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나의 포근했던 아현동』, 박지현, 아홉프레스, 2022

그루 터기 2022. 5. 24. 08:30

나의 포근했던 아현동, 박지현, 아홉프레스, 2022

 

평생을 살아온 아현동이라는 표현을 한 작가가 어릴 때부터 살면서 느끼고 생활했던 이야기를 적었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나에게는 색다른 기억이기도 하지만, 젊은 시절 등촌동 독산동 골목에서 살았던 기억과 연계해보면 전혀 새롭지 않은 친근감이 있는 내용들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진의 화질이 너무 떨어지거나 노출이 맞지 않은 사진들이 많아서 불편했다.

아마 지금은 없어진 모습들이라 새로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던 사진이나 어렵게 찍은 사진들이안닐까 생각해 본다. 인쇄 방법에 문제가 있는지? 나는 그쪽에 문외한이라 어딘가 다르다는 것만 느낄 뿐이다. 또 이야기의 대부분이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한 내용들이라 재미를 반감한다. 저자만의 독특한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많았더라면 다음 이야기가 뭘까하는 궁금증이 생겨 읽는 재미를 더 보태지 않았을까? 책 읽는 내내 숙제를 하는 느낌이 드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엄마아빠와 맛있게 먹었던 식당이야기에도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으면 좋겠고, 어느 동네에나 다 있는 이야기 보다는 그 동네만의 이야기가 못내 아쉬운 것은 어릴 때 서울로 올라와 아현동 굴레방다리 밑을 자주 다녔던 저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음이라.

 

 

저자 소개

회화를 전공하고 이따금 미술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합니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풍경을 기록하며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책을 만듭니다. 지금은 네이버 오디오클립 '크래커스북'에서 책을 소개하고 아홉프레스 출판사를 운영하며 서울과 일산, 수원의 독립서점과 중고등학교, 도서관에서 [나만의 책 만들기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ANYWHERE;어디에서나, 바다가 필요한 이유, 세 개의 단어, 그리고 십 분,??스키터 (엄마는 당연했고 가족들은 당황했던)이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sah00247, @ahhope_press

 

 

독서메모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첨부했습니다.

 

많은 행상 중에는 병원 맞은편 파란색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겨울에서 늦은 봄까지 계란빵을 파는 분이 계셨다. 계란빵은 그 거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거리였다. 소금이 살짝 뿌려진 짭짜름한 반숙 계란에 폭신한 카스텔라의 달콤한 냄새가 풍기면 벌써 겨울이 왔구나하고 계절을 느꼈다.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계란빵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크나큰 재미였다. 좀처럼 말씀이 없으시던 아저씨는 손이 굉장히 빠르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틀에 반죽을 붓고 그 위에 날계란 한 알을 깨트려 뚜껑을 덮고 돌리는 걸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 익은 빵이 찜기 위에 올려져 종이컵에 담기기 전까지 말이다.

 

- 서서울 병원 사거리 중

 

우리 가족 중에도 친할아버지와 아빠의 두 형제가 함께 가구단지에서 가구점을 운영했다. 그래서 골목을 지날 때면 눈을 마주치는 모든 주인아저씨께 인사를 해야 했다. 얼굴을 몰라서 인사를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인아저씨들의 특징을 잡아 별명으로 만들어 기억하곤 했는데 피부 톤이 어둡고 마른 아저씨는 기린 아저씨’, 손이 하얗고 와이셔츠가 항상 빳빳했던 아저씨는 식빵 아저씨’, 판다 모양 간판 밑에서 일하던 아저씨는 아저씨의 가게 이름을 따서 샘표 아저씨라고 불렀다. (인사를 하다가 새어 나온 입버릇으로 별명을 들킨 적도 있었다.)

 

- 가구단지의 눈사람

 

김밥집을 지나 앞으로 쭉 걷다 보면 큰 사거리가 나온다. 그곳에 댕기머리미용실이 있다. 동네 초입에 있는 이 미용실은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두 번째 집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있었으니 족히 15년은 넘었다. 친구에게 집 위치를 알려줄 때도 사거리에 있는 댕기머리 건너편이야.”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 동네의 가장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미용실을 등진 채 왼쪽으로 내려가면 누리슈퍼라는 잡화점이 있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구멍가게라서 자주 갔었다. 누리슈퍼의 주인 가족과 우리 가족은 모두 친했다.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이 구입하는 음식이나 물건은 모두 외상이 가능했다. 언제든 필요할 때 가서 물건을 골라 계산대 위에 올려두면 아저씨나 아주머니는 노랗게 바랜 장부에 날짜와 금액을 수기로 적고 봉지에 물건을 담아주셨다. 모인 금액은 매달 마지막 날에 아빠가 한꺼번에 계산하셨다.

 

- 댕기머리 사거리 그리고 누리슈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