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의 등산가 』, 김영도, 리리퍼브리셔, 2020
에베레스트 원정대장, 북극 탐험대장를 하신 분의 글이라 처음엔 등산기를 쓴 책으로 알고, 망설이다가.(제가 여행기보다는 에세이를 좋아해서요) 문학나눔 서적으로 선정된 스티커를 보고 선택했다. 이 책은 여행기나 등산기가 아니라 산을 바라보는 인생을 이야기 한 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산이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란 의문을 가지고 이 책을 펼쳤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이 길고 짧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라는 글이 가슴에 멈춘다.
노 작가님의 마지막 말씀인 ‘나는 철학도이자 등산가로 내 인생을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한다.’라는 말에 고개를 숙인다.
저자 소개
김영도
1977년 한국에베레스트원정대 대장, 1978년 한국북극탐험대 대장, 한국등산연구소 소장 등을 지냈다.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산에서 들려오는 소리》 등을 집필했으며 《검은 고독 흰 고독》, 《제7급》, 《8000미터 위와 아래》, 《죽음의 지대》, 《내 생애의 산들》, 《세로 토레》, 《무상의 정복자》, 《나의 인생 나의 철학》, 《산의 비밀》 등 다수의 산악 명저를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는 한국산서회 고문을 맡고 있다.
독서 메모
사람은 저마다 내일을 바라본다. 인생이란 미래지향적이라는 말이다. 높은 곳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인생과 등산은 일란성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크리스 보닝턴(Chris Bonington)의 예를 들지 않아도, 등산가는 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손경석이 《산 또 산으로》라는 책을 썼는데, 등산가는 바로 그런 존재다. 등산이 생계 수단은 아니지만 그 생활이 언제나 산과 연계되어 있다는 말이다.
“등산은 끊임없는 지식욕과 탐구욕과 정복욕의 소산”이라는 폴 베시에르의 말에는 등산의 정수가 담겨있다. 육체적 노동을 통해서 정신적 고양에 이르는 과정이 등산이라는 것이다.
에베레스트에서 한쪽 손가락을 모두 잃은 곽정혜는“2006년 5월18일, 나는 죽었다.”라고 선언했다. 나는 ≪선택≫의 첫 문장인 이 한마디에 압도됐다. 그녀는 죽지 못해 내려오다 자기 한계에 부딪혀 추락했다. 그리고 이름도 죽음의 지대인 8,000미터 고소에서 의식을 잃었고 마침 에베레스트를 오르던 우리나라 중동고 원정대 일행의 눈에 띄었다. 알피니즘 세계에는 ‘8,000미터 고소의 윤리’라는 불문율이 있다. 죽음의 지대에서는 남을 돕거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듯하지만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자의 자세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헤르만 불이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왔을 때 마지막 캠프에서 기다리던 동료 한스 에르틀이 그를 보고 한 말은 “무사히 돌아와서 고마워”였다. 그토록 갈망하던 등정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묻지 않은 것이다. 그야말로 우정의 극치다. 나는 이 대목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오늘날에는 산악문화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산악문화는 산악문학 없이는 무의미하다. 하지만 산서를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일본에서는 1936년의<어느 등산가의 회상>이후 그 역자의 다른 책이 나왔는데, 두 책은 모두 명역으로 이름을 날렸다.
오늘날의 설악산은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이 있어서 그 면목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십이선녀탕 계곡에서 이어지는 서북주릉도 자랑이다. 설악산의 위용은 대청에 섰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데, 넓고 푸른 동해와 멀리 웅장한 울산암, 그리고 바로 발밑에 이름 그대로인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등 장관이 펼쳐진다. 설악의 높이를 잊을 때다.
등산 세계는 일반적 생활 세계와 다르다. 산에 가는 사람에게 그런 생활 감정과 의식이 없다면 그는 산에 갈 자격이 없다. 등산가의 특권을 저버리는 셈이다. 나는 설악산을 안다고 공언할 자신이 없다. 내가 아는 설악산은 누구나 아는 그런 산이나 아무도 모르는 설악산이 어딘가에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나는 지구상 여러 곳의 산 이야기를 그런대로 알고 있지만, 이제는 우리 산 이야기가 더욱 궁금하다. (…) 우리는 너무나 기성관념 속에 살고 있는데, 이따금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 우리가 잘 아는 길을 다른 사람은 어떤 감정으로 가고 있을까. 분명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있을 것 같다. 설악산은 그럴 수 있는 곳이다.
산에는 비밀이 있다. 산에 가는 사람마다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은 캐고 또 캐도 그대로 있으며, 멀리 갈수록 높이 오를수록 더해간다. (…) 산의 비밀은 불가사의 한 것이 아니며 그저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베일은 벗겨도 벗겨도 그대로 있다. 우리가 산에 가고 또 가는 까닭이다.
우리는 산이 좋아 산에 가도 산의 정체를 모르며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을 모른다. 그저 문명사회에 살며 자연을 그리워할 뿐이다. 인간이 자연에서 왔기 때문일까. 원시 시대에 인간은 불과 물을 무서워하고 자연을 불가사의하게 여겼는데, 그런 생각은 18세기에도 여전했다.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 초등에 얽힌 이야기가 바로 그것을 말한다.
“산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산에 가는가?”
인생은 사람마다 조건이 다르다. 산악인의 세계도 매한가지다. 분명한 것은 그가 산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그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산악인이 히말라야에 가건 국내산을 헤매건 자유다. 그러나 그가 산에 무슨 비밀을 느끼고 있는가는 자유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산행을 생각하면, 그리고 등산가로서의 인생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산에 가는 사람과 산악인은 어떻게 다를까. 한마디로 알피니즘 세계에 관심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나는 본다. 알프스와 히말라야에 가고 안 가고는 관계없다. 다만 선구자들의 산행기를 읽으며, 자신의 등산 의식과 행위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산악인에는 조건이 있다
등산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며 산에 가는 사람이 꼭 산악인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흔히 등산가는 강건한 육체를 중시하는데 나는 육체적 노동을 통해 정신적 고양에 이르는 것을 등산의 요체로 본다. 이런 등산관은 자연과 문명의 틈바구니에서 살며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산은 위험한가.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이에 대해 라인홀트 메스너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산은 위험하지 않지만, 위험한 경우가 가끔 있다는 이야기다. 국내의 산은 그렇다 치고 지구의 오지인 히말라야는 그야말로 위험한 곳인데 인기가 대단하다. 산은 그런 데 매력이 있어 언제나 사람이 끌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무슨 사고가 그리 많은지. 그런 사고는 거의 불의의 사고며, 이에 비하면 산의 위험은 오히려 많지 않은 편이다. 세계 알피니즘의 역사는 산악인들이 산의 위험과 싸운 기록이다. 결국 산의 위험과 싸우는 것이 산악인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양상은 바로 시시포스의 신화와도 같다.
알피니즘은 원래 심각하고 신중한 인간의 의지와 행위의 산물이며 그 과정은 바로 생사의 경계선에 있다. 새삼 등산은 위험한가라고 물을 것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서 자유를 향유하지만, 그 자유는 언제나 구속과 규제 속에 놓여 있다. 산위 위험은 높이와 관계없다. 사고는 히말라야건 국내 저산지대건 일어난다. 산악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것이 알피니즘의 조건이다.
산은 위험한 곳이다. 사람들은 보통 그런 생각 없이 산에 가고 산을 즐기는데 위험은 언제나 곁에 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산에 가도 그 위험을 체험하기는 쉽지 않다. 일면 다행이지만 만족스러운 산행은 못 된다. 이 이율배반 속에 등산의 등산다움이 있다. 산에서 시련을 겪고 그 시련을 극복했을 때 산행의 의미가 있는 법이다. 역설적이면서 역설적이 아니다. 그것이 등산이라는 별세계의 순리인지도 모른다. 산의 매력이란 그런 것에 있다.
나는 언제나 산에서 비로소 참다운 인간성을 보고 느낀다. 산에 가는 사람들은 특히 고산 등반의 경우 처절한 장면을 체험하지만, 그것을 넘어선 인간의 감성을 깨닫는 일이 적지 않다. 여기에 산의 또 다른 모습이 있다.
풍설의 비박은 산악인에게 다시없는 소중한 산행 조건이지만, 그렇다고 자진해서 그 세계에 뛰어들 수는 없다. 등산 세계는 불확실성이 특징이며, 이것이 커다란 매력이기도 하다. 풍설의 비박이란 그런 불확실성의 상징인 셈인데, 극한적인 등산과 탐험의 세계라고 반드시 그런 악천후를 등반하지는 않는다.
“시계를 보니 새벽이었다. 주위에서 강력한 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취사 바위가 내 앞 어디엔가 위로 솟아 있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어둠속으로 크게 불렀다. ‘사아이머어-언!’ ‘도와줘 …….’ 그러자 저 앞에서 불빛 같은 것이 나타났다.”
등산은 생업이 아니다. 우리는 결국 각자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자 산악인의 조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반인과 다르다. 의식주 문제를 떠나서 우리만의 세계가 있다.
산사람은 산을 좋아하면서도 산서를 읽지 않는다. 산행기는 고사하고 월간지도 보지 않는 것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엔 스마트폰이 책과의 인연을 완전히 차단하다시피 했다. 명색이 산악인이라면 적어도 유명한 고전 몇 개는 읽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혼자 산에 갈 때 산과 가장 가까워진다. 그래야 야생화에 눈이 가고 새소리가 들리며 석간수를 즐긴다. 그리고 쉬고 싶을 때 쉬며 먼 산을 바라보게 된다. 등산을 탈출이라고 하는 이유는 비단 속세를 떠나는 것만 아니라, 자연과 더욱 가까워지는 일이기도 해서다.
산을 혼자가다
혼자 간다고 반드시 고독하고 위험하지는 않다. 등산가는 혼자 가는 것이 원칙이며, 머메리는 이것을 방랑자의 원형이고 조건이라고 했다. 단독행은 알피니즘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행 모습이다. 그 형식 속에 등산의 요소가 모두 들어 있다. 등산은 자유를 예상하고 전제로 하며, 단독행은 그런 세계의 극치이리라. 그러나 이 자유에는 조건이 따르며, 산악인은 바로 그런 조건의 규제를 받는다.
덕유산. 무주구천동으로 오르던 덕유산이 문득 그립다. 높이는 1,614미터. 우리나라 산으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 덕유산이 잊히지 않는다. 높아야만 산이 아니다.<한국명산기>를 쓴 김장호에 의하면 산에는 산격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산격을 덕유산에서 발견했다. 덕유산은 결코 준엄하거나 고고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끌어당긴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다. 그야말로 어머니 자연 같은 산이다.
산은 행동의 장이면서 사색의 장이다. 누구나 산이 좋아 산에 가겠지만 그저 그렇게 끝나기에는 너무나 깊고 넓고 높은 곳이 산이다. 산에 담긴 자연성을 그대로 느끼고 알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산의 매력과 등산의 의미란 그런 것에 있다고 본다. 산에 가 서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러고도 우리는 또 산으로 간다. … 그 옛날 머메리가 “정당한 방법으로”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취할 정신과 태도 역시 ‘정당한 방법으로’다. 지구상의 모든 산이 알려질 대로 알려졌지만 오늘날 알피니스트가 갈 곳은 그래도 산밖에 없다. 그 삼십 대 젊은이가 외로이 오른 한여름의 덕유산은 바로 그런 세계였다.
미국에서 나오는 등산교본에 <마운티니어링>이 있는데 부제가 재미있다. '산의 자유를 찾아서.' 별것 아닌듯하지만 깊고 중요한 뜻이 있다. 산의 자유는 등산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체험을 갖출 때 비로소 얻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은 등산 이전에 우리 인생 이야기가 아닐까. 나는 지식과 체험의 누적 과정인 인생을 생각한다.
나는 기나긴 세월 외국의 등반기를 여러 권 옮겼지만, 이번 《태양의 한 조각》 번역은 지금까지 해오던 그런 작업이 아니었다. 등반기 속에 매몰되어 주인공과 같이 지낸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나는 책상머리에서 고개를 들고 먼 산만 바라보았다. 망연자실이라는 말이 이래서 있나 싶었다. 마흔세 살은 결코 긴 인생이라고 할 수 없다. 어찌 된 일인지 우에무라 나오미도, 일본에서 최첨단을 가던 클라이머도, 그리고 또 다른 누구도 모두 같은 나이에 갔다. 그런데 다니구치 케이의 경우는 그 가운데서도 유별났다. 그녀는 사라졌어도 그녀의 정신이 더욱 힘차게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녀가 남긴 공백을 채우려고 파트너들이 저마다 나섰다.
산악인으로 사는 동안 내게 등산 세계는 바로 사색의 장이었다. 집에서는 산에 대한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밖에서는 언제나 간편한 등산 차림으로 산 친구들과 만나 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등산이 생활의 연장인 셈이었다. 그러다 어느새 산에서 멀어지며 서재의 등산가가 되어 버렸다.
사색과 체험과 표현은 각기 다른 개념이지만 실은 서로 연결될 때 그 개념의 세계가 더욱 확실해진다. 산악인은 생각 없이 산에 가지 않으며, 자신의 산행을 바로 표현하기 마련이다. 힘들어도 그날의 목표로 향하고 행동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야영도 하는데, 이때 야영은 일종의 표현이다.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만 표현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색과 체험이자 표현이다.
사색과 체험 그리고 표현
칼텐브루너의 등반기에서 돋보이는 것은 히말라야 대자연에 대한 찬미와 경외와 연모다. 그녀는 등반의 곤란이나 공포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이는 고산 등반에 당연한 조건이라, 굳이 내세우는 것을 일종의 허세와 과장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주위가 아름답다며 정상에 설 때마다 남모르게 울었다. 인생을 위해 산을 오른다는 신념과 의지에서 오는 감격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칼텐브루너는 아침저녁으로 붉게 물드는 히말라야 고봉을 바라보며 박모(薄暮)의 기분에 자주 취했다. 그녀의 손발은 언제나 얼음같이 차가웠지만, 그럼에도 주위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이 먼저였다.
산은 오르내리면 그만일까. 남다르고 소중한 그 체험을 자기의 인생 기록으로 정리하고 남겨두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를 위해서다. 산악인이 산을 오르고도 남기는 것이 없다면 그저 글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는 생각하지 않고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때 그의 속은 공동을 면치 못하리라. 무엇보다도 자기의 공동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 물음은 아포리아로서 답이 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사실이 아닐까? 인생이란 주어지는 것이고, 누구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형식이야 어떻든 본질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인생이 길고 짧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다만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
알베르 카뮈가 일찍이 <시시포스 신화>를 썼는데, 끝도 없이 돌을 굴려 정상으로 올리려 애쓰는 그 시시포스에서 나는 등산가의 조건을 본다. 사람과 산의 숙명적인 만남이 거기 있으며. 알피니스트란 그런 것이고, 등산가의 삶은 산을 떠날 수가 없다.
흔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등산가는 등산 세계의 동물이라고 나는 보고 싶다. 일반적으로 등산 세계는 존재 조건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등산이 무상의 행위라는 것이 이 사실을 말해주는데, 그 행위는 언제나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 엄청난 동기는 무엇이며 어디서 왔는가? "등산가는 누구나 산속에 자기의 고향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 선구자가 있지만, 사람이 산에 가는 것은 가지 않을 수 없어 간다는 이야기다. 거기가 자기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간의 귀소본능인 셈이며, 등산가가 사서 고생하는 까닭이다. 나는 까뮈가 쓴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를 인생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산은 우리에게 무엇이며, 우리는 왜 산에 가는가 하는 물음은 간단하면서도 대답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산악인들은 대답이 어려운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묵묵히 산을 오르내린다. 여기에 등산가의 귀소본능이 있다고 나는 본다.
산에 가고 안 가고는 자유다. 그러나 자기 고향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산에는 가지 않아도 고향을 찾지 않는 일은 생각할 수 없다. 산에 가는 행위에는 동기가 있으며, 그 동기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인생에서 내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희망이며 때로는 몽상이다. 누구나 어떤 것을 바라보고 꿈을 꾸며 산다. 그것이 생활의 의욕이며 활력이다. 꿈이란 보통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꿈이 없는 인생은 삭막하다. 꿈의 장점은 자유로운 자기만의 재물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즐겁기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법인데, 그것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 주인공의 사명이고 책임인 셈이다.
우리 산악인은 겨울이 오면 빙벽 등반이나 스키를 생각한다. 산악인으로서 내일의 꿈이다. 남들은 새해를 맞으며 각자 새로운 출발을 해보려 하며, 또한 봄날이 되면 역시 두꺼운 겨울옷을 벗고 가벼운 차림으로 앞날을 내다본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모습이 아닐까.
나는 무턱대고 앞만 보고 달렸다. 사람은 저마다 내일이 있어 산다. 그렇다고 그저 관성을 따라가기만 할 수는 없다. 언제나 자기 궤도를 돌지만, 인간에게는 의지와 정열과 동기가 있다. 그것이 필경 희망과 몽상일지라도 그 밖에 무엇을 바랄 것인가. 이것이 나의 앞날이었으며 내가 살아온 길이었다.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고 글을 쓰지 않는 일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데에는 그런대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살아가는 데 별 문제 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디지털 사회에서 잃는 것과 얻는 것이라는 글을 쓴 사람이 있는데,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문제라는 요지다. 인간은 노동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생활이 디지털화하며 육체적 노동이 점점 사라질 때 우리는 사는 보람을 무엇에서 느낄 것인가. 독서란 일종의 육체적 노동이며, 글쓰기 역시 노동이다.
글은 재주로 쓰는 것이 아니며, 남에게 보이려고 쓰지도 않는다. 자기가 쓰고 싶어서 쓰며, 마음의 공백을 의식했을 때 펜을 들게 된다. 이때 글이 잘 쓰이고 안 쓰이고는 문제가 아니다. 우선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글을 쓴 보람이 있다.
인생은 삶의 태도가 언제나 중요하다. 등산에 "고도보다 태도"라는 말이 있다. 등산가에게 중요한 것은 정상이 아니라 정상으로 향하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다. 더 오를 데가 없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그 이상 가는 키워드는 없으리라.
그렇다면 산에 오른다고 모두 산악인일까. 산을 알고 등산이 자기의 생활을 규제할 때 비로소 산악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산악인이 산서를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단절이 있으며, 그 단절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오라는 데도 갈 데도 없지만 나는 조금도 무료하지 않다. 산서가 언제나 옆에 있기 때문이다. 이 번잡한 세상과 나는 관계가 없다. 나는 이따금 앞산을 바라보며 지난날을 생각하고, 한편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한다. 그야말로 자유를 만끽하는 셈이다.
지금도 히말라야로 향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티브란 어떤 것일까. 그들이 우리의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을 선봉으로 삼은 것은 분명한데, 이제라도 밝히고 싶은 것이 있다. 그때의 대장은 사실 등반대장인 장문삼이었고, 등정자 고상돈은 부대장 박상렬을 뒤따라 간 셈이다. 장문삼과 박상렬은 1971년 로체샤르 원정의 주역이었고, 우리 산악계에서 히말라야 8,000미터를 처음으로 체험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터무니없는 몽상’이 현실이 되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등산 문화는 등산 세계의 산물이다. 그러나 등산이 생활의 연장이라 해도 일반 사회인에게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등산 의식이나 정서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등산 문화의 주인공은 산사람인데, 그들이 모두 어디에 갔을까. 오늘날 우리 산악인들은 많은 체험을 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저명한 알피니스트들도 벌써 여럿 다녀갔다. 우리는 그들과 만나 이야기할 충분한 내용도 있으며, 그런 기회도 생겼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으며, 우리 등산 문화에 있다.
등산가의 생활의식이나 감정은 사회인과 다르기 마련이다. 그에게는 자연이라는 교과서가 있고 등산 서적이 있다. 산에 가며 그런 세계를 모른다면 그는 어딘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산악인이다. 감정이 메마르고 사색이 빈곤하다면 그의 등산은 생각만 해도 삭막하다.
산에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산의 자유는 알피니스트의 자유며, 취미 등산가의 것은 결코 아니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에게만 자유가 있다.
산악인의 인생은 남다르다. 우리는 산에 가도 남들과는 다르며, 내게는 적어도 그런 자부심과 긍지가 있다. 그동안 나는 등산 선진국의 선구자들이 쓴 글을 많이 읽었고, 그들이 남긴 이름 있는 책들을 우리말로 옮기려고 노력했다. 등산 선진국이라면 영국과 독일,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에베레스트를 다녀오며 산에 대한 책을 읽고 글도 쓰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계를 안 셈이다. 나는 산서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던 생활의 연장이다.
나는 산악계 원로로 대우 받지만 실은 나이가 많다는 것뿐이며, 산악인으로 뜻하지 않게 에베레스트와 그린란드를 체험한 정도고, 그밖에 이렇다 할 일을 하지 못했다. 다만 해온 것이 있다면 책을 읽고 글을 써왔다는 것이 아닐까.
만일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나는 산에 가는 사람과 가지 않는 사람으로 크게 나누고 싶다. 인간은 각양각색이라고 하는데 이것만은 확실하고 분명한 것 같다.
당시 집권당인 민주공화당 선전부장이라는 요직에 있어서 이런 일을 대국민 사업으로 벌일 수 있겠지만 이 일로 산악연맹에서 나를 끌어들였는데, 마침 산악연맹이 히말라야 로체샤르원정 자금난으로 허덕이고 있을 때였다. 무론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끌려갔다가 그들의 문제를 당시 박정희 대통령께 품신해 로체샤르 원정의 길을 열었고, 바로 그때 에베레스트 입산 허가 신청도 하게 되었다. 1977년 한국의 에베레스트 원정은 이렇게 해서 시작됐으며, 결국 그 일의 추진도 내가 맡아 모든 책임을 지게 되었던 것이다.
등산은 학문이 아니며, 특히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스포츠도 아니다. 나는 알피니즘이 우리 인생을 규제하는 생활양식이며 방법이라고 본다. 현대문명과 대자연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로서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존권을 지배하는 것은 대자연이며 알피니즘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철학도이자 등산가로 내 인생을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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