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인색 2막

인생2막 내 명찰은 무엇일까?

그루 터기 2021. 7. 21. 21:29

인생 21장 무엇을 향해 달려갈까

 

A

  한창 촉망받는 아나운서로 잘나가던 시절, 아무 조건 없이 사표를 쓴 A. 요즈음은 교양프로그램의 초대 손님으로 가끔 나오는 것을 본다.

  어릴 때부터의 꿈인 연기자를 하고 싶어 어렵게 들어간 아나운서를 미련 없이 그만 둔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한편으로 걱정도 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연기자로서는 초기에 몇 작품에서 조연으로 이름을 올렸으나 롱런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요즈음은 내가 아예 드라마을 보지 않아서 그런지 연기활동을 하는 것을 못 본 듯하다.

  잘나가는 아나운서를 포기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쌍수를 들고 응원을 했던 나다. 그런 사람들이 보란 듯이 성공을 해야 자기 꿈을 찾아가는 젊은이 들이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앞만 보며 달려 갈 수 있을 텐데 요즈음 그의 뜸한 연기 참여가 못내 아쉽다.

 

  또 한 사람, 개그맨을 그만두고 프로골퍼에 도전했던 B씨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연기자나 프로골퍼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오랜 시간 꾸준하게 갈고 닦아도 쉽지 않다는 건 본인들도 다 알고 도전 했을 텐데 결과가 아주 좋게 나오지 않아서 볼 때마다 아쉬움이 든다.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내가 회사를 그만 둘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직업으로 가졌던 금형기술자, 교사, 개인사업, 선별기 및 자동화 설비 까지 모두 내 적성에 딱 맞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 한 적성검사의 결과를 봐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맞아 떨어지는 직업이다. 수학과 물리를 좋아하고, 수학 중에서도 기하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계설계 쪽 일이 적성과 너무나 똑 같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나이를 한 살씩 먹어 가다보니 기계 외에 새로운 뭔가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고, 나는 기계 말고 다른 것에는 전혀 적성이 맞지 않은 것인지? 궁금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뭔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단 퇴사를 결정하고 한 일 년 실업급여를 받으며 쉬다보면 새로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직장을 그만 둔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맡았던 공사나 업무 마무리도 잘하고, 회사에도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는 시기도 잘 선택하는 등, 다 잘했는데 딱 한 가지 아무 계획 없이 그만 둔 것 그것이 잘못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 일을 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한 번 쯤이라도 고민을 했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이 자꾸 드니까 말이다.

  직장을 그만 두기 몇 년 전부터 퇴직 후 인생에 대해서 철저히 준비해야 된다는 말과 회사에서 등 떠밀고 나가라고 하기 전에 절대 먼저 사표를 쓰지 말라는 주위 친구들의 조언을 귀가 따갑게 들어왔었지만 난 좀 다르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사표를 낸 지금에서야 내가 얼마나 평범한 직장인이었는지, 내가 하고 있고 가지고 있는 기술들이 대단한 기술이 아닌 정말 평범한 것들이라는 것을 아는데 결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근무한 친구들은 퇴직 전에 휴식정년제라고 해서 적게는 3개월에서 6개월 많게는 2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주는 곳이 있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퇴직하는 마지막 날까지 밀린 업무를 보다가 퇴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업무 인계인수를 하고 퇴직할 수 있었다. 휴식정년제를 한 친구들도 대부분 그 기간 동안 걱정만 했지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도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이 휴식정년제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딱히 해 놓은 것이 없다. 주위에 퇴직 전에 충분히 준비한 친구들을 몇 명이라도 보았으면 몸소 느낄 텐데 그런 친구들을 본적이 없어서 몸에 와 닿지를 않았다.

 

  사표를 내고, 아는 친구나 선후배 그리고 거래처 같은 곳에 소문을 내면 바로 연락이 올 것 만 같았고, 그러면 은근히 거절할 멘트도 준비되어 있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 좀 쉬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아직은 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등 다분히 주관적인 멘트였다. 그러나 그 생각이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걸 아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만 큼 내 판단이 정확하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그래도 당장 생활고에 찌들리는 형편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이것저것 해 볼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정말 많이 답답해한다. 당장 수입이 있어야 하는 친구의 입장으로는 좋아하는 일을 찾는 다는 건 사치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아무 일이나 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친구를 보고 다른 친구는 아직 배가 고파보지 않아서라고도 이야기 한다. 이 나이에 배가 고프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 정도까지가 아니라는 것에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건강 또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 또래의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자신의 건강에 대한 맹신이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게 한다. 건강보험에서 매년 실시하는 건강검진만 철저하게 받아도 대부분의 큰 병들은 초기에 발견할 수 있거나 사전에 발견할 수 있어서 큰 무리 없이 치료가 가능한데,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크게 고생을 하거나 꽃다운 60대 초반에 생을 달리한 친구들도 있다.

 

  누굴 탓할 것도 아니다. 나 자신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건강검진을 한 해씩 건너뛰기가 일쑤였고, 특히 통풍의 경우는 오래전에 몸이 주의 하라고 신호를 보내고, 최근에는 여러 번 신호를 보냈음에도 통증이 심해진 이제야 부랴부랴 병원을 다니고, 통풍에 대해서 알아보고, 진작 알았으면 이정도 까지는 아닌데 하고 후회한다. 통풍은 그나마 약을 평생 먹으면 불편할 뿐 생명에는 크게 지장이 없는 병이라 다행인데 또 몸 어디서 나한테 신호를 줄지 모른다. 그 신호를 얼른 감지하여 대처해나가야 고생하지 않고, 생각하기 싫은 나쁜 결과가 오지 않을 거다.

 

  오늘 아침 티비에 나온 A 님이 가슴에 탤런트 A**란 명찰을 달고 나오셔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아나운서 A**란 명찰이 어색하게 느낄 때 진정 행복한 인색2막이 되지 않을까?

 

  나는 인생2막의 가슴에 무슨 명찰을 달고 나올 수 있을까? 금형기술자, 교사, 대표이사, 기계전문가가 아닌 작가 황한식 이란 명찰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발명가, 인생2막 전문강사, 인기 블로거, 세프 황한식이도 좋을 것 같고, 자연인 황한식이도 참 좋을 것 같다.

 

  오늘도 내 맘에 꼭 드는 명찰을 찾기 위해 도서관으로, 인터넷 바다 속으로 뛰어 다니고, 시골서 올라온 죽마고우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 부평으로 달려간다.

 

 

 

 

손자의 발을 찍었다. 

18개월째 들어선 손자는 궁금한게 많다. 내가 생각할 때 겁도 없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발끝으로 선다.

나도 저정도는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도 저정도는 절실해야 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