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으이그 이놈의 주둥아리

그루 터기 2021. 10. 20. 13:24

    허리를 수술하셔서 우리 집에 와 계시는 장모님께서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체면치레의 말들을 하신다.

“내가 여기 오지 않았으면 황서방이 편할텐데”

“내가 아프지 않은 몸으로 왔으면 황서방이 덜 답답할텐데”

“이 만큼 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황서방이니까 하지” 이런류의 말씀을 계속 하신다.

 

     수술한지 오늘이 13일 째이신데 며칠 전부터 벌써 한 달이 넘었다는 말씀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신다. 달력을 가져다 드리면 정확하게 날짜를 기억하고 계신데도 계속 같은 말씀을 하신다. 기억을 못하셔서가 아니라 오래 있어서 미안하다고 하시는 말씀이리라. 약 드실 때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고 하신다. 병원에서 처방 받은 한 달분 약이 아직 반도 못 드셨는데도 한 달이 넘은 것 같다고 자꾸 말씀 하신다.

 

    주방 쪽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 나도 “난 안 먹는다.” 하신다. 식사 시간에 밥 한 공기를 뜨면 반 공기를 드시고, 밥 반 공기를 뜨면 그 것의 반을 드시고, 두 숟가락 정도 뜨면 한 숟가락 정도만 드신다. 사과나 배, 그리고 감도 두 쪽을 드리면 한 쪽만 드시고, 땅콩도 몇 개를 드리면 반만 드신다.

입맛이 없으시기도 하시겠지만 환자가 밥만 많이 먹는다는 흉을 볼까. 걱정하는 맘도 있으신 것 같다. 제가 “환자는 식사를 잘하시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셔야 빨리 낫는다.”고 말씀 드리면 “많이 먹었잖은가?”를 반복하신다.

 

    오래 전부터 오른 쪽 무릎이 좋지 않아서 걸음이 불편하셨는데 이번에 왼쪽 발뒷꿈치까지 다치셔서 걷기가 불편하시다. 화장실을 다녀오실 때에도 많이 어려워하신다.

   그런 장모님께서 시골에 혼자 계시려고 내려가신다는 말씀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신다. 시골집은 마루와 마당의 단차가 높아 내려가시기도 어렵다. 이번에도 마루에서 내려오시다가 굴러서 허리도 다치고 다리도 약간 다치셔서 불편해 지셨다. 화장실도 실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당 끝 푸세식 화장실이다. 쭈그려 앉지도 못하시는데 어떻게 화장실을 다니실지 생각도 하지 않으시고 다만 딸 내 집에서 탈출하시는 것만 생각하신다.

 

    장모님께서는 ‘남아선호’ 사상이 무척 심하시다. 6대 째 독자로 내려온 집안에 시집오셔서 위로 딸을 셋 낳고 아들 둘을 낳으셨다. 그리고 막내로 또 딸을 낳으셨다. 딸들은 출가외인이라고 딸과 사위는 남이라고 생각하신다. 아들 집에서는 같이 살아도 딸들 집에선 이틀을 넘기지 않으셨다. 6개월 전 똑 같이 마루에서 굴러 허리를 다치셨을 때도 우리 집에 오셔서 병원가기 전 하루와 병원에서 퇴원하시고 하루 계셨다. 가까이 사는 둘째 딸 집에서도 하룻밤 만에 좀 더 계시라는 딸과 사위의 만류에도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이번 사고도 아들집에 계시지다가, 가시지 말라는 만류에도 고집 부리시고 시골집에 내려가셨는데, 이틀 만에 똑 같이 마루에서 굴러 떨어지셨다. 말씀으로는 잘 안보여 마루로 헷갈려 잘못 디뎠다고 하셨지만 아마도 오른쪽 다리의 힘이 없으셔서 헛짚으신 것 같다.

    수술은 하셨는데 지난번 보다 더 심하시고 왼쪽 다리까지 다치셔서 움직이기가 더 어려우시다. 다치신 허리도 벌써 세 번째다. 첫 번째가 2번 요추, 지난번이 1번, 이번이 4번 요추이다. 연세가 많으시다보니 그냥 밀리거나 디스크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뼈가 으스러져서 약물을 투입해서 굳혔다. 의사선생님 말씀을 그대로 옮기면 “뼈에 시멘트를 합니다.” 이다. 그러니 아무리 시술이라고 하더라도 며칠 만에 완전히 회복될 수 없고, 이번엔 왼쪽 발목도 충격에 통증이 있어서 아직까지 걸음도 잘 못 걸으신다.

    이런 장모님께서 드시지도 잘 않으시고, 꼭 가시겠다고만 하시니 마음이 답답하다. 이번에 가시면 다시 우리 집에 또 오실 일이 있으실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장모님이 심하게 하시니까 가끔은 일부러 정을 떼려고 하시는 게 아니신가 생각하다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 같아 깜짝 놀란다.

 

 

    벌써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아침에 드린 배와 감 두 조각씩, 포도 몇 알과 삶은 밤 두 개도 그냥 있는데 점심을 준비해 드리면 또 “나는 안 먹는다. 이것만 해도 된다.” 하실 건데 뭘 해 드려야 좋아하실지 걱정이 다. 아내가 출근 할 때 준비해 둔 부추전을 드려야 하나? 처제가 사 가지고 온 빵을 전자렌지로 데워서 드려야 하나? 그래도 아침에 조금 드시던 소고기무국에 밥을 드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벌써 10일 넘는 기간 동안 주고받던 대화인데 아직도 장모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럽다.

 

    이글을 쓰다가 점심을 차려 드렸다. 예상했던 대로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또 말씀 하셨다. 그래도 과일만으로는 점심식사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처제가 올 때 사온 빵이 부드럽고 드시기 좋을 것 같아 작은 조각 하나 드렸더니 “난 안 먹네. 자네나 먹게” 하신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드시기 싫으면 드시지 마세요.” 라고 하고 말았다.

 

 

‘으이그 이놈의 주둥아리’

 

 

난 언제나 철이 들려나.

부모님 네 분 중에 유일하게 살아계신 장모님을 쳐다보는 내 마음이 답답하고,

장모님의 건강이 걱정된다.

식사를 하셔야 약을 드실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