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이놈의 층간 소음 , 나는 가해자. 이사를 갈 수도 없고....

그루 터기 2022. 1. 16. 17:12

   23개월 손자가 오늘 외갓집에 놀러갔다. 2주일에 한 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를 맞춰서 아들내외가 손자를 데리고 찾아간다. 외할머니의 손주사랑이 차고 넘쳐서 많이 보고 싶어하시기 때문이기도 하고, 거기는 단독주택에 반려견도 있어서 손자도 많이 좋아한다.

 

   손자 이름은 시언이다.

   시언이의 시자가 시()는 아니지만 시를 좋아하고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섣부른 생각을 할비는 해본다.

 

   시언이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할비다. 23개월의 손자는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단어를 아직 할미, 할비라고 한다. 시언이에게는 할비도 할미도 두 사람씩이다. 우리 두 내외와 수원에 사시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다. 두 할머니 할아버지를 언제 부터인가 비할비’, ‘비할미멍할비’, ‘멍할미로 부른다. 처음 듣는 사람은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데 손주 엄마인 며느리의 말을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집 거실에서는 김포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저공비행 하는 비행기가 꽤나 크게 보인다. 15개월 정도부터 비행기가 지나가면 좋아라 달려가 쳐다보곤 했는데, 그래서 비행기 할아버지라는 뜻의 비할비다. 아직 비행기라는 단어도 할아버지라는 단어도 발음을 못하고, 비할비는 한다. 수원에 계신 외할아버지는 멍할비다. 집에 반려견을 키우는데 손주가 가면 멍멍이라고 하면서 잘 논다. 그래서 멍할미, 멍할비다. 조금씩 커가면 동네 이름을 붙여 할아버지라고들 하는데 우리는 목동에 살고, 외할아버지는 수원 이목동에 살아서 가끔 웃으면서 일목동, 이목동이라 한다. 좀 더 크면 시언이가 일목동 할아버지, 이목동 할아버지 할거다.

 

 

   조용한 일요일 오후 거실 창밖을 내다보니 손주 생각이 난다. 거실에서 바라보면 손주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보이는데 주중에는 지금쯤 퇴원할 시간이다. 오늘은 외갓집에 놀러 갔으니 지금쯤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을 것 같다.

 

   우리집은 아파트라 어린이용 메트를 깔아도 층간 소음이 발생한다. 얼마전까지 가끔 어린이집을 끝내고 몇 시간 씩 우리집에 왔었다. 남자 아이라서 메트를 깔았는데도 꽝꽝소리가 아래층에 들렸나 보다. 아래층에서 두 번 올라 오셨었다. 한 번은 메트를 깔지 않았을 때였다. 걸어다니는 소리, 뛰어다니는 소리, 장난감을 떨어트리는 소리가 꽤 시끄러웠나봐다. 다음날 몇 십만원을 주고 큰 매트 네 장을 사서 거실 전체를 깔았다. 이제 괜찮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 또 한 번 올라오셨다. 매트가 없는 좁은 공간에서 한 두 번 뛰거나. 장남감을 떨어트려서 소음이 발생한 것 같다. 요즈음은 우리집에 놀러오지를 못한다. 손주를 잠시 봐줘야 할 일이 생기면 우리집에 데려오지 못하고 아내가 아들 집으로 가서 몇 시간씩 봐 주고 온다.

 

   집에 오면 할아버지하고도 같이 놀 수 있는데 요즈음은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놀아줄 수가 없다.

할머니가 가면 첫 번째 인사가 하비한단다. ‘할아버지는?’ 이라는 말이다. 영상 통화를 시작해도 첫 번째 하는 말이 하비다 내 얼굴을 보여 주면 허리가 뒤쪽으로 넘어갈 듯 웃으며 좋아한다그런데도 우리집에는 데리고 오기가 거시기 하다. 층간 소음 문제로 아래층과 자꾸 부딪히면 너무 불편해서다. 어쩌다 왔을 때도 꼼짝도 못하게 하려니 속상하다. 애들은 맘 놓고 뛰어 다니면서 커야 하는데 겨울에는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오늘은 단독주택인 외할아버지 집에서 강아지랑 신나게 뛰어 놀 수 있을 것 같다.

   “시언아! 오늘은 좋은 곳에서 마음 놓고 뛰어 다니고 놀아라

    그리고 내일 보자. 비할비가 시언이 보러 내일 너 집에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