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인생 첫 필사(모임득 작가님의 먹을 갈다)

그루 터기 2021. 10. 30. 00:31

글쓰기 책을 읽다보면 여러 가지 조언이 많습니다. 

제일 첫번재가 무조건 매일 일정한 시간에 글을 쓰라는 겁니다. 

독서를 많이 하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것 외에도 좋은 책을 골라 필사를 하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기독교나 불고 신자들 중에 성경이나 불교 교리에 대한 내용을 필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어떤 책을 필사를 할까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마음에 꼭드는 책이있어서 필사를 했습니다. 

 

며칠전 책을 보면서 이 건 꼭 필사를 하겠다고 글을 올렸었는데 책을 다 읽고 바로 필사를 시작했습니다 

필사 내용이 많은 건 아니지만 다른 일들이 많아 2일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책은 모임득 작가님의 『먹을 갈다』입니다. 

필사라고 하면 연필로 노트에 쓰는 것이 원칙이나 저는 컴퓨터로 필사를 했습니다. 

 

필사 내용 중에 두 꼭지만 올립니다. (혹시 문제가 되면 바로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

 

 

 

 

 

모임득 작가님의 먹을 갈다. 

 

먹을 갈다.

 

   천년을 묵은 빛이다. 무덤에서 발견되었다는 먹, 선명하게 남은 단산오(丹山烏)자 밑에 한 일(一)자의 획만 보이는데 이는 옥(玉)의 첫 획으로 먹을 갈아 사용하고 남은 부분이리라.

   국립 정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단산오옥은 우리 전통 먹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단산오옥으로 쓴 글이나 그림은 오래될수록 검고 빛이 바래지 않아 더 깊은 맛이 난다고 한다. 출토 당시의 사진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먹은 사용했을 선비의 머리맡에 두 동강 난 상태로 있었다. 1998년 청주 동부우회도로 건설구간인 명암동 유적에서 발견된 목관묘에서 나왔으며 현재 전해지는 고려 시대 먹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가장 좋은 먹을 단산오옥이라고 한단다. 앞면의 가장자리에는 물결무늬가 중첩돼 있고 뒷면에는 우아한 곡선으로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표현한 비룡문이 새겨져 있다. 고려 시대로 추정되는 보물로 지정된 먹은 멋스럽기도 하거니와 먹을 만든 장인의 숨결도 느껴진다.

   ‘천년의 먹 향기 단산오옥전’을 보고 귀가해 장식장에 보관된 연적을 꺼냈다. 연꽃 봉우리 같은 몸체, 두 가닥의 연 줄기를 꼰 모양의 손잡이, 연잎을 말아 붙인 모양의 귀때가 있다. 몽우리 아래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어 귀때와 함게 연적 구실을 하게 되어 있다. 아쉽게도 물 따르는 부리는 깨어졌다. 언제부터 이 연적이 우리 집에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평생 농사를 지으셨지만, 서당 훈장을 하면 딱 어울리셨을 시아버님, 성성한 머리칼, 굴곡진 이마, 거칠어진 손이지만 틈나면 붓글씨를 쓰고 고서(古書)를 즐겨 읽으셨다. 이 연적도 문방사우와 더불어 소반이나 책상 위에서 고졸한 멋을 풍기며 늘 아버님과 함께했을 것이다.

 

   선비 같으신 시아버님을 존경하고 많이 의지했었는데 왜 소원(疏遠)해졌을까? 아마도 청천벽력 가은 남편의 진단 결과가 나오면서 그리 된 것 같다. 신혼 때는 아버님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도타운 정을 나누며 지냈었고 시부모님은 맏며느리를 많이 의지하신다고 믿으며 20여 년 동안 살았었다.

   하루가 다르게 까라지는 남편을 보며 시어머님은 울기만 하셨고 아버님은 묵언 수행 중인 스님처럼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나와 우리 아이들이 투병 중인 가장을 보며 아픔을 견디듯 시부모님의 가슴도 피멍이 들 거라고 스스로 이해했다 5년의 투병에 지친 남편은 서둘러 가족 곁은 떠났고, 상속 문제로 시어른의 인감증명서가 필요해 말씀드렸더니 거절을 하셨다.

 

   우리네 세상에는 숱한 느낌표가 있다. 먹을 간 벼루에 똑같이 붓으로 먹물을 묻혔는데도 사랑이라고 쓰면 사랑이란 글이 되고, 미움이라고 쓰면 미움이 된다. 사랑이라고 쓰는 이의 얼굴은 평온할 테고 미움이라고 쓰는 이는 그렇지 않으리라.

 

   연적에 물을 담았다. 한 손에 쥘 만한 알맞은 크기이다 내친김에 벼루에 물을 따랐다. 몽우리 진 연꽃 모양의 연적 귀때로 물이 순하게 떨어진다. 먹을 갈 때는 마음을 다잡아 갈아야 한다. 벼루에 물을 적게 따르면 먹이 잘 갈리지 않고, 너무 많이 따르면 먹 갈기가 조심스럽고 먹물도 흐려 붓글씨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먹을 조금 갈았는데 팔이 아프고 호흡이 고르지 않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이다. 다시 손끝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마찰에 집중한다. 먹을 가는 일은 어쩌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먹 향이 진하게 우러나오려면 장시간 갈아야 한다.

   갈아진 먹물을 붓에 충분히 묻힌 다음 붓을 벼루에 훑어 먹물이 떨어지지 않게 한 다음 서툴지만 글을 써본다. 붓 끝에 먹물이 스밀 때의 느낌, 화선지 위에 스미는 먹물의 기운을 참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먹은 벼루에서 갈린다. 자신을 없애면서 글씨와 그림을 그리게 한다. 어찌 보면 자신을 희생해가며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는 부모님과도 같다. 나 역시 자식을 키우는 어미로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텐가.

 

   연적의 물을 벼루에 따라본다. 뚫어진 공기구멍이 있어 물은 순하게 흘러내린다. 자신을 갈아 글씨를 낳은 먹처럼, 뼈 빠지게 한 평생 농사를 지어 자식을 길러낸 시아버님처럼, 소임을 하다 귀때부리가 깨진 연적처럼, 그렇게 한 생애 살아가는 거라고, 마음을 넓혀 더 이해하라고, 고려 시대 먹, 단산오옥이 내게 일러주는 것 같다.

 

 

 

 

 

옥수수

 

   첫 옥수수를 딴다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세 자루를 사서 쪘다. 옥수수는 밭에서 적당히 익었을 때 따서 바로 쪄야 말랑거리는 알갱이가 터지며 씹히는 혀끝의 감촉이 좋다.

   물을 많이 넣고 끓기 시작해서 40분 뒤에 불을 끄면 맛있게 삶아진다고 한다. 세 자루를 들통 하나로 찌고 또 찌려면 적어도 세 시간이 필요하다. 온 집안에 옥수수 냄새가 가득하다. 꽃향기처럼 향긋하지는 않지만, 옥수수 익는 냄새는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어릴 적 어머니의 따뜻한 정을 받을 때처럼 포근해지고, 옥수수 대공을 꺾어 껍질 벗겨내고 씹으면 달곰한 물이 목으로 넘어가던 시절로 돌아가기도 한다.

 

   담배 농사를 짓던 시절, 담배를 따서 줄에 꿰고 건조실에 매달아 말릴 때, 그 뜨겁던 여름날에도 아버지는 석탄을 개어 불을 지폈었다. 불이 한차례 건조실을 덥히면 그 잔열에 옥수수와 감자를 구워 먹기도 했었다. 구운 옥수수는 찔 때보다 고소한 맛이 더했다.

   옥수수 중에서 실한 것은 껍질을 엮어 사랑채 처마 밑에 걸어두었다. 씨앗용이다. 이듬해 한 알씩 떼어내 다시 밭 가장자리에 심고, 수확한 옥수수는 다시 실한 것을 골라 처마 밑에 종자로 걸어 두어 다시 씨앗이 되었다. 부모님은 평생 농사를 지셨으니 씨앗 갈무리를 오래 하셨을 테다.

 

   옥수수 익는 구수한 냄새를 맡다보니 얼마 전 괴산으로 야유회 갈 때가 생각난다. 차가 괴산 초입으로 접어들면서 밭에는 옥수수가 즐비했다. 집에서 먹으려고 밭가에 심던 조연이 아니라. 비닐까지 씌운 둔덕에 줄 맞춰 심어진 옥수수 밭이다. 밭마다 그득한 초록빛 풍경들이 야유회 가는 기분을 달뜨게 했다.

   길가에서 쪄서 파는 대학 찰옥수수를 몇 개 사 들고 맛있게 먹는데 농사가 전공이신 분이 옥수수는 99%가 바람으로 인해 열린 거라고 한다. 벌과 나비 등의 곤충을 매개로 하는 꽃들과 달리 바람과 중력의 힘으로 수정 된단다. 옥수수 줄기의 맨 위쪽에 피는 수꽃은 벼처럼 달려 있는데 끝부분에 노란색 수술이 있다. 엄청 많은 양의 꽃가루가 있어서 바람이 불어올 때 터지며 이 밭 저 밭 사방으로 날리어 수정한단다.

   겉껍질을 쭉 벗기면 소박하게 드러난 수염, 이건 왜 귀찮게 있어서 수염 따느라 힘들다고 했는데 그 수염이 암술이었다. 줄기 끝의 수꽃에서 쏟아진 꽃가루들이 깔때기 모양을 한 옥수수 잎으로 모여, 그 잎 바로 밑 부분 암술에 수정이 용이하게 한다. 결국 수염 하나하나가 옥수수 알갱이가 되는 것이다. 수염이 많이 나올수록 알차게 알곡을 맺을 준비가 되었다는 거고, 모든 수염이 꽃가루가 하나도 빠짐없이 묻어줘야 알곡이 꽉 찬 옥수수가 된다.

 

   삶은 옥수수 90개 봉지를 나누어 담고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병원으로 가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어머니는 입으로 옥수수 드시는 걸 힘들어 하신다. 기력이 쇠하신 것도 있고 살이 빠지면서 맞지 않는 틀니 때문이기도 하리라. 엄지손가락으로 알을 똑똑 떼어 모아서 엄마한테 건넨다.

   똑 고른 옥수수처럼 튼튼했던 치아나, 초록 잎사귀의 결이 거친 잎맥처럼 팔팔하던 시절은 옛날 얘기이던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어머니지 여자란 생각을 안했다. 내가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고 나 역시 같은 처지에 있고 보니, 재혼을 시켜드릴 걸 후회가 된다. 치매가 있으신데 가끔 정신이 좀 돌아올 때면 나보고 결혼하라고 성화다.

   “시원찮은 남편이라도 남편 밥은 누워서 받고, 자식 밥은 서서 받는 것이야.”

   “그렇게 일찍 갈지 모르고 내가 등 떠밀어 널 결혼시켰으니 내가 네 인생을 망쳐 놓았구나.”

   하시며 나를 볼 때마다 우신다. 총총하고 고른 옥수수를 떼는데 뿌옇게 보인다. 똑 고르게 짝 맞추어 열린 알갱이처럼 부부도 오래도록 같이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생애 전체 아름답게 가야 할 길을 왜 슬픔에 젖게 하는지.

 

   옥수수는 암 수꽃이 한 대에서 핀다. 수꽃은 줄기 꼭대기에 암꽃은 줄기 옆에서 핀다. 이렇게 떨어져 있는 두 꽃의 수술이 만나야 수정이 되는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옥수수수염이고 바람이다.

   한 대궁에 수꽃 암꽃이 다 있지만 바람이 불면서 다른 대궁 암꽃으로 간다. 자가수분을 막으려는 시간차방법을 쓰기 때문이다. 자기 대궁 위에 있는 수꽃이 활짝 피어 꽃가루를 날리는 시간보다 약 이틀쯤 후에 암꽃이 성숙하게 하여, 한 대에서 꽃가루를 받아 결실하는 일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다.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하는 내 옆에서 엄마를 어머니로만 보던 딸이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