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합정과 망원사이』, 유이영, 은행나무, 2021

그루 터기 2022. 4. 6. 05:14

합정과 망원사이, 유이영, 은행나무, 2021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합정동과 망원동, 한 번 가 보고 싶다. 찬찬히 읽는 동안 우리 동네도 합정동과 망원동 같은 곳이 많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다만 내가 모르거나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을 뿐이다. 맛집을 골라 다니는 나에게는 한 집에 필이 꽂히면 옆도 돌아보지 않는 나쁜 습성이 있다. 조금 다른 집들도 여기저기 다녀보고 판단하면 더 정확하겠지만 나는 내가 싫어하면 다시는 생각도 나지 않게 지워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기준에 맞으면 오직 직진만 한다. 가끔 너무 오지랖이 넓게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눠서 탈이긴 하지만 말이다. 큰 부담 없으면서도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보다는 조금 젊은 분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저자 소개

유이영

신문기자로 9년째 일하는 중이다. 사회부, 여론 독자부, 주말 뉴스부, 사회 정책부를 거쳐 경제부에 있다. 7년간 서울 마포구에서 서교동, 연남동, 합정동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프로 혼살러이웃들과 한강을 달리고, 좋은 책을 돌려보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삶의 뿌리가 깊어졌다. 토박이들의 넉넉한 이야기와 2년 짜리 방에 사는 젊은 1인 생활자들의 일상이 겹치는 동네에 대한 애정이 크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시공간을 기록해두고 싶어 온라인에 동네 얘기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글쓰기와 달리기 주말 모임 쓰고 달리고를 꾸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이 있다

 

 

독서 메모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역 중소 도시에서 자랐다. 공간에 관해서 어린 시절 가장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과연 여의도는 얼마나 큰가하는 것이었다. 장소를 나타내는 거의 모든 비유에는 여의도의 몇 배따위의 수식이 붙었는데, 초등생이던 나는 대체 이 여의도란 곳이 얼마나 거대한 곳인지 -주로 여의도의 몇 배나 된다.’는 식으로 쓰였으므로 무지하게 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교과서나 뉴스에 그러한 표현이 나올 때마다 묘한 소외감이 들었다.

 

누군가 같이 뛰었으면 좋겠다. 만약 같이 뛰는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성형의 사람이라면 굳이 사라들과 함께 뛰려고 멀리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서너 명 정도 모여서 동네에서 출발해 뛰는 모임을 상상했다. 한바탕 뛰고 나면 잡생각이 정리됨과 동시에 엉뚱한 일을 벌이고 싶어진다. 그리하여 나의 동네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자유롭고 느슨한 모임이지만 혐오발언, 차별적 언행에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합니다.(Good!)

() 그러던 중 우연히 한 플랫폼을 알게 됐다. 관심사를 기반으로 이웃끼리 이어주는 서비스인데 가입하려면 집 주소가 나온 택배 송장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야 한다. 하루의 승인 기간을 거쳐 가입이 됐다. (Good!)

 

이 집에서 지난 3년간 접혀 있는 날개 한쪽을 펴본 적이 손에 꼽는다. 6인용 테이블은 당근마켓에 내놓고 작은 원형 테이블을 살 작정이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이 테이블의 쓸모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랜드 프레마 앞에선 나 역시 어려서 마냥 기특하고 귀여워 보이는 특권을 내려놓게 된다. 너무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예의를 갖추거나 조언을 구하기보다는 수다 한번 제대로 떨고 싶다. 말동무가 되어 살아온 예기를 들어드리기 보단 내 얘기도 하고 하하호호 하고 싶다.

 

남자가 자취하면 짠하고, 여자가 자취하면 쉬워 보인다는 인식이 이리 파다하겠는가. “남자가 자취하면 남자가 꼬이고, 여자가 자취해도 남자가 꼬인다같은 말에서도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자취는 결혼 전 임시로 거쳐가는 미성숙한 생활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취는 삶의 중요한 나사 하나가 빠진 미완성의 생활양식이라는 어감을 풍긴다.

 

한 페이지에 걸쳐 빼곡하게 자기 얘기를 풀어놓은 한 여자의 사연에 눈길이 머물렀다. () 친언니가 했을 법한 따뜻한 위로와 현실적인 조언이 종이 위에 차고 넘쳤다. 가장 맘에 든 문구는 이것이었다. 걱정하지 마, 이내 예쁜 꽃을 피울 테니까.”

 

사람들은 빨래만 하러 여기 오는 게 아니었다. 빨래방은 룸메이트를 구하는 복덕방도 됐고, 피로를 풀 수 있는 안마 의자도 갖춘 휴게실도 됐다가, 외로움을 슬며시 고백하고 가는 상담소도 됐다. 다들 묵묵히 제 빨랫감만 쳐다보다 가는 듯했는데 슬쩍 몇 줄 남기고 가는 사람들을 상상하니 웃음이 삐져나왔다.

 

무언가를 세탁하는 것과 내 속의 응어리를 게워내는 행위에는 왠지 상관관계가 있을 것 같다. 나쁜 얘기를 들 으면 귀를 털어내는 시늉을 하듯이, 마음 구겨진 날엔 내일 입을 옷 다림질하면 조금은 후련해지듯이 옛 아 낙들이 방망이로 빨랫감 팡팡 때리고 서로 맞잡고 쥐어짜 물기 쪽 빼면서 뒷담화 하면서 얼마나 통쾌했을까. 지난한 가사 노동 현장이었겠지만 속 풀리는 효과가 없진 않았을 테다. 경쾌한 방망이질 소리는 없지만 빨래방의 웅웅 거리는 세탁기 소리가 묘한 안정감을 준다.

 

신기하게 안 보이던 색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늘이 파랗다는 건 편견이었다. 몇 년 전 오징어먹물파스타를 먹으러 갔을 때 셰프가 이런 말을 한 게 떠올랐다. 까만 파스타를 처음 드셔보는 분들은 짜장면 맛이 난다고들 하세요. 세상에 검은색 음식이 잘 없잖아요.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 중에 까만 건 짜장면 뿐이었으니 뇌가 깜빡 속은 거예요. 그래서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눈을 감고 드셔보라고 권하기도 해요.”

 

성인이 취미는 모름지기 칭찬받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의사 할아버지는 여유 있는 웃음을 짓더니 요즘 좀 피곤했어요?” 하고 물었다. “. 많이요.” 나는 수액 한 통만 놔달라고 덧붙였다. 그는 다 맞으려면 한 시간 정도 걸리고 5만 원인데 괜찮아요?”라고 되물었다. 약값 걱정해주는 의사라니 오지랖이 싫지 않았다.

 

여성의 몸에 유별나게 반응하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기괴한 발명품은 계속 나올 것이다. 여성들도 조금 덜 불편해졌을 뿐인 상품들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겠지. 아무리 인생 브라찾아봤자 노브라만 못하다.

 

나는 그날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여성 세 명 모두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음을 알아챘다. 서로가 알았을 테지만 딱히 이를 입에 올릴 이유도 없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듯한 분위기에 나는 동지애를 느꼈다. 그 자리에 있는 남성 또한 이에 대해 눈길을 주거나 언급하지 않았다. 그 무리 안에서 해방감과 편안함, 안전감을 느꼈다. 어떤 희망찬 미래에 뚝 떨어진 듯했다. 여성의 몸에 무심한 사회라면 이렇지 않을까 상상해봤는데 유쾌하면서도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한 동네 친구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트렌드에 관심이 많다는 가설을 냈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금만 눈 돌려 다른 곳으로 터를 잡아도 되는데 굳이 합정과 망원에 딱 붙어서 높은 월세를 감당할 리 없다는 거다. 일리 있다고 본다.

 

불과 한두 해 사이에 동네 골목길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어디를 가든 전동 킥보드가 발에 챈다. 전봇대에 삐딱하게 기대어 서 있기도 하고 타인의 시선 따위 의식하지 않는 커플처럼 저들끼리 애틋하게 몸을 엉긴 채 공공장소를 점유한다. 고고하게 서서 일방적으로 보행자의 양보를 바라며, 스마트폰 보느라 고개 푹 숙이고 걷는 이들을 쏙쏙 골라 나자빠지게 골탕을 먹이곤 한다. 주차비도 월세도 비싼 이 도시 한구석을 떡하니 차지하고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으니 뻔뻔하기 짝이 없다.

 

안전한 주정차 구역을 정하지 않고 안 되는 곳 빼고 다 된다.’는 식의 면피 규정에 속이 터진다. 4차 산업혁명 분야가 위축되지 않도록 규제 네거티브 방식을 적용한 결과인데 보행 약자가 포함된 대다수 거주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일부 이용자 편의와 민간 업체 이익에 복무하는 게 미래 산업이라면 차라리 소 끌고 밭이나 갈겠다.

 

동네에서 생활하거나 일하는 사람들의 끼니를 책임지는 식당들이 있다. 식당보단 밥집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별미보다는 매일을 굴러가게 할 에너지를 채우는 한 끼를 파는 집. 때로는 기계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입에 밀어 넣는 바로 그 밥을 먹이는 집. 망원에 있는 한 생선구이집도 그러하다.

 

북세권 거주자(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표현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정보가 늦은 나는 이 표현을 보는 순간 맘에 쏙 들었다. 나도 어쩌면 양천도서관이 가깝고, 교보문고가 가까이 있으니 북세권 거주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북세권 참 듣기 좋다.)

 

인구 대비 서점 수가 가장 많은 동네라고 하면 모르긴 몰라도 이 동네가 손에 꼽히지 않을까. 골목마다 숨어 있는 작은 책방들을 발견하고, 또 거기서 추천받은 책을 사들고 오는 일이 이 동네 사는 큰 재미 중 하나이다.

 

자기 검열을 뛰어 넘는 글이 지니는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타인의 오독을 감수하고 어디까지 내 신념을 공개할 수 있는가, 그것이 기록으로 남고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내 생각을 부정하는 위험을 어느 선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가. 그 범위가 넓어질수록 나는 자유로워진다.

 

나는 쓰기 모임을 통해 전보다 덜 환멸하는 인간이 되었다. 혼자 썼다면 글에는 여전히 분노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을 테다. 한주 동안 쌓인 얘기가 밖으로 토해지고 다른 사람의 얘깃거리가 내 마음을 드나들면서 염세주의적인 태도가 많이 희석됐다. 타인이 고백한 문장에 수백 번의 ', , 큭큭'으로 감응하며 생긴 변화이다.

 

고수를 듬뿍 넣은 쌀국수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는데 울컥하던 감정이 꿀떡하고 위장으로 내려갔다. 정신없이 한 그릇을 비웠다. 역시 위가 따뜻해져야 마음도 가라앉는다.

 

음식이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순간들을 기억한다. 여기서 쌀국수를 먹다 보면 처음 보는 동네 주민들과, 사장님과 대화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 나는 이 쌀국수 트럭을 동네 친구 덕에 알게 됐고, 또 다른 동네 친구를 데리고 이 맛을 보여줬다. 대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음식을 소울 푸드로 친다. 나는 이렇게 동시대 고만고만한 생활 반경에서 동네의 정취를 나누는 이 음식을 내 소울 푸드의 범주에 넣고 싶다.

 

(가게 상호에) 왠지 이름 석 자가 앞에 붙으면 전문적인 냄새가 난다. 자기 제품에 얼마나 자부가 있으면 저렇게 이름을 내걸었을까 싶은 거다. 애 이름을 내건 상호 - 주로 ○○이네’ - 에서는 그저 가게가 잘되고 가정 평안하길 바라는 부모 겸 사장의 희망이, 지역 이름을 내건 상호에서는 치열한 원조 경쟁이 느껴지는데 주인장 실명 내건 상호에선 가게 주인의 옹골진 고집이 느껴진다.

음주 다음날은 반드시 속을 채우는 습관도 생겼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나절이 지나야 겨우 정신이 든다. 채운 것은 나의 위장인데 왜 머리가 맑아지는지 미스터리다. 오랜만에 술 약속 있는 날은 다음날 어떤 국물을 먹을지 설렌다. 진정한 페어링은 술과 안주, 그리고 다음 날 해장 음식까지 고려해야 한다.

 

합정동의 밤을 밝히는 이들은 할리스커피 합정역점으로 모인다. 프리랜서 많은 동네여서인지 밤늦게 일하는 이들이 자주 보인다. 줄 거나하게 마신 후 들어와 마저 남은 수다를 이어가는 무리들, 일하러 온 사람들, 그 틈에서 심야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들.... 대여섯 시가 되면 다들 첫차를 타러, 이른 아침을 먹으러 카페를 나선다. 카페인 들이키며 지난밤을 함께 새운 동지들이다. 2021년 초, 한달 넘게 동네가 을씨년스러웠다. 저녁 8시밖에 안 됐는데 예전의 새벽 2시 풍경 같았다. 홍대입구역 에서 합정역 방면으로 271번 버스를 타고 귀가하다가 그런 분위기의 상당한 지분이 불 꺼진 할리스커피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2층과 3층 불이 완전히 꺼진 모습을 처음 보았다1층은 아마도 포장 손님을 위해 불을 켜놓은 듯했다. 9시 이후 카페 영업이 중단되고 매장 내 취식이 금지되면서 합정역의 밤을 밝히는 등대가 꺼졌다.

 

그때만 해도 도둑 고양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는데, 어느새 그 말은 사어(死語)가 되다시피하고 길냥이라는 말까지 생기니 왠지 더 친근하다. 요즘은 길고양이도 아니고 동네 고양이라는 말을 쓴다는데 정말로 고양이까지 이웃의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개들도 섭섭하지 않을 장소들이 있다. 한동안 다니던 피트니스 센터 건물 지하에는 개 전용 피트니스가 있었다. 망원동에는 개 수제 간식을 파는 베이커리가 있더라. 이러다가 개스파, 개술집 - 술집까지는 아니지만 이미 개가 마실 수 있는 맥주가 있다고 한다. - 도 생기겠다. 했더니만 실제로 둘 다 있다!

 

견주들은 반려견이 혼자 있을 때 분리불안 때문에 힘들어 하는 등의 현실적인 이유로 유치원을 찾았다. 정말로 이제 반려동물도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상 - 반려견이 죽으면 부조하는 문화도 있다. - 어는 정도 인간의 관습을 따르는 일도 불가피해졌다. 그래서 개 팔자 상팔자, 묘 팔자 상팔자 기사는 어떤 레퍼토리인지 빤히 예상되지만 보게 되는 콩트처럼 느껴진다. (반려견이 죽으면 부조하는 문화라니... 이젠 사람이 죽어도 부조하는 문화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판국인데.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세상살이가 내가 이해한다고 되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안되는 게 아니니까.)

 

불꽃에 비하면 벚꽃은 평등한 편이다. 차가 있든 없든, 집 안에서 벚꽃이 보이든 안 보이든 누구든 밖으로 나와 벚나무 밑을 거닐어야 봄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비장애인 서울 주민인 나의 시각일 뿐이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같이 걷던 길목에 있던 요가원을 끊었다. 요가 후 상쾌한 기분으로 길을 걸어 나오는 경험이 쌓이면 그냥 요가원 가는 길이 되겠지. 사랑을 잃었다고 이 동네에 대한 애정까지 버릴 수는 없으니까, 나의 일상을 탈환해야 하니까, 집 앞을 나서는 용기를 놓을 수 없다.

 

노동하는데 휴식같이 느껴지는 시간이 있다. 라디오를 켜놓고 청소하는 밤이 그렇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타인의 수다를 들으며 쓸고 닦고 빨래를 개고 나면 마음이 정화된다. 온갖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에 나의 선택 은 마포와 서대문 일대에 송출되는 마포FM '마포구 동() 라디오'이다. 라디오 제작 교육을 받은 마포구 주민들이 동네를 주제로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요일별로 망원동, 연남동, 염리동, 서교동, 합정동 소식을 전한다. 만듦새 매끈한 공중파 라디오와는 다른 소박한 재미가 있다. 라디오와 수다 중간쯤 있는 방송이랄까.

 

그런 무지렁이 중 한 명으로서 이사를 결심했다가 패닉이 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소처럼 일하고 개미처럼 모으는 사이 집값은 가을철 메뚜기 뛰듯 올라버렸다. 지난 8년간 성실했던 나의 근로소득이 앞으로도 한동안 그러리라 믿고 대출을 일으켜 집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사회 초년생 때 가입해 놓은, 7년 만기를 앞둔 재형저축 통장이 이제 자기를 쓸 때가 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그때만 샀었어도하는 껄무새-살걸 팔걸 하며 과거를 후회하는 개인 투자자를 이렇게 부른다. - 가 되어 복기하니 나는 한 번도 구체적으로 내 집을 욕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년 단위로 서울을 ᄄᅠᆮᅟᅩᆯ아 산 게 10년이 넘어갔고 세입자로서의 고충만으로도 책 한 권을 더 쓸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내가 저것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여기는 것과 상상조차 않는 것의 차이는 컸다. 내 자산과 신용을 헤아려보고 각종 금융 제도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독립된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느꼈다. 삶에 자부가 착착 붙는 일이었다. 역시 지금 나에게는 자기보다 자가(自家)’가 더 필요하다.

 

아무 말도 안했는데 이미 나는 결혼 생각 일절 없는 독신주의자로 집주인의 괴롭힘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혼자 살 집을 사게 된 똑 부러지는 전문직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동거인이 생기자 새삼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집에 더 머무는 사람 눈에는 티끌 하나라도 더 보이기 마련이다. 상대 적 집순이인 나는 바닥을 보이는 샴푸를 신경 쓰는 일까지도 가사 노동임을 알게 되었다. 주거비의 상당 부분을 내가 부담하는데도 왠지 집안일도 내가 더 하는 것 같아 억울하고 야속한 마음이 울컥 올라오곤 했다.

 

동거 초기 3년은 몇 번의 대첩을 겪었다. 다툼의 이유는 생각나지 않고 깨달음만 남았다. 첫째, 집안일은 안 할 때 비로소 티가 난다. 고로 안 보이는 곳에서 상대가 나보다 더 많이 한다고 믿는 편이 낫다. 둘째, 상대의 습관을 수용하자. 고칠 수 없다. 셋째, 누구와도 같이 사는 건 고역이다. 사랑만이 그 고역스러움을 감수케 한다.

 

식사 약속 잡기 조심스러운 날들이 이어지면서 평일 저녁에 거의 집에서 밥을 해먹게 되었다. 이전엔 주말에 밥해 먹 을 때 비로소 쉬는 기분이 들었는데 언제부턴가 주말만큼은 나를 돌보는 노동에서 해방되고 싶어진다. 대체 우리 엄마는 어떻게 다섯 명 밥을 해 먹었을까 나 하나 먹여 살리기도 이다지도 힘에 부치는데.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 피서보다는 낭만이라며 에어컨 없는 바깥에 앉아 생맥주를 즐기던 아이캔 호프집도 이젠 없다. 맞은편에서 연신 내 머리칼을 넘겨주며 이마에 미니 선풍기를 쏘아주던 애인도 없다. 사장님이 그 모습을 보며 내게 좋으시겠어요하며 웃었었다. 시원해서 그렇다는 것인지 애인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얼굴 후끈거리는 무더위와, 그럼에도 서로 앞에 있는 사람이 좋아 죽겠다던 기억의 농도가 거의 비슷하게 남아 있다.

 

치열한 요식업 경쟁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사람들이 증발해버린 거리에서 여전히 불 켜고 손님 기다리는 동네 식 당 사장님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이번 주도 이 식당은 무사히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 감탄하는 보이지 않는 '합 정-망원 맛집 수호 연합 회원들이 나 말고도 동네 곳곳에 게릴라처럼 숨어 있을 테다.

 

이후 여러 언론에서 고인은 '초인종 의인'으로 알려졌다. 당시 언론보도 중 그의 아버지 말씀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처음엔 불구덩이로 뛰어든 아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잘했다. 아들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심정이 어떨지 나로서는 감히 글로 옮길 수가 없다. CCTV에 찍힌 고인의 마지막 모습도 공개됐다. 불이 난 건물에서 빠져나온 고인은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건물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몸을 돌려 제 발로 건물로 들어갔다. 그 직전 2초가량 그가 주저하는 모습도 담겼다. 그 머뭇거림이 고인의 희생을 숭고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도 두려웠던 것이다. 그도 위험하단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 남의 생명을 빼앗으려 했던 사람은 여전히 염치가 없고, 남의 생명을 지키려고 했던 자는 여전히 염치가 없고, 남의 생명을 지키려고 한 자는 이제 세상에 없다. 성우의 꿈을 꾸던 고 안치범님이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한다. 그의 희생을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