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부지런히 일하면 부자?? No!!

그루 터기 2021. 10. 18. 14:07

<부지런히 일하면 부자? No>

 

          오늘 아침 4명의 친구가 하는 단톡방에 절친 권지점장(지점장을 하고 퇴직을 했는데 지금도 우리는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이 하로동선(夏爐冬扇)이란 글을 올렸 줬습니다.

글 중에 ‘맑은 아침이슬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고,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됩니다.’라는 구절이 있어

‘맑은 이슬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고,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사람이 먹으면 부자가 된다.(새벽에 일찍 일어나 논밭에 나가 부지런히 일하면 부자가 됩니다.) / 그런데 진짜 그런지 모릅니다.’라고 답을 했더니

친구가 <부지런히 일하면 부자? No> 라는 톡을 보내 왔습니다.

이 톡을 보고 내가 말한 ‘부지런히 일하면 과연 부자가 되기는 하는 걸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또 ‘부자’란 무얼까도 같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이슬을 먹고 새벽같이 논밭으로 나가서 일을 하면 부자가 된다.’는 말은 요즈음에도 맞는 말일까? 그게 맞지 않는 말이라면 부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식에게 고생이나 하라고 거짓말을 하셨나? (요즈음 뉴스에 나오는 대장소장이야기만 들으면 금방 아닌지 알겠는데 자꾸만 헷갈리는 건 어쩐 일인지)

 

          저의 처갓집은 영주의 시골마을입니다. 처갓집 동네에 젖소 농장을 오랫동안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어릴 때부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났고, 어릴 때부터 정말 열심히 일하셔서 지금은 시골에서는 부자 소리를 듣는 꽤 큰 젖소농장을 하시고 계십니다. 권지점장이 어릴 때 학교가 끝나면 신발을 벗어 양손에 들고, 집으로 달렸다고 하던데 이분도 남들이 안볼 때는 고무신을 벗어 들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아예 신발을 벗고 일하러 다니셨습니다.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일하러 나가 날이 어두워져 도저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일하십니다. 달이 뜬 어스름한 시간에 논가에 누군가 허리를 굽혀 움직이는 게 보여 “거기 누구세요?”하고 물어보면 틀림없이 이분 이셨습니다. 이분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경우도 거의 없고, 평생 일하기 위해서 태어나신 것처럼 눈만 뜨면 일만 하십니다. 70대 중반을 넘기신 지금에도 꾸부정한 허리에 불편한 다리 때문에 신발을 질질끌면서 젖소농장에서 많은 젖소를 기르며 죽자고 일만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도 많이 벌고 두 딸들을 잘 길러 시집도 잘 보냈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이런 부지런한 분이시지만 평생 일하시는 것만 배우고, 씻는 것에 대해서는 못 배우셨는지, 아니면 씻는 시간이 아까우신지 청결에 대해서는 조금 소홀하여 젖소농장 뿐 아니라 본인이 입으시는 옷도 깔끔하지 못하십니다. 농장에서 일을 하시기 때문에 작업복에 소똥이 묻는 것은 당연한데 그 소똥 묻은 옷을 입고 소똥 묻은 신발을 신고 집까지 오게 되고, 방문 처마밑에 옷과 신발만 매미가 껍질 벗듯 벗어두고 집으로 들어가니 평상시에도 온 집안에 소똥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납니다. 계속 농장에서 일을 하시는 본인은 냄새에 익숙해 잘 모르지만 이웃이나 손님이 오면 대문 밖에서부터 코를 잡아야 할 정도입니다.

 

          저도 가끔 처갓집을 다녀오다 동네 어귀에서 뵈면 인사를 드리게 되는데 영락없이 소똥 냄새에 인사만 간단하게 하고 얼른 자리를 피하게 됩니다. 처갓집 동네 분들이지만 모두 잘 알고 인사를 드리는 것은 아니며, 이분은 저하고도 작은 인연이 있으십니다. 이분의 부인께서 저의 큰 형수님과 고등학교 동창이면서 절친이라 결혼 초부터 처갓집에 갈 때 마다 꼭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활달한 성격에 말씀도 잘하시고, 배움이 큰 멋진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진 세월을 피하지 못하시고, 파킨슨병으로 고생을 하고 계십니다. 얼마 전 다녀오신 형수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간병인이 없으면 식사도 못하시고 화장실도 못가시고, 정신만 멀뚱멀뚱 하시다고 하셨습니다. (형수님 표현으로 입만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만 잘하고, 집안일에는 전혀 소질이 없으신 그분은 부인의 뒷바라지는 고사하고 식사하고 숟가락도 씻지 않는 사람이라 싱크대에 그릇이 산더미가 되어도 그냥 두니 집안이 엉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시는 도우미 아줌마도 소똥 묻은 옷을 입고 들어서는 아저씨한데 기겁을 하고, 월요일 아침에 싱크대에 수북이 쌓인 그릇들을 보고 한숨을 쉬고 계십니다.

           결혼하고는 자주 오던 사위는 찾아오지 않은지 오래고, 그나마 딸들도 어쩌다 한 번 찾아오니 동네 사람들이 “부모가 죽으면 많은 재산 차지하려고는 내려오겠지”라는 비아냥거림을 하기도 합니다.

 

 

          그 분은 새벽 일찍 이슬을 먹고 부지런하게 일해서 부자가 되셨습니다. 시골에서 꽤 부자입니다. 젖소 농장이 잘 될 때는 한 달에 수 천 만원씩 벌었고, 지금도 그보다는 못 미치지만 수입이 상당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분이 부럽지 않습니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소똥 묻은 옷을 입고, 지저분한 손으로 고구마를 먹으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행복이라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행복이 아무리 주관적이라고 하지만 저한테 그런 모습의 행복이 온다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같으면 당장 농장을 때려치우고, 부인을 깨끗하고 경치 좋은 곳으로 옮겨 여생을 보내겠습니다. 돈도 있습니다. 그러나 쓸 줄 모릅니다. 어릴 때부터 돈 버는 법만 배웠지 돈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나 봅니다. 아니 돈은 쓰면 못 버는 것으로 배웠나봅니다.

 

 

          어쩌면 저도 쓸 줄 모르는 사람 중에 하나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저도 남의 이야기라고 쉽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갑부였던 현대의 정 회장님이나 대한항공의 조회장님도 돌아가실 때 자식들 싸움만 남기고 가셨습니다. 돈 한 푼 못가지고 가면서 말입니다. 그런대도 저는 그놈의 ‘돈돈’하면서 삽니다. 바보가 이런 바보가 없습니다. 머리는 아는데 마음이 되지 않습니다.

 

          백수 일 년이 지났습니다. 은퇴하면 하고 싶은 일하고, 여행도 많이 하고, 먹고 싶은 거 찾아다니며 먹겠다고 계획을 세웠었는데 단 한 번의 여행도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보입니다. 당장 수입이 따로 없어서 좋아하던 골프도 거의 안 나가고 있습니다. 친구도 몇 몇 친구들만 가끔 만나지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코로나 때문이라고 핑계 대면서 말입니다. 정말 코로나 때문일까? 일부는 맞는 말이지만 일부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일하는 법만 배웠지 노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젊었을 때 남들보다 취미 생활도 많이 했고,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 해 봤다고 자부하는 사람인데도 이러고 삽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시간 날 때마다 대한민국 은퇴자의 80% 이상이 한다는 건강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등산을 다니거나 냉난방이 잘 된 도서관을 열심히 다니거나 일겁니다.

 

 

           오늘 평생 일만 열심히 하다 부인은 파킨슨병에 걸리고, 본인은 다리를 절며 지금도 일을 놓지 못하는 그 분을 보며 저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부자가 뭔지 행복이 뭔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점심에 장모님께서 좋아하시는 피자 한 판을 시켰습니다. 피자를 시켜먹는 일이 거의 없는 저라서 주위에 어디에 피자집이 있는지. 어떤 피자가 맛있는지 몰라 잠깐 집에 다니러온 큰 며느리에게 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피자값을 며느리가 냈습니다. 돈은 며느리 지갑에 있었지만 내가 썼으니 그건 내 돈입니다. 주머니 속 지갑에 있는 돈이라도 지금 쓰면 내 돈이지만, 쓰지 않으면 결국 남의 돈입니다. 내 주머니에 있다고 내 돈이 아닙니다. 내가 써야 내 돈입니다. 돈을 많이 모았다고 부자가 아닙니다. 돈을 쓸 때가 부자입니다. 나를 위해 써도 부자이고, 남을 위해 써도 부자입니다. 나는 오늘부터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행복하고 싶습니다.

 

'돈도 아름답게 쓰면 부자 중에서도 멋진 부자가 틀림없습니다.'

 

 

 

2021. 10. 18     찬바람이 부는 오후에 그루터기 황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