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유영만,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나무생각. 2017

그루 터기 2021. 10. 30. 07:02

유영만,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나무생각. 2017

 

살아있는 거목은 흔들리지만 죽은 고목은 흔들리지 않는다.

등나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반면에 칡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칡과 등이 감아 올라가는 방향 때문에 생긴 단어가 갈등이다. (갈은 칡이고, 등은 등나무다)

 

‘~에 불과하다.’ 라는 말을 쓰는 순간 오만, 선입견과 편견이 들어가 있다.

 

나무

십리절반 오리나무, 열의 곱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베어 피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골에 상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나무 가운데 나무는 내 선산에 내나무

수액좀 그만 빨아 먹으라는 고로쇠나무, 저마다 참나무라고 우기는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총을 잘 쏘는 딱총나무, 물가에서 언제나 푸르게 자라는 물푸레나무, 화살처럼 날아가는 화살나무, 밤보고 너도나도 밤나무라고 하는 나도 밤나무와 너도 밤나무, 맨날 말아 먹는 국수나무, 고민 끝에 찾다가 실마리를 잡은 가닥나무, 밤에만 자기를 부르는 자귀나무, 그 옆에서 질투를 부르는 머귀나무, 가뭄을 걱정하는 가뭄비나무, 계획을 세우고 미루기만 하는 미루나무,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작살나무, 그 옆에서 조금 덜 무섭다고 우기는 좀작살나무,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를 뿜으며 유혹하는 향나무, 언제나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구상나무, 대패질 자하는 집앞에 서 있는 대팻집나무, 음식 만들 때 꼭 양년의 재료로 쓰라고 부탁하는 생강나무, 세상의 비밀을 숨기자고 쉬쉬하는 쉬나무, 까마귀에 밥 주는 까마귀밥나무, 보리밥만 대접하는 보리밥나무, 꿩 보고 덜떨어졌다고 우기는 덜꿩나무, 말이 오줌을 주로 누어서 생겼다는 말오줌때나무, 먹어보면 신맛나는 신나무, 사람에게 많이 퍼주는 사람주나무, 예로부터 덕이 많은 예덕나무, 참 죽이 잘 맞는 참죽나무, 언제나 차를 대접해오는 차나무, 자신을 태운 재가 노랗다고 생각하는 노린재나무, 조밥을 닯은 조팝나무, 이밥만 먹고 자란 이팝나무, 박쥐가 날아가다 쉬고 간다는 박쥐나무, 산딸기 모양의 열매는 맺는 산딸나무,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 사철나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먼나무, 아닌 밤중에 홍두께로 쓰이는 박달나무, 크고 날카로운 가시로 접근을 금지를 엄하게 외치는 엄나무, 쾌지나층층나네를 외치는 층층나무, 화류계의 거두로 무난히 뻣어가는 버드나무, 감 떨어지기 전에 감나무, 두려워서 벌벌떠는 사시나무, 소태씹은 얼굴 소태나무, 임도 보고 뽕도따고 뽕나무, 그 옆에서 덩달아 방귀를 뀌는 꾸지뽕나무, 주목나무에 주목하라.

 

나무는 철저하게 이기적이다. 나무는 자신만을 위해서 몸부림 치는 존재이다.

철저한 이기주의는 이기와 이타가 분리되지 않는다.

 

나무는 자라는 자리를 탓하지 않는다.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남을 절대로 탓하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

3억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태어난 나는 탄생 자체가 신비이며 경이이다. 그 운명을 사랑하는 만큼 내 삶도 사랑하게 된다. 삶은 자기다움을 찾아 자기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름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불행한 존재다.

 

나무의 경쟁은 꽃이 만개하는 봄부터 시작된 게 아니다. 한 해 혹은 두해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야 진한 향을 지닌 아름다운 꽃을 봄에 피울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칼을 쓰는 시간보다 칼을 가는 시간이 길어야 한다. 그래야 단칼에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다.

대나무는 어둠의 고독을 벗삼아 땅속에서 5년을 기다리며 땅위에서의 삶을 상상한다. (매미도)

 

동물의 세계에서 힘이 없는 놈은 빠르고, 느린 놈은 맹독이 있고, 이도 저도 없는 놈은 번식력이 좋다.

 

풍경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소리를 내지 않는다. 시냇물도 돌부리에 걸리지 않으면 소리를 내지 않는다.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수 없었다.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 확인 할 수 있었다. 김훈의 단편소설<화장> 2006

 

나뭇가지

가지가 하나면 한 가지이다. 가지가 여러 개면 여러 가지이다. 여러 개의 가지가 한 뿌리에서 뻗어 나왔으니 마치 한 가지’, 마찬가지이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마찬가지이다. 이렇게나 저렇게나 마찬가지이다. 유영만<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2017

 

옹이는 나무의 한이 맺힌 응어리이다. 옹이(상처)가 있어야 상상력이 비상한다.

옹이는 손바닥의 굳은살을 의미한다.

 

해거리는 살아남기 위한 나무의 비장한 몸부림이다. 해거리는 나무의 하안거나 동안거다. 해를 걸러 나무가 쉬는 것은 한가하고 시간이 많이 남아서 취하는 조치가 아니다. 매순간 치열하게 살아가기 위해 잠시 짐을 내려놓고 자기 몸을 돌보는 해거리 전략이다. 사람도 나무처럼 일정한 주기로 성찰하는 삶, 나를 재발견하는 시간, 그리고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순간을 보내면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목욕탕 앞에 써진 문구 사람은 다 때가 있습니다.”

 

중국의 대나무(특이한 대나무)

씨앗을 뿌리고 나서 다섯 해가 지나야 비로소 싹을 틔우고 일년 만에 12m나 자란다. 어떠한 노력도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결국 결실을 맺는다. 헛된 노력은 없다.

 

등나무는 등을 돌리고 살아가는 나무가 아니라 나무지지대에 등을 대고 살아가는 나무다.

 

지구상에서 111종만이 존재하는 나무! 그래서 은행나뭇과에는 은행나무만 존재한다.

은행나무 이파리 끝은 비록 갈라져 있지만 한 장이듯 당신과 나 역시 둘이면서 하나지요. -괴테

은행나무에는 나이테가 없다( 확인해 봐야겠다.)

 

자귀나무 낮에는 펴져 있던 이파리가 밤에는 접혀서 서로 겹치게 되어 사랑나무라고 한다. 자귀나무의 잎은 모두 짝수이다. 모두 자기 짝을 맞추어 잎을 접고 같이 자기 때문에 사랑나무라고 한다.

 

감나무의 대리모 고염나무, 감나무는 혼자 절대로 감나무가 될 수 없다. 고염나무에 접을 붙여야 감이 열린다.

 

전나무는 주변환경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불안감이 가중될 때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엄청나게 많은 열매를 맺는다.

 

백일동안 꽃을 피우는 정렬의 배롱나무

심장이 뛰지 않고 다리가 떨리는가? 배롱나무를 만나 삶에 대한 열정을 배워보라.

배롱나무의 꽃은 한 번 피면 백일을 가는 것이 아니고 꾸준히 피고지고를 반복해서 백일을 간다.

세조에 대한 적개심과 단종을 향한 뜨거운 충심을 품고서 배롱나무의 붉은 꽃을 보며 소리 없는 정열을 불태운 성상문의 충직함을 느낀다.

 

나무는 그 자리에 그냥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가운데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면서 자기 방식으로 춤을 추며 살아가고 있다.

 

음식에 소금을 넣으면 간이 맞아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먹을 수가 없다. 인간의 욕망도 삶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속에 삶을 넣으면 안된다.

 

디오니소스적 인간 : 욕망을 쫓는 인간

아폴로적 인간 : 이성과 논리로 생각하는 인간 - 니체

 

나무가 추는 다섯가지의 춤

멈춤 : 나무는 늘 멈춰서 미동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리에서 치열한 다음 생을 준비한다.

낮춤 : 나무는 지대가 높을수록, 고산지대에 살아가는 나무일수록 낮춤을 생존전략으로 체득하고 있다.

갖춤 : 나무는 매순간을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나무로서 나무다워지기 위한 갖춤이다. 나무는 나무로서 갖추기 위해 사계절을 치열하게 살아간다.

맞춤 : 하잖은 풀도 우람한 나무도 서로 부대끼며 영토 싸움 끝에 얻은 절묘한 타협의 선물이다.

막춤 : 모든 나무는 막춤의 고수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바람이 저마다의음표를 품고 소리내며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