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황선우, 위즈덤하우스, 2019
한 달 하고도 보름이 훨씬 넘도록 기다렸다가 빌려온 책이다. 예약도서로 신청해 놓고 잊고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다. ‘아! 내가 예약했었지.’
저자소개
김하나
작가, 팟캐스터. 2003년 혼자 쿠바에 다녀온 후로 혼자 여행력이 상승하여 지구 반대편 남미 대륙에 이르기까지 곧잘 돌아다녔다. 첫 숙소만 정해두고 발길 닿는 대로 다니는 편이며 여행 일정은 우연, 계시, 직감 등에 곧잘 휘둘리곤 한다. 정보왕 황선우를 만나 여행 스타일이 크게 안정되었다. 배낭 하나 메고 다니기를 선호하는 미니멀리스트 타입의 여행자. <힘빼기의 기술>, <말하기를 말하기>를 썼다.
황선우
작가, 팟캐스터, 패션 매거진 에디터로 13 년 동안 일하며 뉴욕, 런던, 파리부터 베니스와 몰디브까지 수많은 도시로 출장을 다녔다. 숙소와 식사, 공연 일정을 꽉 채워 예약해두고 혼자 다니는 여행에 신물이 난 2016 년부터 김하나와 같이 살기 시작하며 든든한 동행이 생겼다. 트렁크 속에 챙겨가는 짐도,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많을수록 마음이 놓이는 맥시멀리스트 타입의 여행자. <멋있으면 다 언니>,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썼다.
독서 메모
1인 가구는 원자와 같다. 물론 혼자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다. 그러다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다른 원자와 결합해 분자가 될 수도 있다. 원자가 둘 결합한 분자도 있을 테고 셋, 넷 또는 열둘이 결합한 분자도 생길 수 있다. 단단한 결합도 느슨한 결합도 있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라는 원자 둘의 단단한 결합만이 가족의 기본이던 시대는 가고 있다. 앞으로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분자 가족’이 태어날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가족의 분자식은 W2C4쯤 되려나. 여자 둘 고양이 넷. 지금의 분자 구조는 매우 안정적이다.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20년쯤 혼자 살다 보면 같이할 누군가가 있거나 없거나 스스로 잘 챙겨 먹는 방향으로 개체 안에서 진화가 일어난다. 징징거리며 어리광을 부려봤자 아무도 받아주는 이가 없다면 어른이 될밖에. 몸을 움직여 음식을 직접 만드는 쪽이든 밖에서 거리낌 없이 혼자 사 먹게 되는 쪽이든.
여전히 나는 혼자 먹는 밥이 맛있고 혼자 하는 여행의 간편한 기동력을 사랑한다. 그런 한편으로 또 믿게 되었다. 혼자 하는 모든 일은 기억이지만 같이 할 때는 추억이 된다는 이야기를. 감탄도 투덜거림도, 내적 독백으로 삼킬 만큼 삼켜본 뒤에는 입 밖에 내서 확인하고 싶어진다.
“친구들은 사회적 정서적 안전망이다.” 김하나가 늘 강조하던 이야기처럼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같이 살고 있다. 다른 온도와 습도를 가진 기후대처럼, 사람은 같이 사는 사람을 둘러싼 총체적 환경이 된다. 상대의 장점을 곧잘 발견하고 그걸 북돋아주는 김하나의 ‘칭찬 폭격기(김하나가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에서 얻은 별명이기도 하다)’적인 면모에 내가 가장 직접적으로 수혜를 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많은 술을 마시고 어처구니없는 추억들이 쌓인다. 요리를 잘하고 또 잘 얻어먹는다. 이런 데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는 사실을 나는 동거인에게서 배워간다. 김하나라는 신대륙을 발견하고서 열린 새 세계다.
사람이 같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같은 걸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꼭 가까워지지 않듯,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곁에 두며 같이 살아갈 수 있다. 자신과 다르다 해서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평가 내리지 않는 건 공존의 첫 단계다.
20대 때의 나, 그러니까 때가 되면 밥을 먹듯, 졸업하면 취직하듯 결혼도 그렇게 하는 거라 믿었던 예전의 나 같은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그들의 특징은 자신의 성격이 결혼 생활에 잘 맞는지 혹은 자신이 살고 싶은 방식이 정말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생활이 맞는지 고민해보지 않는다는 거다.
밥해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인 우리 엄마는 우리 집의 요리 담당인 내가 야근을 하거나 장기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제일 먼저 동거인의 식사부터 걱정한다. "하나 혼자 밥은 우짜노?" 이렇게 관계에서의 의무는 지지 않지만 자식의 옆에 있어 주어 든든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위치라면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는 일도 얼마나 산뜻하고 가뿐할까?
이렇게 소심한 안정지향형 인간들에게서 다행인 점은 발밑만 보며 잔걸음을 옮기는 식으로 살기에 누가 크게 돈을 벌어주겠다고 유혹해도 구덩이에 발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단계에 투신한다든가 어디 좋은 땅이 싸게 나왔다는 말에 솔깃해 사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황씨 집안에서 들을 일은 로또 당첨 확률보다 낮다.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어서 좋은 점은, 세상이 말해주지 않는 비밀을 하나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게 뭐냐면, 결혼을 안 해도 별일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결혼 안 해봐서 아는데, 정말 큰일 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생길 수 있을 별일 큰일을 곰곰 생각해봐도, 앞으로 점점 더 결혼할 확률이 낮아질 것 같다는 정도 외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가 불안하고 초조했던 건 결혼을 못 해서라기보다 '결혼 못 한 너에게 문제가 있어' '이대로 결혼 안 하고 지내면 너에게 큰 문제가 생길 거야'라고 불안과 초조를 부추기고 겁을 줬던 사람들 때문이라는 걸. 오지라퍼들이 아무리 깎아내린다 해도 나는 내가 하자가 있는 물건도, 가탈스럽고 분수를 모르는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안다.
결혼 적령기를 넘긴 여성들이여, 혹시 ‘나에게 정말 문제가 있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가?’ 이런 의심이 들 때면 의심해보자. 고요한 가운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지, 혹은 바람을 불어대는 존재가 지금 내 주변에 있지 않은지.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스쳐 지나는 존재라면 적절히 무시하면 되고, 혹시 가까운 이라면 불편함을 일방적으로 견디는 대신 진지하게 정색해서 상관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해보자.
나만이 아는 길고 다채로운 역사 속에서 나는 남의 입으로 함부로 요약될 수 없는 사람이며, 미안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이상으로 행복하다.
사람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들이기로 결정한 이상은,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해리 포터에 따르면 집요정 도비는 양말을 선물 받으면 자유의 몸이 된다. 그런데 도비는(김하나님) 그 양말을 신은 채 가스레인지를 닦았다는 이야기
찰랑. 언젠가 부부 상담 TV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어떤 문제로 싸우느냐는 질문에 아내가 "정말 사소한 걸로 싸워요. 양말을 왜 동그랗게 말아서 벗어놨냐 같은 걸로도 싸운다니까요."라고 답하자 상담해주는 분이 찰진 경상도 억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부부사이에는요, 사소한 기 하~나도 읎슴니더. 쌓이고 쌓였든 기 양말 하나도 터지는 거그든요. 컵에 물이 찰랑찰랑할 때 딱 한 방울 더해지면 늠치잖아요. 그거랑 똑같습니더." 가장 사적인 공간을 공유하는 동거인의 사이도 마찬가지다.
동거인의 상사였던<W. Korea> 이혜주 편집장님이 결혼 생활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둘만 같이 살아도 단체 생활이다." 동거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보다, 공동 생활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을 것 같다. 그래야 갈등이 생겨도 봉합할 수 있다.
내가 이제야 배운 싸움의 기술은 이런 것이다. 진심을 담아 빠르게 사과하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 입으로 확인해서 정확하게 말하기,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려 어떨지 언급하고 공감하기.
상대를 바꾸려 드는 것은 싸움을 만들 뿐이고, 애초에 그러기란 가능하지도 않다. 둘이 함께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바로 단체 생활에 필요한 팀 스피릿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처럼 대가족이 되자 기쁜 일도 많아지고 슬픈 일도 많아진다. 한데 또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도 맞는 것 같다. 대가족이 되면서 일이란 생기게 마련이고 우리는 그것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야말로 가족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가족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말이다. 우리는 서로 기대어, 또 종종 두 배로 기뻐하며 삶의 굴곡을 지날 것이다.
혼자만의 식탁은 효율성과 편의성 우선으로 꾸려진다. 삶은 달걀 한두 개에 사과나 고구마 같은 걸로 때우기도 하고 햇반을 데워 레토르트 카레와 해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비롭게도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부지런할 수 있는 존재다. 누군가와 함께 먹을 식사를 차린다면, 무슨 힘에선지 국이라도 하나 끓이고 더운 찬이라도 한 가지 볶게 되는 것이다.
엄마에게 음식이란 단지 가족을 위한 희생만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즐거움이고, 부엌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고도의 경영이자, 무뚝뚝한 자식과 대화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음식을 싸주고 먹이는 대상이 늘어날수록 엄마의 세계도 함께 넓어져왔다.
어둠 속에 초를 밝히고 한해의 기쁨을 다시 밝혀보고 슬픔은 떠나보내는 의식적인 행위가 주는 성스러움이 있겠지만, 수건을 개키고 고양이들 발톱을 깎아주며 일상을 돌보는 일이 사람을 굳건하게 지탱해주는 그런 방식의 거룩함도 삶에는 작용한다. 식사를 직접 준비해 먹어보면 끼니가 얼마나 자주 돌아오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행복은 빠다야!’를 듣고 한순간에 기분이 좋아져버렸고, 역시 동거인은 단순하고 튼튼하고 밝은 사람이 최고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동거인의 동거인은 나니까, 나부터 단순하고 튼튼하고 밝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빠다처럼 나를 확실히 행복하게 하는 게 뭔지를 평소에 알아두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결혼한 친구가 시댁에 명절을 지내러 가서는 "어른이 되어 남의 집에 입양된 기분이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너무 오랜만에 회사를 옮겼더니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말이 성립하는 건 당연하게도 그게 내 일이 아니라서다. 거리를 두어야 눈에 들어오는 형체가 있고, 너무 뜨거울 때는 삼키지 못하는 덩어리들이 있으니까. 남의 연애에는 서두르지 말라든가 미련을 버리라든가 잘도 충고할 수 있는 사람들의 막상 모두 사랑의 달인인가 하면,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컨설턴트가 필요하다.
"바깥양반 오늘도 갔다 올게"라고 하는 바람에 '안사람'보다는 '바깥양반'이 어째 조금 우세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왜 안양반은 없고 바깥양반만 있는 걸까? 그런데 문제는, 안사람인 나는 내 직업적 일을 집에서 하는 것이니 놀고 있는 게 아닌데도 집안일이 왠지 내 몫인 것만 같은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내내 집에 있으니 쓰레기도 내가 버리고 고양이 화장실도 내가 치우고 청소기도 돌리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개고...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상했다.
"느그, 늙으면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나? 체력이다." 김하나의 어머니는 체구가 작고 언제나 몸이 약해서 늘 누워 계셨다는데, 40대 이후에 꾸준히 요가와 수영을 해오면서 지금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정도가 되었다.
누군가 우리에게 “집에 남자가 없어 아쉬울 때는 없어?”라고 묻는다면, “딱 한 번 그런 적이 있지”라며 이 사건에 대해 말해줄 것이다. 만약 우리 집에 저 코딱지만 한 윗집 남자보다 더 건장하고 젊은 남자가 있었다면 과연 그가 우리에게, 13년간 지하실에 있었던 마룻장으로 보수를 해주겠다는 소릴 할 수 있었을까? 보험회사 견적의 60%가 안 되는 금액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 자기는 책임이 없다고 쓴 내용증명을 보낼 수 있었을까?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나는 간병인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동거인이 나의 주보호자로서 베풀어준 가장 큰 부분을 잊지 못할 것이다. 플라스틱 공 하나 띄우려 애쓰고 있는 내가 사실은 하프 마라톤을 몇 번이나 완주한 사람이라는 걸, 진통제에 멍해져 있지 않을 때는 재미있는 농담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방귀 뀌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인 지금의 내가 전부는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그 사실은 겨우 3박 4일이지만 가장 무력하고 약해졌을 때 내가 사라지지 않게, 또 최선을 다해 나로 돌아갈 수 있게 단단히 붙잡아주었다.
생각할수록 각자의 가족에게 우리의 지위는 '꿀' 이었다. 우리가 각각 결혼을 했다면 시댁 어른들과의 자리가 그렇게 편할까? 사위는 대접받지만 며느리는 오히려 대접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우리의 위치는 사위보다도 더 편했다. '딸내미랑 같이 사는 친구'는 각자의 부모님께 의무는 없이 호의만 받는 자리다. 내가 어머님이 보내주신 열무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해서 효도 여행을 기획하거나 집안의 가전제품을 바꿔드려야 할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어머니께 맛있다고 전해드려!" 정도가 끝이다.
만약 딸내미 친구가 아니라 며느리가 안경을 보냈다면 그렇게까지 망설이거나 그렇게까지 고마워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며느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은연중 도리의 영역에 포함되고 딸내미 친구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호의의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타인이 강력한 주의 환기 요인이라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골똘해지거나 불안에 잠식당할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과일 깎아 먹으며 나누는 몇 마디 얘기로도 어떤 울적함이나 불안은 나도 모르게 털어버릴 수 있고, 함께 살면 그 현상이 수시로 일어나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힐 겨를이 없어지기도 한다. 집 안 어디엔가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얻게 되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도 있다. 아니, 꼭 집 안에 있을 필요도 없다. 누군가 집으로 항상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참으로 날씨 좋은 가을밤이었고, 술이 알딸딸하게 취한 채 친구들과 함께 걸어가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택시 태워 보내지 않고 정말로 집 앞에서 헤어지는 사이라니, 한 마을에 사는 옛날 사람들처럼 정다웠다. 시골에서 올라온 감자와 양파는 카레가 되어 동네에서 나눠 먹고, 한 주의 일을 끝낸 동네 사람들은 자연스레 만나 서로의 등을 두드려준다. 서로의 고양이와 강아지를 돌보고 작은 것들을 챙겨준다. 인생의 좋은 시절을 함께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나의 이익을 대변해서 일하고 있는 여성 정치인을 한 사람 정해서 10만원씩 후원하는 걸 매년 나만의 의식처럼 지켜오고 있다. 그리고 몇 해 전에는 생활동반자등록법 발의를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에게 후원금을 보냈다. 생활동반자법이 기존의 가족 관계를 부정하거나 흔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에 진선미 의원은 이렇게 답했다. "기존 가족 관계를 위협하는 건 특정한 제도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서로 돌보며 살 수 없도록 하는 팍팍한 현실입니다. 생활동반자법은 사람들이 서로 돌보고 가족을 이루어 살도록 장려하는 가족 장려 법안입니다."
1인 가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모습은 법이나 제도, 관념보다 빠르게 변한다. 직장 한 군데를 정년까지 다니며 하나의 직업을 평생 고수하던 고용과 노동의 패러다임이 허물어진 것처럼, 아마 혼인이나 혈연으로 연결된 전통적인 가족의 형식에 들어맞지 않는 가구의 모습들이 늘어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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