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나는 나를 사랑해서 책을 쓰기로 했다.』, 김명숙 외, 바이북스, 2021

그루 터기 2022. 4. 27. 06:58

나는 나를 사랑해서 책을 쓰기로 했다., 김명숙 외, 바이북스, 2021

 

 

 

저자 소개

김명숙, 박지원, 성연경, 이영은, 이영화, 이혜진, 최신애

 

독서메모

 

엄마는 나를 싫어한 게 아니었다.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단지 당신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을 뿐이다. 여든의 나이가 된 엄마는 아직도 삼의 무거운 짐을 자식들에게 내려놓지 못하고 힘겹게 혼자 짊어지고 계신다. 이제 편하게 내려놓으시고 엄마만을 위한 삶을 사셨으면 한다. (이제 내가 점점 작가의 엄마처럼 살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말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살아가고 싶다.)

 

어쩌면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아이를 더 사랑해 주는 건 아닐까 느끼던 순간이었다 삐딱하기만 했던 내 마음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몸도 마음도 지쳐갔지만 마음을 바꾸니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생명을 보살피고 사랑하고 아끼는 일이 있을 하는 것 만큼이나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교 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늦은 시간 귀가를 할 때가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언제 어느 방향에서 올지도 모르면서 마중 나와 계시다 동네 어귀에서 마주쳤다. 다음번에 다른 길로 가면 어김없이 그 길에서 기다리고 계시며 나를 놀라게 하셨다. () 어디로 올줄 알고 자꾸 나오시냐며 짜증 섞인 투덜거림을 내뱉을 때면 내 딸인데 내가 왜 몰라”, “늦었다. 고마 드가자.” 하시며 꾸중이나 추궁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때문에 소심한 반항마저 일찍 끝나버렸다.

 

나는 진흙 연못 같은 사람이다. 잔잔한 진흙 연못은 마치 맑은 연못처럼 보인다. 고운 진흙 입자들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밑바닥에 가붓이 가라앉아 그 어두운진 흙색을 배경으로 더욱 물을 맑아 보이게 한다. 하지만 작은 파동이라도 일라치면 맑던 호수는 순식간에 진흙으로 흐려지고 만다.

 

몇 월 며칠부터 무슨 계절이다 하고 정해져 있을까?” 여전히 뜬구름 잡는 듯한 엄마의 질문에 아이는 대화를 포기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그냥 계절은 은근히 다가오는 것 같아. 어느새 돌아서면 봄이고 돌아서면 가을인 것처럼.” 익숙해진 엄마의 뜬금없는 반응에 아이는 발길을 재촉할 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멜로망스의 감정에 빠지련다. 듣던 말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네가 아이였다가 어느새 이렇게 초등학생이 된 것처럼 계절도 그렇게 바뀌는 것 같아.” 여전히 말이 없던 아이가 내 손을 놓는다. 꾸벅 인사를 하더니 학교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린다. 여전히 촉촉해진 내감성이 아이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고 더 깊은 감정에 파고든다. ‘어느새 너도 곧 어른이 되어서 내 손을 놓고 세상으로 뛰어 들어가겠지…….’ 뒤돌아 혼자 집으로 오늘 길에 문득 궁금했다. ‘아이는 언제 어른이 되어 내 곁을 떠날까?’ ‘난 언제부터 어른이 된 걸까?’

 

글을 쓰겠다고 결심을 한 후, 6년이 흐르는 동안 나의 쓰기는 출간으로 이어졌다. () 혼자 읽던 나는 쓰기 시작했고 혼자 쓰던 나는 이제 함께 쓰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구름다리 난간이 되어 주며 쓰다 보니 그동안 적적함과 위태함이 소소한 즐거움으로 가뀌었다. 함께 쓰면서 출간까지. 함게 쓰는 즐거움은 결국 책이라는 물성으로 드러나고야 마니, 읽기는 자라서 쓰도록 만드는 힘이 있음에 분명하다.

 

그 후 결혼을 하고 몇 차례 직장을 옮기며 사회생활을 이어오다 큰아이를 임신하며 집사람이 되었다. 아무리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집사람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며, 더군다나 육아는 전문분야가 아니었다. 정신없는 육아의 굴레 속에서 문득문득 내가 원하던 삶, 꿈꾸던 인생에 대한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과 도전해 보지 못했던 순간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 때가 있었다. 때로는 그때 그 시절처럼 반복된 집사람의 일상에 사표를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사표를 던질 수 없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제 나의 꿈속에 아이도 함께 자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최고는 아닐지언정 최선은 다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엄마에게는 많은 꿈이 있었고, 아직도 꿈을 꾸고 있어. 그리고 그것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단다. 너도 행복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과 과정들을 즐기기를, 꿈을 이루는 것보다 꿈을 꾸는 그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가기를 바라.”

 

생생하게 상상하라. 간절하게 소망하라. 진정으로 믿어라. 그리고 열정적으로 실천하라. 그러면 무엇이든지 반듯이 이루어 질 것이다. - 폴 마이어 - (지금 내가 그러고 싶다.)

 

글쓰기 동아줄을 모두 함께 잡았다. 책이라는 꿈을 향해 끈을 당겼다. 하지만 그녀들은 바람과 달리 정식으로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책을 쓰기 위해 모여 철학 책을 읽고 글쓰기를 연습했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 솜씨의 성장은 느렸지만 서로의 내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의 사소한 이야기가 타인의 마음에 맺힌 것을 터치하는 힘이 있어요. 글감은 일상에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하는 거죠. 특별한 것을 적는 게 아니에요. 사소하고 누구나에게 있을 법한 일로 시작하면 보편적 정서와 닿아 호소력이 생깁니다. 글에 교훈을 잔뜩 담거나 가르치려 어설픈 정보를 담을 필요는 없어요. 어려운 책을 인용하는 것보다 나의 삶이 더 강력합니다.

 

돌아오는 거절 메시지에 모두 시무룩해졌다. 혼자의 힘이 아니었다면 벌써 포기했음에 분명했다. 여럿이 함께였기 때문에 서로를 격려했다. 모두 포기할 때쯤, “ 더 열심히 쓰는 연습을 합시다라고 말하려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좋은 출판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너에게 어떤 엄마이면 좋겠어?” () 훗날 아이가 엄마를 떠올릴 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기쁜 일이 있을 때에는 엄마와 나누고 싶어 전화를 했으면 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에 나를 찾았으면 한다. 엄마 품이, 손길이, 아늑한 집이 그리워 현관문을 열었으면 한다.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계속한다. 글쓰기 만큼 나를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것을 만나지 못했다. 쓰다가 문장력의 한계로 속이 막혀 답답하다. 생각을 글이라는 결과물로 풀어내기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도 쓰다 막힌 글을 떠올린다. 부족한 듯해도 결국 나의 말로 풀어내고선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글은 나를 사랑하게 했고, 꿈꾸게 하고 나아가게 하는 종류의 무엇인 것 같다. 이제 시작한 글쓰기가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궁금하다.

 

고거의 나는 혼자 유유히 파도를 넘는 유능한 서퍼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묘안은 다른 데 있었다. 혼자 뒹굴 거리던 통나무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줄로 연결되는 그것이다 각자 짊어진 고생과 무게는 글을 쓰는 배경이 되고 서로를 위로하는 재료가 된다. 혼자 유능한 서퍼가 되지 않아도 되는 답안을 우리에서 찾았다. 꽤 쓸만한 정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