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정석대님의 『이바구』중 한 꼭지

그루 터기 2021. 12. 25. 05:35

년말 보내면서 막바지 독서에 잠을 설칩니다. 

조금 무리한 독서를 했더니 시력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안과에 가서 여러가지 안과질환에 대한 검사도 했습니다. 

다른 질병은 없었지만 시력이 많이 나빠져서 안경도 2개 새로 맞추고, 독서량도 조금 줄이려고 합니다 

금주하는 사람들이 년말은 송년회다 뭐다 해서 술 먹어야 할 일이 많으므로 새해 아침부터 금주를 하겠다고 하듯이

나도 년말까지는 읽고 싶은 책 실컷 읽고 새해부터 독서량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오늘부터 7일 동안 빌려온 스무권의 책을 (다 볼수 있을지 모르지만 ) 보고 반납하면 내년 부터는 정말 한 두 권만 빌려와서 천천히 천천히 읽어야 겠습니다.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하지만 바쁜 중에 정석대님의 『이바구』 를 필사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몇 꼭지만 필사를 했는데 그중  <바람 이야기>를 올립니다.  문장하나하나의 표현이 맘에 쏙들어 서너번을 다시 읽은 곳입니다. 내가 모르던 단어가 많은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생각나지 않던 단어들이 수두룩 합니다.  어린 시절 고향의 모습을 보는 것 처럼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필사 정석대 수필집 이바구

 

<바람이야기>

 

차가운 삭풍이 살바람이 되어 대숲에서 머무르는 때는 봄의 처음이거나 겨울의 막바지다. 인동초 이파리를 끈질기게도 괴롭히던 칼바람이 힘을 잃을 때쯤 새각단 교회의 맑은 종소리 속으로 봄은 쭈빗거리며 찾아온다. 봄을 몰고 온 훔풍이 꽁꽁 언 보리밭 위를 더듬고 지나가면 대지는 비로소 참았던 숨을 내쉰다.

삼라만상이 잠에서 깨어나는 이때가 되면 어쩌다 텃새가 되어 버릴 갈까마귀는 흔적도 없이 숨어 버린다. 어느덧 솔바람은 꽃바람이 되었다. 싣고 온 봄 향기를 소리 없이 내려좋은 중에 미처 강을 건너지 못한 꽃샘바람이 백양나무 사이로 기웃거린다. 놈은 양지바른 곳에서 성급하게 올라온 새싹 이파리를 우롱하고 해산한 산모처럼 겨우 힘을 차린 아지랑이 까지 걷어가는 봄의 훼방꾼이다. 놈은 기어이 벚꽃 비를 뿌리고 은백양목 꽃몽우리도 예외 없이 파괴시킨다. 이때 우리는 심한 우울증을 앓는다. 슬퍼질 이유가 분명해 졌다.

노고지리 소리가 신록의 고요를 깨우며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가 신방을 차리기에 바쁠 때 노파의 삭신을 쑤시게 하던 샛바람은 힘을 잃는다. 밤새 불던 비바람에 목련이 져 버린 새벽의 풍경은 때론 우리를 절망 속으로 던져 넣고 우리는 잔인한 자연 앞에 버려진 헌 종이 짝처럼 외롭다. 그래서 토마스 엘리엇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꽃 지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그 꽃을 지게 하는 것은 샛바람이다.

 

화창한 날에 부는 명주바람은 가죽나무순을 여물게 하고 안개 바람에 우두둑 풋살구가 떨어지면 약삭빠른 아이들은 필봉 할매의 눈을 피해 살구를 주워서 도망을 치곤했다. 날쌘 놈은 주머니가 제법 불룩하다.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던 길이도 두어 개를 줍고 나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씽긋 웃는다. 아이들에게는 넉넉한 늦봄이다.

닉은 바람이 지나는 청보리의 아픔은 샛바람 탓일 게다. 청보리는 말아 올린 삼베 바지 속의 구릿빛 장딴지와 함께 아버지의 노동이다. 드디어 들길에 부는 바람은 기어이 봄을 지워 버리고 말았다.

 

삼복염천에 후덥지근한 열기가 대지위에서 사정없이 올라온다. 밭고랑을 고개를 박고 콩죽 같은 땀을 흘리던 농부는 앞산비알로부터 시커멓게 몰려오는 구름이 반갑다. 에누리 구름이 없다. 뿌옇게 묻어드는 구름은 종국에는 소나기가 되어 들판을 세차게도 유린한다. 농부는 굳이 비를 피하려 하지 않는다. 후줄끈 비를 맞고서도 얼굴에 희영릐 빛이 돈다. 사람이 살다가 이런 청량감을 맛보는 것이 몇 번이나 되랴 싶다.

 

소금쟁이가 고인 물 위를 걸어다니는 조용한 오후에 난데없는 바람 한 점이 들판을 훑고 지나간다. 태백준령을 넘어온 높새란 놈은 농부들에게 불청객이다. 꽃가루가 방금 떨어진 곡식의 이파리를 말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놈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호밀밭에 부는 벌바람에 금방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벌바람은 공없는 바람이라 말하지만 농부에겐 고마운 바람이다.

골짜기에서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시원한 바람은 여름 길을 떠난 나그네의 땀을 식혀주는 골바람이다. 이 골바람 한 점은 우리에게 무엇이랴! 그것이 맞바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생의 환희를 느낀다. 반대로 산봉우리에서 골짜기로 부는 사람은 산바람이다. 이 바람은 때로 아픔을 동반하기도 한다. ! 매몰차게 돌아서던 그 사람? 사랑했던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바람 같은 기억이 있다. 수도 없이 스쳐가는 이름도 번지도 없는 나그네 같은 바람 속에서 생과 추억은 무슨 의미일까? 바람 같은 것일까? 아니면 바람일까? 아픔이 많아도 그리운 것은 사랑인가? 얼마나 더 아파야 이 아픔의 끝이 보인다더냐! 바다에서 육지로 불어오는 바람에 끊어진 연인의 소식이 올까 섬처녀는 조갑증을 낸다.

 

늦여름 날 대청마루에 누워서 맞는 갈바람의 맛은 동치미를 마시는 듯 향수가 있다. 악착같던 강바람의 끝은 곡식이 모질어지는 여름의 마지막을 예고하고 뒷돌담과 장독대를 돌아서 들숨처럼 들어오는 바람은 추억을 몰고 온다. ! 귾을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바람 부는 날은 더욱 도진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설 때 얼굴에 와 닿은 마른바람 한 점에는 후끈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특히 타양에서 맞는 바람은 더욱 고독하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이별은 갈바람 같아서 더 아프다. 갈바람은 한 움큼의 그리움을 쏟아놓고 서늘바람과 건들바람이 합쳐져 곡식의 마지막을 여물게 한다. 곧이어 허수아비의 팔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대는 이미 가을의 한복판에 서 있다. 건들바람에 시골학교 운동회 날 만국기를 펄럭이면 사람들은 느긋한 행복감에 도취된다. 들에서 부는 바람 속으로 벼 익는 가을 내음이 실려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음력 10월 스무 날게 손돌 바람이 불면 가을은 이별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고 기나긴 겨울잠을 준비한다. 낙엽 지는 가로수 길을 걸을 때 우리는 모두 순례자가 된다. 기러기 무리가 날아드는 것을 보아야 비로소 농부는 호미자루를 씻는다. 아직은 당풍나무가 채 가을을 수습하지도 못했는데 느닷없이 진눈깨비와 함께 온 된바람은 급기야 살을 파고드는 고추바람으로 옮겨가고야 만다. 매운바람은 아픔이요, 저 혼자 소리를 내지 못하는 바람은 문풍지를 붙잡고서 귀신처럼 울고 잇다. 방향도 없이 해송 숲에 부는 겨울바람 소리는 고독의 최고 정점이다. 낯선 도시를 찾아든 이방인은 가슴속에 비수 같은 찬바람이 박힌다. 나그네가 되어 맞는 타향의 바람은 더 애달프다 구겨진 구두 뒤축에는 찬바람이 스며든다. 나그네는 원인모를 고독으로 잠을 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