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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엄 장관옥 과장님을 그리며

그루 터기 2021. 7. 17. 00:21

해엄 장관옥 과장님을 그리며

 

  장마다운 장마도 없이 성질 급한 더위가 턱밑까지 밀고 들어 왔습니다. 에어컨 바람 좋아하는 나와 에어컨 바람 싫어하는 아내가 올 여름도 잘 조화롭게 살아가야하는데 살짝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아내가 출근 한 후 거실의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놓고, 선풍기를 제 방 문 앞에서 안쪽으로 돌려놓으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습니다. 거기에 제가 좋아하는 찐한 얼죽아(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작년 11월부터 5개월 정도는 오로지 소방안전관리자 시험문제에 필이 꽂혀 다른 것은 거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금년 1월에 자격증 준비를 위해 기술관련 도서를 빌려보려고 만든 양천도서관 회원증이 관련 도서를 구매하고 나서 봄부터는 문학서적 빌려보는 용도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책 빌리기가 이젠 양천도서관 바라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양천도서관에서 빌려온 여러 권의 책을 두고 어떤 것부터 읽을까 고민하다가 얇은 책부터 읽기로 맘먹고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 제일 좋아했던 정신분석가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책입니다. 역시 얇은 책은 두 시간도 되지 않아 훌쩍 끝 페이지를 넘기게 되네요. 두 번째로 시작한 책이 수필가 반숙자님의 거기 사람이 있었네를 잡았습니다. 반숙자님은 여러 권의 수필집도 내시고, 국제펜클럽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이시기도 하신 원로 작가이십니다. 반기문 사무총장님이 태어나신(같은 반씨네요) 음성에서 오랜 기간 문예창작교실을 이끌어 오신 유명한 분이시기도 합니다.

역시 많은 글을 쓰시고 연륜이 있으신 분의 글이라서 그런지 군더더기가 없고, 저의 어릴 적 시골 생활 같은 내용의 정감이 가는 글들이라 술술 끝임 없이 읽게 되네요.

 

  그런데, 책의 중간쯤의 당신은 모르실거야라는 글을 읽다가 뭔가 느낌이 싸한 걸 느꼈습니다. 혹시 하면서 읽는 속도가 빨라지다가 농정 공무원으로서 농산물유통센터를 세우는데 앞장섰고라는 대목에서 울컥하더니 빈자리에 향기만 가득한 해엄, 장관옥, 참 잘 사셨어요에서 눈물이 왈칵했습니다.

문학작품집 속에 내가 아는 분 이야기를 우연히 접한 것도 처음이었지만 장관옥 과장님은 저에게는 참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매사에 추진력이 대단하시고, 한 가지 목표를 정하시면 뚝심으로 밀고 나가시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저와는 나이가 비슷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국내 최초로 전자동 비파괴내부품위센서를 적용한 최신기술의 복숭아 선별기를 설치하겠다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똘똘 뭉쳐 일을 헤쳐 나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매사에 꼼꼼하시고 확실하신 성격이라 일본의 선진 복숭아 선별기가 국내 품종에도 잘 적용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6차례나 일본 견학을 다녀오셨습니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의 K박사님과 복숭아 선별기에 적용하는 흡착기가 복숭아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했었습니다. 실험용 기계를 제작 의뢰하셔서 일본에서 만들어 수입하고, 수차례 테스트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일본 마쯔모토 복숭아 선별장과 수박선별장을 견학할 때 일로 기억합니다. 저도 아침형 인간 이라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호텔 주위를 돌아보고 있었는데 장계장님(그때는 계장님이셨습니다.)께서 한시간전에 일어나셔서 주위의 궁금한 곳을 다 둘러보셨습니다. 주머니에 꽃씨를 보여주시면서 이건 한국에 없는 건데 문익점선생님 같이 몰래 숨겨서 가져가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집 앞에 야생화 밭이 있다고 하셨는데 직접 보지는 못하고 잘 가꿔놓았다는 이야기만 들었었습니다.

 

  저랑 비슷한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사진 찍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진을 잘 찍지 못하지만 그 때에도 커다란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 : 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었습니다. 장관옥 과장님도 비슷한 카메라를 가지고 열심히 찍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주로 야생화를 많이 찍었었는데 과장님은 어떤 사진을 주로 찍으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야생화를 좋아하셨으니까 틀림없이 야생화도 많이 찍으시지 않으셨을까 생각됩니다.

 

  음성군 농산물유통센터 첫 회의 (Keep-off 회의) 때 일이 생각납니다. 농산물유통센터 건립공사가 그 이전에는 각 분야별로 별도 계약이었으나 음성공사부터 턴키방식(일괄공급방식 : Turnkey)이라 선별기를 설치하는 업체는 재하청 업체였음에도 불구하고, 꼭 회의에 참석하게 하셨습니다. 그 회의에서 공사 총괄 주관사인 D사의 책임자와 선별기 원청 공급사인 일본 O사의 책임자를 제쳐두고, 저에게 질문을 하시고, 다른 분들이 아닌 저의 대답을 꼭 듣고 그대로 결정하겠다고 하셨을 때 무거운 책임감과 저에 대한 신뢰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의 컴퓨터에는 아직도 장관옥계장사진이라는 폴더가 있습니다. 일본 복숭아, 수박 선별장을 견학하면서 설비들을 찍어서 서로 주고 받았던 사진을 모아둔 곳입니다. 오늘 그 사진들을 보다가 마쯔모토 하이랜드 수박선별장 앞에서 단체로 찍은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생전의 사진 중의 하나겠지요.

이 사진보다 더 생생한 사진은 저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암투병을 하시면서 국궁을 배우셨던 시기였습니다. 치료차 휴가 중이셨고, 물어물어 찾아간 활터에서 웃으시며 반겨주시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었습니다. 많이 좋아졌다고 말씀 하셔서 꼭 그러하신 줄 알았습니다.

 

 

[ 내 컴퓨터에 있는 장관옥계장사진 폴터]                                                 [ 마쯔모토 하이랜드 선과장 견학 시 단체 사진]

 

 

 

  장과장님이 떠나신 후 보내주셨던, 사모님과 같이 만드신 수필집 여우구슬은 다니던 직장 서재에 두고 퇴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그 책이 읽고 싶어 교보문고에 확인하니 이젠 품절이라고 하네요. 서울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자주 가는 양천도서관에는 책이 없고, 멀지않은 강서도서관에 책이 있답니다. 내일 아침 책을 빌리려 다녀와야겠습니다. 장과장님께서 남기신 글을 찬찬히 읽어보며 그리운 옛 추억을 다시 한 번 떠 올려봐야겠습니다.

 

 

 

 

과장님 잘 계시지요?”

 

  여기에서 하실 일이 산더미 같이 쌓였는데 어찌 그리 툭툭 털고 가셨는지요? 저는 이제 하던 일 있던 그대로 놓아두고, 2의 인생 시작하고 있습니다.

 

  과장님이 지금까지 살아계셨으면 황전무 같은 분이 그냥 계시면 어떡해요. 빨리 내려오세요. 하실 일이 산더미 같이 있어요.” 하실 것 같다.

 

  오늘같이 과장님이 보고 싶을 땐 책에서 소개한 들꽃 공원. 이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이젠 그 공원도 문을 닫았는지 아님 내가 못 찾는 건지. 나에게는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