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2』, 박경철, 리더스북, 2011
1권을 읽고 바로 2권을 빌려왔다. 영화에서 속편이 본편보다 감동이 덜한 것처럼 이 책도 1권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중간 중간 콧등이 시큰함을 어쩌지 못했다. 이 땅의 많은 의사님들께 고마움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저자 소개
박경철
외과전문의이자 유명작가이며 경제전문가. 대학 시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를 읽고 깊은 충격을 받아, 카잔차키스가 평생의 영웅으로 삼았던 니체, 단테, 베르그송을 탐독했으며, 이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의 기초를 다졌다. 이후 대학에서 전공한 의학와 무관한 경제학을 독학했고, 패러다임의 전환기마다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을 발표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그로 인해 증권업계 인사가 아님에도 한국거래소와 증권사 사장단이 수여하는 제1회 증권선물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의사로서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발표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드라마 [뉴하트]의 소재가 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후 집필한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은 출간과 동시에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즈음 연간 200~300회씩 행해진 그의 강연과 칼럼은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으면서 후일 ‘청춘콘서트’로 이어졌고,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청춘콘서트’는 2012년 이후 우리 사회에 중요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기도 했다. 그외 공익단체 및 기업의 이사회에 참여해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그리스 문명 기행을 하면서 문명 탐험서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출간하여 르네상스적 인간으로서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독서 메모
훌훌 털어버리고 가기엔 무거운 발걸음이었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암 말 못하고 홀연히 떠나온 길. 그래서 갈 길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도는 영혼은 아슬하게 매달려 있어야 하는 고드름처럼 애처롭다.
인턴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배치받은 응급실 근무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씩 들어오는 DOA(사망 상태로 병원에 도착)와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에 올라가보지도 못하고 응급실 침대 위에서 숨을 거두는 무수한 죽음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그리고 연인들의 갑작스런 이별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정신적 충격은 내게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의 차가운 눈은 시퍼런 칼날이 되어 제 몸을 찌릅니다. 많이 아팠습니다. 너무 아파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보다 더 아파하시는 어머니를 봤습니다. 그때부터 원망하는 마음을 버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왜 그랬냐고? 나도 몰라 왜 연애하다보면 가끔 이런 질문하잖아. 왜 나를 사랑하느냐는. 사실 그 질문에 답이 어디 있어? 그 답을 알면 사랑하는 게 아니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란 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당위가 되거든. 사랑은 그저 현상이지 당위가 아니잖아.”
그녀와의 아름다운 추억이 서린 그 강에 이젠 그리움으로 남을 못난 내 친구를 두고 왔다. 눈이 불덩이처럼 뜨거웠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나의 벗이여, 이제는 편히 잠드시게나.
한 아이의 가냘픈 몸과 해맑은 영혼은 어른들의 이기심에 의해 흩어져 하늘 높이 떠올랐다. 봄 자락을 타고 선 나무들은 작은 생명을 틔우느라 여념이 없는데 슬픈 운명을 타고난 아이는 봄을 잃어버린 양 더 웅크려든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입을 빌려“네가 지은 크고 작은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바로 태어난 죄다.”라고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기독교식으로 보면 어차피 인간은 모두 죄를 안고 태어난 셈이고, 불교식으로 보아도 현생은 전생에서 지은 업으로 고스란히 훈습하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죽어서 천당에 갈라꼬 애들을 많이 쓰지예. 하지만 살아서 천당을 만들지 못하면 죽어서 천당은 없답니다. 그저 오늘이, 여기가 천당이거니 하고 살아야 안 되겠능교.
창조자가 아닌 사람이 사체이식도 아닌 생체이식을 감행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그 난감한 철학적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나도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이 부분에 대한 결정은 정말 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아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지? 너는 갔지만 너의 장기는 다름 사람의 몸속에서 오랫동안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이 판단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를 도너로 삼기 전에, 우리느 ㄴ좀더 가능성 있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 가능성이 적은 사람의 생명을 양보한다는 명제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하늘의 뜻……, 내가 병원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도저히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결과물에 대해 대개 ‘하늘의 뜻’이라는 체념적 의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 하늘의 뜻으로 장기공여를 하거나, 하늘의 뜻으로 ‘좋은 사람은 하늘에서 쓰려고 일찍 하늘로 데려간다.’는 생각들이야 말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그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녀석은 생체이식을 위한 장기공여자가 되었다.
삶과 죽음. 내가 당사자가 되기 전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지할 수 있을까? 혹은 얼마나 초연할 수 있을까? 삶에 대해 얼마나 충실할 수 있을까? 그의 극적인 삶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렵고도 무거운 질문을 던지면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그녀는 그렇게 어이없이 죽음을 맞았다. 그녀는 낮에 그날 저녁을 사겠다는 내 제안을 복지원 당직을 서는 날이라는 이유로 정중하게 거절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일과가 끝난 후 야간에 복지원에서 버려진 이들을 돌보기 위해 퇴근한 다음,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순간 갑자기 자신을 덮친 뺑소니 차량을 피하지 못하고 그렇게 허무하게 이 세상과 이별했다. 김 간호사의 죽음은 그녀의 미소를 기억하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남겼고, 물론 나도 그 중의 한사람이었다.
대개 성직에 계시는 분들은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운데, 특히 비구니스님이나 수녀님은 더욱 그렇다. 마음이 표정을 만들고 표정이 마음을 만든다고 했던가. 무심일체를 유지하며 보리심을 품은 스님이나 큰 사랑을 품에 안은 수녀님 얼굴에는 세파에 찌든 때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을 감싸 안을 듯한 그 평온함과 넉넉함이 그분들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하는 근원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을 살라 출가한 딸의 무고를 빌어주시던 어머니. 따뜻한 밥 한 번 지어드리지 못하는 세속을 떠난 몸이기에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찬 서리를 맞은 양 시립니다. 떠나시는 길. 부디 편히 가실 수 있도록 부처님께 비나이다.
그래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그녀가 끌려가던 그때, 목격한 사람 중에 단 명이라도 빨리 경찰에 연락을 했더라면 그녀와 아이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만약 그랬다면 지금 점퍼를 뒤집어쓰고 철면피한 소리를 내뱉는 저 짐승들의 운명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 분노를 다스리기가 힘겨워진다.
다운증후군인 사람들을 조금만 가까이서 이해하고 지켜보면, 이 사람들이 우리가 평소에 갖지 못한 것들, 즉 웃음, 배려, 사랑, 헌신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에 놀라게 된다. 심지어 중증장애인 복지시설에서 다른 장애인들을 돌보게 하면 정성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보살피는데, 정말 그것은 보지 않은 사람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지극하다.
처음 세상에 등장한 아이의 얼굴을 대면하는 순간 그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면서 정상인 것을 확인하게 될 때, 그때의 안도와 기쁨 그리고 밀려드는 감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는 그 크기만큼, 아니 그보다 백 배, 천 배만큼 절망하기도 한다. 천 명의 한 명, 만 명의 한 명, 아니 십만 명의 한 명에 속하는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태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출생순간부터 부모의 축복보다 충격과 당혹감을 대하며 이 땅에 첫발을 내디딘다.
죽음에 대해 누구보다 냉정한 것이 의사들이다. 의사가 감정에 휘둘리면 환자를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의사란 직업이 두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의사란 직업이 죽도록 싫을 때가 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그 시절.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함께 웃고 울어줄 이들이.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소중한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살아생전에 우리에게 주시던 그 노란 닭알들가 오렌지 주스, 사과와 배 그리고 캐러멜 캔디가 가슴 저미도록 그리워진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자기 속으로 낳은 두 살배기 아들 하나가 유일한 친구였는지 모른다. 자신의 고단한 삶을 아직 베트남말도 한국말도 못하는 아이에게서 위로받으면서 동병상련이라는 감상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아들 사랑은 정말 극진했다. 어느 부모야 안 그러랴마는 그녀는 정도가 지나쳤다. 아이가 감기가 걸리건, 배탈이 나건, 아이에게 조금만 이상이 생기면 한국식 포대기로 아이를 둘둘 감아 업고 남편을 보채서 득달같이 병원으로 달려왔다.
이 아이는 이 땅에서 유일한 그녀의 피붙이였다. 그런 아이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지나가는 의사를 붙들고 상태를 물어보지도, 용기를 내서 중환자실에 들어와 사랑하는 아이의 손을 한번 잡아볼 수도 없는 이방인인 그녀는 그 순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절망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를 먼저 보낸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을 목격했고, 그들의 아픔을 수없이 가까이서 느껴보았지만 근처럼 처절하게 아파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그녀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만큼, 또 이역만리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은 만큼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환자가 죽음을 예감하면, 그러지 말자고 몇 번을 다잡아도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매단 것처럼 한없이 가라앉는다. 삶과 죽음은 의사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아까운 생명 하나 떨어질 때마다 제 몸 깎는 것처럼 아프다.
그러고 보면 가혹하게 아랫사람들을 다루었던 것도 처음부터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의사를 만들기 위한 혹독한 가르침이었을지 모른다. 비록 그 방법이 지나칠 만큼 엄격하진 했어도 그분 밑에서 배워 나간 의사들은 하나같이 자기 분야에서 맹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었던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사실 닭똥 냄새는 자꾸 맡다보면 약간 구수한 데가 있다. 우리가 어릴 때 많이 사용했던 마분지는 말똥을 가공해서 만든 종이고, 인도나 동남아에서는 코끼리 똥으로 조이를 만들어 사용하며, 네팔이나 중국, 인도에서는 소똥을 말려서 연료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알고 보면 초식동물의 배설물은 사람에게 유용한 섬유질 덩어리인 것이다.
세상의 어느 나라든 국가로부터 의사면허를 교부받은 의사는 지위고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한결같이 똑같은 마음으로 의술을 베풀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한 사람으로서 실천해야하는 기본적인 자세이다.
하나님께 자신의 일생을 봉헌하길 결심하고 수도원에 들어갈 만큼 ‘큰 사랑’을 아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서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겨야 했다면 그 ‘사랑’이 어찌 만만한 사랑이었겠는가. 나는 시안이 아빠와 엄마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우리 성당에 다니는 모든 분들은 다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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