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살아있는 사람의 유고시집 (천상병 시인님의 새)

그루 터기 2021. 5. 23. 00:13

 

살아있는 사람의 유고시집 (천상병 시인님의 새)

 

 

 

 

오늘 양천도서관에 들러서 빌려왔던 책 반납하고 다시 몇 권의 책을 빌렸습니다.

요즈음 큰활자책 빌리는 재미에 고민없이 큰활자책만 따로 모아둔 서고로 가서 보고 싶은 책을 고릅니다.

100세 철학자이신 김형석 박사님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마침 아직 보지 않은 남아있는 시간을이라는 책과

류시화 시인님의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석원님의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렇게 세권을 골랐습니다.

 

자동대출기에서 대출확인을 하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천상병 시인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얼른 다시 조회용 컴퓨터에가서 천시인님의 책을 검색해보니 대부분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고,

두어권 정도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그중 새라는 책을 빌렸습니다. 오래된 책이라 직원분께 문의하여 3층에서 가져오셨는데요.

책을 받아 든 순간 가슴이 떨리는 것을 주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좋아하는 천시인님의 책 중에서도 정말 특별한 책이거든요.

 

 

많은 기행으로 소문난 천상병 시인께서 어느날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시고,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서울에 있는 친구분들은 고향에 내려가 계신 줄 알고, 고향에 있는 친척분들은 서울에 계신 줄 알고 있다가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 돌아가신 줄로 알고,

한권의 시집도 내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천상병 시인님를 안타깝게 생각하시어 동료들이 모여 유고 시집을 출간하게 됩니다.

그러나 5개월 만에 외부인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서울시립정신병원에서 살아계신 것을 확인하게 되어

정말 유래없는 살아계신 분의 유고시집이 발간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바로 그 유명한 살아있는 천상병 시인의 유고집 새라는 책을

20년 만에 초판이 발간되던 때의 책 모양 그대로 만든 번각판이라고 합니다.

살아계신 분의 유고집을 만든 것도, 20년 만에 초판본 그대로 번각본을 내는 것도, 우리 문학사에 없던 일이라고 합니다.

 

그 귀한 책을 오늘 내가 만져 보고 있습니다.

 

 

 

책 표지입니다.

 

 

(양천도서관이 옛날에는 서울특별시립 목동 도서관이었나 봅니다.  

같이 빌린 두권의 책에는 서울특별시교육청 양천도서관으로 되어 있고,

요즈음은 양천도서관으로 되어 있네요... )

 

 

 

 

어떻게 집에 왔는지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책을 들자마자 단숨에 끝까지 읽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날은 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정보부에 끌려가 전기고문 등,

갖은 고초를 겪으신 심정을 적은 듯한 내용에서

더 이상의 인내는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시간이 조금 지나 진정을 하고

선생님의 시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책 제목이기도한 새입니다.

 

 

 

                                      천상병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와 새가 울고 꽃잎이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 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1959년 (사상계)

 

 

 

 

 

 

또 하나는 제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날은’ 이라는 시 입니다.

 

 

 

그날은

                                             천 상 병

 

이제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 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뒤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1971. 2 [월간문학]

 

 

 

 

 

 

 

 

 

천상병 선생님의 명복을 두손모아 빕니다.  

 

 

 

PS : 이글을 올리고 하루 밤을 지난 지금도 책을 보니 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갑자기 선생님의 기행이 생각나 적어봅니다. 

     대학진학을 앞둔 어느날 뒷동산에서 어느 학과를 갈까 진로를 고민하다가 (이미 등단을 하신 이후입니다.)

     종이비행기 두개를 접어서 하나는 서울법대, 하나는 서울상대를 쓰고 날려서 멀리 날아가는 종이비행기에 

     적힌 곳으로 진학하기로 맘먹고 날렸더니 서울상대를 적은 비행기가 멀리날라가서 서울상대로 진학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인생을 좌우하는 그런 심각한 갈림길에서 조차 저의 상상을 벗어나는 기행이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은 감히 흉내내지 못하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차 엔진오일 교환하러 자동차 정비소에 들렀는데 

사무실에 천상병 선생님 그림이 걸려 있어서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