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 백세희, 도서출판 혼, 2019
수필수업을 받을 때 강사님께서 소개한 책이다. 엄격히 말하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였다. 그 책은 지난번에 이미 읽었기 때문에 이번에 2를 읽게 되었다.
사실 첫 번째 책은 기대에 조금 못 미쳤다. 제목은 최고의 제목인데 내용은 뭔가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만큼 후편이 나왔으니 (벌써 3년 전에 나왔는데 몰랐다.) 찾게 되는게 보통인데 그렇지 못했다. 수필, 쓰고 싶다면 4번째 마지막 시간에 강사님께서 이 책의 예문을 들고 오셨기에 한 번 다시 봤다.
책을 덮으며 가까운 친구의 일상이 오버랩이 된다. 작가처럼 그런 힘든 생활을 지금도 하고 있는 그 친구. 그 친구도 탈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한데도. 선 듯 이 책을 권하지 못한다. 1권을 권했고 읽었는데 별로라고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그런 상태에 있는 분들이 느끼는 감정이 많이 다름을 알아가는 중이다.
저자 소개.
백세희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뒤 출판사에서 5년간 일했다.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경도의 우울증)와 불안장애를 앓으며 정신과를 전전했고, 2017년 잘 맞는 병원을 찾아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다.
독서 메모
한사람의 마음속 상처를 속속들이 보여줌을써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이 몰랐던 어두움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미 수많은 사람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의 손을 잡고 싶다.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하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방으로 들여 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크더라도 방 전체를 고르게 채운다. 인간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그 고통의 크기와 상관없이 우리 영혼과 의식을 가득 채운다. 고통이란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다. -빅터플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중에서
상담을 받기 전까지의 마음은 비가 잔뜩 와서 엉망이 된 땅을 보는 것 같았다. 의욕이 없고, 자기 확신은 부족하고, 멘토도 없었기에. 오로지 내 힘으로 모든 걸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도 꽤나 버겁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내 느낌이고 온전히 내 것인데, 자꾸 검열하려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맞는 건데. 감정과 느낌에 객관이라는 게 어디 있다고. 다 각자의 생각인 걸. 하지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시하는 게 나는 너무 힘들다.
--- p.27
생각만 하고 있을 때는 감정이 섞여 있잖아요. ‘그 당시의 감정’을 그대로 품고 있고요. 하지만 말로 꺼냈을 때는 자신을 관찰자 입장에서 평가할 수 있죠. 이성적으로요.
--- p.35p
내가 내 얼굴이 싫은데 누군가가 백날 예쁘다고 말해줘 봐야 그대로 퉝겨 나갈 뿐이다. 나를 부정하는 말들만 쏙쏙 흡수하겠지.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면 돌아오는 “네가 무슨 살을 빼”라느 말도 즐거웠다. 알량하고 이상한 권력. 거기에 흠뻑 취해서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남들의 시선을 위해 분기별로 살을 뺐던 나. 이런 생각을 하면 또 걷잡을 수 없는 정도로 식욕이 몰려오고, 그걸 통제하지 못하는 건 결국 나. 모든 건 다 내 탓이다.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중심을 두어야 할 것 같은데 타인의 눈과 나의 눈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내 모습이라는 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건데 저 사람은 어떤 타입이니까 나도 모르게 그 상대에게 좀 맞춰주고, 그렇게 온 타인들을 다 신경 쓰니까 정작 내가 좋아하고 날 좋아하는 상대에게는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그 상대가 내게 서운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어요.
--- p.75
잠병에 걸린 듯이 낮이고 밤이고 잠만 잔다. 자해를 한 뒤로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 같다. 결국 나는 나이고 싶으면서 나이고 싶지않다. 언제나. 이 복잡한 아이러니는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겠다.
남들이 보면 아, 문제가 있다. 정도로 종교에 심취한 분들도 사실 절실하고 절절한 마음이, 이렇게 노력하면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걸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우울하다고 하셨지만, 지금 그 열정을 통해서 다른 일들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이제 난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결정하며 내가 감당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간단하거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겐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었고, 그래서 언니를 포함한 다른 이들에게 끝없이 기생하며 살아왔다. 이젠 그렇지 않다는 걸 오롯이 느낀다.
--- p.149p
타인의 고통과 비교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물론 병원에 갈 수도 있게 되었고, 힘든 일이지만, 사회와 타인의 잣대로 자신의 아픔을 평가하고 억압하겠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단순히 내 어두운 감정도 비교하지 말고 외면하지 않고 집중하고 싶다. 즐거움을 음미하는 것처럼, 어둠도 들여다보고 나 자신과 대화하며 보듬어줄 것이다.
--- p.161
나는 이제 화살을 상대에게로 돌릴 줄 안다. 네까짓 것 때문에 나를 파괴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한다. 내 삶과 나 자신이 그렇게까지 보잘것없고 하찮지는 않다고, 인지한다. 내가 나를 과하게 검열하는 게 아니라 마치 제삼자를 보듯이 너그럽고 이성적으로 나를 관찰하고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안다.
--- p.177
지치고 피곤할 땐 모두 멈출 것이다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다면 언제든지. 나는 오로지 나일 필요가 있다. 그걸 서른에서야 깨닫는, 언제나 한 발자국씩 늦는 내가 싫을 뿐이다. 자기연민만큼이나 심각한 자기혐오, 그러나 이것 역시 나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우울하다’라고 했을 때, 우울하면 우울하니까 집에만 있게 되고 무기력하고 만나는 사람이 줄어들고 차단되잖아요. 그럴 때면 우울하지 않았을 때 하던 버릇, 행동을 하면서 벗어날 수도 있거든요. 사실 내가 우울하니까 이런 행동을 한다고 하지만, 이런 행동(은둔하는 습관)을 계속해서 하기 때문에 더 우울해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세로토닌이 높았을 때(상태가 좋을 때)의 행동을 계속하려고 하고, 그때 모습을 기억해서 조금이라도 닮아가려고 한다면 좋은 날을 만들 가능성을 늘릴 수 있지 않을까요.
--- p.226
사고가 조금 유연해 졌다. 일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하고 일반화하는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중이고, 실제로 느끼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심하게 영향을 잘 받는 점은 아직 두렵다. 감정의 끝과 끝은 이어져 있으니까. 마음을 동하게 하는 무언가를 만나면 지식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맹신하게 된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이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우울감은 잡혔지만, 감정의 파동은 여전해서 극도로 예민해졌다가 펑펑 울고, 느릿하게 퍼져 있기를 반복한다.
부족한 나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내게도 빛나는 부분이 많다. 답답할 정도로 보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다. 내 세계의 황량한 부분에서만 뒹굴고 있었다면, 푸르고 빛나는 공간에도 머무는 연습을 할 것이다. 이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모든 게 살아내기 위한 나만이 노력이 될 수 있다고, 일단 믿는 게 중요하다.
이제는 그 누구도 채울 수 없는 감정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구태여 채우지 않아도 되고, 채워질 수도 없는, 누구에게 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들이. 그래서 몸의 흉터를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p.260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숨을 쉬듯 당연하게 병원을 찾고 그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으며, 주변 사람들은 더는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는, 마음의 상처도 눈에 보이는 상처와 비슷한 무게로 여겨지는 날이 꼭 오면 좋겠다.
나는 이제 내가 싫지 않다. 내게도 빛나는 부분이 있다. 부족한 나를 받아 들이기보다는 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내 세계의 황량한 부분에서만 뒹굴고 있었다면, 이젠 푸르고 빛나는 곳에 머무는 연습을 할 것이다. 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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