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김원희,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 버렸지 뭐야』, 달 출판사, 2020

그루 터기 2021. 11. 17. 00:42

김원희,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 버렸지 뭐야, 달 출판사, 2020

 

 

외국에서 죽으면 돈이 든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에는 그것도 준비해 두면 간단하다. 자필의 화장 승낙서를 휴대하고 다니면 된다. 그렇게 하면 어느 나라에서건 나를 화장하여 유골로 만들어 준다. 유골이라면 운송비도 그다지 들지 않는다. 항공 회사가 싼 가격으로 작은 상자에 넣어 일본으로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소소노 아야코, 리수 출판사

 

해외 자유 여행이란 멋스러운 단어가 주는 풍족함 이상으로, 내가 그 어려운 행위를 스스로 하고 있는 것, 그렇게 그리스란 나라에 와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그 행위 자체가 더 만족스러운 것이다. 내가 나이 듦에 있어서 무기력하지 않고 젊은이들처럼 해낼 수 있는 것, 그 긍정적인 마인드와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 노년이기에 획득할 수 있는 특별함.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나이 들어 여행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몰랐던 세상을 보려가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내가 살아온 세상과 내가 지나온 시간을 보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외국에서도 사람 구경은 재밌다. 세상엔 별사람들이 다 있다. 그 유명한 에펠탑 앞에서도 에펠탑보다 그 앞에서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는 또래의 노부부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어깨를 온통 드러낸 것도 모자라 젖꼭지가 보일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노천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면, 저 노인네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를 가늠하려 한다.

 

산다는 것은, 돈을 번다는 것은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참 힘든 일이구나. 이미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던 만고불변의 진리에 또 한번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의 무지를 당당함으로 무장하기도 하고 뻔뻔하게 받아들일 줄도 안다. 설령 상대의 실수라 하더라도 이렇게 웃으며 넘어가는 지혜로움도 있다. 다툼이 생겨 서로 떨어질 경우, 낯선 나라에서 혼자라는 것이 얼마나 감당 못할 외로움인지, 불안스러운 환경인지 알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혼자가 두렵다. 젊었을 때는 혼자, 고독, 사색, 그런 멋진 낱말들이 그립지만 노년이 되면 그런 것이 얼마나 두려운 낱말들인지 알게 된다.

 

‘Book, 예약하다그 위대한 단어를, 위대한 나이 60이 되는 해에 알게 되었다.

 

부산의 촌스러운 할매가 유난히 러시아의 소녀들에게 이토록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위대한 한류 덕분이었다.

 

할머니, 조심하고 건강하게 잘 다녀요!’

마야는 거듭거듭 염려 섞인 인사말을 준다. 그들은 영어 한마디도 할 줄 모랐고 우리는 러시아를 한마디 못한다. 오직스바시바이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말을 알아들었다. 참된 감정이 통하니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서너 번 메일을 주고 받았. 그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못하고 우리는 러시아어와 영어를 못한다. 구글 번역기를 돌렸다. 그들도 구글 번역기를 돌리는 듯했다. 한국어로 도착한 메일은 어순도 뜻도 이상했지만, 나는 모두 이해했다. 그들도 내가 러시아어로 보낸 메일을 그렇게 이해했을 것이다.

 

동네가 참 예쁘다. 나중에 내려올 때 할배 집에 한번 찾아가볼래? 커피도 한잔 얻어 마시고 오자.”

그라다가 붙잡히면 우짤라꼬~”

그 김에 눌러앉아 살아뿌지 뭐~”

나이를 먹으면 마음의 자물쇠가 아무 곳에서나 열린다.

 

순간 광장은 로맨틱한 공연장이 되었다. 딸과 나는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서 그 신학생들께서는 지금쯤 모두 신부님이 되셨을까 궁금해 한다. 황홀과 행복, 잊히지 않는 추억거리는 자유로이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몫이다.

 

모두 한국전쟁 즈음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후로도 어렵고, 어려웠던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이다. 이제야 이런 작은 여유로움이라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우리 모두 앞으로의 시간에 축복 있으라.

 

내 남은 모두를 걸 만큼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은 어떤 여행일까?

 

요즈음 자고 일어나면 몸이 예사롭지 않다. 딱히 어디가 아파서라기보다 전신이 피로하고 무력감을 느낀다. 순간순간 무력감이 퍼질러 누워 마냥 눈감고 자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키며 다음 여행을 구상하고, 망설임 끝에 티켓을 산다.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는 이 삶을 나는 어떤 형태로든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내 블로그의 이름은 할매는 항상 부재중이다. ‘할매는 파리 여행으로 부재중’, ‘할매는 일본 여행으로 부재중’, ‘할매는 러시아 여행으로 부재중등으로 나는 지금 집에 없음을 알리는 문패를 걸었다. 언젠가 마지막 그 시간이 왔음을 직감하는 날. 나는 할매는 천국으로 여행 중문패를 내걸 것이다. 그럼 내 아이들이 많이 슬퍼하지 않을 것 같다. 엄마는 여전히 멋진 곳을 여행중이구나. 할 것 같아. 이런 생각으로 아침의 무력감과 우울감이 싹 가셨다. 꿈이 있으면 그 두근거림만으로 인생은 살만하다.

 

나이 먹으면 다리만 떨리고 가슴은 떨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나봅니다. 80이 되어도 90이 되어도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가슴 설레고 슬픈 것을 보면 가슴 아프고, 좋은 글 읽으면 감동합니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가지 말고 가슴 떨릴 때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략)

다리 떨려도 좋고, 가슴 떨려도 좋고 다 좋은 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여행중이랍니다.

 

기찻길을 따라 걸을 수는 없어 버스가 달리는 넓은 차도로 나왔다. 걸을 만한 도로가 아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무려 한 시간 가까이 차도 옆 좁다란 길을 걸었다. 키 작은 동양 할매 다섯이, 그것도 주위에 집들도 없는 넓은 차도에서 나란히 일렬로 캐리어를 끌고 가니, 사람들 눈에는 요상한 그림이겠다.

도대체 저 할매들, 어디서 온 할매들이며, 어디로 가는 중인가?

 

한 친구가 독백한다.

여기 오니까 웬수 같은 영감탱이가 조금 생각나네.”

또 한 친구가 독백한다.

혼자 보기 좀 미안스럽네.”

그 말에 오래전 혼자가 된 친구도 한마디 덧붙인다.

아이고, 뭐가 그리 바빠서 이런 풍경도 못 보고 그리 빨리 갔노.”

웬수도 사랑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이런 추세라면 30년 후에는 10명도 안될 확률은 얼마일까? 혹시 그 자리에 영민한 강아지와 고양이가 앉아서 공부하고 있지 않을까? 사람의 아이들과 말이다. , 언어가 달라서 안되겠다. 그러면 사람의 아이들이 강아지와 고양이의 언어를 배우면 되겠다. 그러면 새로운 산업이 육성될 수도 있겠다. 견 어학원, 묘 어학원 등으로 말이다. , 내가 머누 앞서갔나?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인이 올라왔을 때 양보를 하지 않는 젊은 학생이 있어도)

학생들이 버릇이 없거나 좋은 교육을 못 받아서가 아니다. 학생들은 노인들 사는 이 세상 말고도 또 다른 세상(핸드폰 속의 세상)에도 그들의 터전이 있는 것이다. 그 세상은 참으로 매력적인가 보다.

 

이제 노년은 누구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이제는 자녀에게, 세상에 도움의 손길을 디개할 시대가 아니다. 다리가 아파도 묵묵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

 

설령 누군가가 나이든 그대를 모른 척하거나 적대시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그것은 그가 그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늙음, 그 육신의 추레함이 싫을 뿐이니까.

 

글쎄, 70쯤 되면 그냥 조금은 아파도 좋은 나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불편한 육신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새로 태어나고, 새로 만들어지고, 사용되어지고, 이용되어지고 그리고 노화된다. 그리고 노화된 것은 새로움으로 교체된다. 자연의 이치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 OO가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친구가 갑자기 죽었다는데, 그 표정과 무심함이 나에게는 좀 충격이었다. 한참 후에 겨우 대답한다. “원래 지병이 좀 있었다. 아이가.” 그 말이 모두다.

늙은 거다. 감성이 마른 장작이 되어 간다는 뜻이다. 아마 젊었을 때였다면, 아니 10년 전만해도 나서서 뭔가를 열심히 했을 것이다. () 이제는 촉촉했던 감성이 남아 있지 않다. 더러 남은 감성은 세월의 풍화 속에 건조해버린 것이다. 언젠가 나도 뒤까를 수밖에 없는 길이란 것을 수긍하고 있다.

 

나도 좀 늦게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했다. 뭐가 급해서 그렇게 빨리 세상 구경이 하고 싶었을까? 40년 정도만 늦게 나왔어도 저 TV 속에 내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며느리 빠진 밥상에서 오랜만에 아들과 둘이 오붓하게 앉아 밥을 먹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도 어머님이 며칠 집을 비우게 될 때 얼마나 홀가분하고 편안했던가. 왜 나는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집 비우는 것을 싫어하다는 선입견만 갖고 있었을까.() 영감도 모임에서 며칠 여행 다녀올 때, 혼자 가는 것이 미안한 듯 티를 낸다. 그러나 나는 내심 그 시간이 너무 좋다. 매사에 입장을 바꿔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내가 독서를 좋아한다. 책 속의 작은 공간 하나. 책 속에 묘사된 그곳의 하늘과 땅, 식당, 기차역, 사람들, 은밀한 사랑과 모험, 그곳은 어떨까? 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게 하고, 그곳을 동경하고 그곳으로 떠나는 꿈을 꾼다. 지친 삶르 위로해주는 시간이다. 그리고 어느 시간 그곳에 내가 있을 때 환희.

지금, 나는 건지섬, 환희의 순간에 있다.

 

다음 생에는 이곳에서 태어나도 좋겠다. 이 섬 울타리 안에서만 생을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밤하늘이 유난히 어둡고, 별이 유난히 반짝이는 동네, () 왜 이 생각이 이 나이에서야 드는지. 좀더 악착스럽게 일하고 벌어서 자식들 잘 먹이고 잘 공부시키고, 좀더 큰 집에서 남들 다 하는 거들을 하고, 그런 만큼만 살자. 하며 열심히 산 시간이 갑자기 부질없어진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짧아진 내 생의 시간뿐인걸.

 

오늘 영감은 서울에서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있다 하여 새벽에 나갔다. 물론 나 잠들 때 혼자 나갔다. 버스에서 아침식사를 줄 거라고 했다. 아침잠이 없는 영감은 내가 잠든 사이에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다. 공복을 못 견디는 영감은 아침 일찍 혼자 토스트를 해서 먹는다. 자신의 아침 배를 채우겠노라고 마누라를 일찍 깨우는 것은 늙은 아내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그 정도는 상식으로 알아두어야 졸혼에 이르지 않는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있다. 그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냉장고에서 떡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녹여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아침을 때운다. 새삼 생각한다.

늙으니 참 편하구나.’

 

멋지지 않은가? 100살이 되어도 캐리어를 끌 수 있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며, 자기의 일을 한다는 것이. 설령 허황된 꿈이어도 좋다. 꿈꾸는 그 순간도 삶의 연속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