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후지와라 신야 글사진, 양억관 옮김, 한스미디어, 2010
서가를 뒤적이다가 문득 잡힌 책, 메멘토 모리라는 단어에 손이 갔다. 책을 펼치니 글이 많지 않고 사진집이었다. 열람실에서 잠깐 읽었다. 그림보다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보게 된다.
인터넷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Mori)의 정확한 뜻을 찾아 봤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한다.’,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 고 되어 있었다.
저자 소개
후지와라 신야 글, 사진
1944년 후쿠오카 현에서 태어났다. 사진가, 작가.
도쿄예술대학 서양화과를 중퇴하고 인도를 비롯하여 아시아 각지를 여행하고, 《인도방랑》《티베트방랑》 《동양기행》 등을 저술했다. 그 외의 저서로 《도쿄표류》《아메리카기행》《딩글의 후미》《시부야》《황천의 개》《일본정토》 등이 있다. 사진집으로는 《남명》 《일본풍경 이세》《천년소녀》《속계 후지산》《발리의 물방울》 등이 있다. 이 책은 원본은 1983년 2월에 간행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제3회 기무리 이베에 사진상, 제23회 마이니치예술상 등을 수상.
역자
양억관 번역
번역가.《솔뮤직 러버스 온리》《야구장 습격사건》《우안》《무한도시 NO.6》《너의 친구》《베드타임 아이스》《120% COOOL》《탐정 갈릴레오》《아빠는 가출중》《한밤중에 행진》《우리가 좋아했던 것》《용의자 X의 헌신》《중력 삐에로》《러시 라이프》《69》《나는 공부를 못해》《스텝 파더 스텝》《남자의 후반생》《장량》《교양으로 읽어야 할 중국지식》《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라라피포》《컨닝 소녀》 등을 번역했다.
독서 메모
어이, 저기 가는 선생, 당신 얼굴을 어디 두었소
생명이 보이지 않는다. 삶에 중심이 없다. 서글프게도 우리네 삶의 모습이란 솜사탕처럼 가볍고 달콤하게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 없어져버린다. 죽음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삶과 죽음의 본래 모습은 무엇인지.
지금의 이 뒤틀린 세상에서는 삶도 죽음도 그게 진짜면 진짜일수록 눈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거리에도 집에도 텔레비전에도 신문에도 책상 위에도 호주머니 속에도 가짜 삶과 죽음이 가득하다.
진정한 죽음이 보이지 않으면 진정한 삶도 없다. 꼭 나에게 맞는 생활을 하려면 있는 그대로의 삶과 죽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의식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죽음은 삶의 저울 같은 것. 죽음은 삶의 알리바이.
죽는 순간이 생명의 표준시.
이 세상은 저 세상이다. 천국도 있다. 지옥도 있다.
인간은 개밥이 될 만큼 자유롭다.
부르르 떨다. 위협하고, 으르릉 거리며 노려보고 물어뜯고 짖다가 뼈까지 송곳니 박고 살과 뼈를 흔든다. 용감히 돌진하여 다투어 물더니, 신음하며 두려워하며 주린 뱃속의 신물 삼키고, 덥석 한 점 물어뜯는다. 마구 엉키는 기름, 가죽, 살, 투쟁하듯 물고 흔들고 질질 끌어당기고 이를 드러낸 채 울부짖는다. 혓바닥으로 핥은 다음 우적우적 씹고, 몸을 뒤척이며 침을 질질 흘리고 성난 파도, 환희, 굶주림, 슬픔, 즐거움, 장난질, 힘찬 약동, 진흙탕에 몸을 웅크리고 뛰어올라 달라붙는다. 왔다갔다. 쫓고 쫓기고, 뱅글뱅글 맴돌다. 굶주림에 목마름에 미친 듯이 목젖 울린다.
물은 바이블이다.
이런 데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한 순간 눈앞을 스칠 때가 있다.
길을 물었다. 노파가 말했다. 위로 가면 산, 아래로 가면 바다. 어느 쪽으로 가여 극락인가요.
어느 쪽도 천국, 어느 쪽도 지옥. 세계는 당신의 생각대로.
이 땅에는 알리바이가 있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기의 말 없는 인권선언.
묘지에 침을 뱉는 것인가. 아니면 꽃을 바치는 것인가.
어머니의 등은 광야를 닮아간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발아래에는 늘 무한대의 죽음이 감추어져 있다.
걷다 보면 묘지를 들러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거리가 있다. 거기 사람들은 죽은 사람처럼 상냥하고 귀엽다.
수명이란 꺾인 꽃의 한정된 삶 같은 것.
인간은 살덩어리잖아요, 기분 째지죠.
꽃은, 싹트는 처녀. 꽃은, 활짝 핀 색마. 꽃은, 흩어지는 신
꽃이 흔들린다. 꽃그늘이 흔들린다. 빛에서는 발정이, 그림자에서는 죽음이 보인다.(160~161쪽)
죽음을 생각하라.
이 책은 손때가 묻으면 묻을수록 좋다. 청바지처럼 낡으면 낡을수록 좋다. 이를 테면 저 티벳의 백성들이 하루하루 들춰보는 불경이나 서양 사람들의 성서나 이슬람 사람들의 꾸란처럼, 언제 어느 곳에 누구라도 잠깐 틈이 날 때, 때가 묻고 너덜너덜해지도록 들춰보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는 사이 독자는 나의 말이나 사진에서 어떤 것을 느끼고, 어떤 것을 해석하여, 마침내 어떤 것들을 넘어서지 않을까.
'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 > 독서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합정과 망원사이』, 유이영, 은행나무, 2021 (0) | 2022.04.06 |
---|---|
『함께 오늘을 그린다는 것(이석구의 매일매일 아빠되기)』, 이석구, 문학동네, 2021 (0) | 2022.04.05 |
『서재의 등산가 』, 김영도, 리리퍼브리셔, 2020 (0) | 2022.04.03 |
『소년을 읽다. 』, 서현숙, 사계절, 2021 (0) | 2022.04.02 |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 이규천, 수호서재, 2019 (0) | 2022.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