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책상이야기
결혼을 한 이후로 나는 집에서 책상을 포기 한 적이 없었다. 집에서 대단한 일을 하거나 업무를 보거나, 글 쓰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닌데 그냥 꼭 있어야 될 것만 같은 물건이었다. 컴퓨터를 책상위에 두는 경우가 많아서 가끔 사용도 했고, 기능장 대학과정을 다닐 때 시험 공부하느라 책상이 필요한 적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별로 사용할 일이 없는 책상이었다.
8단지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아내는 나의 책상의 효용성이 낮다는 걸 간파하고 있던 책상을 버리고 이사를 왔다. 책상이 약간 낡기도 했지만 평수가 적은 작은 집으로 이사를 오다보니 거의 대부분의 가구나 물건들을 버리고 이사를 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던 천여권의 책도 책장 수를 두개로 줄여서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버렸다, 취미생활로 하던 아마추어무선사용 장비들도 고가의 무전기들을 빼고 안테나, CW 송신기 등 대부분 버리고, 스쿠버 장비도 필요한 것만 겨우 챙겨 창고에 넣었다, 당연히 집에는 책상도 없고, 마땅히 책을 볼만한 장소가 없었다. 가끔 회사에서 마무리 하지 못한 일이나, 급하게 일을 해야 할 때는 작은 식탁위에서 했었다.
결국 나의 불만은 커졌고, 다음에 언제든지 필요할 때 사 준다는 아내의 말을 거절하고 겨우 협상해서 작은 책상 하나를 책이 있는 방에 침대를 옆으로 밀고 넣었다. 어렵게 의사를 관철해 준비한 책상이지만 몇 년간은 그저 그렇게 나의 가방을 두거나, 가끔 회사 잔무를 정리할 때 사용하는 용도로만 써 왔다.
그런데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만 있는 백수의 생활이 시작되니까. 제일 많이 사용하는 가구가 되었다. 대부분의 날을 하루 종일 집에만 있게되고, 티비 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다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서 보내게 되었다.
하루 중 책상을 사용한 시간을 계산해 보니, 작년 9월 이후 어쩌다 외출을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침 6시에 일어나 밤12시까지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책상 앞에 앉아 있게 되었다. 적게 앉아있는 날은 대여섯 시간, 많게는 식사하거나 잠깐 쉬는 시간을 제외한 15시간까지 책상에 앉아 있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퇴직 후에 이렇게 열심히 사용하려고 그렇게 책상을 가지고 싶었나 생각될 정도다.
나의 책상 사랑은 이번 이 처음이 아니다. 나는 회사에서도 큰 책상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개인사업을 할 때 사무실이 아무리 작아도 책상은 큰 것으로 놓거나, 두 개를 붙여서 사용을 했고,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도 사장님께 첫 번 째 요구사항이 큰 책상이었고, 별도의 책장 하나와 서류보관함 이었다. 한 개의 책장이 퇴직할 때는 3개의 책장으로 늘었고, 불필요한 서류와 책들을 버렸지만 결국 2개는 채워놓고 퇴직했다. 그만큼 책상과 책장을 좋아했다.
요즈음 집에서는 큰 책상을 사도 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 작은 책상을 사용한다. 두 아들을 다 장가보내고 아내와 둘만 있어서 넓은 집을 팔고 지금의 좁은 집으로 이사를 오다보니 편리한 점도 많은데 이런 땐 좀 불편하기도 하다. 책상이 작은 대신 책상 위에는 노트북 두 개와 모니터 하나를 설치하고, 나머지 책이나 노트, 메모지나 문구들은 바로 옆에 있는 침대 위에 천을 펼쳐 놓고 사이드 책상으로 사용을 한다. 이 침대는 평상시엔 사용하지 않고, 따로 사는 애들 왔을 때만 사용한다. 그 때마다 치워줘야 해서 약간 불편하기는 해도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몇 분이면 해결되니까 크게 불편한 것은 모르고 산다.
이 책상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좋은 일도 몇 가지 있었다. 소방안전관리자 1급 자격증을 여기서 공부해서 취득했고, 많은 소방안전관리자 문제도 여기서 작성해 블로그에 올렸다. 한 권의 책도 여기서 썼다. 그리고 올 3월부터 100여권의 책도 여기서 읽었다. 또 국가 기술평가위원도, 자격증 감독, 채점위원도, 몇 종류의 사설 자격증도 여기서 받았다. 그러고 보니 짧은 시간에 이 책상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런 책상이라 이젠 오랜 친구처럼 묵은 정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인생2막 1장에서 꼭 하고 싶은 새로운 일 두 가지에 도전하는 중이다. 그 일도 이 책상에서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런 좋은 추억을 간직하면서 평생 같이 갈 수 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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