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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 단꿈 <장모님의 꿈 이야기>

그루 터기 2021. 10. 19. 12:26

초저녁 단꿈 ( 2021. 10. 12 )

 

     어제 밤 초저녁 꿈에 기숙이 아부지가 나타났다. 그동안 아무리 꿈을 꾸려고 해도 나타나지 않던 사람이 어릴 때 죽은 기식이와 기홍, 기태 네 사람이 꿈에 나타났다.

    기숙이 아부지는 사랑방 부엌 옆에서 무를 들고 있었는데 커다란 무 두 개에 가는 무 두 개를 좌우에 묶어서 들고 있었는데 무는 깨끗하고 하얀 무였지만 가운데 있는 무는 윗부분 중앙이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내 허리 수술을 한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오랜만에 들른 기숙이 아부지는 살이 통통하게 찐 모습이었고, 세 살 때 죽은 기식이 모습은 장성한 모습이었다. 기숙이 아부지는 마루에도 올라오시지 않고 서서 뭐라고 자꾸 말씀을 하셨는데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더니 기식이가 여기 있으면 안 되고 원래 있던 곳에 데려다 주고 와야 한다며 데리고 사라졌는데 잠이 깼다. 무슨 꿈인지 알 수가 없다. 무의 붉은 모습은 내가 수술한 모습 같기도 하다. 빨리 나으라고 꿈에 나타난 건지? 그것도 아니면 나를 데리고 가려고 나타난 건지 마음이 어지럽다.

 

    기식이는 기태 동생이다.

    손이 귀한 집에서 딸 넷을 낳은 뒤에 얻은 아들로서는 세 번째지만 귀한 아들이라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할머니는 기식이를 등에 업고 마을을 다니셨는데 겨울에 손발이 차서 동상에 걸릴 지경이 되어도 동네방네 자랑을 하시고 싶어 매일 업고 동네를 나가셨다. 기식이는 빨래감을 머리에 이고 냇가로 빨래를 하려 갈 때는 내 치마를 잡고 졸졸 따라 다니곤 했는데 언제나 씩씩하고 말도 잘했다. 나무 막대기만 보면 주워서 총이라고 어깨에 걸치고, “나는 국군 아저씨다”라며 두 팔을 앞뒤로 저으며 의젓하게 걸어 다녔다. 그러고 다니면 만나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말도 잘하고 똑똑하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에 똥이 마렵다고 해서 똥을 누라고 했더니 조금밖에 누지를 않고, 밤새 똥이 마렵다고 여러 번 들락 거렸는데 아침에 힘이 없고 열이 많이 났다. 서둘러 할매는 기식이를 등에 업고 기숙이 아부지와 삼십리길 영주시내 병원에 갔다. 그 때 나는 기식이 동생을 임신한 상태여서 같이 가지 못하고, 기숙이 아부지와 할매가 다녀왔다. 병원을 다녀온 기식이는 병명도 확실하지 않고(아마도 경기였던 것 같다.), 차도도 없어서 며칠에 한 번씩 그렇게 영주를 다녀왔다. 그러나 기식이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어느 날 밤 숨을 거두었다. 할머니는 통곡을 하시며 계시고, 기숙이 아부지는 죽은 기식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혹시라도 살아날까 이불에 싸서 방 한 쪽에 두고 하룻밤을 더 보냈다. 그러나 기식이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기식이 아부지는 꺼이꺼이 울면서 동네 일가친척과 함께 집 뒷산 양지바른 곳에 기식이를 묻었다. 그렇게 기식이는 우리의 곁을 떠났다.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던 그 기식이가 어제 밤 엄마를 찾아왔다. 아부지와 함께 무슨 일로 찾아왔을까? 나를 데리러 온 것일까? 내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온 것일까?

 

아픈다리와 허리 통증을 가지고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허허로운 마음에 허튼 기대를 해 본다.

 

 

 

 

    시골집 마루에서 낙상하신 장모님께서 허리를 다치셔서 수술 후 저희 집에 와 계십니다. 수술하신지 며칠 지나지 않아 움직이기도 어려우시고, 통증도 많아 힘들어 하십니다. 아침에 일어나 장모님께 문안을 드리니 어젯밤 꿈 이야기를 하십니다. 장모님이 저희 집에 오신지 열흘이 넘어갑니다. 그동안 장모님께서 심심해 하실까봐 말동무도 되어 드리고 옛날이야기를 많이 여쭤봤더니 재미나는 옛날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제대로 기억나는 게 별로 없습니다. 이 글만 말씀하신 다음 바로 적을 수 있었는데 다른 내용은 시간이 지나버려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장모님께서 이런 저런 옛날이야기를 하실 때 녹음을 해볼까? 그렇게 녹음한 내용으로 장모님의 추억록을 한 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고민 중입니다.

 

이글은 장모님께서 구술하신 내용을 보탬없이 그대로 적으려고 노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