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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쁜 이름 김위교(金偉敎)

그루 터기 2021. 7. 26. 08:00

 

 

어머니의 편지

 

  참 이쁜 이름 김위교(金偉敎)

  이 이름은 백년 전 시골에서 태어나신 어머니의 성함이다.

 

  우리세대에도 영자, 순자, 명자, 춘자 등 자자로 끝나는 이름이 많았고, 영숙, 명숙이와 같이 숙자, 미순이 영순이와 같은 순자, 영희, 숙희와 같은 희자로 끝나는 이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거기에 비하면 그보다 30여년이나 이전에 이렇게 이쁜 이름을 가졌다는 건 외할아버지의 탁월한 창명 덕일게다. 지금도 우리 가족 형제들이 다 모여서 이쁜 이름 선발을 하면 많은 딸들과 며느리 손녀를 제치고 단연 1등으로 꼽히는 이름이다. (가족 형제들이 모이면 가끔 둘러앉아 이쁜 이름뿐 아니라 이쁜 손가락, 이쁜 손톱, 이쁜 귀 등을 뽑기도 한다.)

 

  어머니께서는 기미년 삼일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7월 4일 태어나셨다. 어머니의 생년월일은 기억하기가 쉽다. 우선 태어난 연도도 잊어버릴 수 가 없지만 태어나신 날짜도 미국독립기념일과 같고, 나중에는 7,4 남북공동성명이 있어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다.(물론 음력이라 같은 날은 아니다.) 돌아가신 날짜도 2009년 8월 14일(양력 10월2일) 추석 전날(개천절 전날) 돌아가셔서 따로 외우지 않아도 기억이 난다. 나같이 기억력이 나쁜 아들을 위해 기억 잘 하라고 배려하신 게 아닐까 생각하고 피식 웃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에 다니시지는 않으셨지만 함창김씨 종가집의 맡 딸로서 외할아버지한테 한문을 배워 천자문을 깨우치시고, 한글도 배우셨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신 어머니께서 한글을 깨우치신 것을 보면 외할아버지의 맏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셨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머니께서 배우신 한글은 요즈음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이 아닌 고어라고 표현하는 옛글자다.

 

  가끔 어머니는 “내가 편지를 쓰려고 해도 니들이 알아보지를 못할 것 같아 안 쓴다” 라고 말씀 하셨고 그 때마다 저는 “엄마 글자 다 알아본다니까. 그러니까 편지 보내세요”라고 했었다. 그 후 어머니께서는 편지를 보내셨고 그 편지가 어머니 생전에 딱 한 번 받아 본 것으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큰소리는 쳤지만 막상 읽어보니 해석이 잘 안 되는 부분이 몇 군데 있다. 몇 번씩 다시 읽어보고 해석해 보지만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다. (이 편지를 바로 아래 여동생은 잘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편지는 아버지 장례(1987년 1월 15일)를 치루시고 열흘 정도 지난 뒤라 아버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실 때 인데 막내 규식이와 집에 둘만 남아 있어 적적하시다는 내용이 있다. 저의 큰아들 경섭이는 4살, 작은 아들 지섭이는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시기이다. 큰일을 치루고 바로 설날을 맞았으나 그 때 당시 명절에 시골을 한 번 다녀오려면 밤새워 줄서서 기다리다가 기차표를 예매하여야 했다. 아버지 탈상 후 가족회의에서 이미 예매가 끝난 기차표도 구할 수 없고 다른 교통편도 적당한 것이 없으니 올 명절은 모이지 않는 걸로 결정을 봤다. 명절이라고 객지의 자식들이 내려오지도 않을뿐더러 아버지께서 기독교식으로 장례 및 제사를 지내라고 유언을 하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추도식을 했는데 어머니께서는 열심히 교회에 다니시는 분이셨지만 어린 적부터 오랜 유교사상이 몸에 밴 분이시라 못내 서운하고 아쉬웠을 것 같다.

  설 명절을 보내지 못해 세뱃돈을 받지 못한 손자를 위해 편지와 함께 과새돈(세뱃돈)을 보내주셨다. 짧은 편지지만 객지에 보낸 자식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귀여운 손자들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묻어있는 편지는 지금 읽어봐도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어머니의 유품인 편지

오늘도 어머니의 편지를 읽어보고 또 읽어본다.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께서 보내신 편지

1987년 1월 28일 (음력 1986년 12월 30일 도착)

 

한식 내외 보아라

너희들 떠난 지 (달포되어 이립다.) 경섭형제 그립다. 궁금하구나.

부디 잘 거두어라. 자손의 건강 축복이 소원이다. 요사이 일기 혹독하니 어미 마음이 걱정이다.

건강을 빌며 기다린다. 부디 조심 조심하여라. 부디 (올든데어 내내 헛부구나)

너의 오남매를 동서에 흩어두고 큰집에 규식이와 모자 있으니 너무 적적 가엾구나.

이곳 영주 형은 항상 건강치 못하니 걱정이다.

우리는 금년에는 설도 없고 명절을 모르니 어미 아픈 심정 필을 드니 (중치)가 막혀 할 말이 없구나.

알들살들이 일하여 이리 가엽구나.

할 말은 많으나 다 못 글씨 못 알아 볼 듯 하구나. 차영이 집(편)으로 두어자 부친다.

적은 돈이지만 경섭 과새돈(세뱃 돈) 줘라, 경섭이 보고 싶다.

편안하고 소문 종종 바란다.     

끝.

 

무심한 어미의 필적

 

 

 

 

어머니께서 보내신 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