본다. (나는 마음을 조금을 알 것 같다.)

 

첫 번째 이혼을 하고 방황하는 나를 잡아 준 곳은 사찰이었다. 사찰에서의 삶 42년을 살면서 불교에 귀의한 적도 없었다. 유교 사상이 지배했던 곳에서 태어나 모태 불교를 교훈삼아 살았기에 심오한 배척이 없었던 종교였다. 동생이 권유한 스님과의 인연으로 찾았던 불교이다. 보광사에서의 삶에서 배운 불교 가치관으로 난 물들어 있었다. 너무 당연한 나의 불교적 정서는 지금까지 마음으로 부처님을 숭배한다. 오늘 돌아본 약천사와는 인연이 있었다.

 

살아갈 날들을 위해 살아온 날을 쓰자 흔적을 남기기 위한 글이 아니라 오지 나만의 글을 쓰기 위함이다

 

여자이길 포기하고 남편의 생리적 현상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나여서 졸혼이라는 이름으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청춘 시절엔 뜨거웠다는 내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거 같다. 감성이 풍부하여 편지 쓰기를 좋아했던 난 아이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여러 친구와 편지쓰기도 좋아했다.

 

난 딸과 함께 지금까지 인생 최고 장면을 찍어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2018년 설악콘도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지만, 사진으로 남겨진 추억은 없는 것 같았다. 지금은 사위 따라 손자와 싱가포르에 있다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보내왔다. 혼자 걷다 보면 보고 싶은 사람도 많다. 딸도 아들도 손자도 가족단위로 열행을 온 사람이 가장 부럽다. 헤어질 때 엄마의 자격을 포기했던 나였기에 더욱더 아픈 현실이다.

 

녹두가루로 전을 부치는 줄 알았는데 숙주나물로 전을 부쳤다. 식감이 풍부하긴 했으나 부드럽지는 않았다. 혼자 음식을 음미하며 잘 먹었다. 감사인사를 남기고 나섰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제주에서 한 달 사는데 한 번쯤은 방문해줄 거라고 믿었던 남편, 그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 모든 것이 나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보지만 가끔은 원망도 해본다.

 

어디를 가던 내 먼저 인사하고 아는 척해 주고 내가 가진 장점을 살려 타인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날이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인생 최고 장면이라고 즐거워하며 몇 번을 인사하던 모녀와 오늘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한복집 사장님 기억에 남길 수 있도록 전화번호까지 준 그분에게 감사한다.

 

아이들 할머니께서 위암말기에 수술을 하려고 모든 가족이 모여 의논하던 때가 있었다. 며느리라는 친자가 아니기에 의논 대상에 끼일 수 없다는 이유로 아버님과 자식들만 의논했다. 그해 애들 할머니께서 수술을 했으면 24시간 간병인이 필요했을 것이다.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그때 시어머니를 간호해야할 시간이었다면 난 이혼의 위기를 면했을까? (남의 집 이야기를 함부로 말 할 수는 없지만 며느리는 친자가 아니기에 시어머니의 일에 의논 대상이 아니라는데 사뭇 놀랍다. 가족이라는 단어에 꼭 친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할까?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이제 짐에 갈 시간이 점점 카운트다운 되어 온다는 절실함은 있는 거 같다. 남은 시간 동안 지금처럼 마음이 움직이는 데로 마무리 짓고, 내 인생은 내 것으로 승화시키며 항상 마음의 끈을 놓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보려 한다고 내 마음에 답장을 보낸다.

 

앵글 속의 예쁜 모녀를 보며 내 딸을 생각해 보았다. 딸과 난 백화점도 한번 가지 못했다. 어리광부리며 예쁜 옷 사달라고 응석 부리는 일도 없었다. 혼자 엄마 대신 멍에를 지고 힘들었을 딸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유명지에도 가보지 못했고, 예쁜 꽃단지에서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없었다.

 

특별한 사진이 담기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이 오르고 싶어 하는 한라산의 사계를 어승생악에서 영상을 통해서 봤다. 가을 풍경 사진이 인상적이어서, 가을 단풍시기에 한 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에게 머무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딸과 여행하던 모녀 사이처럼 나도 언젠가는 내 곁에서 나를 끝까지 지켜줄 남편과 함께 손잡고 제주에서의 쉼을 기대해보련다.

 

10일째 보내는 날 2월 두 번째 일요일 남편에게 아침에 전화했다. 휴일이라 나갈 곳이 없어서인지 잔다고 말했다.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은데 아직 마음을 잘 모르겠다. 13년을 함께 해왔지만 이런 난관에 봉착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아이들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부모님께도 말할 수 없는 지금이다. 2월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 보면 알겠지만, 지금은 단순히 갑갑하기만 한 시간이다. 제주에서 10일째 날은 이렇게 넘어간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무엇인가? 하루 중에서 가장 나를 위하여 보낸 시간은 언제인가? 많은 의문 들을 가진다. 나란 사람은 내가 해보지 않은 일들을 겁내지 않고 도전한다.

 

사진과 글은 떼어 놓을 수 없는 불과 분의 관계다. 바람이 잠잠하고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크지 않는 날 그 무엇을 찾기 위해 카메라를 들어 볼 것이다. 봄은 봄이라 좋고 여름은 여름이라 좋으니, 둑에 유채꽃이 만발한 지금도 좋다.

 

3년 함께 일해주고 자신과 살아준다면 30년 책임지겠다던, 그 남자가 이제 졸혼으로 이별을 원하는게 아닌가?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산다던, 선지식인들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닌 듯한데, 두 번째 이별이 찾아온 것인가? 내 인생에 두 번의 이별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자식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사주와 팔자가 있는 건 맞는 말인가? 행복도 자신이 만들고 팔자도 자신이 헤쳐나가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는데 지혜롭지 못한 나에겐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린단 말인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남편과의 관계 회복이 되어 가는 과정이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마음을 돌려먹기로 했다. 늘 삐딱하게 행동하던 남편과 화해하게 된 사건은 술 먹고, 한 말이 가시가 되어 온전히 나를 내려놓고, 대화하고 나 후에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온 종일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면 살 수 없지만, 밖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시간을 메워 가며, 남은 인생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 더도 말고 지금처럼만 건강 지키며 그 사랑 안에서 머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