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새김(고암 정병례의 전각가 시와 에세이)』, 정병례, 중앙북스, 2009
출판된 지 오래된 책이다. 에세이집으로 13살이면 꽤나 오래된 책이다.
도서관에서 검색한 전각의 두 번째 책인데 전각 작품을 실은 책인데 전각을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시와 에세이 책이라고 느껴졌다.
전각 작품을 시나 에세이 형식으로 해설한 책이다. 덕분에 장수(책이 오래도록 읽히는 장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처음 이 책을 빌릴 때는 전각이 뭔가를 알기 위해 빌렸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참 잘 빌려왔다.’ 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전각에 대한 기술적인 내용은 다른 책에도 많이 있다.(많다고 해야 수권에서 십여권?) 요즈음은 책보다 인터넷에서 더 쉽게 알 수도 있다. 그러나 전각작품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에세이 형식으로 쓴 책은 처음이고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책의 제목처럼 마음을 새긴 멋진 책이다. 읽고 나서도 자꾸만 다시 읽고 싶어진다.
책속의 전각작품들이 전각 왕초보인 내가 보기에는 난해한 것들이 많다. 기법도 내가 전혀 모르는 것들도 많고,
내가 하지는 못해도 방법이라도 알 수 있는 수준까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저자
고암 정병례
전남 나주 출생, 고암부부전을 시작으로 수십년가 적각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대한민국우수대상 등 다양한 수상 경력이 있다. 2006년 전각의 현대화를 시도한 <새김아트>를 창시했으며, 정병례전각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에니메이션과 전각을 접목하는 등 전각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코피아난 UN사무총장 직인 등의 직인 제작
독서 메모
의도된 겸손은 겸손이 아니다. 시절이 되면 자연이 열매를 맺듯, 그 열매의 무게로 스스로 몸을 낮추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숙여지는 겸손만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p16
나는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유로 회초리를 맞았다. 어린 내가 어른들의 글씨와 그림을 내 것인 양 거짓말을 하는 줄 아셨던 거다. 아마, 지금의 고암이 없었다면 그 시절 어린아이는 영원히 거짓말쟁이가 돼버리고 말았을 테지. p26
- 나의 살던 고향 -
네모난 그림 속에는 나그네도, 주모도, 술도 없지만 사립문 밀고 들어서면 이 안이 천국이네. 따뜻한 아랫목과 술이 있는 천국일세. p44
- 홍등은 나를 오라하네 -
나는 공간 예술가이며 설치 예술가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몇 백 평의 공연 연출을 평생 해 온 나에게 반 평도 되지 않는 나의 작업대인 책상 하나 치우는 게 제일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나를 알 수가 없다. (…) 내가 나를 알 수는 없지만, 그런 나를 이해해 주는 마누라, 명숙 씨가 있어서 고암의 하루는 오늘도 그럭저럭 정돈된 일상이다. p56
- 사랑하는 명숙 씨 -
어리석은 제자는 스승의 걸음걸이만 보고, 지혜로운 제자는 스승의 걸어간 길을 본다. 스승은 길을 열어주는 것이지 절대 스승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요즈음 스승의 걸음걸이만 흉내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
도랑을 건너고. 내를 건너고.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고. 우주를 건너고. 이승과 저승을 건너고.
영리한 사람은 재주를 부리느라 목적지를 놓친다. 아둔한 사람은 충고를 귀담지 않아 목적지를 못 본다. 귀머거리는 꼬임의 소리에 넘어가질 않아 목적지에 도착하고 장님은 허상이 보이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만사여의아심통은 만사가 내 마음과 통한다는 의미다. 일곱 글자 속에 나 역시 부적처럼 이것저것 그려 보았다.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는 이 문양들이 내 뜻한 바를 이뤄주길 바라며. 주술사는 아니지만 이만하면 부적 흉내는 제대로 내지 않았는가. p100
-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다 -
물질을 얻는 것은 조금 얻는 것이고, 마음을 얻는 것은 큰 것을 얻는 것이다. 좋은 여자를 얻으면 세상을 얻는 것과 같다 (마누라를 잘못 얻었다고 속상해 하지마라 그렇다고 지금 잘해주는 애인(있지도 않는)과 같이 산다고 세상을 얻은 것일까?)
나는 한자보다 한글을 새길 때 더 많은 기쁨을 느낀다. 한글은 글자의 획 하나하나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표정을 갖는다. (…) 자음과 모음의 조합에 따라 그야말로 수 천 수 만 개의 글자로 바뀌는 한글의 매력은 거의 마술에 가깝다. ‘숲’이라고 쓰고 보면 울창한 숲을 그린 것 같고, ‘참사람’이라고 쓰면 정말 착한 사람을 그린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다섯 글자를 다 새기고 난 후 선한 느낌의 초록을 듬뿍 묻혀 종이 위에 찍어 본다. p114
- 나는 한글이 좋다 -
작은 촛불은 바람에 꺼지고, 커다란 산불은 바람이 불어오면 더욱 커진다. 마술에 속는 사람은 눈뜬 사람이고 마술에 속지 않는 사람은 장님이다. 그릇에 무엇이 담겼을까 생각하기 보다는 그릇의 모양에 집착하는 사람들. 진실을 보는 것은 형(形)이 아니고 의(意)에 있음을 왜 모르는 것일까. p130
- 다르다 -
일 년 내내 햇살이 비치는 땅은 머지않아 사막으로 변한다. 때로는 억수같은 비가 내리고, 때로는 칼바람이 불고, 때가 되면 함박눈도 내려줘야 그 땅은 수려한 산수를 간직하게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비어 있어야 그릇이다.
창을 닫으면 빛이 보이고, 창을 열면 사물이 보인다. 탐욕의 눈을 닫으면 영혼의 빛이 보이고, 탐욕의 눈을 뜨면 물질만 보게 된다. (…) 나는 종종 내 진짜 속마음을 알고 싶을 때 눈을 감고 그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나를 비추고 있는 한 줄기 빛을 찾아본다.
세상은 넓고 새길 곳은 많다.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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