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한지 70년 삶에 스미다(김삼식 자서전)』, 황서미 엮음, 헬리혜성, 2022
『전통한지 70년 삶에 스미다(김삼식 자서전)』, 황서미 엮음, 헬리혜성, 2022
전통한지. 어릴 때부터 가까이 했던 한지가 요즈음을 사용하는 곳이 별로 없다보니 만나기가 참 힘들다. 작년부터 캘리그라피를 배우다보니 화선지와 가까이 하게 되었다. 난 이 화선지가 전통한지인줄로 알았다. 다만 기계로 빠르게 깨끗하게 만든 한지로 알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 봤는데 역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정도로 원료부터 만드는 방법까지 많이 다르다. 큰 틀에서는 같은 한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조금만 세세하게 들어가면 사용하는 원료 뿐 아니라 만드는 방법까지 다르다.
오랜 세월을 전통한지만 보고 살아오신 장인께서 지금 이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의 인생을 뒤돌아 보게 된다. 다음달에 지정되는 국가무형문화재에 무사히 통과되시길 두손모아 기원한다.
저자 소개
김춘호 기획
현재 정식 명칭으로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문경한지장 전수교육 조교. 충북대학교 농업생명환경대학 목재종이과학과 졸업. 충북대학교 대학원 문화재과학과 문화재과학 전공. 석사 논문 『증해액의 종류 및 건조 방법이 한지 특성에 미치는 영향』 대한민국 무형문화재 한지장 김삼식의 3남 1녀 중 막내. 70년 동안 전통 한지를 만들어 온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0년부터 종이를 뜨기 시작했다. 옛날의 방식대로 만든 진정한 전통 한지가 옳은 대우를 받기를 바라고, 전 세계에 이미 알려진 우리 한지의 우수성을 끊임없이 증명해내는 것이 그의 ‘할 일’이라고 여긴다.
황서미 엮음
세상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책과 영상으로 풀어내는 작가다.
2018년 12월 24일, 김삼식 장인과 첫 인터뷰를 시작으로 서울에서 문경까지 스무 번이 넘게 오르락 내리락 했다. 이제 문경시 농암면과 문경 온천 쪽의 숙소, 밥집, 술집 등, 지리는 훤하다.
이 자서전을 계기로 새해에는 ‘생애사 쓰기’ 강의를 하게 되었다.
독서 메모
정통한지는 입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내 손, 내 마음으로 만드는 거야.
마누라가 수십 년 동안 아파도 나는 신경질 한 번 안 냈어, 뒷받침하는 사람도 고생이지만 아픈 사람이 더하잖아요.
몇 년 전인데 집사람이 ‘당신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요.’라고 하대. 그걸로 모든 걸 풀고 살아요.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건강해지니까 집사람도 마음이 편안해 지나봐요. 내가 어디 가서 돈을 ᄊᅠᆮㅗ 아무 말 안 해요. 놀다 오라 그러고.
나는 누가 가격 가지고 말하면 딴 데 가라 그래여, 가짜를 진짜라고하면 누구한테도 큰소리 못 칩니다. 전통 한지 값을 비싸게 불러놓고 깎아주면 좋지만 나는 양심 있게 가격을 정해놓고 그 값만 받아. 그러니 깎아 줄 수가 없어, 깎을려고 하는 사람 보면 내 양심을 깎는 거 같아서 영 기분이 안 좋아.
덩치가 컷음념 그런 짓 못해요, 덩칫값도 못한다고 할 거니까 덩치가 작으니 무슨 말을 해도 참 풍신대로 논다고 해요 덩치가 작은 것도 좋을 때가 있어요.
춘호 쟈하고 나하고 맘이 딱 맞는기, 쟈가 들어오자마자 내가 일렀어요. 첫째, 삼식지소, 즉 진실과 양심과 전통을 가슴에 심어놔야 전총 한지가 나오니, 그 시가지를 합해서 하루에 한 번씩만 생각하면 끝까지 할 수 있다. 두 번째, 돈 많이 벌라고 하지 마라. 돈이 찾아오도록 만들어야지 돈을 좇아가면 돈은 내뺀다.
한지 공장 사장이라면 종이 한 장 말룰 줄 도 모르는 사람이 많지요. 부모한테 물려 받아가지고 직공 두고 하니까, 종우 근처도 못 가봤는데, 그런 사람이 문화재 되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 참 걱정이야. 한지는 말로 만드는 게 아니고 내 마음과 손으로 만드는 건데 자꾸 말로 만들고 심사 할 때만 전통 한지 만드는 사람들이 되니까 걱정 안 되겠어? 우리 아들 세대가 뻔 볼까 걱정인 거지
소장이 하는 말이, 이렇게 가니 서운합니다. 김 선생님한테 배워 갑니다. 남을 줄라면 내가 실컨 먹고 줄 수는 없다는 걸 배와 갑니다. 그래요 그렇게 배워 간다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야.
정통 한지를 만들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공장 칭찬을 좀 하고 싶어. 나는 그렇지만 내가 못하는 걸 그분들이 하시잖아. 그분들은 그런 종우를 만들어 외국에도 팔고, 작품도 하고, 한지 공예품도 팔고 온갖 것 다 하는데, 난 그거 아주 잘한다고 생각해. 그런 작품은 우리 문화에 도움도 되고 축하할 만하다고,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모든 한지를 전통 한지로 만들 필요는 없자나. 값싼것도 있어야 되고 보기 좋은 것도 있어야 되고.
닥무지 끝나면 껍질을 벗기는데 닥나무 껍질이 한지 원료입니다. 벗긴 나무는 닥무지 할 때 불 땔 화목으로 사용해. 버릴 게 하나도 없어. 우리 집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겨울만 되면 닥나무 벗기느라 놀지도 못했어.
서예하는 사람들은 한지를 안써. 전 총 한지든 아니든 안 ㅆ. 왠지 알아요? 화선지라고 하는 조잉에 쓰는 게 습관이 들어서 그래요. 화선지는 나무를 갈아서 만든 종이니까 한지하고는 완전히 다른 종이야. 전기차하고 휘발유 차하고 다른 거처럼 완전 다른 종이이고 오래 못 가지. (내가 요즈음 캘리그리피 연습하느라고 화선지를 많이 쓴다. 연습용이라 전부 값싼 중국제인데 한지와 어ᄄᅠᇂ게 다른지 궁금했었다. 나도 한지에 연습하면 어떻게 되는지? 혹시 비싸지만 잘 써지는지 궁금했는데 그게 아니란다. 완전히 다르다고 하고, 먹을 많이 먹어서 쉽게 쓸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요즈음 서예를 하는 사람을 기계로 만든 화선지를 좋아한다고 한다. 다만 수명이 짧다나.)
한지에 글쓰기가 어렵다고들 해여.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전통 한지는 비싸고, 먹도 금방 종우가 먹어버리니 그 사람들이 안 사요. 그기 단점으로 작용하니 좀 잡아보자 해서 도침이란 게 있어여. 조이를 두들겨서 섬유랑 섬유 사이를 틈 없이 맨들어 버리는 거야. 그러니 먹물이 번지는 게 달라요. (실력이 많이 늘어 나도 도침한 한지에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램을 해 본다.)
종이는 주문자에 따라서 작업공정이 달라져요. 전통한지를 기본으로 하되 소비자의 요구에 맞게 만들죠. 제사 때 지방을 쓰려고 사 가시는 분들도 있고, 형편이 넉넉하신 분들은 친환경을 선호하셔서 도배지로 쓰려고 전통 한지를 구입하지요. 수묵화, 유화 그리시는 분들, 가정에서 김장할 때 액젓 내리는데 쓰는 분들, 커피 내리는데 쓰기도 해요. 또 한지를 그대로 표구해서 작품으로 그냥 감상하는 분도 있어요.
지금은 어디서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닌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어요. 아무리 사양 산업이라도 일인자는 살아남습니다. 부모님이나 환경을 탓하지 마세요. 그건 제일 바보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늙어빠진 지금이 좋다면 상상이 됩니까? 과거는 지나갔고, 난 미래나 현실이나 맨 똑 같애요. 어릴 때부터 행동이 잘못 한 게 있으면 그걸 반성하고, 참말로 진실로 살았고 내 힘으로 했고, 남의 힘을 빌리서 해 본 적도 없고, 거거사는 연구할 것도 없고, 근년에 와서 살아온 것도 똑 같애요. 70년이 되도록 힘든 고비도 많았지만 먹고 사는 길은 종우 한 가지뿐이라. 초년이나 중년이나 말년이나 다 종우로 시작해서 종우로 끝나는 거라.
종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 종우가 전통의 종우라 강조하고 싶지도 않아여. 그저 내 종우를 아는 사람들이 날 찾아주면 그게 행복한 기래요.
전통 한지 작업은 일 년 사계절 철저하게 자연의 순환에 따른다. 그러한 자연의 부름을 일흔 번 가까이 맞이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