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한지혜, 『참 괜찮은 눈이 온다.』(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2019

그루 터기 2021. 11. 12. 00:14

한지혜, 『참 괜찮은 눈이 온다.』(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2019

 

참 괜찮은 책을 하나 읽었다. 보통 책을 보더라도 서평이나 감흥에 대해서 잘 쓰지 않는 편인데 이번 주에는 벌써 두 권의 책에 대해서 감흥에 대한 글을 쓴다.

이 책은 도서관에 가기 전에 읽던 글에서 소개받거나 다른 정보를 가지고 사전에 확인해서 빌린 책이 아니라 서고에 있는 책 중에 제목과 (나는 목차는 읽지 않고 제목만 보는 편이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저자라는 소개만 보고 빌린 책이다. 처음 빌려 왔을 때 한 두 페이지를 읽었는데 재미가 별로 없는 것 같아 빌려온 7권의 책 중에 제일 뒤로 미루고 마지막에 다시 읽어봤을 때 계속 지루하고 재미없으면 그냥 반납하려고 했었던 책이다.

책을 보면서 이렇게 많은 내용을 메모한 책도 처음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확인은 해 보지 않았지만 실용서 중에 더 많이 기록한 것이 있는지 몰라도 아마 제일 많이 기록한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책 전체를 필사를 하고 싶은데 엊그제 『먹을 갈다』를 필사하면서 다른 일을 거의 못한 경험이 있어서 선 듯 필사를 하겠다고 결정을 하지 못했고. 또 다른 이유는 필사를 하고 싶은 책은 글의 표현이 내가 담고 싶은 글들이 실린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특별하고 자극적인 수사 없이 마음을 울리게 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내가 흘려보냈던 단어나 내용들을 꼼꼼히 지적하고 분석해 놓은 글들이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올바른가를 다시 한 번 생각게 했다. 매일 잠을 청하는 시간인 12시를 2시간이나 훌쩍 넘기고도 책을 덮지 못하고 끝까지 읽었다.

 

 

 

방문도 창문도 다 골목에 맞대어 있다. 그래서 방에 누워 있으면 많은 소리들이 지나갔다. 이른 아침 우선 청소부의 리어카가 지나간다.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내려가려면 무게에 밀리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아야 했고, 그러느라 리어카 뒤에 납작하게 붙인 고무ㅏ이어로 자주 바닥을 눌렀다. 치지직 끌리던 타이어 소리 그리고 한참 시간을 두고 같은 길을 따라 걷는 두부 장수의 짤랑거리는 종소리, 오후에는 학교 가지 않은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는 소리와 고무줄 놀이 하는 소리가 들렸고, 밤늦은 길에는 술 취한 사내들의 토악질 소리가 꿈 언저리에 실렸다.

소리가 많기로는 겨울철을 따를 수 없다. 겨울밤 소리의 으뜸으로 치는 메밀묵 장수의 ‘사려엇~“소리는 분명 듣고 자기를 불러달라고 내는 소리일 텐데, 창문을 열어 내다보면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소리만 혼자 살아 비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돌고 있는 것이다. 여기요, 하고 부르면 그제야 어느 모퉁이에서 네모판을 목에 두른 메밀묵 장수가 불쑥 몸을 드러낸다. (중략)

들리는 것은 어디 그뿐이랴. 앞집과 맞붙은 슬래브 지붕 위로 떨어지는, 타닥타닥 콩 볶는 소리 같던 여름철 장대비 소리. 한겨울 자박자박 눈 내리는 소리까지 들려주던 그 지붕이 빗소리를 빼놓고 전할 리 있나.

 

그 꽃이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이 벽속에나 꽃을 가두고 있는 인생에 대한 비관적인 상징인지, 모든 벽도 사실은 꽃을 품고 있다는 낭만적인 상징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저 조금은 서러운 기분이었다. 문청시절이라 그 감상이 모두 시가 되고 소설이 되었다. 그렇게 쓴 시와 소설을 과제무로 제출했다.

 

사람은 저마다 개별적인 존재이다. 모든 환경과 경험도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경험은 있지만 똑 같은 경험은 없다. 그러므로 나도 너와 똑 같이 경험해봤다는 말이나 한 발 더 나아가 해봐야 안다는 말은 신중히 해야 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 많은 인생을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시련에 혹독하거나 냉정하기 쉽다. 경험이 누군가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이지 타인의 삶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첫마디는 ‘나는 너를 모른다.’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읽다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작품 같은데, 보석 같은 문장이 한두 문장쯤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런 문장을 만나는 순간이 나는 너무 좋다. 그런 문장은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형편없는 삶은 없다는 증명 같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빛나는 한 가지는 있다는 외침 같기도 하다.

 

선배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아직 삼십대였던 나는 다가올 내 나이 마흔을 생각했다. 그날이 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여전히 남아 있을 내 꿈은 무엇인가. 그 게 나이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그래도 조금은 다를 것이다. 생각하고 설렜는데, 아직 뭘 이룬 것 같지는 않다.

(내 나이 66세 아직 남아 있는 제2의 인생이 있다. 어릴 적 내 꿈은 무엇이었을까? 남은 인생에 이루고 싶은 꿈은 남아 있는 것일까? 나도 내 꿈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오늘 아침다시 생각해 본다. 아직 이룬 것 같지 않은 나의 꿈을 찾고 싶다.)

 

그날 함박함박 떨어지던 눈이 내 귓가에 그렇게 말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어렸을 때는 눈이 내리면 마냥 신나고 즐겁더니 나이를 먹으면서는 마음이 애틋해진다. 그게 “괜찮다” 소리를 듣고 난 이후부터 생긴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소리와 함께 내 서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비로소 들으면서, 내 삶도 한결 깊어졌다. 춥고 흐린 날 그게 창밖의 날씨든 내가 처한 인생이든 마음을 낮추면 세상 모든 만물은, 그 안에 깃든 마음은 다 괜찮아질 수 있다. 나는 우선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그러는 동안 떡잎은 아무도 모르게 시들어서 툭 떨어진다. 식물도 세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린 자식 튼튼하게 맨 윌 밀어 올려놓고 소리 없이 시들어 떨어진 아버지 얼굴이 어른거린다. 그 어느 여름, 고춧대 푸르게 키우면서 아버지도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한국에서 여성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여전히 내게 그 질문은 “아이는 어쩌고?” 하는 질문으로 들린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벗어나 작가로서의 삶으로 어떻게 진입할 것인가에 대해 수시로 자문하지만 여전히 나는 답을 모른다. 논쟁은 사라졌지만 현실은 남아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답을 모르면 모른 대로 일단 나오기로 했다. 나와서 쓰고 읽고 생각하기로 했다. 두려우면 두려운 대로 일단 밖으로 나와 끝내 합의하거나 포기 하지 않음으로써 조금씩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몇 백 년의 세월을 버티고 뿌리내린 나무가 어찌 단 한 그루의 생명일까. 그것은 한 그루의 개체가 아니라 군락이다. 홀로 더불어 숲이다. 하나의 몸에 무리를 품고 있으니 그 이상의 영험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험이 무엇이든, 자연이 영험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겐 있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 같다. 거대한 콘크리트 숲을 제 한 몸으로 다 막아낸 나무가 자꾸만 방향을 잃고 있는 내 삶을 지켜주지 않을까 기대고 싶어진다.

 

태어나면서부터 오직 한 가지 꿈만 가지고 평생을 산 사람은 이제껏 보지 못했다. 다들 많은 꿈을 꾸고 산다. 많은 꿈 가운데 하나만 남는 경우도 있고, 중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이 많은 사람도 있다. 여러 개의 꿈을 조율하고 변주해가는 과정, 그러면서 때로 기뻐하고 때로 절망하는 과정,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과정이 성장일 것이다.(중략)

오래전에 꾸었던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것들을 버리지 못했다. 내게도 꿈은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것이지만, 동시에 견디면 즐거운 그 무엇이기 때문임을 믿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버리지 않을 때, 꿈은 꿈 그 이상이 되어줄 것이다.

 

전체를 다 살아야 비로소 완성이라면 죽을 때까지 우리는 미생인 것이고, 만족할 만한 일부의 시간만을 완성이라 부른다면 나머지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삶은 그저 삶이다. 덜 이룬 것도 다 이룰 것도 없지 싶다.

 

미래를 향하여 혹은 다른 삶을 향하여 한 번 더 발걸음을 내딛는 것. 그 의지가 바로 삶이 가장 긍정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러하니 모든 생은 멈추지 않는 순간 행복을 향해 다가선다. 수시로 구렁에 빠지겠지만 끝내는 실패할 수 있지만 적어도 목표를 향해 걷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끝나도 다 끝난 것이 아니다.

 

“ 언니, 내년이면 예수가 죽은 나이유.”

 

“어렸을 때 꿈이 뭐였지요? 지금 자신은 그 꿈을 얼마만큼 이루었다고 생각하나요?”

 

새옷 갈아입듯 멋지게 변신에 성공한 앞의 여기자도 멋있지만, 달라진 게 없는데도 늘 새날처럼 살아가는 내 친구도 모자람 없이 멋있다. 그러고 보면 방향 바꿔 달리는 것만 변화는 아니지 싶다. 가던 길 쭉 가도 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는 게 삶이다.(중략) 삶의 소망은 문을 열었다고 해서 이룬 것이 아니라 그 문을 연 이후에 또 한참을 더 가야 하는 법, 어찌 방향을 바꾸는 것만 터닝 포인트일까. 한 단계 깊어지는 것은 변화가 아닌가. 삶이 제자리뛰기라고 투덜거리지 말자. 잘만 뛰면 제자리에서 뛰어도 한 계단 위니까.

 

삶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어떻게 살아야 온전한 완성일까. 어쩌면 나도 이미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생략되며 살아온 삶은 아닐까 그런 슬픔이 드는 것이다.

 

입덧을 하는 동안 나는 잊고 있던 그리움을 먹느라 수시로 마음이 뻑뻑해졌다.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 옆에서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삶과 죽음의 형태를 이 년 넘게 겪으며 나도 모르게 생과 사의 경계에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는지 모른다.

 

죽음 속에서 길을 잃고 죽음 속에서 길을 찾다니. 길고 짧은 생을 혼자서 돌아 나온 기분이었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많이 미워했고, 많이 싸웠다. 돌아가시면 남는 게 후회라지만, 너무 미워해서 후회할 염치도 없을 만큼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랬더니 남는 게 후회가 아니라 두려움이다.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것마다. (중략)내가 던진 미움이 묻어 있어서 그 미움을 마주할 자신이 도저히 없는 것이다. (중략) 어떤 기억은 오감으로 남는다. 맛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중략) 죄 망친 여름반찬을 꼭꼭 씹을 때마다 이도 저도 못 된 미움을, 설익은 후회를, 서걱거리는 미안함을 함께 삼킨다. 내가 던진 미움마저도 온전히 감당 못하는 내 옹졸함이 입속에 씁쓰레 감돈다. 엄마에게 심통 부린 날들처럼 올여름은 그렇게 조금은 씁쓸하게 지나갈 것 같다.

 

죽음을 곁에 두고 죽음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자아와 일상을 지킬 수 있다는 그 의연함이 부럽고 또 부러웠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의료 시스템은 장기 치료가 필요한 중․난치 환자의 돌봄을 전적으로 가족에게 맡기고 있다. 이 경우 막대한 의료비도 문제지만가족이 환자의 간병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의 정서적 억압이 초래하는 문제도 크다. 환자를 돌보는 순간 그들 또한 환자와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고립되고 소외되고 방치된다. 그들을 밖으로 불러내고, 일상을 살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신년운세? 다 필요 없다. 내 마음이 토정비결이다.

 

선생님을 보고 싶다고 말은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것은 선생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추억에 바치는 도취성 그리움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나를 아꼈지만 나는 내 기억을 아끼고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배웠다. 순간의 경험이, 체험이 삶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 지나가는 머무는 자의 고충을, 행복을 절대 알 수 없다는 것. 안다는 말은, 알겠다는 말은 매우 오만학 경솔한 말이라는 것.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내가 버텨온 흔적이 있고, 기쁨이 남은 자리에는 내가 돌아보지 못한 다른 슬픔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말하고 싶어하면서 네가 누구인지 내가 규정하고 싶어하는 이기심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성정체성을 가진 자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 내 얼굴은 내가 책임져야하고, 내 정체성과 존업성을 지키기 위해 내가 스스로 서야 한다는 모범답안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가끔 나보다 타인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강요하고 통제하는 일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이란게 참으로 묘하다. 눈을 뜨면 날마다 새로운 날이지만 실상 삶의 관성은 어제를 포함한 기억 속에 있다. 살아봤던 시간의 습관으로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더듬어 가는 것, 현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과거인 그런 게 삶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의 삶이라는 게 제멋대로 움직이는 동물의 삶 같지만, 실은 한자리에 꽂혀 한자리에서 늙어가는 식물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 수명 다한 식물을 뽑아내다보면 흙 위에서 어떤 꽃을 피웠고 어떻게 시들었든 한결같이 넓고 깊은 흙을 움켜쥐고 있다. 바닥을 치고 딛는 힘이 강할수록 꽃도 열매도 실하다. 사는 게 어려울 때, 마음이 정체될 때, 옴짝달싹할 수 없네. 이것이 내 삶의 바닥이다 싶을 때, 섣불리 솟구치지 않고 그 바닥까지도 기어이 내 것으로 옴켜쥐는 힘,

 

가족은 혈연의 최소 단위라고 말한다. 식구는 함께 둘러 앉아 밥을 먹는 데에서 비롯된 말이라고도 한다. (중략) 혈연의 기원이 되는 남과 여 즉 아버지와 어머니는 근친의 문제로 따져보면 철저한 타인이다. 그런 면에서 가족은 태어나면서부터 얻은 소산이 아니라 살면서 만드는 과정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중략)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지만 아무나 가족이 될 수 없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모든 부모의 사랑을 굳이 재단해서 구분하고 싶지 않다. 어떤 사랑이 옳고 어떤 사랑이 그르든. 어떤 사랑 아래 있든, 결국 저 홀로 살아간다. 혼자 알아서 하라고 버려둔다고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다 챙겨준다고 응석받이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랑이든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은 홀로 나선 길을 바라보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아이와 나눠야 할 건 대화와 토론이지 취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묻는다고 모두 질문은 아닌 것이다.

 

마음은 중앙으로 향하고 욕망은 상단에서 춤을 추다 곤두박질치면 위로는 늘 내가 돌아보지 않던 자리에서 찾아온다. 일상에서 나랑 무관하다고 지나쳤던 사람들에게, 내가 그 자리를 떠날 때 내내 함께였다고 믿는 누구도 건네지 않는, 누구보다 따뜻한 인사를 받게 될 때마다 나는 부끄럽다. 그들을 보지 않았던 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들과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나도 모르게 부린 허세를 들키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동의 후원에 대한) 내 조건은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일단 종교적인 색채가 없어야 했다. 구호를 구실로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를 나는 비열하다고 여겼다. 신의 도움으로 너희가 후원자를 만났다. 라는 식의 전도를 하려면 너희를 이토록 참혹한 전쟁과 기근과 학대에 놓이게 한 신에 대한 변명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반감이 있었다.

 

세상에 제일 무섭고 오만한 사람이 ‘해 봤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딱 그 사람이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경험하지 못한 가난에 대해서 더 겸손해야 했다. 더 살펴야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그랬던 것 같다.

 

‘떼’라는 말이 무척 일방적이고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떼’란 부당한 요구나 고집을 가리키는 말인데, 그 요구와 주장의 부당함은 어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뜻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그 요구가 합리적일 수도 있다. (중략) 여성학에서는 여성들이 지양하고 견제해야 할 삶의 태도 중 하나로 ‘착한여자 콤플렉스’를 들고 있다. 나는 그것이 모든 인간에게 해당된다고 믿는다. 수한 사회가 선한 사회는 아니며 정과 정의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공존할 수도 있고, 대치할 수도 있다. 착한 아이, 착한 여자, 착한 시민은 모두 지배자의 요구이자 지배 조건일 뿐이다. (중략) 그런 점을 생각하면 마음껏 울 수 있는 사회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 사회 이상으로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중략) 마음껏 울 수 있는 사회, 우는 사람이 모두 위로 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용서하거나 화해하려 애쓰지 말자고 쓴다. 세월이 지났으니, 한 해가 끝나가니, 혹은 나이를 먹었으니 하는 이유로 마음이 아물지도 않았는데, 용서하려 애를 써봐야 애쓰는 마음만 다칠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화해도 그렇다. 상대는 아직 마음을 열지 못했는데 내 미안함이나 덜자고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도 폭력이다. 마음이 충분히 아물어, 상처에 앉은 딱지를 건드려도 곪지 않을 때 그리하여 그가 비로소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를 기다리는 게 옳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는 기다림이 지나쳐 영영 용서받을 수도 화해할 수도 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가끔은 선택하거나 판단하는 권한을 갖게 마련이다. 그럴 때 누구보다 오래 망설이고 고민하게 된다 내게 유리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이 얼떤 결과를 야기하는지 조금은 알기 때문이다. 작은 일이건 큰일이건 모두에게 공정할 수는 없겠지만. 혼자에게만 정당한 기준을 갖지 않는 것. 나 자신을 향한 다짐이자 정말 큰 권력을 가진 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학교가 보수적일 거라는 건 나의 편견이었다. 특히 교사들의 의견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 세 그룹 중 가장 파격적이었다. 안전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원하는 어떤 방향도 동의 했다.

 

행복은 되풀이되지 않는데. 불행은 반복되는 습성이 있다. (중략) 출구 없는 모욕과 비참만 남아 있을 때, 정의는 어떤 방식으로 움직여야 하는가. 수시로 생각해보는데, 요즈음 이런 질문마저 바닥에 묶인 어떤 삶들에 대한 무례인 것 같아 차마 묻지 못하겠다.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아픔은 이상한 기제다. 심하면 심할수록 뭘 낳아도 낳는다. 그래서 창작의 고통을 흔히 산고에 비유하는 걸까?

 

절망의 순간은 쉽게 포기로 이어진다. 포기하고 나면 아플 것도 없다. 부끄러울 것도 없다. 배 째라 혹은 냅둬라 정신만 남는다. 나는 그때 어느 방향이든 상간치 않고 전력 질주해서 뛰기만 했다. 시간아 어서 가라. 세월아 얼른 늙자꾸나 하는 마음만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자 갑자기 뛰던 발걸음이 멈칫거려졌다.

 

희망이 외려 아픈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꿈을 꾸는 자의 몫이 아니라 컨트롤 하는 자의 몫이라는 생각을 한다. 성장에도 통이 있고, 씨앗도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아열을 견져야 한다. 마라토너들은 달리다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사점(死點)과 만나게 된다고 한다.(군대시절 10km 무장구보를 할 때 나는 2km 지점이 사점이었던 것 같다.) 그 사점을 통과하고 나면 다음은 비교적 쉽게 달리게 된단다. 아프고 괴롭고 불안하고 막막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도망치지 마라. 원래 희망은 아프다. 그래서 꽃이 피는 것이다.

 

 

 

한지혜 작가의 책

 

소설책

안녕, 레나(2004)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2010)

물 그림 엄마(2020)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