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아까워서 읽지 못하는 책(모임득, 『먹을 갈다』, 수필과 비평사, 2020)

그루 터기 2021. 10. 25. 00:12

 

아까워서 읽지 못하는 책이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흥미가 떨어져서 책을 덮어 버리는 경우도 있고,

너무 재미있어서 놓지를 못하는 책이 있다.

 

그런데 아까워서 읽지 못하는 책이 있었다.

 

너무 빨리 읽어버릴까, 빨리 읽고 빨리 잊어버릴까 걱정되는 책이었다.

먹을 갈다.

제목부터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3주전부터 먹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캘리그라피를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 중에 제목만 보고 책을 들고 왔다.

저자의 이름도 처음 듣는 이름이라 반신반의, 재미없으면 덮으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빌려왔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떤 책인가 궁금해서 제목으로 쓰인 「먹을 갈다」 꼭지를 읽었다. 살 떨림 같은 것을 느꼈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잘 보지 않던 '목차'를 봤다.

한 두 단어만 연결한 작은 제목들이 하나하나 정이 가는 제목들이었다.

첫 번째 글인 「연필」을 읽었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내가 느꼈던 내용을 이렇게 아름답게 쓸 수가 있구나.

아니 이렇게 슬프게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 듯 다음 페이지로 넘겨지지를 않아 한 번 더 읽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렇게 첫 번째 글만 읽고 다시 읽어봤던 기억이 있었던가?

 

책을 덮었다.

가슴이 쿵쾅 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같이 빌려온 7권의 책 중에 제일 밑으로 감춰뒀다.

 

오늘이 3일 째 벌써 몇 번이나 책을 뺐다가 보다가 넣었는지 모른다.

한 꼭지 한 꼭지 읽을 때마다.

책장을 넘기기가 아쉽다.

너무 아까워 읽기가 아쉽다.

뭐가 아까운지도 모르게 책을 덮는다.

 

필사를 하리라. 나의 첫 필사 책으로 정하리라.

 

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에 교보문고에 들러야겠다.

꼭 내 책으로 가지고 싶다.

 

모임득 수필집 먹을 갈다』, 수필과 비평사, 2020를 보고, 아니 보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