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았는데 벌써 갔네. 』, 허림, 달아실, 2021
시인의 감성으로 쓴 산문집. 작가는 산문이라고 했는데 내가 느끼기엔 시 같은 느낌을 준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시. 그런 생각이 든다.(실제로 4부에서는 산문의 길이보다 긴 시를 인용한 것이 많다.) 시어와 같은 아름다운 단어와 가슴을 울리는 단어들이 가슴에 박힌다. 오래 생각하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글도 있었다. 시든 산문이든 형식이 뭐가 그리 중요하리. 시인이 전하는 마음을 읽으러 열심히 달려간다. 내면의 오막을 찾아서. 시인의 감성을 품고 산문집을 읽어본다. 어릴 때 많이 먹었던 배차국을 먹어보고 싶다. 혼자라도. 엄마 생각이 난다.(배추를 '배차'라고 하는 사투리는 우리 고향 사투리와 같다.)
시인이 살고 있는 내면, 나만의 세계를 찾았다는 곳. 나의 내면으로 들어온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산골의 사소한 일들을 달짝 씁쓸하게 깨워주어, 그 맛이 다시 살아난다. 구수한 사투리가 그렇고 순박한 사람들의 정이 그렇다. 젊어서부터 하얗게 쉰 머리로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졌던, 아래윗집으로 마당을 같이 쓰던 친구가 생각난다. 지금은 그 마당이 반 토막이 나 있다. 반 토막 난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친구가 오늘 그립다.
꽃을 좋아하는 시인. 꽃을 그린 글들이 많다. 같은 꽃인 듯 다른 꽃들을 다른 느낌인 듯 같은 느낌으로 그렸다. 이름도 몰랐던 많은 꽃들을. 시인의 눈으로 시인의 감성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조바심을 버리고, 한 번 쯤은 노력해 보고 싶다.
시인의 글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어느새 마음속에 시인이 자리하고 싶어 한다.
저자 소개
허림
시인,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심상』 신인상으로 문학 활동을 해오고 있다. 시집으로 『누구도 모르는 저쪽』(달아실), 『엄마 냄새』(달아실), 『신갈나무 푸른 그림자가 지나간다』(현대시), 『노을강에서 재즈를 듣다』(황금알 시인선), 『울퉁불퉁한 말』(시로여는세상), 『이끼, 푸른 문장을 읽다』(애지), 『말 주머니』(북인), 『거기. 내면』(시와 소금)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A4동인, 표현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내면 오막에서 산다.
독서 메모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보내야 오겠지만 보내놓고 보면 당신은 넘 멀리 있다. 보고 싶어 달려가고 싶지만 가지도 못할 곳에 당신이 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다. 보내지 않았는데 벌써 갔다. 언젠가 보내야 하고 언젠가 떠나야 한다. 만나는 연습을 하고 헤어지는 연습을 한다. 사랑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잃어버리거나 사라진 것들은 모두 옛날에 있다. 옛날을 어쩔 것인가. 옛날이거나 옛 애인이거나 그리워지는 것들이 슬프게 한다. 그런 날은 눈도 슬프게 온다.
저녁이 온다는 것은 걱정거리 하나쯤 미뤄두고 싶다는 것.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끝내 라면을 끓인다는 것. 너무 일찍 자면 자정이 되기도 전에 깨어 고여 있는 어둠 뜬 눈으로 다 퍼내야 한다는 것. 그래도 저녁이 온다는 것은 어디로든 흘러가도 좋다는 것. 고삐에 묶였던 생각들과 함께 놓여나 흥청이고 싶은 것. 그나마 부질없는 꿈이라도 기대하게 하는 것. 저녁이 이끄는 힘은 얼마나 센가. 모두 집으로 간다.
지극에 닿아본 사람은 안다. 누구도 보이는 것을 볼 뿐이지만 시인은 보이는 것의 배경이 되는, 그대의 사랑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인연이란 집을 짓는 일이다. 나는 너의 집이 되고, 너는 나의 집이 된다. 집이 없는 나는 늘 집이 그립다. 저녁이 되자 엄마는 집으로 불러들인다. “아직 해가 남았어요” “ 해는 늘 거기에 있단다. 우리가 들어가야지”
복숭아가 익을 무렵 내게도 남모르는 부끄러운 시절이 있었다. 짝사랑이어도 좋고 첫사랑이어도 좋다. 그 시절이 되면 괜히 마음이 따듯해진다. 여름 끝자락에 복숭아를 먹으며 난설헌 허초희의 시 <채련곡(采蓮曲)>을 읽는다.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닿는다. “행여나 누가 봤을까 한나절 부끄러웠네”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얼굴 마주하고 앉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 /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꽃으로서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것이 고작 꽃이나 피고 잎이 돋는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꽃들의 그 세상은 참 환하고 향기롭고 아름답다. 꽃으로의 삶이 바로 시인으로서의 삶이라 생각한다. 시가 사라지고 또 시인이 사라진 자리가 환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과연 나는 시로서 살고 있는 것일까? 다시 이런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하지 않기를 발원한다.
첫눈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눈은 새벽부턴 내렸다. 네 시 좀 넘은 시간 기냥 눈이 떠졌다. 창문을 열어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을 뿐이다. 첫눈은 복이라 한다. 농사짓던 이야기다. 눈이 많이 와야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눈 내리는 풍경을 보면 흑백 사진을 보는 듯한 지난 시간의 이야기 하나쯤 떠오르겠다. 첫눈이 오래된 문장처럼 내린다. 춥지 않게 배고프지 않게, 그러나 가난해서 추위 속에서도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복으로 내렸으면 좋겠다.
무서운 것은 말의 흔적이다. 취중에 한 말을 들려준다. 사랑한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짐승이 산다.
나무가 눈을 받아 낸다. 가만히 내려앉는 눈의 자세가, 눈을 받는 나무의 자세가 예사롭지 않다. 나무와 맺은 인연이라도 있나? 저마다 자세를 취한 자태를 보면 사람 같기도 하고 순한 짐승 같기도 하다. 나무가 꿈꾸는 내세를 본 듯하다. 나무의 전생을 보는 듯하다. 눈 속에서 묻어온 누군가가 막 태어나는 것 같다. 눈 치우다가 바라보는 나무에는 순한 짐승이 산다. 나무속에 깃든 짐승이 기지개를 켠다. 분이 부시게 날린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문자가 빗방울처럼 날아들었다.
‘그대 기다린다.’는 광고를 내러 가야겠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꽃을 보고 웃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쓰겠다. “왜 기다리냐”고 붇는 다면, 말없이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겠다.
(가장 짧은 글?)
속아줄 때가 있잖아요.
짐짓
모른 척
(그래 맞아! 문득 떠오르는 말이다. 이 책에는 짧은 글들이 여럿 있다. 이글도 제목보다 본문이 짧다. 짧아도 가슴에 와 닫는다. 더 많은 말이 필요 없는 글이다. 좋다)
들꽃
세상은 내게 무허가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 봄을 딛고 푸르게 일어서는 들꽃은 무허가로 꽃대를 세운다.
우산을 들고 오던 당신을 만났다면 행운이 든다는 꿈 풀이도 있지만 정말 우산을 쓰고 오던 당신은 누구인가? 누구의 당신인가? 절망의 시대에는 꿈도 기다려진다.
아침부터 오막을 다녀간 친구가 여럿인데 그 중 햇살이 가겠다고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서쪽 하늘에서 붉은 향기가 사그라진다. 괜찮다. 그는 내일 또 온다.
꽃은 산허리까지 하얗게 피었다. 한 송이 한 송이 벌기 시작한 꽃들이 한 무리 이루어 향기를 내 뿜는다. 한날한시에 땅속에 든 후, 같은 꿈을 꾸었을 게다. 감자도 감자다울 때 맛이 난다. 감자에서 분이 난다는 게 내면 어무이들 입에 밴 맛이다. 화전으로 이어온 내면 특유의 맛이리라. 오막에 들다가 산허리까지 이어지는 감자꽃의 유혹에 끌려 한밭자리를 걸었다. 감자꽃 흰빛이 저녁 햇살보다 눈부시다. 내 몸에서 감자꽃 향내가 났다.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같이 집을 지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오래전에 내가 보낸 문자를 보고 뭔가 가슴에 얹힌 듯 무거웠다며 그때의 기억을 꺼내놓는다. 그때 나는 친구의 답신을 받지 못했는데 일부러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자기도 그런 세월을 겪는 중이라며, “아는 놈은 알지. 언젠가는 가까이에서 같이 살 오막살이라도 져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외련 내가 흔쾌히 맞장구쳐줘 고맙다고 했다.
산은 안개가 깊다. 안개 속을 흐르는 것은 딱따구리가 나무는 쪼는 소리와 계곡을 흘러가는 물소리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안개처럼 산책한다. 바람꽃을 만나고 흰제비꽃을 만나고 개별꽃을 만난다. 가장 낮은 곳에서 만난 가장 맑은 웃음이다. 웃음에서 향기가 난다. 안개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물푸레나무가 푸른 눈을 뜨고 참꽃이 붉은 입술을 연다. 눈발처럼 날리는 산벚꽃잎이 개나리꽃 위에 내려앉는다. 개나리 그늘 속에 산괴불주머니가 노랑 향낭을 터트린다. 저만치 앉아 있던 앉은뱅이꼬치 수줍게 고개를 든다.
그 고개를 다 넘고 나면 내면의 속살을 만난다. 내면의 가을은 일찍 가고 겨울은 굶주린 듯 달겨든다. 시월이면 햇살도 시월만큼 짧아지고 발걸음은 빨라진다. 산비탈마다 가득했던 옥씨기와 고추는 이미 초추해지고 배추와 모의 자리도 훤해진다. 그 속에 든 감자가 드러난다. 작업이 끝난 양배추 밭은 밑동에서 움이 돋아 푸르다. 나는 짐승처럼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몇 포기 얻어다가 저녁거리로 삶는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드는 풍경은 스산하고 쓸쓸하지만 깻집이나 고춧대를 태우는 연기가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 산 중턱을 휘감는다. 잠잠하던 저녁 골짜기가 술렁인다.
해장국을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술병을 쓰러트린 날이 아니라 날밤 깐 날이다. 가끔 원고 쓰다가 푸르게 찾아오는 새벽이 낯설기도 하지만 문을 열고 선뜻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사지도 비틀어 뚜거덕 뼈다구도 다시 맞추어 끼우고 나면 속 풀이 북엇국물이 생각나는 것이다. (…) 지난 밤 풀리지 않은 실마리는 내두고 속을 풀어내야 하는 일이 이 아침에 해야 할 일이다.
복수초는 햇살 담은 노란 독기를 품고 눈을 녹이며 피는 꽃이다. 몸이 뜨거운 꽃이다. 눈 속에 꽃대를 밀어 올리는 이름들은 한꺼번에 꽃을 피우지 않는다. 복수초도 먼저 한 송이를 내어 살피게 한 후 이어 활짝 꽃잎을 열어 향낭을 터트린다. 눈 속에 꽃 몸살을 하던 몽우리를 밀어 올려 노란 노오란 햇살을 담는 꽃. 복수초가 피는 이월이다.
연어, 연어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먼 바다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만 너도 가보라고 알을 낳고 죽는다.
세월을 몸에 품는다는 걸 조금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 보이지 않던 주름이며 흰 머리카락이며 헐거워진 이빨과 잘 듣지 못하는 귀. 이젠 겨우 무늬만 갖추었을 뿐이다. 한때 세상을 읽어내던 눈빛은 흐릿하고 귓속에는 낯선 세상이 들어와 산다. 눈보다 마음으로 세상을 읽으라는 옛말이 낯설지 않다. 언제부터 내 생의 역마살은 다 빠지고 오막에 머무는 날들이 잦아졌다.
오막의 앞개울은 내린천이다 계방천과 자운천이 만나 내린천이라는 이름으로 살둔-미산-상남을 돌아 인제 합강나루터 용소에서 인북천과 만나 합강이 되어 소양강으로 흘러든다. 내린천은 내면의 내(內)와 기린면의 린(麟) 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법정 스님이 소유한 물건 중에는 거울이 있었다. 거울 뒷면에는 삭발한 날짜와 연도가 쓰여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되잡아보려는 배려인 듯하다. “나는 내 마음이 해이해지면 거울을 꺼내보고는 했다오. 그러면 머리를 깎을 때의 신심이 칼날처럼 일어나고는 했거든요.”
강이 내준 돌다리를 건너다가 강물이 씻어놓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무록의 하늘과 그 하늘의 고요를 마음에 들여놓는다. 홍천강 더디든 자리를 펴도 좋다. 강을 즐기면서 내안의 울림도 들으면서 물과 함께 떠나는 여행.
내 문학의 시작은 나를 떠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시가 내안에 머물러 있으면 습의 권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강은 바로 내 삶을 충전시켜주는 길이다. 나도 물소리처럼 자유로운 발상을 꿈꾼다.
하루는 경포호수를 걸어 선교장을 지나 갈기봉까지 올랐다가 다시 경포대를 둘러보고, 경포바다 모래밭에서 내안의 뜨거운 문장 하나를 꺼낸 적이 있다. 또 하루는 화진포를 돌아 바닷가 모래밭을 걸어갈 때 불쑥 문장 하나가 손을 내밀어 손을 잡을 적도 있다. 또 하루는 늦은 저녁 바닷가 어느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노랫말을 빌려 속삭이듯 문장 하나를 꺼낸 적이 있다. 결국 오지 말았어야 할 사랑은 기어이 와서 문장이 된다.
정선의 가을은 나만큼 가을하여 외롭고 소슬하다.
밭둑서리 땡감을 가리키며 따 가라고 하신다. 딸 사람도 없고 먹을 사람도 없다고 한다. 봉다리 가득 감을 얻어 와 밤새 껍질을 깎아 매달았다. 겨울이 기다려진다. 보기만 해도 하무뭇하다. 누군가 꼭 나를 만나러 오겠다는 기별이 올 것 같다. 첫눈처럼
“어머이 지금 몇 시야?” “자, 여기.” 어머이는 그때마다 시계 찬 손을 내밀었다. 그러곤 그때마다 몇 시냐고 물었다. 흘러간 시간을 묻지 않고 지금 이 시간을 살아오신 것이다. 시계가 없어도 어머이는 한세상을 사셨지만 어머이 손목에서 흘러간 시간을 기억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보내지 않았는데 벌써 가셨다. 어머이의 시간이 더 그립다.
“씨구운데 드셔보실라우” 고들빼기김치는 원래 쓴데 입맛 돋우는 덴 그만이다. 뿐만 아니라, ‘기따가’, ‘씨굽다’는 말은 얼만 따듯한가, 몸은 이미 김밥집에 작은 의자에 앉아 있다.
(‘씨굽다’는 말. 들으면 웃음이 나오는 말. 어릴 때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쓰던 말들인데 요즘 들으면 새롭고 웃음이 난다. 그래서 구수한 사투리란 이야길 하는가..)
시어는 새겨듣는 데서 온다 산에 들면 산의 언어를 새겨들어야 한다. 산에서 만난 ㄴ것들은 모두 산의 언어를 쓴다. 꽃이 그렇고, 나무가 그렇고, 안개가 그렇고, 구름이 그렇다. 산과 함께 수 천년을 살면서 이미 몸에 밴 것들이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말들이 올해도 그 자리에서 그 빛깔 그 모양으로 찾아와 말을 건넨다. (…) 산의 언어는 있는 그대로의 날것의 언어다. 입말이며 몸짓이다. 몸짓은 이이 인간의 언어 영역은 아닌 듯싶다. 감성의 사유를 일으키는 말은 모두 날것이다. 그 말들은 모두 몸의 언어에서 나왔다.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것이 몸이 아니라면 알아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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