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라,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쌤파커스』, 2014
저자 소개
김미라 :
매일 글 쓰는 사람. 시간을 들여야 이루어지는 일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는 믿음으로 오랜 시간을 라디오 방송작가로 살았다. [별이 빛나는 밤에]로 시작해서 KBS 클래식 FM의 [노래의 날개 위에], [당신의 밤과 음악]의 원고를 썼다. 아름다운 말의 힘을 실감하며, 지난 2009년 어느 날인가부터 기억하고 싶은 말들을 하나씩 하나씩 수집했고, 그 수첩에 ‘감성사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모은 단어와 이름 들은 2016년부터 천 일이 조금 모자란 시간 동안 KBS 클래식 FM의 전파를 타고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배달되었다. 그렇게 마음속 사전에 말들을 수집한 지 10년이 되는 지금, 새로운 말들을 더하고, 청취자들이 가장 많이 기억해준 원고들을 선별하고 다듬어 책으로 엮었다. 지은 책으로는 『오늘의 오프닝』,『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저녁에 당신에게』 등이 있다.
독서 메모 :
시간이 불러주는 것을 받아쓰고, 영혼이 불러 주는 것은 받아쓰고, 바람이 불러주는 것을 잘 받아쓰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한 밤만 자고 일어나면 다 나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도 괜찮다. 조금 아파도 괜찮다. 한 밤만 자고 일어나면 녹말이 가라앉듯 고요하고 아프지 않은 하루가 찾아올 테니.
마음은 외국어와 같아서 번역이 필요하다. 현실은 날것 그대로 우리에게 부딪혀 오지만, 반드시 해석과 재해석이 필요하다. 낯선 곳에 처음 도착한 여행자가 지도를 구하듯, 언제나 낯선 시간을 사는 당신에게 이 책이 뭉툭한 약도라도 되어주기 바란다.
털실과 털실 사이 공간이 따뜻함을 품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도 따뜻함을 가만히 품고 있으면 된다. 닭이 달걀을 품고 있는 것처럼 따뜻함을 오래 품고 있으면 삶은, 모든 관계가 저절로 부드러워진다.
훌륭한 사람이 곧 좋은 사람은 아니다, 착한 사람이 곧 따뜻한 사람도 아니다. 세상엔 훌륭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 있고, 착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사람도 있다.
새로 이사 간 집은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이어폰을 끼고 3분에서 4분 남짓한 노래 세 곡쯤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집 앞에 이르게 된다. ‘지하철역에서 10분 거리’보다 ‘좋아하는 음악 세 곡 들을 정도의 거리’라고 표현하니 그 측량법이 훨씬 정겹다.
아이의 키는 1미터가 아니라 내 갈비뼈가 시작되는 곳. 시험공부 범위는 일곱 시간 자면 불가능, 네 시간 자면 가능. 체중은 희망 수치보다 5킬로 초과한 숫자. 월급은 만족스러움과 쓸쓸함 사이. 그리움의 눈금은 이따금, 자주, 나도 모르게,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한. 내 사랑은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언제나 한 눈금 더. 이별의 측량법은 세 시간의 눈물, 이틀의 금식, 사흘의 불면, 한 달의 우울, 혹은 영원한 침묵.
측량법을 바꾸어보니 삶의 모든 것이 애틋해진다.
비가 쏟아지는 날 그녀는 항상 두 개의 우산을 들고 학교로 간다. 엄마가 마중 나오지 못해 시무룩한 얼굴로 서 있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중 나오지 못한 엄마의 마음이 더 아리다는 걸 아이들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될 것이다. (중략) 마중 나갈 수 있을 때 마중 하러 가야한다. 더 이상 마중 나갈 수 없는 시간이 오기 전에
세월이 갈수록 멀리해야 할 것들이 있다. 따뜻함 없는 인연,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 창고,넘치는 감상, 감당할 수 없는 열정, 차가운 미소, 과장하는 버릇, 참견하려는 습관.
부모가 자녀에게 선물해줘야 할 것이 있다. 웃음을 가르쳐주는 것, 호기심을 일깨워주는 것,세상은 궁금하고 놀라운 일로 가득 찬 곳이며 찾고자 하는 열망이 있으면 무한한 감동과신비가 숨겨져 있음을 알려주는 것,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발견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것.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줘, 그러니까 그는 나의 신이야.',고양이는 이렇게 생각한다.'인간은 나를 먹여줘, 그러니까 나는 그의 신이야.'"
시선을 달리하면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것을 배우게 된다. 개와 고양이처럼 완전히 다른 결론에도 이를 수 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뒤끝이 없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뒤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체로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감사는 밑반찬처럼 항상 차려놓고, 슬픔은 소식할 것. 고독은 야채샐러드처럼 싱싱하게, 이해는 뜨거운 찌개를 먹듯 천천히, 용서는 동치미를 먹듯 시원하게 섭취할 것. 기쁨은 인심 좋은 국밥집 아주머니처럼 차리고, 상처는 계란처럼 잘 풀어줄 것.
오해는 잘게 다져 이해와 버무리고, 실수는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 통깨처럼 다룰 것. 고통은 편식하고, 행복은 가끔 과식할 것을 허락함. 슬픔이면서 기쁨인 연애는 초콜릿처럼 아껴 먹을 것.
고통은 10개월 무이자 할부를 활용하고, 감동은 일시불로 구입할 것. 호기심은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서라도 마음껏 소비하고, 열정은 신용대출을 권함.
은혜는 대출이자처럼 꼬박꼬박 상환하고, 추억은 이자로 따라오니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리움은 끝끝내 해지하지 말 것.
사랑은 30년 만기 국채를, 신뢰는 선물투자를, 의심은 단기 매도를 권하며, 평화는 종신보험으로 가입할 것.
50대가 갖춰야 할 다섯 가지
이제부터 진짜 사랑할 때라고 말할 수 있는 이해력 뛰어난 반려자
무거운 일도 가볍게 다룰 줄 아는 통찰력
벼랑 끝까지 나를 밀어붙이지 않는, ‘안 되면 말고’라고 말할 수 있는 유연함
마음을 기대고 싶을 때 찾아가 위로받을 수 있는 제3의 공간
지독하게 나이 들지 않는 마음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건강
한 번에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들을 수는 없다. 살아보기 전에는, 그 나이에 이르기 전에는, 그런 현실에 이르기 전에는, 그런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러므로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 것, 성급하게 절망하지 말 것.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른이 아니면 사랑을 유지해 나갈 수가 없다.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부모님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된다.
산의 80퍼센트가 물들었을 때를 단풍의 절정기라고 한다. 그 어떤 좋은 것도 나를 흔들지 못할 때, 타인의 성공과 나의 평범함을 바꾸고 싶지 않을 때, 그 때를 인생의 절정기라고 정의한다.
(인생의 절정기도 80퍼센트 익었을 때라면 내 나이 66세 현재가 가장 인생의 절정기다. )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려야 하고, 높은 산을 오르려면 더없이 가벼워야 한다. 그러므로 하루하루 우리는 더 홀가분해져야 한다.
사람은 매 순간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림을 공유하는 것. 그러니 눈 나쁜 연인처럼 조금 무심하고, 덤덤하고, 너그러울 것. 시시콜콜 자세히 보느라 사랑마저 지겨워지지 않도록.
숲에 참나무가 많은 이유가 있다. 건망증 심한 다람쥐 때문이다. 다람쥐는 도토리를 주울 때 하나는 먹고, 하나는 땅속에 묻어둔다고 한다. 양식을 비축하는 엄숙한 작업이다. 그런데 다람쥐는 건망증이 심해 도토리를 어디에 묻어두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덕분에 땅속에서 겨울을 난 도토리가 싹을 틔워 숲을 푸르게 한다. 다람쥐의 건망증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성한 숲을 갖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문득 그녀는 자신의 연애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연애도 해 질 무렵에 산 의자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진정 그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외로울 때 그가 나타났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운명적 사랑이라 믿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외로움을 지우기 위해 집착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녀는 의자를 방구석에 하나의 오브제처럼 놓아두었다. 앞으로도 혹 ‘해 질 무렵에 의자를 사려 할 때’, 나쁜 선택에 유혹을 느낄 때 일종의 경고처럼 바라보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아니라 나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되는 때, 그때가 사랑하기 가장 좋은 때다.
가볍게 대답한다고 해서 그 안의 생각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가 되고 싶다고 그 스스로도 믿게 되었으므로
집배원처럼 사랑하라. 그 사람이 원치 않는 것은 배달하지 않는 센스를 갖추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좋은 것을 배달하며 성실하게 사랑하라.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지금껏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굴하는 힘. 그 어떤 오해에도 흔들림 없는 믿음을 보여줄 때 만개하는 꽃, 결코 유통기한이 짧은 연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신발은 이력서다. 그럴듯한 말로 위조된 이력서가 아니라 땀과 눈물의 이력서다. 신발은 일기다. 감추고, 생략한 것 하나도 없는 진솔한 일기다. 신발은 명함이다. 어느 곳을 다녀왔는지를 통해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증명하는 명함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내 신발이 알고 있는 만큼 나를 잘 알고 있는지.
사랑은 아름다운 오해로 시작해서 참담한 이해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오해보다는 참담한 이해를 통해 우리는 사랑의 본질에, 사랑보다 한참 뒤에 찾아오는 평화에 이르게 된다.
자녀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가 평생 의지하던 부모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여린 존재인지도 모른다.
가장 완벽한 이해는,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바로 그 존재가 되는 순간에 찾아온다.
아름다움은 진정 주관적이다.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보살피기 때문에 아름답게 느끼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아름답다. 아름다움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이 먼저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모르는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본 경험이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어깨를 빌려준 일도 있다. 삶은 그런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빌려주기도 하고, 빌려오기도 하는 것.
지나간 시간은 톱괍과도 같다 톱질이 끝난 뒤 생긴 톱밥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톱밥을 뭉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는 있다. 과거는 톱밥과 같은 것 시간이라는 톱이, 삶이라는 나무를 켜며 만들어온 톱밥이다. 이 톱밥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것으로 또 다른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
하늘에도 길이 있고 바다에도 길이 있다. 세상 어디에나 길이 있으니, 잠시 막다른 골목을 만났다고 절망하지 말자. 우리에겐 수많은 길이 열려있다.
청춘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보다 그윽한 성찰,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보다 열정, 사라에 빠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의존보다 진정한 독립,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평생 품고 갈 재능. 저녁에 필요한 것은 어둡기 때문에 더 잘 볼 수 있는 마음의 눈, 마음에 필요한 것은 머뭇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
스트레스라는 이름의 압력은 꼭 피해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친구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건강한 스트레스가 우리를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줄테니.
결핍은 채우거나 치유해야 할 상처가 아니라 기꺼이 껴안고 사랑해야 하는 것. 결핍을 잘 다스리면 인내가 되고, 자존감이 되며, 결핍을 잘 굴리면 남다른 이해력이 된다.
천사의 장점은 결점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이 천사가 가진 최대의 딜레마다. 결점이 많다는 것은 사람의 단점이다. 하지만 결점이 많기 때문에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나만의 휴식, 나만의 휴가, 나만의 여행 방식, 나만의 레시피로 만든 음식, 고독을 해결하는 나마의 방식, 강한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실수는 축복이다. 발효가 끝나지 않은 와인을 병에 넣었다가 봄이 되면 탄산가스가 병 속에 가득차서 뚜껑이 날아가는 일이 많았다. 그 결과 실수로 삼페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풀을 만들려다 실패한 실험실에서 부텨였다 떼어내도 자국이 남지않는 스티커 메모지가 탄생되었다. 심장약ㅇ르 개발하다 실수처럼 개발된 비아그라도 있고, 페니실린 역시 실수를 통해 탄생되었다. 몇몇 기업 연구소에서는 의미있는 실수에 황금알상, 이달의 가장 멋진 실수상 같은 것을 수여한다. 실수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실수를 통해서 배울 때 샴페인을 터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수는 축복이다.
사람은 떠나도 그 흔적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지며 사랑이 되고, 그리움이 되고, 눈물이 되고, 그 모든 것이 모여서 삶이 된다.
행복을 주는 것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며, 통증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오늘의 작은 고통을 감사히 받는다. 더 큰 고통을 피해 가라고 건네준 일종의 축복이므로.
내가 어떻게 했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며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그때 아마도 신은 이런 마을 들려주실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당신이 원하는 때에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주지 않았느냐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그 사람이 원하는 때에,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주어라. 사랑에 필요한 법칙은 이것뿐이다.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여야만 어떤 방침을 택하는 일터가 있다. 모두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며 최선의 방식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다른 일터에서는 만장일치로 채택된 의견은 절대로 반영하지 않고 폐기했다. 왜 그랬을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만장일치의 의견이 나온다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위험요소를 품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문득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이따금 뒷문으로 들어오시던 수학 선생님께 학생들이 항의를 하자 수학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 하셨다. “너희들 뒷모습에 담긴 순수함이 늘 나를 반성하게 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내가 뒷문으로 들어오는 날은 너희들에게 반성문을 쓰는 날이다.” 뒷모습이란 그의 책상 위에 펼쳐진 채 놓여 있는 일기장 같은 것,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호로 가득하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해독할 수 있는 비밀의 일기장 같은 것
조언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할 일이다. 진정한 조언이란. 그 사람에게 건네고 난 뒤에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쏟아질 정도의 공감이 있을 때라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진짜로만 이루어진 사람도 없고, 가짜로만 이루어진 사람도 없다.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진짜와 가짜, 그 경계를 넘나들며 진짜 나를 찾아내는 접신의 경지를 만나야 한다.
당신이 바보 같다고 생각되는 시절이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바로 그 시절이다.
까치는 바람 부는 날에만 둥지를 짓는다. 바람 부는 날에 지어야 더 강한 바람이 불어와도 둥지가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둥지 아래에 까치 부부가 버린 나뭇가지가 수북하다. 꼭 필요한 가지만 골라 단단한 둥지를 짓는 솜씨가 경이롭다. 그래서 ‘둥지’라는 말을 들으면 언제나 포근하고 뭉클하다.
장미 향수 800그램을 만드는데 1톤의장미꽃잎이 필요하다. 향수를 만드는 과정은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가 비슷하다. 긴긴 생애의 끝에 한 사람만의 향기가 만들어 지는 것처럼.
우리가 혼동하는 것이 참 많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하는 것처럼 실수와 실패 역시 혼동한다. 실수는 있어도 실패는 없는 것, 그것이 청춘이다. 서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면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 생각의 차이는 삶을 다양하게 접하는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우리는 서로 다를 뿐,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것이 아니다. 실수와 실패는 결코 동의어가 아니다.
“사위가 딱 당신이 나에게 한 것처럼 우리 딸에게 한다면, 당신은 어떤 마음일 것 같아요?”
“며느리가 딱 당신이 나에게 한 것처럼 우리 아들에게 한다면, 당신은 어떤 마음일 것 같아요?”
변화는 축복할 일이다. 배신만 아니라면, 후퇴만 아니라면 그것이 변신이건, 변심이건, 변장이건, 당신의 변화는 축하받아야 할 일이다.
세상에는 5성급, 7성급 호텔도 있지만 우리는 밀리언 스타급 호텔을 알고 있다. 창문을 통해 수백 개의 별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산 속의 집 혹은 섬마을의 집들이 백만 개의 별을 거느린 최고의 호텔이다.
가을비는 줄자와 연필을 준비해서 온다. 경계 없이 지나가는 세월에 줄자가 되어 금을 긋고 연필로 ‘이제부터 늦가을이고 곧 겨울이다.’ 그렇게 알림장을 쓴다.
인간을 죽을 때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지. 난 반드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는 사람보다 고단하고 상처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사랑이 상처가 되어 돌아올지라도 사랑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마음의 수양이 필요하다.
알제리 사람들이 사막을 건너는 법을 혹시 알고 있나?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사막에 5킬로미터 간격으로 빨간색 통을 하나씩 가져다 놓는 거야. 사막은 한꺼번에 건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조금씩 건너는 거지, 짧게 끊어 치는 인파이터 복서처럼 말이야.
피카소는 예술을 가리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도 그렇다. 숨은 그림처럼 삶의 갈피갈피에 숨어 있는 귀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 작고도 눈물겨운 것들, 중요하지는 않아도 한없이 소중한 것들, 그런 것을 발견하는 일이 곧 '삶의 보물찾기'라 믿는다.
한 번 뿐인 인생, 당연히 리허설은 없다. 약간의 실수나 돌발사태가 있었던 음반이 명반으로 남기도 하는 것처럼, 삶이란 '완벽한 연주' 보다 '특별한 연주'를 원하는 법. 그래서 모든 순간이 각별하고 귀하다.
원치 않았던 선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꼭 껴안는 것이 삶에 대한 예의다.(중략) 지나간 청춘은 그것으로 족하다. 리허설도 없이 무대에 서서 바이올린을 턱에 괸 연주자처럼 현재를 후회 없이 껴안고, ‘완벽한 연주’가 아니라 ‘특별한 연주’를 하고 싶다.
앞으론 아내가 속상해하면 의사처럼 곰곰 아내의 마음을 검진해 봐야겠다고 그는 생각한다. 아내의 마음이 오랫동안 혹사한 근육처럼 아픈 것인지ㅏ. 아니면 무심한 말이나 행동에 부딪혀 멍이 든 것인지 잘 살펴야겠다고. 그렇게 세밀하게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아내의 상처에 맞는 약도 사다줄 수 있을 것이고 종래에는 아내를 결코 아프게 하지 않는 남편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는 마음으로 반성문을 썼다.
영주 부석사는 11월 중순, 선운사 동백꽃은 4월, 광양 매화는 2월 하순, 봉평 메밀꽃은 9월 앞자락이 제철이다. 제철 과일이 가장 맛있고 영양도 풍부한 것처럼 제철 풍경이 선물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황제 펭귄들은 서로 촘촘히 다가서서 추위를 견딘다. 서로를 배려하며 고통을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추위를 견딘다. 가장자리에 서서 매서운 바람을 가장 먼저, 가장 혹독하게 견뎌야 하는 펭귄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바람이 가장 적은 안쪽으로 옮긴다. 그러면 또 다른 펭귄이 가장자리에서서 거센 눈보라를 맞는다. 그 어떤 펭귄도 가장자리에 서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내가 앞에 서지 않으면 서로를 보호할 수 없고, 자신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 혼자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없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눈보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연대하는 펭귄처럼 함께 견디고, 모르는 사람들을 보살피며 가야 한다. 내가 행복해야 타인도 행복하고, 그가 따뜻해야 나도 훈훈할 수 있다.
치앙마이 사람들은 잘되고 있는 국수 가게 옆에 다른 국수 가게가 문을 열면 원래의 국수 가게 사람들이 달려가 어떻게 하면 장사가 잘 되는지를 아낌없이 알려준다. 자신의 집에 손님이 넘치면 옆집으로 사시라고 안내해 주기도 한다. 가게가 문을 닫을 때쯤이면 나란한 두 가게는 서로에게 흐뭇한 미소를 보내며 열심히 산 하루를 마감한다. 우리에겐 무척 생소한 풍경이다.
잘 사는 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애쓰는 일, 다른 사람이 잘되도록 도와서 나까지 더불어 잘 살게 되는 일.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내는 것. 아이에게서 보고 싶은 모습을 어른이 먼저 보여주는 것이 진정하 교육이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평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조금씩, 천천히, 때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내가 잘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못했기 때문에 이길 때가 있다. 내가 못해서 진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잘해서 지는 때도 있다.
월급만이 바리케이트가 아니다. 세상 모든 순간을 넘어서면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니까. 한 번쯤 훌쩍 넘어서보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 뒤에 더 나은 생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수학공식보다 생활이 더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참 많다.
고통에서 빠져 나오고 싶다면 고통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보고 싶은 것이 있을 땐 한 걸음 멀리,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있을 땐 한 걸음 그 안으로. 아무래도 신은 반어법과 역설을 즐기시는 것 같다.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 앞에 앉아 뜨거운 국을 먹으면서 생각한다. 끊인 음식 같은 삶, 열정도 있고, 매혹도 있고, 몰입하는 삶을 향해 가고 싶다고 아직 젊으니 언젠가 한 번은 인생을 뜨겁게 끓여볼 수 있으리라고.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 약점을 기꺼이 내보이는 것, 없는 것을 없다고 수긍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에 이르는 비결이다. 애매한 상황에서 명확하게 정리를 하는 것이 단잠을 자는 비결이며 홀가분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 비결이다.
“그대의 독을 잘 다스려라. 그 독이 압력밥솥의 밥물처럼 끓어 넘쳐 폭발하려 할 때까지 그대의 독을 잘 끓여라. 글을 쓰는 기술은 그 다음의 일이다.”
세상에 시큰둥해질 때 그녀를 떠올린다. 삶이 시큰둥하다면 세상에서 좋은 것을 보물찾기하듯 찾아내는 시력이 부족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호흡처럼, 그녀의 탁구처럼, 그녀의 뜨개질처럼, 그녀의 춤처럼 세상에는 좋은 것이 너무나 많다. 다만 우리가 잘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항구에 정박한 배는 안전하다. 하지만 배는 항구에 묶여 있으려고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모두들 자기문제로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나의 실수 같은 건 오래 기억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실수한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속 끓이는 대신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으면 되는 거다.
지하철 경로석에 앉은 할머니, 무심코 가방을 열어보다가 지폐가 함께 들어 있는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어머니. 친구분들게 국수라도 한 끼 대접하세요. 날씨가 참 좋지요? 행복하게 다녀오세요.” 며느리도 고맙고, 잘 키운 딸을 주신 사돈어른도 고맙다고 할머니는 생각한다.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릴 때 연료의 절반 이상을 소모하다. 이륙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다. 청춘을 이륙시키려면 활주로의 비행기처럼 뜨거운 노력이 필요하다.
청춘이 왜 힘든지 알 것 가타. 활주로에 선 비행기 같은 그 시절이 쉽게 지나가기를 바람다면 청춘에 대한 모독이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이륙시키려면 활주를 달리는 비행기처럼 뜨거운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인생을 의심하지 말고 뜨겁게 활주로를 달릴 것. 바람을 안고 멋지게 이륙할 때까지.
끝은 언제나 새로운 차원의 시작과 함께 오며, 세상의 모든 독은 해독제를 소매 속에 감추고 온다 완벽한 이해는 치명적인 오해와 커플인 경우가 많으며, 우아한 커튼일수록 보이지 않는 시간의 먼지가 쌓이기 마련이다. 그러니 성급하게 달려오는 기쁨에 들뜨지 말고, 자주 얼굴을 내미는 불안에 흔들리지 말 것. 통찰은 고요를 데리고 오고, 어둠은 별빛과 다정하게 손잡고 올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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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더숲, 2019 (0) | 2021.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