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어머니께서 아들의 시집을 읽으시네 (시집)』, 이용호, 실천문학사, 2021
엊그제 시집을 빌리고, 또 시집을 빌려왔다. 이름하여 문학나눔에 선정된 책.
비교적 어렵지 않게 쓴 시라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 소개
이용호
서울에서 출생했다. 2010년 계간 [불교문예]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유배된 자는 말이 많다』, 『내 안에 타오르던 그대의 한 생애』, 『팔순의 어머니께서 아들의 시집을 읽으시네』 등이 있다. 중봉조헌문학상 우수상, 김포문학상 우수상, 교단문예상, 목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독서 메모
바지락을 캐낸 아버지의 장화가 갯벌에 납작 엎드려 있다. 해질 녘 마을 뒤로 바다는 시커먼 몸을 뒤척였으나 그것도 잠시, 고된 몸을 누인 바다의 앓는 소리가 바지락바지락 갯벌에서 숨을 쉰다, 가거라,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아버지께서 어르시는 소리가 파도 소리에 자맥질하며 번져갔다.
삼길포 삼길포항 /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마다 새겨지는 / 내가 그대에게 끝내 말하지 못했던 / 말 한 마디처럼
저물어 가는 부두의 밤바다는 / 그대처럼 / 늘 말이 없었습니다.
슬리퍼 하나 사서 내일은 아내의 산소에 가야겠다고 사내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게에서 흥정을 하는 아낙의 그림자 위로 아내의 환영이 멀리서 장맛비로 몰려오고 있었다. 사내는 눈물을 훔치다 말고 바다가 전해주는 비릿한 냄새를 맡는다. 그래, 이젠 일어나야지 내 생애에 가장 빛나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자, 집으로 걸어가는 사내의 등 뒤로 수평선이 아득히 출렁이고 있었다.
대숲에 미끄러지는 거센 바람이 벌써 삼일째, 바다 건너 소식은 이제 올 일 없는데 포구에 나가 서성대다가 돌아와 때가 낀 저고리를 빨아 널었다. 방 안에 고여 있는 해충들의 사체를 내다버릴 때 눈물이 땀방울에 섞여 떨어졌다. 기어서 건너온 바다에 스스로를 가둔 서글픈 사내가 봉두난발 방안을 서성거렸다. 햇갈이 해풍에 말없이 미끄러져 갔다.
아버지의 제삿날이 모두 한 날인 우리 마을에선 상차림을 할 수 있는 밥상도 소각 때 불타고 없어져 병든 큰형님이 하루 종일 가슴으로 낫을 갈아 제상을 깎았어요.
그가 언덕에서 내려온다. 밭이랑바다 새겨져 있는 별빛들 또렷해진 기억들마다 방광으로 전해오는 통증들이 발목을 잡는다. 언덕 위 그 의 집 작은 슬레이트 지붕에서 바라본 세상은 왜 이리 평온한지, 울고 싶은 계절 속으로 오줌관을 갈아 끼울 때마다 일직 교회종소리는 게으르게도 번져간다.
한여름에도 온기가 가득 차는 자리. 따뜻한 곳과 냉기가 스며드는 곳이 교차하는 지점에, 세상을 잊은 적요가 들어앉아 버렸다. 기울어지기만 하는 공간의 접점, 입추를 관통하는 계절이 하얀 눈망울을 굴리며,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을 내려오고 있었다.
팔순의 어머니께서 아들의 시집을 읽으시네
시가 뭐 별거겠니 /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 거게 시겠지 / 하루 세끼 잘 챙겨 먹고 술 좀 줄여라. 시도 먼저 사람이 있고, 그 다음인 거지 / 뭐 별거 겠니.
어두워 오는 산산에 앉아 / 어머니 말씀을 전화기로 듣네. 하루를 아들 걱정으로 공양하시는 분의 음성이 / 풍경 소리에 얹혀 이승을 날아가고 있었네. / 아들이 시집을 서점에서 몇 권 사 / 동네 경로당과 복지센터에 갖다 주셨다지 / 이게 내 아들의 시집이라며 / 읽을 만하다며 자랑하셨다는 말씀 너머에도 / 하루해가 지나가고 / 꽃잎들 하나 둘 하염없이 피었다 졌을 텐데. / 독경소리에 번져 오르는 어머니 말씀을 / 눈물로 닦고 닦으며 듣고 있네
부처님 말씀처럼 / 알아듣게 써 봐라 /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게 쓴다면 /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지 / 나뭇잎 하나에도 말씀을 전하는게 / 풀 한 포기에도 가슴을 얹어 두는 거 / 그게 시가 아니겠니 / 뭐 시가 별거겠어. / 다 사람 사는 일이지
외부에서 물을 쓸 수 있게 배수관을 하나 설치해 달라고 해도 돈이 많이 든다고 거절 당하며, 위험한 업무는 여전히 하청으로 내몰리는 이 모순의 밤. 최후의 순간까지 쫓긴 친구들이 짐승처럼 우는 지금도 하늘에선 오롯한 정규직인 달과 별만이 처연하게 컨베이어 벨트 주변을 비추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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