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아버지 기일에 생각나는 '지공거사'

그루 터기 2022. 1. 16. 21:06

오늘이 아버지 기일입니다.  코로나로 4인이상 모일 수가 없어 멀리서 마음으로만 참석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이런 저런 생각을하다. 엉뚱한 지하철이 생각 났습니다. 

 

 

 

   요즈음 내가 지하철을 얼마나 이용하나 생각해 봤다.  지난 일년 동안 이용한 경우를 곰곰히 생각해 봤더니 몇 달에 한 번 정도 이용하는 것 같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이용할 것 같았는데 지나고 보니 몇 달에 한 번 정도, 일 년 해야 열 번이 넘지 않은 것 같다. 친구들 만나러 자주 나가고, 소주 한 잔하러 움직일 때마다 지하철을 많이 이용했을 것 같은데 일 년 결산을 해보니 별로 이용을 못했다.

 

   왜 이렇게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첫 번째는 단연 코로나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코로나로 인해 친구들 만나는 일이 거의 없고, 대부분 집에서 책을 보거나 취미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다.

   두 번째는 내가 자주 가야하는 코스가 지하철 보다는 승용차로 가야하는 김포나 파주, 천안 등이거나 차로 가면 5~10분 거리인데 지하철로 가려면 30분씩 걸리는 곳들이랑 좀처럼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게 된다.

   또 하나는 통풍이다. 통풍이 아니었으면 친구들 만날 때마다 술을 한 잔 해야 하기 때문에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를 이용했을 텐데. 통풍으로 술을 먹지 않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차를 가지고 가게 된다. 이래저래 지하철 탈 일이 별로 없다.

 

   나는 '지공거사'다.

   자주 이용하지는 않지만 공짜로 이용한다. 65세가 넘어가는 작년 4월에 서울시 어르신 교통카드를 발급받았다. 지하철 무임승차 기준이 65세인 것은 너무 낮으니 70 세로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꽤 된 것 같다. 100퍼센트 동의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65세는 말만 노인이지 아직은 건강하고 열심히 산다. 원만하신 분들은 능력도 된다. 나는 노인이라고 하면 화가 날 정도다. 젊은이들에게 밀리는 것도 많지만 아직은 젊은이들 보다 잘하는 게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

  지하철에서 노인석(경노석)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앉지 않았다. 젊어서는 내 좌석이 아니라서, 지금은 내가 아직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일반석의 빈자리가 있어도 웬만하면 서서간다. 차가 움직일 때마다 균형을 잡으려고 힘을 쓰면 운동도 되고 좋다. 이정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축복 받은 거라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불만이 많다고 들었다. 65세부터 공짜로 지하철을 타는 것도 결국 본인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다고 싫다고 한다

 

   언젠가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에서 부모님이 몇 살까지 살면 좋은가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예상을 빗나가는 63세였다.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지하철를 공짜로 타는 '65세는 노인도 아니라'고 무임승차를 반대하면서, 부모님은 63세에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니 그럼 난 어떡하라는 건가? 저들이 공부도 끝나고 취직도 하고 결혼도 했으니 이젠 짐이 되는 부모님들은 필요 없다는 이야긴가

 

   내 아들들은 아니겠지 생각한다. 참 바보 같은 생각이다. 내 아들들도 설문 조사를 한 대학과 비슷비슷한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 취직하고, 결혼을 했다. 그게 현실이다.

 

   사실 나에겐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것은 별로 비중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두에도 이야기 했지만 일 년에 열 번 많아야 스무 번 정도 이용할까 말까인데 영향이 별로 없다. 요즈음 말도 많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1년 늘어난 것만으로 내 평생 지하철비의 몇십 배를 하고도 남는다. 그 걸 매년 내야한다. 수입이라고는 늦게 가입하여 100만원도 되지 않는 국민연금이 전부인데  그 돈으로는 생활비도 쉽지 않다. (1년에 국민연금 포함 수입이 1000만원 이상인 사람은 건강보험도 자식들에게 부양가족으로 올리지 못하고 지역가입자로 해야한다. 이것도 재산세, 자동차 등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 ) 답답할 뿐이다. 

 

   오늘도 아내에게 같은 말을 반복한다. 최근 들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다 쓰고 죽자” “바보처럼 살지 말고

아내는 말한다. “애들은내가 다시 이야기 한다. “애들은 우리보다 더 잘살아, 걱정 하지 마

   아마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공통 대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앞만보고 달려오고, 자식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나 이젠 놓아줘야 한다. 부모들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63세도 이젠 둘 다 넘겼으니 자식 걱정하지 말고 살자고 했다. 남은 인생이라도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살자고 했다. 그런데도 아내는 '아직' 이란다.

아직이 언제일까?

 

   오늘이 아버지 기일이다. 평생 자식들을 위하고 부모님을 봉양하시느라 단 한 번도 마음편하게 본인을 위해 살아보시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막내 아들의 결혼식도 보시지 못하고 급하게 가셨다. (68세에 돌아가셨다.) 1년만 지나면 아버지가 허무하게 삶의 끈을 놓으신 나이와 같은 나이가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35년이 지났다. 살아 계실 때 같이 한 햇수보다 제사를 모신 햇수가 훨씬 더 많이 지나갔다. 앞으로 아버지 기일을 몇 번이나 다시 맞이할 수 있으려나. 살아있는 동안 이 겨울을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으려나.

나는 아버지 처럼이 아닌 내 인생을 한 번 살아봐야 하는데.....

 

   큰소리 칠 일이 못된다.  후회하지 않기가 쉽지 않을 것 만 같다. 

 

 

 

 

 * 어제 쓰고 오늘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