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고생하는 후배들을 보니 가슴이 아프네요..그래도 뿌듯합니다.

그루 터기 2007. 12. 18. 14:10

이름없는 해안 ‘기름 절벽’에 특전사 있었다

 

해수욕장은 자원봉사에 넘기고 절벽 아래로 사라진 군인들

“일요일에 짐꾸리고 10일에 출동했어요. 10일이 월급날이었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돈이 굳겠죠. 허허”

이름도 없는 해변에서 방제작업을 하고 있는 특전사 천마부대 부사관은 ‘언제 끝나겠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 이후 자원봉사자의 물결은 만리포에서 천리포로 이어졌고, 열흘째인 17일에는 백리포와 구름포 해수욕장 같은 작은 해변까지 스며들었다. 하지만 구름포에서 산길을 2km 달려 일반인의 발길이 닿기 힘든 곳의 방제는 군인 몫이었다.

해수욕장 모래사장을 자원봉자들에게 넘기고 사라진 군인들은 그렇게 이름 없는 해안가 절벽 후미진 바위 틈에 있었다.
절벽으로 둘어싸여 일반인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해안가를 방제하기 위해 특전사 대원들이 레펠을 내려가 듯 밧줄을 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기름으로 미끄러운 바위에서 특전사 대원들이 바가지로 퍼담은 기름을 나르고 있다.<사진 = 손혁기>

베레모의 특전사 부대원들은 그동안 가파른 산허리를 넘나들며 해안가에서 기름을 퍼올리다 이틀 전부터 겨우 차 하나 지나다닐 길이 뚫렸다. 차가 못 들어오니 태안에 넘쳐나는 자원봉사자의 손길도 부족했다. 길이 나면서 이날은 서산 동문동 성당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교대하는 부대원들에게 사발면과 커피를 전했다.

절벽 타는 밧줄은 어느새 기름띠에 절어

소나무에 매여있는 밧줄을 타고 벼랑 같은 비탈길로 30여m를 내려갔다. 하얗던 밧줄은 작업하는 부대원들이 만져 온통 기름에 절어 있었다. 현장에 내려가자 숨이 막혀왔다. 모래 빛을 되찾은 만리포 해변에서 한숨 돌리고 왔는데 삼면이 벼랑으로 둘러쳐진 해변에는 바다가 토해낸 검은 기름이 여전히 질퍽하게 밟혔다.

아침 9시부터 작업을 시작해 오후 5시까지 마치는 강행군이 3일째 계속됐지만 절벽 아래 바위와 자갈이 깔린 해변에는 여전히 바가지로 퍼야 할 만큼 기름이 많았다. 기름 묻은 바위는 장화가 미끄러졌고, 바위 사이에는 기름이 발목까지 잠겨 장화가 무거웠다.

기계나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은 군인 손으로

4명이 양동이에 퍼담은 기름을 20명이 옮기고, 자루에 담아 끈으로 묶었다. 정광훈 대위는 “기계나 자원봉사자들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은 군인이 손으로 하는 수밖에 없어요.” 궂은 일은 군인 몫이라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이렇게 자루에 담긴 기름 더미들은 50명이 벼랑에 산양처럼 붙어 발에서 어깨 위로, 다시 발에서 어깨 위로 나른다. 이렇게 하루에 퍼내는 양이 600ℓ 드럼통으로 40-50개.

바가지로 기름을 퍼담던 오민영 하사가 다가왔다. “마스크 좀 올려주시겠어요.” 그러고 보니 손이 깨끗한 사람은 카메라를 든 기자밖에 없었다. “호흡이 잘되는 마스크가 있으면 좋겠는데, 답답하네요.” 기름 천지에 삼면이 막혀있어 공기는 탁했고, 옮기느라 힘을 쓰면 얼굴에도 땀이 뱄다. 기자에게 멀리 있던 부사관은 기름이 묻지 않은 어깨를 끌어당겨 마스크를 밀었다.

추위에 떠는 것이 가장 마음 아파

이종혁 원사는 “이런 일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명령을 받으면 하는 군인 밖에 못한다”면서도 “추위에 떠는 것이 제일 마음 아프다”고 아버지 같은 마음을 썼다.

특전사 천마부대는 2005년 호남지방 폭설, 2006년 전북 익산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때도 현장에 나가 50여 일을 복구와 방역활동을 벌였다. 이번에 출동하면서 부대는 고무보트까지 챙겨왔지만 아직 섬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군 방제 작전은 이제부터가 시작”

구름포해수욕장 인근 후미진 해안 절벽에서는 제7 공수여단 장병들이 ‘기름 제거 작전’을 펼쳤다. 이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능한 지역으로 20m 절벽 위에서 로프를 끌어내려 이를 타고 해안으로 내려가 기름덩어리 수거작업을 벌였다.

부대원들은 바위와 절벽에 달라붙은 기름을 떼어내거나 흡착포로 닦아낸 뒤 이를 다시 모아 부대에 담아 올리는 방법으로 절벽과 바위 방제를 실시했다. 공수부대원들의 손길이 닿으면서 기름덩어리 범벅이었던 ‘죽음의 절벽’의 갯바위들이 서서히 원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반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해변 작업을 마치면 이름없는 무인도에 남아있을 기름을 제거하는 것도 군인의 몫이다. 군에게 태안반도 방제작전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인 셈이다. 17일 방제작업에 참여한 3만7200명 가운데 5418명이 군인이었다.

국방부에 따르면 군은 17일까지 연인원 4만 3488여명의 육·해·공군 장병들과 함정, 초계기, 페이로다, 굴삭기, 덤프트럭 등을 긴급 투입해 방제지원작전을 펼쳐왔다.

육군은 연인원 32사단 1만여 명, 62사단 4200여명 등 지역병력은 물론 203특공여단 4300여명, 7공수여단 4900여명, 환경대대 2000여명 등 전문인력을 투입하고 차량과 특수건설장비 등 160여대를 동원했다.


기름유출사고 열흘째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절벽가 해안에는 바가지로 퍼담아야 할 만큼 기름이 온통 해변을 뒤덮고 있었다.<사진 = 손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