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직장은 다녀야지』, 임해순, 키효북스, 2021
중학교 동창 중에서 행정실장을 지내고 정년퇴직을 한 친구가 있다. 어찌보면 선생님보다 더 선생님 같은(이 친구가 제가 보기엔 참 선생님의 표상 같은 친구라 이렇게 표현했으니 다른 선생님들 오해하시지 마시기 바립니다.) 친구다. 요즈음 단톡방에서 20년 이상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만보 걷기 운동 인증샷으로 올리는 친구다. 본격적으로 인증샷을 올리기 시작한 이후 몇 년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인증샷을 올렸던 친구의 성실성이 작가님과 오버렙되어 행정실장의 자리가 원래 그런 분들만 계시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책 속에 쓰여진 행정실장이 하는 일들을 읽어보면서 많은 시간을 힘들게 보냈을 친구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한 번도 직장생활에서의 힘든 일을 친구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던 친구의 깊은 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
이 책은 에필로그에 적은 것처럼 화려한 미사여구보다는 교육철학이 녹아 있는 책이다. 말 그대로 25년차 직장인의 기록으로, 열심히 살아온 우리의 이웃의 이야기다.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정리하여 풀어나갔다. 어제 읽은 책이 몇 번을 다시 읽어야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면, 이 책이야 말로 부담 없이 술술 읽히는 책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젠 마무리 잘 하시고, 마지막 꿈을 펼치시길 기원합니다.
저자 소개
임해순
25년 차 직장인. 고등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합니다. 책을 워낙 좋아해서, 책 사는데 주머니 사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책 덕후 입니다. 인터넷 교보문고 플래티넘 회원이며, 요즘에는 독립서점 나들이를 좋아합니다. 뒤늦게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어 날마다 읽고 쓰는 재미에 푹 빠져있습니다.
강희준 외, 〈이제라도 책을 읽어볼까 합니다〉, 한량 학교 문집, 2020, 공저
정세정 외, 〈글로 모인 사이 6〉, 스테르담 공동매거진, 부크크, 2021, 공저
인스타그램 @hass_lein
블로그 blog.naver.com/hasslein09(컨추리우먼)
독서 메모
난 그저 직원일 뿐. 정해진 일은 있지만 정해지지 않은 일도 해야 하는 직원. 애매한 경계에 있는 일을 기왕이면 행정실에서 해 주기를 바라는 눈빛을 마주하는 직원. 그건 우리 일이 아니라고 하면 다른 학교와 비교하고, 강요의 눈빛을 보내는 눈동자를 그저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 선량한 행정실 직원인 척하는 나. 나로 인해 더 슬퍼하는 직원들의 원망 섞인 눈빛을 외면해야 하는 나는 나약한 이방인입니다.
2년 동안 버스를 타면서 <토지 21권>, <태백산맥 10권>을 비롯해서 백여 권이 넘는 책을 읽었어요. 일고 쓰는 생활을 하면서 저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까운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스케줄 관리에 신경을 썼고, 자투리 시간에는 무조건 읽거나 썼어요. 생각나는 대로 핸드폰에 메모했고 좋은 경치는 사진을 찍었죠. 사진은 생생한 글감이자 기억 수단이 되었어요.
통근 버스를 타고 다닌 시간은 제게 잊고 있었던 문학소녀의 감성을 일깨워 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새 책을 사면 맨 첫 장 안쪽에 연필로 책을 산 날짜를 쓰고 제 사인을 해요. 그 위에는 비닐 포스트잇을 열 개정도 붙이고, 책 중간쯤에 종이 포스트잇을 붙입니다. 이제 책 읽을 준비가 다 되었어요. 책장을 넘기면서 인상 깊은 구절에는 비닐 포스트잇을 붙여요. 책을 다 읽고 나면 독서 노트에 남길 문장을 기록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독서 노트에 남길 문장을 기록합니다. 가끔 삽화도 그려 봅니다. 색연필로 쓱쓱 느낌을 표현해요. 그 다음 워드 파일로 입력해서 저장하고 마지막으로 블로그에 올립니다. (저와 비슷한 부분이 많으시네요. 저도 새 책을 사면 구입한 날짜와 사인을 합니다. 이건 정말 오래된 버릇입니다. 아마 20~30년 전에 구입한 책에도 그렇데 되어 있는 걸 보면 그 때부터 그렇게 했나 봅니다. 요즈음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오기 때문에 책에는 낙서를 할 수 없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바로 노트북에 옮겨 적습니다. 이건 내가 책을 읽는 거의 대부분이 책상에 앉아 읽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책갈피 대신에 포스트잇을 사용하는 것은 저와 똑 같습니다. 다 정리된 독서노트를 블로그에 올리는 것도 같구요.)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종이에 적으면 저의 일인데도 남의 일인 듯 바라보게 된다고요. 그래서 마음 정리가 되는 거라고 합니다.
저의 소원은 금요일 퇴근길에 학교를 잘 접어서 주머니 속에 넣었다가 주말이 지난 뒤 월요일에 출근해서 다시 학교를 안전하게 펼치는 것입니다. 주말에 무슨 일이 생길지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죠. 학교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제 마음은 일 년 365일 변함이 없네요.
2년 전 치열했던 그 장소에 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합격만 하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하느님 부처님께 맹세했던 그 시절을 잊을 수가 없네요. 지난 시간이 뭔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좀 더 나를 찾고 여유를 가지는 시간으로 흘러가기를 희망합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머물렀고 앞으로 머물러야 할 공간들은 과거의 저와 미래의 저를 연결해주는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가 되기를 기원하면서요.
모과나무 아래서 상념에 젖어 봅니다. 계절은 12월 인데 그동안 잘 살아왔는지 물어보면 모과나무는 걱정하지 말라며 말없이 저를 바라보네요.
입사 초기에 ‘동기사랑은 나라사랑’이라고 외치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어요. 당시 동기들은 자주 만났고 업무 협조도 잘했지요. 경혼식이나 돌잔치에도 따라 다니면 우정을 과시했던 동기들이 세월이 가면서 제각기 승진하고 뿔뿔이 흩어졌네요.
교장선생님은 학교 시설관리 전반과 학부모나 교직원들과 원만한 관계 맺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고, 그 때 저는 배웠습니다. 가르치는 것만이 교육은 아니라는 걸 말이죠. 아이들이 좀 더 쾌적하고 안전한 교육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은 어쩌면 직접적인 교육보다 더 중요한 일이지요.
‘관’이란 관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요. ‘사무관(5급)’은 사무를 볼 때 관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서기관(4급)’은 사무관보다 더 고도의 철학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을 뜻하겠지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겁니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힘이고, 충분히 그 시간을 인정받아야 마땅합니다. 떨어지려고 했던 저의 자존감이 오기를 들고일어났어요. 저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직장이라는 데가 다 그렇잖아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상하 구조가 명확하고 직급이 있는 직장에서 개인의 재량은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사전 보고와 결재를 득한 뒤에야 추진할 수 있어요. 이런 절차를 어기면 사고가 나고 그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지요. 어찌 보면 조직은 무서운 곳입니다.
한 번 일등이 영원한 일 등이 아니듯이, 한 번 뒤처짐이 영원한 뒤처짐이 아니니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다.
3년 전 가을, 서점에서 발견한 책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를 오늘 다시 읽으며 마음에 위안을 얻고 있어요. 그때는 승진 공부하느라 고생한 저에게 위로가 된 책이었는데, 지금은 앞으로 다가올 무거운 돌멩이를 잘 버텨내라고, 저의 무게를 잃지 말고 떳떳하게 살아남으라고 응원을 보내주고 있네요. 저는 다시 힘을 내서 버텨보기로 합니다.
아무래도 저에게는 오지랖 넓은 엄마의 피가 흐르는 거 같아요. 주변에서 누가 힘들다고 하면 가만히 있지를 못하니 말이죠. 어떤 선배는 저한테 무엇이든 말만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며 칭찬을 해 줍니다.
이듬해에는 작가님이 운영하는 <한량 학교>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소설 읽기, 벽돌 책 읽기, 서평 쓰기반에 가입하여 닥치는 대로 읽고 쓰고 필사했습니다. (…) 글을 쓰다보면 자꾸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조금씩 뒤돌아보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저를 만나게 되지요.
술이 있어 힘든 직장생활을 이겨냈고, 술이 있어 껄끄러운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했으며, 술이 있어 동료들과 우정을 돈독히 할 수 있었어요. 술은 관계의 여신입니다. 좋은 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주는 술은 돈독한 메신저입니다.
차는 새 차가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말이네요. 함께한 세월만큼 우정도 쌓였으니 이보다 더 소중한 인연이 있을까요? 힘든 일이 있을 때 함께 위로해주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함께 기뻐해 주는 끈끈한 만남이 있기에 우리는 내일도 힘을 내서 출근합니다.
작년 봄부터 새롭게 시작한 취미생활이 있어요. 바로 <하루 10분 그리기>. 다 큰 성인을 지도해 주는 슈가드로잉 선생님은 디자인 전공자답게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그리 수업을 리드해 줍니다.
직장인은 세월이 가면 누구든지 퇴직을 합니다. 100세 시대에 60세 정년을 맞이한다 해도 남은 세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준비를 해야해요.
퇴직 이후를 위해 지금 제가 하는 것은 글쓰기와 책 읽기입니다. 유튜버의 일종인 북 튜버가 되어 좋은 책을 소개하거나 읽어주고 싶기도 하고 오디오 클립에 책 읽어주는 코너를 운영하고 싶기도 해요. 아니면 남들 앞에서 마이크 잡고 뭔가를 가르치거나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을 듯 하고요. 주제를 정해서 강의를 해주는 강사가 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연을 하면 좋겠어요. 여하튼 끊임없이 탐색하다 보면 뭔가 저에게 맞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제 책에는 유명 인사의 말도 뻔지르르한 무엇도 없습니다. 제 생각과 저의 교육철학이 녹아있을 뿐. 그냥 제가 살아온 25년 차 직장인의 기록입니다. 돌이켜보니 제 삶은 커다란 사건도, 이슈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잘 넘겨왔고 무난한 삶의 연속이었어요. 다만 저를 감싼 위로는 책입니다. 책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만났고 책 속에서 벅찬 환희와 포부를 배웠습니다. 책은 삶이요, 사랑이요, 인생입니다.
오늘 하루 순차적으로 읽은 책 두 권의 책 표지가 너무 비슷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혹시 같이 기획한 책’일까? 하는 의문도 잠시 출판사도 다르네요. 그런데 책 표지 색상과 디자인한 초승달까지 너무 비슷해서 두 번 세 번 다시 봅니다.
책 내용은 정말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다르지만요.. 청구 기호도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는 818, 하나는 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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