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이역입니다. 』, 김원희, 봄빛서원, 2021
어릴 때부터 철길 앞 동네에서 자란 나에게 철길이나 기차는 향수의 대상이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통학하느라 매일 새벽 안정역에서 통학열차를 탔던 일이 생생하다. 최근에 동네 앞을 지나던 철길이 노선변경으로 이웃 마을 쪽으로 나고, 역사(驛舍)도 역사(歷史)도 속으로 사라졌다. 책속에 나오는 철암역이나 봉화역, 춘양역, 분천역, 승부역 등은 어릴 적 추억이 있고, 정동진역이나 백마고지역, 해운대역, 아우라지역 들은 관광의 기억이 남아있다. 차츰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간이역의 모습을 그린 글을 읽고, 사진을 보면서 작가님과 같이 추억에 젖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저자소개
김원희 :시인 수필가
살아 보니 인생은 60부터였습니다. 제게는 그렇습니다. 난생처음 해외 자유여행을 시작했고 매일의 일상을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시간대를 살고 계신가요? 아직 60세가 안 되셨다면 지금은 워밍업입니다. 너무 힘 빼지 마시고, 무슨 일이든 연습처럼 가볍고 즐겁게 하십시오. 간이역에 가면 삶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쉴 수 있습니다.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내 마음을 위로받고 싶을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용기가 필요할 때 이 책에 소개된 간이역에 가 보십시오. 세월을 견뎌 낸 힘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독서메모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내 마음을 위로받고 싶을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용기가 필요할 때 이 책에 소개된 간이역에 가 보십시오. 세월을 견뎌낸 힘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세상에서 70년을 살았습니다. 세상은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묵묵히, 세월이란 봇짐을 싣고 달렸습니다. 덜컹덜컹, 참 많이도 달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철로도 나를 닮아 늙었습니다. (중략) 서로를 위로합니다. 이제는 좀 쉬고 싶습니다. 언제가 영원히 사라질 그날까지는 그래도 좀 편하게 쉬며, 이 시간을 즐기고 싶습니다.
2013년 분천역과 체르마트역은 자매결연을 맺었다. 한국-스위스 수교 50주년 기념패와 체르마트 마을 사진이 붙어 잇다. 오래 전 흑백사진 속의 풍경에 눈길이 머문다. 여인들의 옷차림에서도, 기차력에서도 옛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역사 안에는 ‘느림의 편지통’이라는 이름의 빨간 우체통도 있다. 색다른 점은 편지 투입구가 두 개로 나뉘어 있다는 것. 위칸에 편지를 넣으면 매년 6월 30일에, 아래칸에 넣으면 매년 12월 30일에 함창우체국에서 수거해 주소지로 보내준다.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 누가 이런 외진 곳, 머지않아 폐역으로 사라질 존재에 낭만을 남겼을까.
플랫폼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흔히 볼 수 없는 급수탑이다. 우뚝 솟아 있는 급수탑으로 화본역은 더 운치 있는 풍경을 자아낸다. 서둘러 급수탑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급수탑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푸름이 눈과 마음을 정화시킨다. ( 급수탑은 중앙선 풍기역에도 있었다.-지금도 있는지 잘 모르겠다.- 서울에서 고향으로 갈기 위해 풍기역을 자주 이용했던 젊은 시절에 우뚝 솟은 급수탑의 위용이 대단하다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다음에 풍기역에 가면 아직도 있는지 확인을 해 봐야겠다. )
돌아오는 길, 오솔길 끄트머리에서 뒤돌아보니 푸른 녹음 뒤에서 살며시 얼굴을 내민 신림역이 보인다. 조심히 잘 가라는 듯, 이제는 어쩌면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듯 확실하지 않은 슬픈 이별을 예상하며 배웅하는 늙은 내 친정엄마의 모습 같아 시린 마음 부여안고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 자리를 비켜 줘야 할 시간이 되었나 보다. 사람들에게 잊혀 간다는 것은 분명 쓸쓸한 일이지만, 만사가 그 쓰임이 다하면 언젠가는 가야 하는 것이 진리인 것을, 아무리 예전에 우리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하더라도, 흘러가는 세월 속에, 앞으로의 시간에 쓸모가 없다면 그냥 놔두는 자비 따위는 없다. 예전의 내가 그 모든 것에 그러했던 것처럼, 나 또한 그리될 것처럼. 사물이나 사람이나 존재하는 동안 충분한 쓰임이 되었다면 그 또한 값진 일인 것을. 그 정도로 충분히 족하다며 나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두 시간 기차를 타고 와서 내린 정동진역 플랫폼, 몸으로 부딪혀 오는 바닷바람과 콧속으로 들어오는 바다 냄새. 나는 이 냄새가 항상 그리웠다. 마도로스로 평생을 바다에서 사신 아버지에 대한 애절한 추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무궁화 열차는 주말에도 경로 티켓이 있다. 감사한 일이다. 차창 밖 풍경을 보다 책을 보다 한다. 습관이 되어서인지 지하철이나 기차 안에서의 독서는 집중이 잘된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미의 기준도, 생각의 기준도 달라졌으니 누구든지 보는 그대로 좋아 보이면 그것이 좋음의 정의다. 내 눈에는 주름 투성이, 자연스레 시간을 따라 그 얼굴 그대로 늙어가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그냥 나는 그렇다는 것이다.
밖의 풍경이 보이는 작은 창문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축제가 끝나기도 했고,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어어서 비교적 넓은 실내에 손님이 없었다. 음식이 나올 떼까지 책을 펼쳤다. 혼자 여행을 다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책이 있어서다.
영동선 철암역은 1940년 묵호와 철암 구간 철도가 개통되면서 영업을 개시했다고 한다. 그 당시는 태백엣 생산된 무연탄 수송이 주 업무였다. 플랫폼 한편에 전시된 석타을 실어 나르던 화물차를 보며 당시의 시간을 더듬는다. (철암역과 동점역은 초등학교 방학 때 자주 이용하던 역이다. 장성에 있는 작은집에 놀러갈 때마다 이용하는 역으로 역 이름만 기억이 나고 역사의 모습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불국사역으로 가는 무궁화 열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갔다. 열차는 이미 대기하고 있다 서둘러 열차 앞으로 간다. 순간 여기저기 뜯어진 옷자락처럼 남루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노쇠함이 평범함을 넘었다. ‘참 많이도 달렸구나. 너도 이제는 좀 쉬어야겠다.’ 나도 모르게 내 몰골을 본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너보다 낫다. ( 나도 작가의 모습처럼 나를 돌아보면 남루하기가 어디 못지않다. 그래도 열정 하나는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불국사역 앞에서 찍은 사진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역사 뒤편에 기차카페가 있다. 요즘 간이역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카페다. 옛 역사는 작은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을 직지사 복지재단 산하의 김천 시니어 클럽에서 어르신 일자리 창출 사업의 하나로 운영하고 있단다. 얼마나 좋은가. 노인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옛 역사도 살리면서, 지난 시간을 탐색하는 교육 공간으로도 활용될 수 있으니. 문득 폐역의 쓰임과 노인의 쓰임이 같다는 생각에 씁쓸한 미소를 속으로 삼킨다.
봉하가 아니라 봉화역. (봉화역이 간이역이 되었다고 하니 참 신기하다. 우리나라 군청소재지가 있는 지역 역이 간이역이 된 곳이 봉화역 말고 또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쉬움이 있다. 하긴 봉화를 수없이 자주 갔지만 한 번도 봉화역을 이용해 보지 않았으니 봉화역의 쓰임이 줄어들 밖에, 봉화는 영주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봉화역보다는 영주역을 이용하고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봉화역에 내려 버스를 이용하여 가까운 곳을 가는 것보다 영주역에서 내리면 봉화군 어느 구석으로도 대부분 가는 버스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군이 나누어져 있지만 같은 생활권인 영주와 봉화의 특징이리라)
여러분은 간이역 여행을 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간이역에 갈 때마다 느낀ㄴ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한 사람의 생애와 닮은 부분이 많다는 점입니다. 희노애락의 모습을 엿봅니다. 역이 처음에 생기면 관심을 받고 알려지고, 또 시간이 흐르면 시설이 낡기도 합니다. 그 과정이 아기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성인에서 노인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갈 때마다 누군가를 만난 듯한 반가움과 정겨움이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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