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고향집 눌할망』, 강서, 수필과 비평사, 2020

그루 터기 2021. 12. 15. 07:09

고향집 눌할망, 강서, 수필과 비평사, 2020

 

제목부터 제주에 관한 이야기라 눈이 갔다. 제주의 토속신앙과 미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제주의 어린 시절을 눈앞에 그릴 수 있어 행복하셨으리라. 제주 방언으로 쓴 것들을 읽을 때는 답답하고 조바심이 날 지경이다. 알 수 있는 단어가 몇 개뿐이다. 이미 그럴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글을 읽는 흐름이 자꾸만 끊기는 것도 덤으로 준 숙제였다. 나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부모님 생각이 난다.

 

 

작가 소개

 

강서

수필과 비평으로 2012년 등단, 수필과 비평작가회의 회원, 제주수필과 비평작가회 회원, 동인회원, 제주문인협회 회원, 제주수필문학회 회원, 제주일보 사노라면필진,

 

 

 

독서 메모

 

지치고 힘든 시간 속에 인간이 주는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못할 때, 잠시 눈을 감고 고향의 바닷가 오목한 자리에 지친 내 영혼을 부려 놓는다. 그러고 나서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달콤한 추억을 한 잎 메어 문다.

 

불안은 마음이 미래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이어진다. 기운이 위로 뜨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집중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거나 서성거리게 된다. 깊이 자지 못하고 자고 나서도 피로가 풀리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반면 우울은 마음이 과거에 있다. 그렇게 되면 후회와 수치심 같은 감정을 느낀다. 우울의 기운은 아래로 가라앉는다. 활도잉 저절로 줄고 기력도 줄어들게 된다. 존재가 현재에 있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에 있게 되면 현재를 경험하지 못하니 자주 헛헛하고 공허하다. 어떤 일을 하면서도 집중하지 못하고 다음 일을 생각하며 걱정한다.

 

그런 행복도 잠시, 임신했다면 좋아하던 딸 내외에게도 죽음의 그림자는 덮쳐 왔네. “어른을 원해요? 아이를 원해요?”하며 산부인과 의사가 복도에 나와 묻던 비정한 순간을 자네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아기를 낳던 날, 딸은 죽었네. 아들이 죽었던 그 병실에서 말이야. 인생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거워 두 손으로 다 들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지더군.

 

자네가 운명과 나눈 것을 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구나 걸어가는 길이지만 가시밭길의 연속인 사람이 있고, 곧고 평찬한 길을 걷는 사람도 있지. 그렇다면 누가 운명과 우정을 잘 쌓은 사람이란 말인가.

 

나무를 바라본다. 사철 푸른 잎을 가진 우람한 녹나무가 되고 싶다. 그러면 고즈넉한 저녁노을을 한없이 바라보리라. 아이들의 웃는 소리가 들리면 함께 소리 내어 웃을 것이다.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 있어 깊은 생각에 잠기고 싶다면 기꺼이 자리를 내주리라. 가슴을 에는 아픔을 가진 이가 기대어 오면 그의 잒 마른 얼굴을 쓰다듬어 주리라. 광채로 번득이는 세상에 그늘이 되어 주고 싶다.

 

정초가 되면 가족의 토정비결을 봐 오시던 어머니와 가끔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그 토정비결이라는 게 직장을 다니는 나의 밤길 조심하라거나 올해 도둑이 들 운세라는 등 쉰내 나는 얘기들이었다. 결국 액막이를 위해 세 번의 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품위를 지키며 늙어가는 것은 정녕 어려운 것일까. 늙을수록 지혜로워지고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은 나 같은 범인에겐 영영 요원한 일일까. (중략) 세월을 죽이며 사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채우며 살다 보면 인생 마지막 순간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먼 길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이 넗은 빌레가 멜(멸치)로 뒤덮였다. 사람들은 바닷물로 즉석에서 멸치를 삶아 말렸다. 벙겅망에서 해녀들은 지들임을 하며 용왕맞이를 했다. 저기 멀리서 싸락눈을 맞으며 서 있던 무당이 보이는 듯하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가. 생전의 사유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걸까. 담배 한 개비라도 아끼며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한 겹담을 쌓으며 희망에 찼을 젊을 때의 할아버지의 초상은 영영 없어져 버리는 것인가. ‘소녀라는 단어와 어진 현이라는 글자로 기억되는 할아버지는 제삿날 하루 바람으로 왔다 가는지도 모르겠다.

 

감나무는 가지에 달을 달아매어 놓기를 좋아했다. 여름날 저녁은 낮보다 서늘해진 정원을 거닐기에 좋다. 감나무가 초승달을 안고 있는 날은 그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조물주가 모든 사람을 보살피기 힘들어 엄마를 보냈다는 말이 생각났다. 해님이 낮을 비춰주면 밤엔 달님을 보내어 사람들을 보살피려 했을까.

 

대문이 없는 우리 집은 동네 사랑방이었다. 항상 퍼 주는 어머니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었다. 놀러 오시는 분들이 자주 음식을 들고 왔고, 그 대가로 다른 것을 들려 보냈다. 겨울에는 놀러 오신 분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기 때문에 메밀국수나 호박범벅 만드는 일을 자주 도와드렸다. 일전에 큰마음 먹고 비싼 음식을 어머니께 갖다 드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을 동네 할머니들에게 다 나눠 줘 버린 게 아닌가. 나도 잘 먹어보지 못하는 귀한 음식인데 그렇게 함부로 줘 버리셨나며 화를 냈다. 그때 어머니는 그렇게 귀한 거라서 나눠 준 거라고, 그렇게 해서라도 천당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순간, 못난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과연 천당에 간다면 어떤 사람이 갈까?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있다. 우산살이 부러져도 뜨거운 햇볕을 막아줄 수 있다. 너무 체면을 따지고 남의 시선에 얽매여 살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 아니다. 선량하게, 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설령 선을 좀 넘으면 어떤가.

 

<이타미 준의 바다>를 관람했다. 유동룡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축가의 생애와 건축 철학을 조명한 작품이다. 유동룡은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끝까지 귀하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지켰다. 특히 서울대 도서관을 허물 때 나온 벽돌을 재활용하는 따뜻한 건축은 그의 철학을 대변한다. 벽돌이 지닌 기억과 시간의 맛을 되새김질 하는 Bar ‘주주는 서울에서 일본까지 배송되어 온 자재들로 만들어진 곳이다. 4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탄탄하다는 일본인 사장의 말에 자랑스러움과 자부심이 넘쳐난다.

 

비와 눈을 막아주고 바람을 견디며 사람을 안온하게 감싸주는 집은 그 자체로도 예술작품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건축물이 세워질 장소의 고유한 풍토와 정서를 살려 사람엑 아우러지는 작품을 추구한 예술가 유동룡. 훌륭한 건축은 압축된 음악이며 빛과 그늘의 조화라는 말이 있다. 한 인간의 삶을 경외감 어린 시선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되뇌어 본다. 이타미 준의 건축이 제주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눌할망이라는 것은요, 바깥의 칠성이라는 말이죠. 뱀 신입니다. () 눌을 관장하는 밧칠성 신을 모신게 눌할망이에요. 제주는 할머니 신이 많습니다. 안칠성도 있는데 안 할머니라고 합니다. 광을 지켜주는 신이죠.

 

7분이 넘는 이 곳은 막 시작하는 사회초년생인 내개 팡파르같이 다가왔다. 듣고 있어도 듣고 싶을 정도로 갈증이 났다. 특히 바이올린의 활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튕겨 연주하는 부분이 백미다. 연주가 시작 된지 채 이 분도 안 되어 트앙~’하며 현을 끊는 소리는 감동과 공허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마치 충만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를 도둑맞은 듯 텅 빈 느낌이다.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세상은 끊임없이 파도를 메다꽂았다. 때로는 깊은 바다로 떠밀어 버리기도 했다. 내 삶은 내동댕이쳐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나는 지금 치고이너바이젠의 손으로 튕기는 두 번째 부분에 와 있는 것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 애절하게 두 손을 아래도 내리는가 하면. 빠르게 연주되는 비바체의 템포에 따라 위로 튕겨 오르기도 했다. 거친 바람에 하늘로 솟구쳤다가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춤을 추는 집시 여인은 바로 나였다.

 

친정에서 산후 조리를 했다. 아이 돌보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여러 가지로 힘들고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다. 급기야 젖을 먹는 아이에게 눈물을 떨구고야 말았는데 이를 본 어머니께서 불같이 노하셨다. “뭐가 문제고, 집이 없냐. 양식이 없냐. 젖먹이 위에 눈물 떨구는 집에 잘될 것이 뭣고.” “” “걱정말, 누군들 배워서 애기 키우느냐. 사람이란 배워가며 사는 것이다. 시부모도 있고 남편도 있는데 뭐가 걱정고.” 호통을 치다가 이내 달래 주셨다.

 

입은 말로 가득 차 있어 터질 듯해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눈은 세상을 보고 있어도 세상의모든 것을 다 보지는 못한다고 했다.

 

궤속 깊이 간수하던 당신의 수의를 싼 보자기가 풀리는 날이 눈앞에 오다니. 수의가 그렇게 곱고 아름다운 비단을 만들어진 옷인 줄 알았으면 미리 한 번 보기라도 할 것을. 오래전부터 손수 준비해 두셨던 어머니의수의는 속옷부터 겉옷까지 가짓수가 많았다. 이런 좋은 옷을 생전에 입었어야 했는데 인생 마지막 순간에 딱 한 번 입기에는 너무나 곱고 아름다운 옷이었다.

돗은 돼지를 일컫는 말이다. 동네 어른들은 가정의 번영과 평안을 위해 돼지를 잡아 무당을 불러 제를 지냈다. 돼지는 열두 부위로 나누어 쟁반에 올린다. 이때 돌레 떡도 함께 제상에 오른다. 앞뒤가 없는 이 떡은 신을 달래는 의미로 둥글납작하게 만든다. (......)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옛날 풍속이 귀하게 느껴진다. 미신행위에 늘 반감을 품던 내게 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씀이 있다. "그렇게 정성 들이니까, 요 만큼이라도 사는 거여."

 

어린 마음에도 노할까 두려워 소리 내어 말은 못 하고 속으로 모든 원망을 눌할망에게 돌렸다. 인간의 생사여탈을 쥐고 있으면 항아리를 더 넘어지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은가. 내가 힘을 주면 받칠 때 같이 밀어내 세웠어야 했다. 그까짓 것도 못하면서 꼬박꼬박 쌀밥에 나물을 받아먹는가 말이다. 그것도 비싼 무당 불러다 요령 소리를 내며 제를 지내주는데 된장 항아리 하나 세워 주지 못하다니, 에잇! (......) "설운 애기야, 슬퍼 마라. 우주의 모든 피조물은 흥망성쇠가 있나니, 꽃은 피고 지고 젊은이는 늙어 지하로 내려간다. 이 모두가 하나의 순리가 아니겠느냐."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낯선 바람이 불어왔다. 눌할망 옆 깻잎 무더기 사이로 된장 범벅이 된 어린 소녀가 얼핏 보이는 것 같았다.

 

14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는 5~6년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의학이 발달한 현대는 예방약을 발견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병보다 굶어 죽는 경우가 많았다는 기록이다.

 

노력없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나 또한 지혜가 모자란 사람이다. 그러니 세상을 성공적으로 지혜롭게 살아 낸 이들을 따라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들이 먼저 밟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길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만나고 헤어지는 게 예전 같지 않은 세상에 백년해로라는 단어는 구시대 사람들의 것으로 박제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비혼주의자들이 점점 늘어 가는 요즘 같은 세상에 결혼에 대한 의문이 든다. 결혼은 늘 옳은 것인가?

 

뱀은 제주에서 풍요와 다산, 부를 일으키는 신으로 여겨져 왔다. 칠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집을 비롯한 많은 집에서는 곡식을 저장하는 광에 안칠성을 모셨다. 제사나 명절날 네모난 대나무 바구니인 차롱착에 음식을 올렸다. 미개하여 미신을 섬긴다는 학교에서의 가르침을 맹신한 내게 안칠성에 제물 올리는 것을 더는 하지 못하게 어머니는 눈을 꿈쩍이며 말리셨다. 그게 뱀을 위하는 의식인 것을 알았다면 나는 더 펄쩍 뛰었을 것이다.

 

뱀은 많이 사라졌다. 사라진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고등이나 게, 낙지도 예전 같지 않다. 낙지는 보통 밤에 잡는다. 무섭지도 않았나 보다. 어린 날에 손전등을 들고 혼자 바다로 갔다.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불빛을 비추었는데 낙지가 너무 많아서 마치 뱀들이 우글거리는 것 같았다. (......) 사라진 것들에 마음이 쓰인다. 뱀이 많았던 터전에 돌무더기 속에서라도 뱀들이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들이 거기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뿌리도 뽑히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무릇 생명이란 제 자리에서 숨 쉬고 살아야 안전한 게 아닐까.

 

눈이 보이지 않는 그네는 남의 집이나 밭의 크기도 자신의 것과 비교 할 일이 없다. 남과 비교하며 불행은 싹 트는 것이다. 그네에겐 오직 남편의 사람만이 전부였다. 부엌 딸린 방 하나짜리 집이 좋다고 전혀 느끼지 못했는지 모른다. 최소한의 동선이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

 

오래된 바위를 닮고 싶다. 어떤 바위는 자신의 몸에 이끼가 자라는 것 허용한다. 맨 몸이던 바위가 오히려 그것 덕분에 귀하게 변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 바위라면 그 옆에 작은 소나무 몇 그루 자라는 걸 허용하겠다. 거센 바람이 불면 소나무는 내게 기대어 덜 흔들리게 되겠지. 많은 낮과 밤이 지나면 오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우리 동네는 바닷가에 단물 나오는 곳이 많았다. 물이 얼마나 좋았으면 청수동이라 불렀을까. 청수동의 담수 중에서도 두 손을 넣어보기조차 미안한 '청굴물'은 단연 으뜸이다.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청했던 청굴물은 자손만대까지 솟았으면 좋겠다. '저승 가면 이승에서 사용한 물을 다 마셔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한 바가지의 물도 아껴 쓰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물에서 물을 길을 때면 무거운 두레박의 물을 흘리지 않고 양동이에 부으려고 얼마나 애썼던가. 자연을 겸허히 대하던 한마디 어머니 말씀이 그립다. "모로 누우라, 모로 누우라."

 

 

삼 밭의 쑥이라는 말이 있다. 옆으로 퍼져 자라는 쑥이 꼿꼿하게 위로 자라는 삼밭에 들면 저절로 반듯하게 자란다. 거꾸로 쑥밭에 떨어진 삼 씨는 제 본성을 잊어버리고 쑥처러 땅바닥을 기며 자라지. 어떤 사람은 평생 쑥으로 사는 이도 있단다. 하지만 자신이 삼인 것을 깨달으면 인생이 달라지겠지. 흰 모래와 검은 모래가 섞이면 그것은 함께 검어진다. 네가 쑥일지라도 삼 같은 친구들과 어울리면 너는 반듯한 사람이 된다. 명심하렴.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어떤 친구들과 사귀고 있는지. 그게 바로 5년 후, 너의 모습을 미리 알 수 있는 지표란다.

 

나도 모르게 눌할망에게 눈길이 갔다. 조왕제를 지낼 때마다 읊던 무당의 설운 얘기로 시작되는 본풀이가 들려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