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편이 되어 줄게(할아버지가 엄마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 한기호, 창비, 2021
저자 소개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출판 평론가라는 직함과 직업이 말해 주듯 인생의 대부분을 책과 함께 살아왔다. 2019년 손자가 태어난 후로는 책보다 손자 사진을 보기에 바쁜 평범한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책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기획회의』와 『학교도서관저널』을 발간하고 있다. 쓴 책으로 『책으로 만나는 21세기』, 『나는 어머니와 산다』 등이 있다.
독서 메모
할아버지는 많은 스승에게서 인생의 큰 교훈을 얻었지만 네가 살아갈 시대에도 그런 스승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나 어려움이 닥치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해보기 바란다. 혼자 해결할 수 없으면 '곤이'나 '도라' 같은 친구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좋겠지.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힘겹게 살아남은 이들은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 확률이 높단다. 그런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가혹한 선택을 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읽어보렴. 어떤 상황에서도 질문을 통해 해결점을 찾는 일이야말로 네가 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란다.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는 이 무기를 꼭 갖추기를 바란다. 할아버지도 그때까지 살아남아서 무기를 갖춘 당당한 네 모습을 보고 싶구나.
할아버지는 네가 숫자만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 키, 몸무게, 나이, 성적, 재산 등 숫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는 안목부터 기르도록 해라.
책의 깊이, 소중한 사람과 보낸 시간의 깊이, 사유의 깊이를 느끼며 살았으면 한다. 네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서 조금씩 깊이를 더해 간다면 자연스럽게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곳을 내려다보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거야. 할아버지는 살아 있는 동안 너에게 꾸준히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독립 운동가이자 교육자이신 도산 안창호 선생은 좋은 책 한 권을 펴내는 것은 학교 하나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단다. 할아버지는 평생 동안 그런 책을 한 권만이라도 펴내는 것이 소원이었다. 요즘 1년에 8만종 이상의 책이 출간 되는데 100년이 지나서도 살아남는 책이 얼마나 될까? 아마 한 권도 없을지 모른다. 좋은 책을 만다는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단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이 정말 좋은 책을 펴낼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 보려고 출판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는 잡지를 펴내기 시작했단다. 1990년 <송인소식>으로 시작해 2004년 7월부터는 <기획회의>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 잡지를 펴내는 데 할아버지는 40대와 50대의 청춘을 다 바쳤단다.
엄마 한테서 ‘육아는 템빨’이라는 말을 들었다 육아를 도와주는 아이템이 많으면 좋다는 말이더구나. 그렇다고 모든 육아 용품을 구입해서 쓰기는 어려운 일이란다. (요즈음 어떤 일을 하던지 장비빨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 같다. 나도 캘리그라피를 배우면서도 나도 모르게 여러 가지 붓과 화선지를 고르게 되고 실제로 많이 다름을 느끼기도 한다. )
출판계에서는 ‘공유경제’의 시대를 지나 ‘구독 경제’가 확산되고 있단다. 인터넷이나 유료 채널 등에 가입해서 적은 비용으로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말하지 책이나 방송뿐만 아니라 셔츠와 양말, 면도기와 생리대, 자동차와 항공기, 병원과 은행 등을 구독하고 식료품도 정기적으로 배달해서 먹는 세상이 되었다.
‘바퀴벌레 가족’이란 말이 있다 가장이 집에 들어오며 모두가 나와서 인사만 하고는 바퀴벌레처럼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해서 그런 표현을 쓴단다.
책을 읽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비슷한 것 같아요. 책 한 권 읽는다고 인생이 바뀌지도 않고 대단한 깨달음을 얻는 것도 아니에요. 밑 빠진 독에 물을 꾸준히 부어 봐야 채워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요. 그래도 이런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면 독이 인생이고 독서가 물을 붓는 행위라는 것을 결국 알게 될 거예요. 어차피 인생은 채워지지 않는 독이라는 것을, 그리고 끊임없이 물을 붓는 반복 동작이 자신을 단련시킨다는 것을요.
스마트폰으로 검색만 하면 1초 안에 정답이 튀어나오는 세상에서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학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어쩌면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돌출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들을 즉각 해결할 수 있는 사고력, 표현력, 판단력 등을 평상시에 키워야 하지. 그것이 라고 21세기형 학력이다.
세상에는 선과 벽이 참 많단다. 선입견과 편견에 싸여 세상을 보는 건 광활한 대지에 서서 자신 주위의 흙을 야금야금 파먹는 것과 같아. 선이 깊어질수록 점차 고독한 섬이 되어 가는 것이지. 엄마 아빠는 네가 넓은 마음과 시야로 세상을 두루두루 바라보는 자유롭고 선(善)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며 ‘한(?)’으로 이름을 지었다는구나.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한이 이름 뒤에 ‘때문에’를 붙이지 말자! 정 붙이일이 있으면 ‘로 인하여’를 붙이고, 최대한 ‘덕분에’를 붙일 수 있게 노력하자.
자아 존중감에 따르며 ㄴ아이를 기를 때 바람직하지 않은 두 가지 태도가 있단다. 하나는 부모의 뜻대로 아이를 몰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무조건 내버려 두는 것이란다. 아이는 늘 틀리는 게 자연스러운 존재인데 틀린 걸 강압적으로 교정하면 아이가 무력감을 느끼고, 이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과도한 칭찬을 하는 것 역시 비현실적인 자아상을 키워준다는 구나. (…) 아이에게 자존감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내세울 만한 유일한 재주는 책을 꾸준히 읽는 것이다. 적어도 하루에 한 권은 읽으려고 노력한단다. 그 덕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지. 할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생활비를 버느라 책을 읽을 기회를 놓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된다. 그 때 책을 열심히 읽었다면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았을 걸이라는 생각에 가끔 한탄하기도 해. 사람은 제 나이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있다. 할아버지는 네가 언제나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지식을 많이 기억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세상이 아니야.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연결하여 자신만의 지식을 만드는 능력이 필요하지. 할아버지는 네가 자라면서 그런 능력부터 갖추기를 바란다.
육아서 『삐뽀삐뽀 19 소아과』에는 아이가 보채거나 울 때 바로 안아 주지 말고 스스로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되어 있단ㄷ. 운자마자 안아 주거나 그친 뒤에도 계속 안고 있으면 아이에게 울면 엄마가 아나 준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지. 그리고 떼를 써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너는 앞으로 ‘엄마’ ‘아빠’를 시작으로 너만의 단어를 하나하나 쌓아 가며 살아가게 되겠지.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를 더해서 ‘가족’을 만들고, 그 단어가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고 나아가 ‘꿈’과 ‘인생’이 되겠지. 짧고 정체된 명사형 단어는 차츰 동사로 바뀔 것이고, 동사를 반복하다 지루해지면 사이사이에 수식어를 채워 넣기 시작할 것이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단어가 있다. 그중에는 우리가 한 번도 발음해 보지 못하는 것도 많아. 그 무한한 단어들 중에서 네 삶에 들어온 단어들은 너의 세상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될 거야.
이모가 할아버지의 단점을 세 가지 꼽았는데 , ‘책밖에 모른다. 일밖에 모른다.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술 마시고 한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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